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주말에는 뭐했어요?”
“차 박람회에 좀 다녀왔습니다.”
“동현 대리도 차 사게요?”
차(tea)를 말하면 차(car)로 향한다. 인터넷에 ‘차’를 치면 중고차 광고가 맨 위에 뜨는 시대, 우리가 속도를 사랑하는 만큼 언어도 속도에 익숙해져 있다. 그 익숙함에서 벗어나 차를 마시는 것이 취미라고 말하는 일은, 어쩌면 내가 구시대적인 사람으로 보이는 단편일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신년 계획이란 새로운 취미를 정하는 일이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사고를 확장하는 것. 그것이 내 서울살이의 첫 번째 목표였다. 2023년에는 성악과 연기를 배웠고, 2024년에는 해외여행을 통해 외국인 친구를 만났다. 올해는 또 어떤 취미를 갖게 될까. 그 기대감에 빠져 있으면 홀로살이의 쓸쓸함도 잠시 물러난다.
이번 새해에 새로운 취미를 고를 때 내가 놓치지 않으려 한 주제는 ‘마시는 일’이었다. 먹는 것에는 유난히 까다로운 편이지만, 마시는 행위만큼은 유연하게 소주, 맥주, 막걸리, 와인, 위스키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좋아한다. 한때는 낮은 등급이라도 소믈리에 자격증을 알아봤지만, 내가 원하는 건 ‘전문가’라는 이름표가 아니라 일상에 붙은 감각을 조금씩 가다듬는 일이라는 걸 깨닫고 곧 접었다.
‘마시는 행위‘가 정말 중요하다면, 그 대상을 술에만 한정되는 건 편식 같은 비극일지도 모른다. 자연스레 술이 아닌 다른 마실 것에 마음을 두게 되었고, 그렇게 찾은 것이 넷플연가 모임 ‘티마스터와 즐기는 세상의 모든 차’였다. 이름만으로도 생활의 폭과 사고의 폭이 즐겁게 넓어질 것 같아 곧장 신청 버튼을 눌렀다. 이 작은 시도가 눈덩이처럼 굴러 이렇게 블로그까지 이어졌으니, 내 인생의 전환점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나는 이 모임을 ‘수업’보다 ‘찻자리’라고 부르고 싶다. 책상 위 주전자에서 김이 오르고, 유리 거름망에 잎이 젖어 들고, 작은 잔에 얇게 뜨거운 숨이 맺히는 동안 사람들의 목소리도 함께 웅성거렸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티마스터에게는 적잖은 노고가 있었다. 차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시에 열 명이 넘는 모임원에게 맛있는 차를 끊임없이 내려주니, 얼마나 고된 노동이었을까. 반대로 우리는 얼마나 편안했던가. 어미 새에게 먹이를 기다리는 아기 새처럼 삐약거리며 차를 받아 마시고, 옹기종기 모여 떠들면 그걸로 우리의 역할은 끝이었다. 퇴근 후 저녁을 간편식으로 대충 때우고 와도, 맛있는 차와 간식으로 배부른 모임에 앉아 있는 일은 참으로 행복했다.
물론 모임이 이런 노력만으로 성사되지는 않는다. 다양한 모임을 겪어 본 입장에서 티마스터는 훌륭한 대장이었지만, ‘누구와 함께하는가’ 또한 중요했다. 우리는 때때로 회사 이야기도, 다른 취미도, 이런저런 고민도 꺼냈지만, 종국에는 언제나 차라는 주제로 되돌아왔다. 나는 그 따뜻하고도 순수한 집중이 좋았다. 편견일지 모르겠으나,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이어서 더 그런 성향을 공유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는 술 없이도 서로에게 충분히 진심일 수 있었다.
찻자리에서 가장 먼저 바뀐 습관은 티백을 우리는 법이었다. 예전의 나는 티백을 컵에 넣고 끓는 물을 붓자마자 휙휙 젓고, 색이 진해질 때까지 티백을 넣었다 빼기를 반복했다. 그런 나를 보며 티마스터가 '아이고'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티백으로 우릴 때는 가만히 두는 게 좋아요. 물과 잎이 천천히 서로를 알아갈 시간을 주세요.” 처음엔 손이 근질거려 티스푼을 잡을 뻔했지만, 잠시만 참으면 유리컵 속에서 색이 천천히 번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렇구나. ‘가만히 둔다’는 선택지도 있구나.
