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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은넷 Oct 02. 2022

[타인의 삶 9번] 공인회계사로 일하는 친구

* [타인의 삶]이라는 본 코너를 통해 몇개월 동안 여러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조언을 구했음. 가장 큰 주제는 내 진로에 대한 고민.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나도 많은 고민을 한 끝에 최종적으로 법학전문대학원에 복학하는 것으로 결정했음.


* 이제는 변호사시험이라는 확실한 도전 목표가 정해진 상황에서 공부와 관련된 여러 조언이 필요한 상황. 특히 나는 5년을 넘게 손을 놓고 있다가 너무 오랜만에 공부하는지라 애로사항이 많음.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여러 노하우나 팁을 물어보는 상황. 오늘의 타인의 삶은 그 중 한명으로 현재 CPA(공인회계사)로 일하고 있는 동갑내기 친구를 인터뷰하였음.


일자 : 2022년 8월 24일


장소 : 용산 아모레퍼시픽 세계 본사 (삼일회계법인)




* 조언을 들려준 친구의 배경


이름 : 곽준섭


나이 : 1991년생


현 직장 : 삼일회계법인에서 4년차로 일하고 있는 CPA


나하고 알게 된 계기 : 2019년 12월, 주한미군 카투사에 같이 입대를 한 군대 동기. 우리 둘 다 서른살에 카투사에 들어와서 훈련소에서 의지도 많이 하고, KTA에서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당시에 KTA(카투사훈련소)에서 올드팸이라고 해서 30대 4명이서 어울려 다녔는데. 한 명은 의전원 다니는 형, 나는 로스쿨, 다른 한 명은 약사, 또 다른 멤버가 준섭이로 공인회계사였다. 카투사라는 군대의 특성에 맞게 전반적으로 한가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입대를 하였음. 고시 공부인 변호사시험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마찬가지로 고시와 다름 없는 CPA 시험을 붙은 친구의 노하우를 흡수하고자 인터뷰를 하였음.




Q. 준섭아 회계사라는게 거의 고시 수준의 공부잖아. 붙는게 쉽지 않았을텐데 너가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뭐야?


A. 나는 뭐 대단한 뜻이 있어서 회계사가 된거는 아냐. 그 전에 내 학창시절부터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데 괜찮아?


Q. 그럼.


A. 나는 강남8학군에 있는 휘문고등학교라는 곳을 나왔어. 사실 엄청 좋은 학교지. 그런데 문제는 학교는 좋은데 내가 공부를 아예 안했다는거야. 휘문고가 내가 다니던 때 총 360명이 있었거든? 내가 이 중에서 310등 정도를 했었어. 놀기만 하고 공부를 그냥 안했지.


그래놓고도 또 눈은 높아서, 친구들은 다 서울대 가고 연고대 가니깐. 친구들도 다 저기를 가는데 나도 저기를 가야겠다. 어이없이 꿈만 높아 가지고 당연히 내신으로는 답도 없으니 수능을 계속 준비했어. 19살부터 22살까지 4년을 계속 수능을 보며 입시를 치뤘어.


매년마다 수능을 보기는 했는데 이게 완전 공부만 한건 아니고 깔짝깔짝 했지. 이 당시 아버지가 공장을 하시는데 이 때 사업이 좀 어려워져서 이걸 도우면서 계속 공부를 했어. 그렇게 정신을 차려보니깐 시간이 훅 가있더라고.


그냥 대학 입시만 준비를 하는 인생 답도 없는 백수인 상태로 23살을 맞이한거지. 그러다 23살 초반쯤에 갑자기 더 이상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드는거야. 이것도 엄청난 계기가 있는게 아니라, 이상하게도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니깐 갑자기 너무 공부가 하고 싶다. 정신 좀 차리자. 이런 생각이 지금도 도대체 왜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들더라고. 하지만 내가 계속 공장 일을 도와주면서 깔짝깔짝 입시만 해서는 답도 없는거잖아.


