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곳만 바라보면, 지금 당신에게 주어진 걸 누릴 수 없어요."
- 영화 <패신저스(Passengers)> 중에서
[1]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사는 회귀 좌표가 있다. 후회로 점철된 어느 날 밤, 혹은 가장 찬란했던 시절의 어느 오후.
나는 가끔 '돌아간다'는 말의 무게를 가늠해 본다. 돌 회(回)는 입 구(口) 자 두 개가 겹쳐진 모양이다. 마치 쳇바퀴처럼 갇힌 모양새 같기도 하고, 우물 속에 또 다른 우물이 있는 깊은 심연 같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이유는, 현재라는 우물이 너무 깊고 어두워 보이기 때문은 아닐까.
삶이 버거울 때면 우리는 습관처럼 눈을 감는다. 눈꺼풀이라는 얇은 막 하나를 내리는 것만으로 세상과 단절된 캄캄한 어둠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간절히 염원한다. 눈을 떴을 때,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될 수 있는 그때로 되돌아가 있기를.
[2]
상상해 본다. 지금 나의 육체는 사실 늙고 병든 80대 노인의 것이다. 침대에 누워 가쁜 숨을 몰아쉬며 뼈저리게 후회하는 바로 그 순간이다.
"제발, 딱 한 번만 건강한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다면. 딱 한 번만 젊은 날의 그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노인인 나는 신을 향해, 우주를 향해, 혹은 나 자신을 향해 피를 토하듯 기도한다. 그 간절함이 하늘에 닿아 기적적으로 시간이 되감긴다.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며 빛이 들어온다.
눈을 떴다.
익숙한 천장, 스마트폰 알람 소리, 창밖에서 들려오는 자동차 경적.
바로 지금, 여기다. 내가 그토록 염원하던 과거가, 기적처럼 내게 주어진 오늘이다.
[3]
그렇다면 나는 이 두 번째 삶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80대 노인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젊음을 다시 손에 쥐었음에도, 나는 여전히 이불속에서 뭉그적거리고 있다. 출근하기 싫다는 생각에 미간을 찌푸리고, 사소한 실수에 얼굴을 붉히며,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에 스스로를 가둔다.
이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미래에서 온 내가 본다면 지금의 나는 얼마나 한심하고 답답해 보일까. 숨 쉬는 것조차 힘겨웠던 미래의 나에게, 지금의 건강한 폐로 들이마시는 이 미지근한 공기는 달콤한 축복일 텐데 말이다. 불평으로 가득 찬 이 일상이 실은 기적의 연속임을, 다시 주어진 이 시간이 덤이 아니라 선물임을 왜 자꾸 잊어버리는 걸까.
[4]
다시 눈을 감아본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 속삭인다. 지금 이 순간은 연습 게임이 아니다. 이미 한 번의 생을 실패하고, 천운으로 다시 얻어낸 2회 차 인생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의 채도가 달라진다. 무심코 지나쳤던 어머니의 잔소리는 아직 내 곁에 살아계시다는 따뜻한 증거가 되고, 고된 업무로 인한 피로는 내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기능하고 있다는 생생한 감각으로 치환된다. 동생과 나누는 사소한 농담, 퇴근길의 씁쓸한 밤공기. 이 모든 것이 사무치게 그리웠던 풍경들이다.
[5]
우리는 어쩌면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순간마다 회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제의 죽음 같은 잠에서 깨어나, 오늘의 삶으로 되돌아오는 기적.
먼 미래의 당신이 그토록 돌아오고 싶어 했던 가장 찬란한 날이, 바로 당신이 지금 눈을 뜨고 이 글을 읽고 있는 오늘이다. 당신의 기도는 이미 이루어졌다.
기적처럼 되돌아온 이 시간을, 당신은 어떻게 채울 것인가? 또다시 비교와 후회의 그림자 속에 웅크려 있을 것인가, 아니면 사무치게 그리웠던 이 평범한 하루를 온몸으로 껴안을 것인가.
나는 이제 눈을 뜬다. 눈꺼풀의 무게를 이겨내고, 다시 주어진 나의 세계를 똑바로 응시하기 위해.
부디, 이 귀한 오늘을 후회 없이 살아낼 용기가 우리에게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