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진행 중

by 김동현

최근 한 달 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아무 일도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은 일이 겹쳐서.

하루가 금방 저녁이 되었고, 저녁이 금방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일은 계획대로 흘러주지 않았다.

S 프로젝트는 개발 지연으로 철수가 밀렸고, 더 미룰 수 없어 미완인 상태로 인수인계를 마쳤다.

온라인으로 역량 강화 교육을 수강하며 일곱 개의 보고서를 작성했고,

아이디어 공모전에는 AI 페르소나를 주제로 PPT를 제출했다.


그 사이 몸은 물로 향했다.

숨고에서 1:1 수영 강습을 받으며 겨우 10m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내 몸은 생각보다 물에 잘 떴고, 힘을 덜자 하루 만에 배영도 가능했다.

물은 과장을 허용하지 않고, 준 만큼만 반응했다.

베란다의 몬스테라 ‘몬테수마’는 새 잎을 두 장 틔웠다.

그 모습이 대견해서 영양제를 하나 놔줬다.


주말에는 정해 둔 활동을 했다.

티 모임 친구들과 국제 차 박람회를 돌았고, 티마스터의 북토크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 가 본 사주 카페는 결이 맞지 않아 고개를 몇 번이나 갸웃거렸다.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작 『사탄탱고』도 읽기 시작했다.

친구 K의 집에서 사백만원이 넘는 헤드폰이 만든 소리의 깊이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나는 이렇게 길어지는 순간에 마음이 간다.


사람들은 멀어졌다가 가까워지곤 한다.

같은 건물 로비에서 6년 만에 대학 동기를 우연히 마주쳤고,

우리는 흡연장에서 그동안의 이야기를 정리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제는 우리 둘 다 돈보다 시간이 없다는 것,

그리고 나는 더 이상 담배를 피우지 않다는 것이다.


추석에는 해외주식 수익으로 가족과 비싼 저녁을 먹었다.

동생 부부에게 아이가 태어나 백일해 예방주사를 미리 맞았다.

조카의 생일이 대만 국경일과 겹친다는 사실은 작은 농담처럼 대화를 오래 붙들어 주었다.


아침이면 어제가 흐릿해졌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반복하는 대신 잠을 앞당겼다.

계획을 빽빽이 쓰기보다 그날의 가장 작은 장면 하나만 붙들려고 노력했다.

되도록 시간을 흘려보냈다.

생각해 보면 시간은 공평하기보다 인지하는 사람에게 공평하다.

인지가 빠져나가면 하루는 새어 나가고, 기억은 빠르게 닳는다.

결국 남는 건 흔적뿐이다.


그럼에도 일은 계속된다.

동료의 결혼식, 연말 평가서, 새 프로젝트.

손끝에는 남은 게 없는 듯해도 노트를 펼치면 다양한 표시로 촘촘하다.


돌아보면 지난달은 실패가 아니라 일상이었다.

완료라는 깃발을 많이 꽂지 못했을 뿐, 여전히 진행중인 일들이 남아있다.

삶은 end보다 ing에 가깝고, 그 흔적은 이렇게 기록으로 남는다.


물은 서두르는 사람을 금방 알아본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물에 몸을 맡기되 방향은 잃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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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도 채 안 걸려서 순식간에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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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난 것은 많이 갈라졌는데, 이번에 난 것은 속이 꽉 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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