그래서 6월 모의고사 성적표를 위조했어. 이걸 아버지께 보여드리면서, 이번년도에는 진짜 될거 같다. 이번만큼은 지원을 좀 해달라. 이렇게 이야기를 드렸지. 그 때서야 제대로 입시를 준비했던거야.


Q. 그렇게 해서 어떻게 됐어?


A. 서울시립대 경영학과에 합격했어. 사실 나는 서울대에 꼭 가고 싶었거든. 너도 잘 알겠지만 서울대를 가려면 수능 볼 때 한국사 과목에 응시를 해야 해. 나는 진짜 서울대에 가야겠다 싶어서 한국사 과목까지 응시를 했었단 말야. 그런데 1년 동안 열심히 해서 결국 못갔잖아. 시립대도 좋은 학교지만, 24살이라는 나이까지 먹었는데 이 정도 밖에 못오니깐 좌절감이 들더라고.


어디선가 서울대라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아려오고. 문제는 내가 한 번 더 수능을 준비 할 용기는 안났다는거야. 24살에 대학 입학을 했으니 나이로 치면 5수인거잖아. 늦어도 너무 늦었고 작년 한 해 열심히 했는데 그 고생을 또 할 용기가 안나기도 했고.


그렇게 시립대 1학년인 24살 때, 아무것도 안하고 놀러만 다녔어. 그냥 허송세월로 시간을 다 날려버렸지. 그렇게 해서 정신을 차려보니깐 어느새 25살이 되었더라고?


그런데 갑자기 내 신분을 생각해보니깐 대학생 2학년 / 25살 / 미필인거야. 이 조건을 생각해보니 문득 나 X됐다. 인생 실패자 수준이다. 이런 자각이 오더라고. 같은 대학생 애들은 군필에 23살 이런데 나는 25살에 군대도 안간 미필이네? 객관적으로 이런 비교가 되니깐 위기감이 느껴졌어. 그리고 나는 도저히 일반 한국군 육군 병사로 끌려 갈 자신이 없었어. 이 나이 먹고 그런곳 가서 엄동설한에 보초서고 그러면 감당 할 수 없을 것 같다. 나이 먹고 별의 별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겠구나 싶었지. 안 봐도 뻔하잖아.


Q. 나하고 겹치는게 많네. 나도 오수까지는 아니지만, 대학 입시 오래했고 똑같이 서울대를 목표로 했는데 결국 못갔거든. 마찬가지로 미필에 나이 먹은 대학생 상태가 되니 일반 육군으로는 안가려고 했고. 그 때 또 임병장 사건, 김일병 자살 사건 같이 육군에서 굵직한 사건들이 나온던 때잖아. 이런거 보고 나도 육군 끌려가면 저런 꼴 날 수도 있겠다 싶어서 로스쿨에 들어가면서까지 어떻게든 군대를 미루다 카투사로 가게된거니깐. 그 심정을 100% 똑같이 느꼈어서 공감된다.


A. 그치. 사실 이게 우리말고도 지금 대한민국에 있는 나이 먹은 미필 대학생들 모두가 똑같이 고민하고 있을 문제일거야. 이건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어쩔 수 없이 가지는 고민인 것 같아.


Q. 맞아. 그래서 너는 어떻게 했는데?


A. 나는 "내 인생 심각하구나. 진짜 큰일이다." 이런 위기감이 들면서 막 군대를 편하게 갈 수 있는 여러 방법을 찾아보기 시작했어. 내가 경영학과였다고 했잖아. 그런데 학과와 연관이 있는 군대를 찾다보니 재정장교라는 제도가 있더라고. 이게 CPA라는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취득하면 갈 수 있는 곳인데 알아보니깐 엄청 좋다는거야. 그래서 이거다 싶었지. 아 공인회계사를 준비해야겠다! 이걸 붙어서 재정장교를 가야겠다.


