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하지 않았지만, 이사를 했다

감사한 일

by 김동현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거주한 지도 벌써 5년이 되었다. 세월에는 장사 없다고, 매해 장마철마다 불안하던 브릭 타입의 바닥재 몇 개는 결국 각자의 탄력성을 이기지 못해 들떠버렸다. 이내 우리 집 냄새의 과반은 이런저런 방향제나 향수보다 시멘트 냄새가 차지하기 시작했다. 바닥재 아래에는 건물의 태초부터 함께한 시멘트가 단단히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 이미 3년쯤 살았을 때, 눈에 보이는 부분만 장판으로 덮는 보수공사를 진행한 적이 있다. 원룸에 사는 나로서는 방 안의 짐을 전부 옮길 공간이 없었기 때문에, 바닥 전체를 대상으로 할 수는 없었다. 가능한 부분만 차선책으로 덮을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다. 그러다 문득, 잊고 있었던 시멘트 냄새가 침대 저 아래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최근 장마철이 유독 지독했던 탓이었을까. 침대 프레임 아래로 보이지는 않지만, 바닥재는 마치 물 만난 물고기처럼 이리저리 상체를 흔들고 있을 것이 선명히 그려졌다.


다행히 우리 임대인께서는 정말 좋은 분이셨다. 바로 직전 집에서는 집주인과 싸우고 나온 터라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 일전에 장판 보수공사도 해주셨는데, 이번에도 흔쾌히 다시 해주신다고 하셨다. 이것만으로도 천사라 부르기에 손색없는데, 임대인께서는 "이왕 하는 김에 도배까지 하자"라고 역제안까지 주셨다. 게다가 다른 방에 아직 세입자가 들어오지 않아서 그곳에 짐을 옮겨둘 수 있었고, 도배 및 장판 작업자께서도 장롱만 비워주면 침대와 함께 옮겨가며 작업할 수 있다고 했다.


작업을 위해서는 집을 비워야 했는데, 마침 나도 대만에 사는 친구를 만나기 위한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시기가 정말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졌다. 임대인께서는 독실한 종교인이라고 들었는데, 이 순간만큼은 정말 우리 집 도배와 장판을 위해 모두가 힘을 모아준 것 같은 착각 들었다.


그럼에도 모든 것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본디 체력이 약한 편인 나에게, 집 안의 모든 물건을 포장하고 옮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평일 저녁, 퇴근 후 이틀에 걸쳐 작업했는데, 짐의 형태와 용도에 따라 다이소 이사 박스나 이마트 쇼핑백에 분류하여 정리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다이소 이사 박스는 정말 신의 한 수였다. 가격은 사이즈 상관없이 단돈 5,000원이었다!)


읽지도 않은 책들은 어찌나 많던지. e-Book 리더기도 있으면서 실물 책을 끝없이 사들인 과거의 나에게 잠시 삐쳤다. 결국 버리기는 아까워 알라딘 중고서점에 판매할 결심을 하고 모두 옮겼다.(이건 정말로 잘못된 판단이었다. 버릴 건 버리고 거의 20권 가까이 낑낑거리며 들고 갔는데, 이미 많은 재고가 있다는 이유로 8권밖에 안 사주고, 그마저도 이런저런 이유로 값을 깎는 바람에, 교통비와 식비를 겨우 해낼만한 만 삼천 원 정도를 받다.) 그렇게 혼자서 8번이나 오르락내리락했지만, 짐의 1/4도 채 옮기지 못한 현실이 나를 더욱 슬프게 했다. 겨우 2층이라 만만히 봤는데, 무거운 짐을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니 아래로 내려갈 때는 지옥의 계단, 올라갈 때는 천국의 계단이었다.


다행히 다음날, 같은 대학에 다녔고 지금은 같은 회사에 다니는 친구 K가 도와주기로 했다. K의 다음 이사를 내가 도와주는 조건으로. (K는 선유도역 근처 복층에 살고 있는데, 서울 세계불꽃축제도 잘 보이는 그의 집이 나는 살짝 부럽다. 오래 그 집에 살았으면 좋겠다.)


나는 이것도 하나의 '이사'라고 여기며, 문득 이사의 본질에 대해 되짚어보았다. 내가 생각하는 이사의 본질은 '정리'다. 짐을 정리하고 상자에 담는 시간이, 포장된 상자를 옮기는 시간보다 훨씬 오래 걸렸다. (후술 할 기회가 있겠지만, 여행 후 귀국했을 때, 나는 결국 당근 마켓에서 시급 1.5만 원짜리 알바를 고용해야겠다는 다짐을 굳혔다. 혼자 옮기는 건 도저히 하기 싫었다.) 결국 친구와 2시간 동안 더 옮긴 끝에, 근처 전집에서 술 한 잔까지 기울이며 '이사 대작전'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도배 및 장판을 해주실 작업자분을 위해 집 비밀번호를 1234로 바꿔놓고, 대만 친구 Elvis를 만나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 (Elvis는 마카오에서 만난 친구인데, 둘 다 1인 여행객이었고, "Could you take a picture for me?"라는 한 마디로 친해지게 되었다.)


대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나의 새로운 집을 다시 만났을 때의 그 기쁨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물론,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서 생생한 것도 있다. 하지만 그 기쁨이 마냥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새 집에 입주한 기분에 장롱, 선반, 러그, 침대까지 새로 들였더니, 직장인 월급 한 달 치가 훌쩍 날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역시 인생사 새옹지마다.


사실 고백하자면, 이 글의 첫 문장을 쓸 때만 해도 최근 트레바리 독서모임에서 레너드 코렌의 『 What Artists Do 』를 읽은 이야기를 하려고 했었다. 왜냐하면 책을 버린 김에 이번에는 꼭 읽을 책들만 구매하기로 결심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독서 모임에 참가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런데 집 이야기만 너무 길어져 버렸다. 뭐, 그만큼 지금 내가 이 살고 있는 이 집을 많이 좋아한다는 뜻이겠지.


따라서 트레바리와 책 이야기는 다음 편에 이어서 쓰고자 한다. 모쪼록 기대해 주셨으면 좋겠다.




KakaoTalk_20250429_190353611.jpg?type=w966 열심히 포장해서 옮겼다.


KakaoTalk_20250429_190353611_01.jpg?type=w966 새집 같은 우리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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