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한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해주신 적이 있다.
“너네들은 지금 10km로 인생을 살고 있는거야. 시간이 천천히 가고 있는거지. 그런데 나이가 들면 달라. 20대 때는 20km로 시간이 흐르고, 40대는 40km, 50대는 50km로 시간이 흘러 (당시 그 선생님은 머리가 까진 50대였다.). 선생님은 올 한 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그 이야기를 들을 당시만 해도 공감이 가지 않는 이야기였다. ‘시간이 왜 빠르담? 나는 얼른 고등학교 졸업해서 성인이 되고 싶은데도 시간이 이렇게 안가는데!’ 그런데 나도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 30대에 접어드니깐 진짜로 시간이 30km로 달리는 느낌이다. 나이와 인생 가속의 상관관계는 과학적으로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일종의 진리인 것 같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처럼.
돌이켜 10대 때를 생각해보면 15살 때는 이랬고, 17살 때는 이랬고 등 그 연도 하나 하나가 큰 사건으로 기억에 남는다. 그러나 20대 때는 25~27살까지는 이랬고, 28~29살까지는 이랬어. 라는 식으로 조금 더 뭉뚱그려 기억이 나는 느낌이다. 도대체 왜 나이가 들면 시간이 빨리 가는 것일까?
첫 번째, 나이 들면 스트레스가 상대적으로 적어져서다.
분명 사람은 평생 동안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간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겪는 스트레스는 분명 어릴 때의 스트레스보다 정도가 훨씬 약해지는 느낌이다.
내가 이걸 언제 느꼈냐면 29살에 군대에 입대를 하고 깨달았다. 분명히 군대를 가기 전만 해도 시간이 쑥쑥 잘 지나갔는데 군대에 있으니 ‘더럽게도 시간이 안 갔다.’ , 자유를 박탈 당한 채 하기 싫은 노동을 하는 그 시기 자체가 내게 큰 스트레스를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스트레스를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물론 과도한 스트레스는 나쁘나, 시간을 느리게 만들어주고 알차게 만들어주는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는 아주 좋은 것이다.
진화심리학적으로 인간은 부정적인 것에 끌리게 되어 있다. 누구든 이걸 좋아한다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말과 행동은 딴판이다. 원시인 시절 인류에게 긍정성이란 감정은 굳이 없어도 생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 예를 들어. 사자를 만났는데도 두려움을 느끼지 못한다던지 다른 사람에게 왕따 당하는데도 무서워하지 않는다던지하면 구타를 당해 사망에 이르렀다. 때문에 긍정 유전자들은 모두 도태되고 부정적인 생각 / 부정적인 감정에 민감한 유전자를 가진 인류만이 살아남았다. 우리는 그런 선조들의 후손이기에 자연히 부정적인 것에 열광하고, 끌리게 된 것이다.
이는 네이버 뉴스만 봐도 알 수 있다. 평범하거나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뉴스보다 살인, 화재, 전쟁 등 부정적인 소식을 전하는 뉴스들이 압도적으로 조회수가 높다. 우리들이 흔히 즐기는 영화나 소설 같은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잘 팔리는 영화, 재밌는 웹툰 등을 보면 백이면 백 나쁜 사람이나 부정적인 사건, 갈등이 등장한다. 뻔하디 뻔한 아름다운 얘기는 사람들이 찾지를 않기에 그렇다.
이러한 추세에 역행하며 매일 감사함과 긍정적인 마음을 먹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부 개 쌉 소리들이다. 인간의 본성은 파괴와 부정에 끌리고 열광한다. 오히려 이를 위배하며 감사하다고 혼자 자위질 하는 것보다 대중들의 이 감정을 역이용하는 것이 현명하다.
두 번째, 나이 들면 새로운 것을 겪는 경험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컴퓨터와 모바일이 발달한 이후로 사람들의 시간에 대한 체감 속도는 더 빨라졌다. 인간은 누구나 ‘새로운 것에 열광하는 본능’을 지니고 있다. 인터넷은 이 점을 아주 잘 파고들어, 계속해서 새로운 웹 페이지를 띄워주고. 계속해서 새로운 유튜브 영상을 당신에게 보여준다. 이 또한 진화심리학에 근거한 인간 본능의 특성이다. 우리들은 과거 원시인 시절부터 새로운 정보를 계속해서 학습해야만 생존 할 수 있었던 인류의 후손들이니깐.
그러나 인터넷에서 접하는 이런 새로움과 우리들이 몸으로 겪는 새로움은 그 퀄리티의 차원이 다르다. 예를 들어, 시간이 빨리 간다고 푸념하는 40대, 50대들도 일주일 정도 해외에 나가 여행을 하고 돌아오면 그 때만큼은 시간이 느리게 가며 선명히 기억에 남는다. 분명 여행을 가기 전 일주일은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겠는데, 여행을 다녀 온 일주일은 뚜렷하게 생각나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시간을 빠르게 만드는 도둑들은 아래와 같다.