Q. 다른 전문직 자격증도 많잖아. 그런데 왜 회계사였어?


A. 여러 전문직 중에 회계사를 택한 첫번째 이유는 다른 자격증은 장교로 갈 수 있는 제도가 잘 없는데 이건 명확하게 있어서가 컸고, 두번째 이유는 다른 전문직. 예를 들어 노무사나 감정평가사 이 시험에서 보는 과목보다는 회계사 시험 과목이 나하고 잘 맞았다는 것에 있었어.


내가 경영학과에 다니다보니깐 일반회계나 고급회계 같은 수업들을 강제로 들었었거든. 그런데 이게 다른 학생들은 어렵다고 하는데 이상하게 나는 재밌고 쉬운거야. 그런 경험 때문에 아 이 학문이 적성에 잘 맞는구나. CPA 시험 보면 나는 붙을 수 있겠구나. 이런 자신감이 생겼지.


Q. 그래서 실제 바로 붙었어?


A. 아니. 계속 떨어졌어. 이게 1차하고 2차 시험이 있는데 심지어 1차 시험조차 붙지 못하고 2년을 연속해서 계속 떨어진거야.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27살 미필 대학생이 되어있더라고 ㅋㅋㅋ 무슨 포켓몬 진화하는 것도 아니고 25살 미필 대학생에서 27살 미필 대학생으로 더 답도 없게 진화해버린거야.


그 나이쯤 되니깐 영장이 날라왔어. 한 마디로 군대를 미룰 수 있을만큼 다 미뤄서 이젠 진짜 끌려가야 될 상황이 온거야. 영장이 날라왔는데도 CPA 1차 불합격 통보를 받으니 '아 X 됐구나. 이러다 군대 끌려가겠구나' 이런 엄청난 위기감이 들더라. 아니 이 시험이 2차가 더 어려운건데 1차조차 이렇게 못 붙네. 정말 큰일났다.


Q. 와... 27살 미필 대학생 + 고시생. 심각한 상황까지 갔구나.


A. 노답도 이런 노답이 없었지. 그래서 고민을 했어. 양자택일의 상황이다.


1. 군대를 갔다와서 시험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

2. 아니면 여기서 1년 휴학을 하고 어떻게든 시험 합격을 해서 재정 장교를 갈 것인가?


그런데 여기서 2번째를 선택하면 큰 문제가 있었다. 이걸 동차합격이라고도 하는데, 내가 군대 영장이 날라온 상황이라 더 미룰 수가 없어서 반드시 1차와 2차를 동시에 붙어야만 하는 상황이었어. 2차가 총 5과목으로 이루어져 있거든? 그 중 1과목이라도 과락하면 회계사 시험을 통채로 날리게 되는거야. 왜냐면 1차를 붙고 2년 안에 2차를 붙어야 하거든. 그런데 나는 2차를 못 붙는 순간 군대를 끌려가니 다음 기회는 없는거잖아?


고민을 많이 했는데 결론은 휴학을 하고 1년을 죽어라 해보자. 인생 걸어보자. 이거였어.


Q. 결과적으로 합격을 했으니깐, 동차 합격을 한거네? 계속 시험에 떨어지던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합격한거야? 특별한 방법이 있었어?


A. 너도 로스쿨에 복학했고 머지 않아 변호사시험을 봐야 하는 입장이니깐, 이 부분은 자세하게 설명을 해줄게. 일단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대학 입시를 해봤잖아. 수능 공부를 열심히 했었지? 그런데 그 때 경험과 편견을 날리고 시작해야 해. 명심해야 할게 수능하고 고시는 레벨이 달라. CPA나 변호사시험은 사실 상 고시와 다름 없는데 수능 잘봤다는 애들도 수두룩 떨어지는게 이 고시야. 그래서 일단, 마음가짐부터 제대로 먹으라고 조언해주고 싶어.