그날 이후 내 일상의 다른 부분들도 곰곰이 살폈다. 젓가락을 벌릴 때 검지와 함께 약지도 밀어 올린다든지, 눈썹을 그린 날에는 가려울 때 손톱 대신 손날로 문지른다든지, 내가 몰랐던 작은 습관들을 인식했다. 차를 배우는 동안, 사실은 나를 우려내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취향이 점점 세분화되는 만큼, 친구 사이에서 같은 취향을 찾기는 어려워졌다. 그래서 차를 즐길 줄 아는 모임에서 만난 ‘찻친구’들은 더욱 소중했다. 우리끼리는 서로를 ‘취향 친구’라고 불렀다. 올해 들어 두 번, 함께 차 박람회에 갔다. 입구부터 친구들은 각자 작은 개인 찻잔을 왼손에 쥐고 있었다. 부스마다 다양한 차를 시음하는데, 개인 잔이 있는 사람은 그 잔에, 없는 사람은 운 좋으면 도자기 잔에, 아니면 일회용 종이컵에 받는다. 코로나 이후 개인 찻잔을 권하는 흐름이라 했다. 입장 시 선착순으로 잔을 준다는 안내가 있었지만 이미 품절이었는지 우리는 받지 못했다. 사람들은 각기 다른 개성대로 단정하거나 화려한 잔을 들고 다니며 차를 마셨고, 그 모습은 작은 무도회 같았다. 개인 잔을 든 손들이 유독 우아해 보여서, 빈손인 나는 조금 샘이 났다. “잔 하나 오늘 장만하죠?” "이럴 때 쓰려고 돈 벌지!" 친구들의 달콤한 속삭임이 귓가를 스쳤고, 내 두 눈은 이리저리 구르며 갈수록 바빠졌다. 취향은 때로 지갑의 끈을 시험한다.
결국 올해 박람회에서 첫 찻잔을 샀다. 갓난아기 손에도 쏙 들어갈 만큼 작은 잔이었는데, 가격표에는 20만 원이 넘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첫날에는 망설였다. ‘소유욕’과 ‘비싸다’가 머릿속에서 맞붙었다. 아무것도 사지 못한 채 집에 돌아와서도 그 잔을 잊지 못했다. 꿈속에서 나는 그 잔에 백차를 따랐다. 손목의 기울기를 아주 조금 바꾸어 가벼운 황금빛 액체를 잔의 곡선에 스치게 하고, 엷은 향을 들이마셨다. 이번 달에 처음 꾸는 꿈이라 그런지 손끝의 감각이 지나치게 실제적이었다.
다음 날, 나는 혼자 다시 박람회장으로 갔다. 판매자는 잔의 유래와 만드는 곳을 간단히 설명한 뒤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혹시 깨지더라도 연락 주세요. 중국으로 보내 수선이 가능해요. 간혹 수선한 뒤가 더 예쁠 때도 있어요.” 그 말에 마음이 놓였다. 우리는 새것을 사랑한다고 믿지만, 실은 흠집과 수선을 품은 물건에 더 오래 마음을 준다. 금이 가고 다시 이어진 자리엔 시간과 손길이 겹겹이 스민다. ‘쓰고, 망가지고, 고쳐서 더 사랑하게 되는’ 삶의 방식과 닮아 있었다. 사실, 원한다면 평생 쓸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결국 3개월 무이자 할부로 결제했다. 평소 욕심이 적다고 믿던 나에게 이렇게 선명한 ‘갖고 싶은 것’이 생겼다는 사실이 오히려 건강하게 느껴졌다. 소유에는 책임이 따르고, 책임은 삶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 최근 집에 들인 식물도 그러했다. 물 주기와 가지 정리, 소소한 돌보기가 하루의 소중한 즐거움이 되어주었다. 찻잔도 그럴 것이다. 그날 밤, 집에 도착해 잔을 깨끗이 씻고는 그림 ‘홍산’ 앞에 두었다. 자주 쓰자는 뜻이었다.
최근 프로젝트 투입으로 타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새 환경에서는 언어의 속도와 눈빛의 간격, 앉아 있는 자세까지 조금 더 조심스럽다. 피곤이 쌓이던 탓에 동료들과 습관처럼 커피를 들이켰더니 금세 가슴이 벌렁거렸고, 집중은 오히려 흐트러졌다. 그래서 오늘, 작은 티포트와 새 찻잔을 가방에 넣어 가져왔다. 전열기기를 쓰는 건 과한 듯하여 정수기 온수로만 우렸다. 잎을 넣고, 물을 받고, 건드리지 않고 기다렸다. 그 몇 분 동안 화면의 반짝이는 알림창은 그대로였지만 내 마음은 정리됐다. 맛은 완벽하지 않았다. 그래도 충분했다. 김이 얇게 오르는 작은 잔, 손에 꼭 맞는 곡선, 첫 모금이 목을 넘어갈 때의 조용한 여유.
오늘 오후에도 업무 목록은 여전히 빼곡했고, 마감은 변함없이 가까웠지만, 내 처리 속도는 분명히 달라졌다. 문제를 빠르게 정의하고, 분류해서, 문서화했다. 역시 여유가 있어야 능률도 오른다.
차는 여유가 있을 때만 마시는 음료가 아니다. 차를 마심으로써 여유가 만들어진다. 겨울에 모임 친구들과 나누었던 그 말을 다시 꺼내며, 오늘도 나만의 의식을 이어간다.
내일은 꿈에서 보았던 장면처럼 백차를 마실 것이다. 잎을 넣고, 물을 붓고, 천천히 가만히 기다린다. 그리고 한 모금. 업무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내일도 따뜻한 여유를 한 잔 마실 것이다.
그러면 일도 금방 끝낼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