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바리 ② - 독서모임 향연
표지처럼 아주 깊이 숨겨진 예술이라는 숲을 탐험하는 기분으로 읽었다. 언뜻 논문처럼 느껴지는 이 책은 참으로 읽기가 어려워서 대충 훑어보듯 휘뚜루마뚜루 읽었다. 나중에 필요하다면 다시 읽게 될 것 같은 책이다.
장소, 그리고 예술 - 『장소 특정적 미술』를 읽고. 2025.05.09
나는 글을 읽을 때마다 꼭 어떤 단어 하나에 마음이 꽂히는 편이다. 이 책의 원제는 『One Place After Another』인데, 'Space'가 아니라 'Place'라는 점이 이상하게도 마음에 오래 남았다. 공간이 아닌 장소를 선택한 이유가 이 책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되어줄 것 같았다.
이 책에서 말하는 장소는 단순한 좌표를 뜻하지 않는다. 사람의 기억, 일상의 움직임, 사회 제도와 역사 등이 복잡하게 얽힌 무언가다.
그런 의미에서 장소 특정적 미술은 단순히 어디에 놓였는지가 아니라, 그 장소와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중심에 둔 예술이라 할 수 있다. ‘어디에 있는가’가 아니라, ‘어디와 어떻게 연결되었는가’다. 미술관 안이든 도시 한복판이든, 중요한 것은 예술이 그 공간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며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지다.
이 책을 읽기 전부터 나를 오래도록 붙잡고 있던 생각은 '예술은 언제 제도에 들어가게 편입되는가'였다. 흔히 예술은 제도 바깥에서 태어나서 홀로 고고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생각보다 일찍, 그리고 아주 쉽게 제도에 편입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공공미술도 예외는 아니다. 공공미술은 흔히 거리 예술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라 오해할 수 있지만, 현대적 의미에서 제도화된 공공미술은 정부 주도의 개입에서 비롯되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1930년대 미국의 뉴딜 정책, 특히 'WPA(Federal Art Project)'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예술가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공공시설에 벽화나 조각을 설치하게 하며 공공미술의 형태를 제도화했다. 미술이 공공의 이름으로 체제 안에 편입된 대표적인 사례다.
시간이 흐르면서 공공미술은 '도시 재생'이나 '문화 마케팅'이라는 이름으로 점점 더 전략적으로 활용된다. 예를 들어 뉴욕의 하이라인 프로젝트는 시민을 위한 공공 공간을 조성한다는 명분으로 시작됐지만, 결과적으로는 주변 부동산 가격을 폭등시키고, 기존 저소득층 주민을 내쫓는 결과로 이어졌다. 서울 성수동이나 문래동의 사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처음엔 예술가들이 자발적으로 유입되어 지역에 생기를 불어넣었지만, 곧 상업 자본이 그 자리를 차지했고, 결국 그 흐름을 주도했던 예술가들마저 밀려났다. 예술이 남긴 자리에 소비만 남은 듯해서 조금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이 책에서 가장 낯설게 느껴졌던 개념은 '장소해제(unsiting)'였다. 미술계에서의 성공을 ‘항공사 누적 마일리지’에 비유한 저자의 유머에 잠시 웃음이 났지만, 그 말에 숨겨진 의미는 생각보다 복잡했다. 이는 작가가 특정한 장소에 고정되지 않고, 여러 장소를 오가며, 각기 다른 맥락과 임시적인 관계를 맺으며 작업하는 유동적인 예술을 뜻한다. 결국 중요한 건 '어디에 있는가'가 아니라, '어디에서, 누구와, 어떤 관계 속에서 그 예술이 작동하는가'다.
저자는 장소해제를 특정 장소에 고정되지 않고 관계적으로 이동하는 예술의 형태로 설명한다. 나는 이 개념에서 조금은 멀지만, 문득 살바도르 달리를 떠올렸다. 달리의 그림은 물리적 장소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의 대표작 『기억의 지속』은 현실 공간보다는 무의식과 상상 속에서 펼쳐지는 시간과 공간의 유동성을 담고 있다. 달리에게 있어 장소는 물리적인 어딘가가 아니라, 내면 깊숙한 감각의 무대였던 셈이다. 물론 저자가 말하는 장소해제와는 결이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장소해제를 실재적 이동을 넘어서 작가의 심리적 이동성까지 넓게 본다면, 달리는 일찍이 그러한 예술을 감각적으로 실천한 예라고도 느껴졌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예술과 장소, 그리고 나 자신이 세상과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어디에 있는가는 단순한 위치 정보가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누구와 관계를 맺고, 어떤 맥락 속에 있느냐에 따라 우리가 속한 장소의 의미도, 때로는 우리의 정체성마저도 바뀐다. 예술처럼, 사람도 고정된 틀에 머무르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오늘처럼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유연하게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방법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알렉산더 칼더'를 좋아하는데, 그의 작품 'La Grande Vitesse'가 소개되어 기분이 좋았다. (이 작품을 처음 봤을 때, 나는 가장 먼저 거미가 떠올랐는데, 친구는 푸들이 떠올랐다고..)
https://calder.org/works/monumental-sculpture/la-grande-vitesse-19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