한 달을 살아내는 방법

달력 만들기

by 김동현

달력을 돈 주고 산 적이 있었나.

최근 내게 달력은 두 종류뿐이었다.

회사 로고를 자랑하는 판촉용 달력과, 컴퓨터 화면 오른쪽 아래를 클릭하면 불쑥 나타나는 디지털 달력.

둘 다 날짜를 알려주긴 하지만, 내 하루를 바꾸거나 오래 기억하게 만들 만큼의 힘은 없다.


아마 처음 달력이 세상에 등장했을 땐 이야기가 달랐을 것이다.

날짜를 안다는 건 곡식을 언제 뿌리고 거둬야 하는지를 아는 일, 즉 정보였으니까.

그러나 그 절박함은 오래전에 사라졌다.

이제 달력은 대체로 빨간 날을 찾는 데 쓰인다.

일 년을 살아내는 표식이 아니라, 휴일을 기다리는 기호로 남았다.


지난달, ‘아침 프로비전’에서 진행한 월간 멈춤과 새김에 다녀왔다.

고무판에 그림을 새기고 잉크를 묻혀, 단 한 달을 쓸 달력을 직접 만드는 작업이었다.

서른 날 쓰고 버릴 달력을, 그것도 돈을 내고 만든다는 게 처음엔 낯설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현대 사회를 지탱하는 건 종종 이런 무용한 일들인지도 모른다.


작업은 토요일 오후 세 시에 시작됐다.

한 달 동안 곁에 두고 싶은 오브제를 스케치해오라는 안내에도 나는 끝내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한 달 동안 무엇을 가까이 두고 싶은가—

아직도 내 마음을 읽는 일은 이렇게 서툴다.


결국 가방에 달린 캥거루 키링을 꺼냈다.

호주를 다녀온 친구가 선물해준 작은 인형.

지금은 장식장 한 칸을 차지하고 있는 인형들의 시초이다.

마침 이번 달 판화 색상이 주황색이라 더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그럼에도 판화는 여전히 두렵다.

학창시절, 조각칼이 고무판을 넘어 내 네 번째 손가락을 깊게 파고든 적이 있었다.

고무판 위에는 잉크 대신 피가 번졌고, 상처는 오래도록 아물지 않았다.

흉터는 남지 않았지만, 판화를 떠올리면 손끝이 날카롭게 아린다.

몸에 남은 자국보다 머릿속에 남은 장면이 더 깊이 파고드는 경우가 있다.


처음부터 복잡한 무늬는 욕심내지 않았다.

덕분에 손재주 없다고 믿었던 나도 의외로 제법 그럴듯한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마무리로, 완성한 달력을 오 분 동안 바라보는 시간이 주어졌다.

창밖 햇빛이 책상 절반을 점령하며 작품 위로 기울어졌다.

나는 달력을 이리저리 기울여 빛을 바꿔보았다.

각도에 따라 잉크 색이 미묘하게 달라졌고, 그 변화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고요해졌다.

그 사이, 오 분이 훌쩍 지나갔다.


사람들은 현대 사회에서 소중한 것을 알아차리기 어렵다고 말하지만, 때로는 너무 쉽게도 알아차린다.

결국 문제는 내 안에 있다.


한국이집트학연구소 곽민수 소장은 매일 아침 냉장고에서 탄산수를 꺼내며 자신의 삶을 다시 확인한다고 했다.

깨끗하고 시원한 물, 거기에 탄산까지—

역사적으로 보면 이건 사치에 가까운 행위다.

그 사치를 알고 마시는 한 모금은 곧 감사의 연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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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의 말에 동의한다.

그에게 탄산수가 그렇듯, 나에게는 달력 위의 주황색 캥거루가 있다.

아무 쓸모없어 보이는 이것이, 무더운 8월을 이겨낼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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