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허영

by 김동현


최근에야 인정하게 된 사실이 있다.

지금의 나는 책 읽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굳이 ‘지금의 나’라고 적는 이유는

나는 오랫동안 스스로를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내가 유난히 아꼈던 책들은 커다란 과학 백과사전들이었다.

동식물과 우주, 지구와 생명의 역사 같은 것들을 다루던 책들이었는데, 한 권 한 권이 1,500페이지를 훌쩍 넘겼다.

물론 그 모든 페이지가 글자로만 빽빽했던 것은 아니다.

큼직한 도판도 많았고, 어린아이의 눈길을 붙드는 쨍한 색상의 그림도 적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 생각하면 그 책들은 충분히 버거운 책들이었다.

지금은 난시 때문에 맨눈으로 읽기조차 어려울 만큼 빼곡한 설명과 주석들이 페이지마다 가득했으니 말이다.


그런 책들을 표지가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붙들고 있었으니

나는 당연히 내가 책을 좋아하는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그 안에 무슨 내용이 있었는지는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선캄브리아기 바다에는 하늘하늘한 식물 같은 것이 있었다는 인상만 희미하게 떠오를 뿐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지식을 사랑해서 그 책들을 읽었다기보다는

어려운 책도 척척 읽는 똑똑한 아이로 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많이 아는 사람, 지적인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싶었던 셈이다.


어린 시절의 욕망이라면 유치해도 괜찮았을 것이지만, 그 욕망은 그 시절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서른이 넘은 지금도 나는 여전히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든 인정받고 싶어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예전의 내 독서가 순수한 흥미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는 가설은 꽤나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그래서 재미있는 책을 만나는 일은 내게 생각보다 훨씬 큰 기쁨이다.

책 읽는 사람이라는 자의식을 은근히 만족시켜 주면서도, 실제로 재미있게 읽히는 책은 생각보다 드물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R. F. 쿠앙의 <옐로페이스>는 아주 반가운 독서였다.

구매한 지 이틀 만에 끝까지 읽어버렸으니 말이다.


남의 것을 훔치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늘 흥미로운 소재였다.

누군가는 빵을 훔치고, 누군가는 삶을 훔치고, 또 누군가는 이름과 자리를 훔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무엇을 훔치냐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값비싼 것 중 하나는 아마도 지식일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누가 먼저 말했는지, 누가 만들었는지, 누구의 언어가 누구의 이름으로 유통되는지, 무엇이 누구의 것으로 인정되는지.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타인의 창작물을 훔쳐, 원래는 그 사람의 것이어야 했던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다.


이렇게만 요약하면 다소 익숙한 플롯처럼 보일 수도 있다.

진실은 결국 드러나고, 거짓은 무너진다.

대체로 우리는 그런 식의 결말을 예상한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런 뻔한 윤리적 정리를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주인공은 예상보다 훨씬 집요하고, 더 뻔뻔하며, 끝까지 자신만의 논리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후반부는 단순한 진실 폭로를 넘어 서로가 서로를 겨누는 진흙탕 싸움으로 번져간다.

그 처절함이야말로 이 작품이 가진 묘한 매력이다.

깔끔한 권선징악보다, 더 불편하고 더 추한 방식으로 인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요즘 독자들이 악역에게도 일종의 입체성과 매력을 기대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소설이 흡인력을 갖는 것은 당연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내가 이 작품을 재미있게 읽은 이유를 단지 그런 설정이나 인물의 악랄한 매력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내게 더 크게 남은 것은 문체가 만들어내는 감각이었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소설 속으로 단숨에 빨려 들어갔다기보다 서서히 잠기는 느낌을 받았다.

거대한 파도가 한 번에 덮쳐오는 것이 아니라,

공기가 천천히 스며들어 어느 순간 내가 그 안쪽으로 완전히 넘어가 있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플롯보다 먼저 이 작품의 공기를 느끼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정확히 어떤 문장과 어떤 리듬이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내는지

그건 나중에 따로 오래도록 생각해보고 싶은 문제다.


이 작품이 특히 더 흥미로웠던 데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최근 아주 재미있게 보고 있는 웹툰이 하나 있는데, 조은영 작가의 <저궤도인간>이다.

이 작품 역시 타인의 작품을 훔치고, 그 사람의 삶을 대신 살아간다는 점에서 비슷한 문제의식을 품고 있다.

물론 두 작품은 결이 다르다.

<옐로페이스>가 이미 인정받은 창작물과 그 명성을 빼앗는 이야기라면

<저궤도인간>은 창작과 평가, 명성과 박탈의 구조를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다.

빼앗긴 사람이 생전에 충분한 평가를 받았는가

혹은 끝내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는가 하는 차이만으로도 작품의 온도는 크게 달라진다.

아직 완결되지 않은 작품이라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지만, 그래서 더 기대하게 된다.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작품들을 나란히 놓고 바라보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무엇이 닮아 있고, 무엇이 결정적으로 다른지.

그 닮음과 차이가 각각 어떤 긴장을 만들고, 또 어떻게 전혀 다른 매력으로 갈라지는지 살피다 보면

하나의 작품만 읽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어쩌면 내가 책 읽기를 아직 완전히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지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내가 좋아했던 것은 책 그 자체라기보다

어떤 이야기가 내 안에서 다른 이야기와 부딪히며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순간인지도 모르겠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인지까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런 순간을 기다리는 마음만큼은 소중하다.



R.F. 쿠앙, <옐로페이스>


[네이버웹툰 - 저궤도인간]

https://comic.naver.com/webtoon/list?titleId=84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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