공부 방법에 있어서는 내가 믿는게 있거든. 뭐냐면 1000명의 학생이 있으면 1000가지 공부법이 있다는 거야.내가 MBTI를 하면 끝자리 마지막이 완전한 P거든. 보통 공부 잘하는 애들 보면 J가 많잖아. 계획표를 세워서 꾸준하게 그걸 실천하는 애들이 유리하니깐. 그런데 나는 도저히 그런 공부가 안되더라고.


그래서 완전히 MBTI의 극단적 P에 맞는 공부법을 찾아나섰어. 아무런 계획이 없이 공부를 시작한거지. 내가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고 맨 처음에는 남들 다 하는데로 언제까지 책을 어디까지 풀고 / 진도는 어디까지 범위를 나가고 이런 식으로 계획을 세워서 수행하려고 했었어.


그런데 나는 이렇게 하니깐, 싹 다 어기게 되더라고. 이걸 계속 어기니깐 달성하지 못했다는 불쾌감만 쌓였어.


공인회계사 과목이 여러가지가 있잖아. 예를 들어 2차 기준으로 5가지니깐 이걸 예로 들면, 내 앞에 책을 5가지 과목을 전부 다 쌓아놓아. 그리고 1번 과목 책을 읽어. 재미가 없어지지? 2번 과목으로 넘어가. 지루하면 다시 다른 것 봐. 3번 과목, 4번 과목. 그 때 그 때 끌리는대로.


너가 쓴 글에 있는 것처럼 나도 ADHD가 심하거든? 뭐만 하면 지루해서 끈덕지게 하나에 집중을 못해. 그래서 이렇게 ADHD에 맞는 공부법을 개발해서 남이 보기에는 겁나 심란하게 공부를 했어. 막 지루할 때마다 책 바꿔가면서 공부하니깐. 일반적인 사람들이 보기에는 미친거지. 그런데 세상의 편견이 말하는 프레임에 갇히려고 하지 않고, 내 ADHD를 극복하려고 하지 않고. '재미있는 것만 보자. 지루하면 옮겨가자’ 이러고 쭉쭉 옮겨가면서 공부를 했어.


Q. 나도 MBTI가 극단적 P고 ADHD가 있어서 흥미롭네. 그런데 이 방법이 그렇게 쉽게 될리가 없을 것 같은데? 컴퓨터도 하고 싶고, 게임도 하고 싶고, 핸드폰도 보고 싶고 그럴거 아냐. ADHD들은 통제력이 약해서 그런 유혹에 쉽게 취약해질텐데, 저 방법이 실제 실현 가능해?


A. 이 부분은 의지 측면에서 접근하면 좋을 것 같은데, 그 때 내가 27살 / 미필 / 고시생 상태였잖아. 객관적으로 내가 지금 지금 얼마나 실패자의 인생인지를 잘 알다보니깐 나를 땅 끝까지 밀어넣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이걸 하기 위해 그 때 아예 고시원 방을 하나 잡았어. 그리고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망치로 핸드폰을 박살내버렸어. 가족들한테 선언했지. 1년 동안 나를 찾지 말아라. 친구들한테도 나를 찾지 말아라. 용돈도 안 받겠다. 아버지한테 밥 사먹을 수 있게 카드 하나만 달라고 했어.


그리고 이 카드로 소비를 할 때마다 아버지한테 문자가 가도록 해달라고 했어. 나도 PC방을 진짜 좋아하거든? 그런데 내가 돈이 없잖아. PC방을 가면 카드로 결제하는 수 밖에 없는데 이런 유혹적인 일들을 하면 아버지한테 문자가 날라가잖아. 만약에 이런 문자 한통만 날라가게 만들면, 내가 바로 군대를 갔다오고 CPA 포기하고 아버지 공장 들어가서 일을 하겠다. 그냥 이렇게 선언을 했어.


내가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 자체를 없앤거지. 나는 이걸 마약이라고 표현하고 싶은데, 나도 ADHD 성향에 MBTI가 극단적 P라서 놀고 싶은거 절대 못 참거든. 이걸 마약 중독자의 상태라고 봤어. 그러니깐 내가 마약 중독자니깐 내가 언제 다시 마약을 할지 모르니깐. 구속복을 채워넣자. 나는 그게 돈 하나 없이 살면서 내가 하는 모든 소비가 아버지 카드로 이루어져서 문자가 날라가게 하는 것이었으니깐. 아예 딴 짓을 하지 못하도록 구속복으로 밀어넣었어.


