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차와 블랙티

동서양의 관점 차이

by 김동현


[1]

오후 네 시, 햇살이 책상 귀퉁이를 비출 때

나는 찻잔을 다시 채운다.

뜨거운 물이 찻잎을 만나 서서히 붉어진다.


동양에서는 이 차를 홍차(紅茶)라 부른다.

붉으니까 홍차다.

이보다 더 솔직한 이름도 없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이 차를 Black Tea, 검은 차라고 부른다.

젖기 전, 바짝 말라 있던 찻잎의 색을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같은 대상을 두고 한쪽은 우러난 결과를 보고, 다른 한쪽은 재료의 시작을 본다.

이 시선의 어긋남 속에 홍차의 성격이 숨어 있다.



[2]

홍차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과학적으로는 산화(Oxidation)라고 부른다.

공기와 만나며 색과 성질이 변하는 일이다.


깎아 놓은 사과가 서서히 갈색으로 변하고,

은수저가 시간이 지나며 어둑해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녹차는 잎을 따자마자 열을 가해 이 과정을 멈춘다.

가장 초록이던 순간을 붙잡아 두는 방식이다.

그래서 녹차는 풋풋하지만 어딘가 긴장돼 있다.

아직 늙지 않으려 애쓰는 얼굴처럼.


반면 홍차는 다르다.

제 몸을 공기 속에 그대로 내맡긴다.

햇볕 아래 오래 서 있던 사람의 피부가 자연스레 그을리듯,

찻잎은 산소와 시간을 통과하며 점점 어두워진다.

서양의 명명은 그 과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였을 것이다.



[3]

흥미로운 건 그 다음이다.


그렇게 거뭇해진 잎에 뜨거운 물을 붓는 순간,

홍차는 가장 화려한 색을 드러낸다.

녹차가 끝내 흉내 낼 수 없는, 깊고 부드러운 붉은 빛.


세월을 정면으로 통과한 가구에서 은은한 광택이 배어나오듯,

산화를 견뎌낸 잎만이 낼 수 있는 향빛이다.


동양의 시선은 잎이 얼마나 그을렸는지를 묻지 않았던 것 같다.

기다림 끝에 결국 어떤 빛으로 우러나는가.

그 마음의 색을 보았을 뿐이다.



[4]

나는 가끔 거울 속의 나를 보며

내가 Black Tea 같다는 생각을 한다.


세상이라는 공기에 너무 오래 노출되어

여기저기 닳고, 색이 바랜 얼굴.

신입 시절의 초록빛은 희미해졌고

겉은 어둡고, 속은 쉽게 식지 않는다.


서양식 명명법대로라면

나는 분명 Black 쪽에 가깝다.


하지만 굳이 녹차처럼 파릇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투명한 상자에 담겨 박제된 신선함보다,

차라리 적당히 노출되고 적당히 그을리며

나만의 향빛을 갖는 편이 더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겉모습이 조금 낡아졌다면 어떤가.

누군가와 마주 앉아 마음을 나눌 때

내 안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풋내가 아니라 따뜻한 위로라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5]

오늘도 나는 뜨거운 물을 붓는다.


비틀어지고 어두워진 잎들이

물속에서 다시 기운차게 피어오른다.


Black으로 살아가지만

Red를 품고 있는 모든 그을린 존재들을 위하여.


찻잔 위로 오르는 김이

오늘따라 유난히 포근해 보인다.



추신)

백차를 좋아하지만, 겨울엔 역시 홍차가 더 생각난다.

홍차의 매력을 알고 싶은 당신을 위해 이 책을 추천한다.

오후4시 홍차에 빠지다 | 이유진 -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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