1) 매일이 똑같은 루틴화 된 삶
2) 만나는 사람이 한정 됨
3) 오고 가는 장소가 한정 됨
4) 쓰는 언어가 한정 됨 (EX. 한국에 있으면 한국어만 씀)
5) 수행하는 업무나 활동이 한정 됨
이런 삶의 장점은 스트레스가 적고,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없고, 그에 따라 자신의 시간이 빨리 가게되는 부작용을 겪게 된다.
내 사례 :
나는 군대에 있을 때만 해도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시간이 느리게 갔었다. (매우 기분 좋지 않게 느리게 감.) // 그러나 작년 7월에 전역한 이후 올해 1월까지 반년 간은 도대체 내가 뭐를 했는지 기억도 안날 정도로 시간이 삭제되었다.
저 때 내가 했던 일은 코인 투자 전업 트레이더였다.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NFT 투자 정보 알아보고, P2E 게임 채굴하고, 차트 보면서 코인 투자하는 그런 삶을 살았다. 중간 중간 쉬는 시간에도 컴퓨터 앞에 앉아 유튜브를 보거나 웹서핑을 하며 시간을 떼웠다.
이렇게 반년이라는 시간을 순삭 시켜버리니 이건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올해 2월 무작정 비행기 표를 끊고 해외로 날라왔다. 이렇게 외국에서 살다보니 다음과 같은 배움을 얻게 됐다.
1) 여러 호텔을 계속 전전하며 떠돌이 신세로 사니깐 매우 불편했음. 그런데 역으로 이렇게 불편하니깐, 이게 적당한 스트레스가 되어 시간도 느리게 가고 호텔 옮길 때마다 새로운 경험을 강제로 하게 되어 좋았음.
2) 비자가 만료 되어 한 국가에 오래 있을 수 없으니 여러 국가를 전전했음. 이것도 진짜 스트레스인데 어쨌든 시간은 느리게 감.
3) 여기서 혼자 있다보니깐 외로워서 MEETUP 어플을 이용해서 해외 암호화폐 개발자나 투자자 모임 찾아가서 현지인 친구들을 사귀었음. 이렇게 뚫어내는 과정이 스트레스 받지만 이로 인해 시간이 느리게 가게 되었음.
4) 그냥 한국을 떠나있는 것 자체에서도 이미 시간이 느리게 감. 내가 걸어다니는 모든 곳이 신기한 처음 보는 장소. 처음 보는 사람들. 내가 사용하는 언어도 한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영어 머리를 계속 써야 함. 새로운 경험을 계속해서 나에게 안겨줌.
작년 6개월은 체감 상 1달도 안될 정도로 순식간에 사라졌던 반면, 내가 해외 와서 지낸게 겨우 3개월인데 이 기간의 체감이 근 1년에 가까울 정도로 길게 느껴진다.
물론 이 와중에도 어쩔 때는 시간이 빨리가고, 어쩔 때는 시간이 느리게 갔다.
예를 들어, 내 아고다 앱을 보면.
이렇게 불편한 호스텔 (외국인 여러명이랑 같은 방 쓰는 것)에 살거나 며칠 단위씩 널뛰기를 하며 호텔을 옮겨다닌 적이 있었다. 이 때 은근 스트레스를 받기는 했지만 지나고보니 이 때가 더 기억에 많이 남고 시간도 느리게 가는 효과가 있었다.
반대로 여행지에서도 이런 식으로 2주 동안 장기 계약을 하며 한 호텔에서 지낸 적이 있었다. 이러자 한국에 있는 내 자취방에서 그랬던 것처럼 상대적으로 시간이 빨리가게 됐다. 장소에 대한 스트레스가 경감되어 그런 것 같다. 이게 별로 좋은게 아니다.
3줄 요약
1. 나이가 들면 시간이 빠르게 간다. 10대는 10km지만, 50대는 50km다. 그 이유는 스트레스가 없어지고 새로운 경험이 사라져서 그렇다.
2. 우리들이 흔히 가지는 편견과 다르게 스트레스는 좋은 것이다. 이게 있어야 시간이 느리게 가고 알차게 된다.
3. 인간이 웹서핑과 인터넷에 중독되는 이유는 새로운 경험을 편하게 받을 수 있어서다. 하지만 이 새로운 경험은 가짜와 다름 없다. 몸으로 체감되는 진짜 새로움은 장소의 잦은 변경, 뉴페이스 사람들과의 잦은 만남에서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