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따라 마신다지만, 왜 늘 같은 술일까.
기쁠 때도, 슬플 때도, 결국 소주 한 병이나 맥주 한 캔. 감정의 스펙트럼은 그렇게 넓은데, 우리는 왜 술 앞에서는 늘 흑백 TV처럼 단조로운 선택만을 반복하는 걸까?
『술꾼의 품격』은 이 단순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동안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낸 감정의 언어를, ‘술’이라는 매개로 다시 꺼내놓는다.
“그렇게 마시고도, 이렇게 몰랐다니.”
책 속의 한마디가 오래 남는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성인은 1년에 평균 211병의 술을 마신다. 주말을 빼면 거의 매일 한 병씩 마시는 셈이다. 그런데 그렇게 자주 술을 마시면서도, 정작 ‘기분에 어울리는 술’을 마셔본 적이 있었던가?
저자는 말한다. 술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다. 그것은 감정의 분출이며, 그날의 정서를 가장 솔직하게 담아내는 일종의 매개체다. 하지만 우리는 같은 자리에서, 같은 술을 반복하며, 다양한 감정을 하나의 병에 눌러 담아왔다.
첫 시작은 해적의 술, ‘럼’으로 시작된다. 거친 바다엔 독한 럼이 어울린다. 반대로 벨벳 커튼과 은식기 사이엔 와인이 있다. 술은 언제나 존재의 맥락 속에서 살아난다. 그렇기에 술의 품격은, 그것을 마시는 사람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캐리비안의 해적' 영화 시리즈를 참으로 좋아한다. 그 영화를 감상하면서 홀짝 홀짝 마시다 보니, 눈부신 아침이었다.
감정이 다르다면, 술도 달라야 하지 않을까. 웹툰 <가담항설>에 이런 대사가 있다.
“정확히 그만큼의 감정을, 정확히 그만큼의 단어로 집어내서 자신의 마음을 선명하게 들여다보는 거죠.”
어렵다. 우리는 자주 감정을 말로 놓친다. 하지만 술은 때로 말보다 정확하다. 무심한 하루엔 맥주, 다독이고 싶은 날엔 와인, 잊고 싶은 밤엔 위스키, 그리고 끝내야 할 마음엔 폭탄주(?). 그날의 감정에 꼭 맞는 술 한 잔은, 나 자신에게 건네는 조용한 위로이기도 하다. 마치 손끝으로 꾹 눌러 쓰는 자필 편지처럼.
책은 영화도 함께 끌어들여 이야기를 풀어낸다. 영화 속 인물이 마시는 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술을 어떻게 마실까’라는 질문이 ‘어떤 태도로 삶을 마주할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번져간다.
마시고 잊기보단, 마시며 기억하는 법. 이 책은 그 조심스러운 균형을 이야기한다.
“술은 마음의 거울이다.”
그리스 작가 아이스킬로스의 말처럼, 술은 우리의 내면을 비추는 투명한 렌즈다.
낯선 술을 마신다는 건, 어쩌면 익숙하지 않은 감정을 꺼내 보겠다는 용기일지도 모른다.
술꾼은 거의 매일 마신다. 그래서 더 신중히 마셔야 한다. 오늘의 기분엔 어떤 술이 어울릴까?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정성스럽게, 감정을 따라 술을 고를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바로 술꾼의 품격일 것이다.
물론, 급하게 마시면 안 된다. 감정도, 술도, 천천히 음미해야 하니까.
초고. 2018.06.18
수정. 2025.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