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을 했다.

by 김동현

선물을 했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담아 건네는 ‘선물(Present)’이 아니라, 미래의 불확실성을 담보로 하는 ‘선물(Future)’ 이야기다.

보통의 사람들은 주식이나 코인까지는 접해도 선물의 영역까지 발을 들이는 일은 드물다. 그래서 그 개념조차 아리송해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어는 그 특성상 한자어와 깊은 연관이 있어, 단어를 해체해보면 뜻이 명료해진다. 선물은 먼저 선(先)에 물건 물(物) 자를 쓴다. 물건을 먼저 거래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장래의 일정한 시기에 상품을 넘겨준다는 조건으로 현재 시점에서 가격을 미리 정해 매매 계약을 하는 것이다.


이 개념이 어렵다면 시골의 밭을 떠올려 보자. 배추 농사를 짓는 농부가 있다. 가을 수확 철이 되면 배추가 쏟아져 나와 가격이 폭락할까 봐 농부는 걱정이 태산이다. 반대로 김치 공장 사장은 흉년이 들어 배추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을까 봐 밤잠을 설친다. 이때 둘은 약속을 한다. “가을에 배추 가격이 얼마가 되든, 지금 정한 이 가격으로 거래합시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밭떼기’이고, 선물 거래의 본질이다. 결국 선물은 미래에 대한 가격을 현재 시점에 고정하는 행위다. 그러니 이것은 얼마나 미래를 잘 예측하느냐의 싸움이자, 불확실성이라는 안개 속을 걷는 모험인 셈이다.



선물의 또 다른 특징은 냉혹한 ‘제로섬(Zero-sum) 게임’이라는 점이다. 흔히 주식을 제로섬 게임이라 오해하지만, 주식은 회사가 성장하면 주주 모두가 웃을 수 있는 ‘플러스 섬’이 될 수 있다. 회사가 상장 폐지되지 않는 한, 내가 산 주식 조각은 기업의 가치로서 계속 존재한다. 그러나 선물은 다르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계약’이자 ‘약속’이기 때문에 반드시 매수자와 매도자가 짝을 이뤄야 한다. 누군가 100만 원을 벌었다면, 반대편의 누군가는 반드시 100만 원을 잃어야만 성립되는 세계다. 만기일이 도래하면 약속은 청산되고 실체는 연기처럼 사라진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는 ‘상우’라는 캐릭터가 나온다. 서울대를 나온 수재이자 증권맨이었던 그는 왜 그 잔혹한 게임에 참가해야만 했을까. 작중 그는 고객의 돈까지 끌어다 선물 투자를 했다가 천문학적인 빚을 진다. 주식은 내 돈이 0원이 되면 끝나지만, 선물은 원금 이상의 손실, 즉 빚을 남길 수 있다. 쌍문동의 자랑인 그조차도 미래를 맞히는 홀짝 게임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린 것이다.


내가 처음 자본 시장에 기웃거린 건 2014년, 대학교 2학년 무렵이었다. 경제 관념을 심어주시려던 부모님이 건넨 50만 원이 시드머니였다. 나의 첫 주식은 삼성전자도, 현대차도 아닌 ‘골든센츄리’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이름에 ‘골드(Gold)’가 들어가서. 우습게도 그 주식은 매수 다음 날 상한가를 쳤다. 전형적인 초심자의 행운이었다. 그 달콤함 때문이었을까, 나는 우량주보다는 변동성이 큰 잡주들에 마음을 뺏겼다. 강의 시간에도 시세창이 아른거려 몸이 근질거렸다. 이러다간 일상이 잠식당하겠다 싶어, 소위 말하는 도박성 중독을 경계하며 주식 투자를 그만두었으나


다시 시장에 발을 들인 건 2020년이었다. 금융 IT 회사에 입사하면서 업무상 하루 종일 차트를 들여다봐야 했다. 코로나 이후 유례없는 불장이었지만, 과거의 기억 때문에 섣불리 개인 투자를 하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선물옵션 특화 화면과 자동주문 콘텐츠 개발을 담당하게 되었다. 일반인들에게는 금기의 영역, 전문가들의 전쟁터라 불리는 선물 시장을 그렇게 마주하게 되었다. 테스트를 위해 법인 계좌로 주문을 넣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꽤 짭짤한 수익을 냈다. 그래, 그것이 문제였다. 불행의 씨앗은 언제나 달콤한 과실 속에 숨어 있다.



