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이렇게 마시잖아.

by 김동현


나는 알코올 중독이다. 이제는 인정해야만 한다.


우리 사회에서 술은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다.

소통의 도구가 되고, 공동체의 접착제가 되고, 위로와 축하를 대신한다.

때로는 노동과 여가의 경계까지도 술이 대신 그어준다.

그러니 혼자 마시는 술은 믿음을 배반한 행위처럼 취급되고,

누군가의 잔을 채우는 일은 ‘너도 우리 편’이라는 통과의례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자작자음(自酌自飮)이 유난히 차갑게 보이고, 권주(勸酒)가 유난히 따뜻하게 포장되는 건 그래서다.


아버지는 술을 자주 드셨다.

‘일 년 365일 중 400일을 마신다’고 농담처럼 말할 정도였다.

말이 안 되는 계산인데도, 이상하게 그 농담이 쉽게 이해됐다.

이러나저러나, 어린 시절의 나에게 그것은 별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대학에 들어가고, 내 술버릇은 천천히 아버지를 닮아가기 시작했다.


단일 주종이 아니라 폭탄주를 찾는 것도 그때부터였다.

소주는 역하고 맥주는 밍밍하다는 이유는, 지금 생각하면 그럴듯한 포장에 가까웠다.

어차피 1차에서 소주 마시고 2차에서 맥주 마실 거라면, 처음부터 빨리 취해서 일찍 집에 들어가자.

밤새 마시지 않는 것.

그것이 내 음주 습관을 겨우 변호할 수 있는 마지막 마지노선이었다.


나는 술을 꽤 잘 마셨다.

어디 가서 못 마신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대학 시절엔 더 그랬다.

술을 잘 마시는 게 남자답다는, 지금 생각하면 촌스럽고 노골적인 편견이 공기처럼 깔려 있었다.

그 공기 속에서 자라난 나는 남자로서의 자부심 같은 걸 술잔 위에 올려놓고 흔들었다.

남성성을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더 자주 술자리를 기웃거렸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건, 타인에게 술을 강요하진 않았다는 점이다.

내가 마실 술도 부족한데 남에게 나눠줄 여유가 어디 있겠나.


문제는 그 이후였다.

직장 때문에 서울 살이를 시작하고, 한동안 많이 힘들었다.

오랜만에 혼자가 된 기분도 있었지만, 더 큰 문제는 술 마실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돌이켜보면 혼자 술을 마셔본 적이 거의 없었다.

밖에서는 친구들과, 집에서는 아버지와 늘 함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울에서는 혼술이 기본값이 되었다.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술을 마셨다.


혼자 마시기 시작하니, 술은 더 빠르게 취향이라는 가면을 얻었다.

위스키에 빠진 것이다.

더 다양한 맛을 알고 싶어서 바(Bar)에도 가봤다.

처음엔 노트를 들고 다니며 점수를 매겼다.

내 미각을 더 잘 알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외로운 사람처럼 보이기 싫었던 마음이 더 컸다.

기록을 하면 취미가 되고, 취미가 되면 체면이 생긴다.

비싼 술을 연거푸 마실 수 있는 곳에서 잠깐 이런 착각을 했다.

아, 이것이 서울의 맛이구나!


착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서울의 가격은 밥값이든 술값이든 금방 월급을 비워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도수가 높고 양이 많은 가성비 칵테일 쪽으로 눈이 갔다.

그 대표가 롱아일랜드 아이스티, 소위 롱티였다.

레몬의 강한 신맛과 콜라의 짜릿한 단맛은 알코올의 얼굴을 쉽게 가려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양이 많다.

역시 인기가 많은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나는 그 이유를 아주 성실한 학생처럼 복습했다.


그날은 유난히 지치는 날이었다.

업무도 잘 풀리지 않았고, 준비하던 시험에도 낙방했다.

그렇다고 크게 불행했던 건 아닌데, 이상하게 모든 것에 불만이 가득 찬 상태였다.

술을 마셨다기보다 몸에 쏟아 넣었다.

한 곳에서 쏟아 넣고, 다른 곳에 가서 또 쏟아 넣었다.

진탕 취한 채, 지하철로 한 정거장 거리인 집까지 스스로 돌아갈 자신도 없어서 택시를 탔다.


집엔 침대가 있었지만, 그날은 방바닥에 그대로 널브러져 잠들었다.

새벽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한 시간에 한 번씩 깨서 화장실을 들락날락했다.

‘응급실에 가야 하는 거 아닐까’라는 생각이 목까지 차올랐다.

수치스러웠다.

다 큰 직장인이 술 조절 하나 못 해서 응급실을 고민하다니.

그래도 출근은 했다. 대신 회사에서도 화장실을 여러 번 들락거렸다.

그때 처음으로, 정말 처음으로, 내가 너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그런데 그날의 결정타는 저녁이었다.

속을 달래겠다고 얼큰한 갈치탕을 먹으러 갔는데, 나도 모르게 소주를 시켰다.

그 순간 확신이 들었다.

아, 이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구나.

중독이구나.


나는 담배를 끊은 사람이다. 그래서 술도 끊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실제로 그 이후로 1년 동안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단호한 내 모습이 뿌듯했고, 무엇보다 안심했다.

그러나 안심은 늘 방심을 동반한다.

큰 프로젝트가 끝난 날, 부장님이 고생했다며 참치를 사주겠다고 했다.

그 한마디에 무너지기 시작하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기념이니까.”

나는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금(禁)이라는 말이 얼마나 쉽게 깨지는지 그때 알았다.

아마 그래서 금주(禁酒)보다는 절주(節酒)라는 말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끊는다는 말은 거창하지만, 현실은 늘 이번만이라는 핑계로 이어지니까.


다행인 것일까, 병원에서 중독을 진단받지는 않았다.

그런데 내 인생을 돌아보면, 중독이라는 말 말고는 설명이 잘 안 된다.

술을 사랑해서가 아니다.

술을 즐겨서도 아니다.

술이 나를 위로하는 게 아니라, 내가 술을 핑계로 나를 방치해 왔던 것 같다.

술은 점점 선택이 아니라 기본값이 되어갔다.

기분이 좋을 때도, 나쁠 때도, 아무 일 없을 때도.

나는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었다.


어디선가 이런 문장을 읽은 적이 있다.

술이나 담배를 과하게 즐기는 행위가 남자답다는 믿음은

몸을 망가뜨려도 상관없다는 방식으로 남성성을 증명하는 일이라고.

그런 믿음 때문에 많은 남성들이 남성성을 지키겠다는 핑계로 술과 담배를 배우고, 버릇으로 만들고, 문화로 포장한다.

하지만 그 끝은 대개 자기 자신을 넘어 타인까지도 해치는 방식으로 되돌아온다.

나는 그 문장이 꼭 남의 이야기처럼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내 얘기를 너무 간단히 요약해 버려서 불쾌할 정도였다.


사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맥주 한 캔을 비우고야 말았다.

인정하면서도 결국 고치지 않는 사람.

그래서 이 고백이 더 비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어쩌랴.

적어도 이제는 숨기지 않기로 했다.

괜찮다는 말로 스스로를 속이지 않기로 했다.

내게 술은 취향에 앞서 습관이고,

나는 아직 그 습관을 끊어낼 만큼 단단하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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