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바리 ① - 독서모임 향연
최근 독서모임을 시작했다. ‘트레바리’라는 플랫폼에서 진행되는 ‘체험독서 – 향연’이라는 모임이다.
현대미술을 주제로 책을 함께 읽고, 관련 전시도 함께 보러가는데
'향연'이라는 이름처럼 왠지 와인도 한 잔쯤은 곁들일 것 같다.
물론, 주객이 뒤바뀌지 않도록 조심 해야겠지만.
사실 미술을 주제로 한 모임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년 전, ‘넷플연가’에서 ‘미술랭가이드 – 현대미술 제대로 감상하기’ 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다.
각기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미술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즐겁게 각인된 장면은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다들 와인을 한 병씩 들고 왔던 날이다.
누군가는 오래 고민한 듯했고, 누군가는 냉장고를 열다 급히 꺼낸 듯했지만
그렇게 다양한 마음으로 숙성된 와인 덕분에
우리는 조금 더 가까운 거리에서, 조금 더 편하게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다.
이런 시간을 함께한 사람들이 바로 요즘 말하는 '취미 친구' 아닐까 싶다.
‘넷플연가’와 ‘트레바리’는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그 중심은 조금 다르다.
전자는 영화, 후자는 책.
나는 한동안 책보다는 영화를 더 가까이 뒀던 터라 전자가 익숙했지만, 왠지 이번엔 책이 끌렸다.
책을 읽고, 이야기하고, 다시 그와 관련된 전시를 보러 간다는 구조도 꽤 마음에 들었다.
조금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나는 사실 전시회를 갈 때 약간 멋져 보이고 싶어서도 간다.
그렇다고 “이건 어디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이고, 상징은 저런 의미야” 같은 말을 내뱉진 않는다.
그냥 “흐흐, 이 코 너랑 닮았다”는 농담이나 하며 웃고 넘기는 편이다.
모두가 그럴 줄 알았는데, 이번 모임에서 다른 분들의 깊이 있는 감상을 듣고 있자니 내 무지가 부끄러웠다.
그러면서도 쫄래쫄래 전시 꽁무니를 열심히 쫓아다닌 지난날의 내가 어쩐지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처럼 짠하고도 장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이번 모임이 더 기대됐다.
모임장님과 이렇게 뛰어난 감각을 가진 분들과 함께라면 나도 좀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와, 이거 진짜 못생기게 잘 만들었다” 하고 웃어 넘겼을 작품들도 조금은 다르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여전히 엉뚱한 감상을 내뱉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나도 제법 그럴듯한 해석을 곁들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상상만으로도 꽤 근사해서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대망의 첫 모임 책은 레너드 코렌의 『What Artists Do』였다. 한국어판 제목은 『예술가란 무엇인가』.
사실 이 책이 첫 도서라는 점이 나에겐 정말 큰 위안이 됐다.
총 136쪽, 그마저도 페이지마다 문장 하나만 적혀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대만 여행 중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후루룩 다 읽어버렸다.
그러나 짧다고 가볍진 않다.
마르셀 뒤샹, 존 케이지, 크리스토와 장클로드 부부, 리처드 세라 같은 현대예술의 대표적인 인물들이 등장한다.
각각 『샘』, 『4분 33초』, 『포장된 개선문』, 『기울어진 호』로 널리 알려진 작가들이다.
불편한 점은 책이 얇은 만큼 이미지가 수록되어 있지 않아서 작품들을 하나하나 직접 찾아보아야 했다.
나는 이미 찾아보긴 했지만, 저작권에도 영 무지하여 이곳에 함께 올려도 괜찮은지는 잘 모르겠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 번 찾아보시기 바란다.
(특히 크리스토와 장클로드 부부의 작품은 독특해서 추천한다.)
이제, 이 책을 읽고 나서 쓴 나의 독후감을 슬며시 꺼내볼까 한다.
짧은 문장을 따라 툭툭 걷다 보니, 예술가란 무엇인지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공공 미술에 대한 생각 - 『What Artists Do』를 읽고. 2025.04.09
2023년, 문화체육관광부가 공공 미술 프로젝트에 무려 1,000억 원을 투입했다는 뉴스를 최근에 접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나름 다양한 전시회를 찾아다녔다고 생각해왔지만, 정작 한국의 공공 미술에는 한 번도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앞으로도 배울 게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What Artists Do』를 읽으며, 이미 알고 있던 작가들도 있었지만, 크리스토와 장클로드, 그리고 리처드 세라 같은 작가는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설치 미술보다는 회화 미술을 더 선호하는 편이라는 것도 새삼스레 다시 한 번 느꼈다. 하지만 편향된 시선을 갖지 않기 위해, 이번 기회에 의식적으로 설치 미술 작품들을 찾아보았다.
특히 언급하고 싶은 작품은 리처드 세라의 'Tilted Arc'이다. 두께 64mm, 길이 37m, 높이 3.6m의 강판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뉴욕 맨해튼 폴리스퀘어에 설치된 대형 조각물이다. 공공 미술이란 대중을 위한 미술을 의미하지만, 이 작품이 과연 대중이 좋아할 만한 작품인지는 의문이다. 그렇다면 리처드 세라가 생각한 공공 미술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이 작품이 폭력과 억압에 저항하는 시민 의식을 일깨우는 데 의의가 있다고 생각했다. 흔히 "잃어봐야 소중함을 안다."는 말이 있다. 'Tilted Arc'는 설치됨으로써 공간을 이분화하고, 기존의 자유로운 동선을 방해했다. 그 결과, 대중은 불편을 느끼고 민원을 제기하며 격렬히 저항했다. 그리고 결국 이 작품은 법정 싸움 끝에 철거된다. 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비로소 이 작품이 완성되었다고 느꼈다.
과연,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미국에서 일반 대중이 이렇게까지 강하게 저항했던 순간이 최근에 있었을까. 대개 사람들은 정부의 흐름에 순응하고, 사회 시스템에 안주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위기는 늘 그런 평온함 속에서 찾아오기 마련.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우리는 여전히 저항할 수 있는 힘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대중은 실제로 저항했고, 승리를 거머쥐었다. 나는 이 과정을 예방 주사처럼, 미래의 억압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을 자각하게 해주는, 어떤 사회적 항체가 생기는지를 보여준 계기로 바라보았다.
설치 미술에 대한 관심이 생기자, 최근 홍콩 M+ 뮤지엄에서 전시 중인 'Old People's Home'이라는 작품도 눈에 들어왔다. 전직 정치인, 군인, 종교 지도자를 닮은 노인 조각상 13명이 전동 휠체어에 앉아 천천히 움직이며 서로 부딪히는 모습은 세계 질서를 풍자하는 설치 작품이다. 설치 미술에 관심이 생겼다면 한 번쯤 검색해볼 만한 작품이라 생각한다. 마침 작년 9월에 홍콩에 다녀오며 M+ 뮤지엄도 방문했는데, 시기가 맞지 않아 이 작품을 직접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Old People’s Home (2007) - Sun Yuan and Peng Yu | Objects | 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