한국에서 개인 투자자가 선물 거래를 하려면 제약이 많다. 1,000만 원 이상의 예탁금을 넣어야 하고, 유료 교육을 이수하고 모의 투자 10시간을 채워야 한다. 해외 선물이나 코인 시장에 비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말도 있지만, 그만큼 위험하기에 쳐놓은 울타리일 것이다. 나는 그 울타리를 기어코 넘었다. 교육을 듣고 권한을 획득했다. 기억에 남는 순간은 코로나 백신을 맞은 날이었다. 백신 휴가를 받아 집에서 쉬던 날, 몽롱한 정신으로 단타를 쳐서 꽤 큰 돈을 벌었다. 그때 멈췄어야 했다. 운을 실력으로 착각하는 오만함이 싹트기 시작했으니까.


최근까지는 욕망을 잘 억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결국 그 둑이 터지고 말았다. 시장에 악재가 겹쳐 하락할 것이라 확신하고 ‘매도(Short) 포지션’에 진입했다. 가격이 떨어져야 돈을 버는 쪽에 건 것이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차트는 장 마감까지 쉬지 않고 붉은 기둥을 세우며 치솟았다. 선물 투자에서 절대 해서는 안 될 금기가 ‘물타기’다. 손실을 줄이겠다고 포지션을 더 늘리는 행위. 나는 홀린 듯 그 금기를 어겼고,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오늘의 장은 이성적으로 봤을 때 한 방향으로 밀고 갈 흐름이었다. 나처럼 감정적으로 덤비는 개미들을 솎아내기 위해 세력들이 종종 만드는 강력한 인공풀처럼. 머리로는 ‘손절’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그것은 돈에 대한 미련이라기보다, 내 판단이 틀렸음을 인정하기 싫은 유치한 자존심이었다.


인간은 자란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육체는 어른이 된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나이만큼 성숙해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가끔 인간의 정신에도 육체처럼 성장판이 닫히는 한계치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는 키가 작은 사람을 보며 “왜 더 자라지 않았어?”라고 비난하지 않는다. 그것은 유전적, 신체적 한계임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신적인 성장에 대해서는 유독 가혹하다. 왜 더 참지 못했느냐고, 왜 더 현명하지 못했느냐고 스스로를 채찍질한다. 정신의 키가 거기까지 자라지 못했을 수도 있는데 말이다.


오늘 투자 실패의 핑계를 대보자면, 최근 이어진 야근과 휴일 근무로 정신이 마모된 탓이라 하고 싶다. 최선의 선택은 최선의 컨디션에서 나온다. 피로한 뇌는 고집을 부리고, 지친 마음은 헛된 희망을 품는다. 그러니 여러분은 부디 중요한 선택 앞에서는 몸과 마음을 가장 평온한 상태로 두기를 권한다.


글을 마치며 당신에게 묻고 싶다. 이 글을 다 읽은 당신은, 나의 이 절절한 후회와 수치심을 읽으며 내가 과연 ‘얼마’를 잃었다고 짐작하는가? 천만 원? 일억 원? 아니면 전 재산? 당신이 머릿속에 떠올린 그 금액은, 어쩌면 당신이 감당할 수 있는 고통의 크기이자 감정의 민감도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슬쩍 귀띔해 주시라. 얼마의 손실이면, 당신은 이러한 감정의 구덩이에 빠지게 되는지.


그럼 나는 이만, 쓰린 속을 달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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