이러다 진짜 힘들면. 스트레스 받아서 못 참겠으면 고시장 1층에 있는 헬스장에 가서 죽어라 운동을 했어. 내가 역마살이 심하거든? 그래서 막 놀러다니고 싶으면, 아 도저히 못 참겠다 안되겠다 싶으면 고시공부 책을 들고 카페만 갔어. 그렇게 해서 계속 욕망을 누르면서 어떻게든 버텨나갔어.


Q. 이 때 하루에만 순수 공부시간이 어느정도 나왔어?


A. 평균적으로 16시간 정도 나왔어.


Q. 인간이 그게 가능해?


A. 가능하더라고. 이 때 핸드폰도 없고. 노트북에도 열공백배라는 프로그램을 깔아서 절대 다른 것을 할 수 없게.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틈을 설정했거든. 그렇게 하니깐 온전하게 집중이 되더라고. 그래서 그 해 동차로 CPA에 합격 할 수 있었어.


Q. 그럼 그렇게 열심히 해서 회계사가 되었잖아. 회계사가 되기 전에 상상했던 이상과 실제 현실로 겪어본 직업의 만족도 차이는 어땠어?


A. 갭이 엄청나게 컸어. 사실 나는 회계사가 되기 전까지는 전문직 자체가 가지고 있는 파워가 어느정도인지 제대로 파악을 못했었거든. 대학교 때만 해도 선배들이 세무가가 되었다더라, 회계사가 되었다더라, 행정고시를 붙었다더라. 이런 얘기를 들으면, 뭐야? 나하고 술집 가서 같이 술 마셨던 형이 회계사가 되었네? 에이 뭐 별것도 없네. 이런 생각을 했었거든?


나도 회계사가 되려고 했을 때, 이 직업에 큰 이상이 있었던건 아니고. 일단 군대를 미룰 수 있고, 그 외에도 미래에 취업이 잘되고 안정적이니깐 그리고 적당히 간지가 나니깐 하려고 했던게 컸거든.


그런데 회계사가 되고 나서 삼일회계법인에 취업을 해서 일하며 느낀 전문직의 파워는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어.


Q. 어디서 그걸 처음 느꼈는데?


A. 크게 3가지 정도를 들 수가 있는데, 첫 번째는 주변에서 나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던 것, 두 번째는 만나는 이성들이 달라졌던 것, 세번째로 가장 큰 장점이라 생각하는 자유로움이 있었어.


먼저 첫번째부터 이야기하자면 내가 이 시험에 합격하고 처음으로 회계사라는 자격증의 가치를 느낀 것은 아버지 공장에 갔을 때였어. 아까도 말했다시피 내가 20대 초반에 아버지 공장에서 일을 많이 도와줬다고 했잖아. 그 때 공장에서 일하는 삼촌들도 만나고, 거래처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그랬었거든. 사실 회계사에 합격하기 직전인 28살까지 때만 해도 그 분들이 보기에 나는 항상 애였어. '그냥 사장님 아들.' , '철딱서리 없는 아들' 이런 느낌이었어. 나도 워낙 어릴 때부터 보던 분들이라 그런 시선이 익숙했고, 어떻게 보면 그게 당연한거잖아.


Q. 그치 그게 당연하지.


A. 그런데 내가 회계사에 합격하고 나서 공장에 찾아가니깐 그 분들이 나를 대하는 대우가 확 달라지는게 느껴지는거야.


Q.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라졌는데?


A. 갑자기 나를 선생님으로 부르기 시작하시더라고. 이게 장난처럼 말하는게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대우를 해주시는거야. 그러니깐 내가 갑자기 철딱서리 없는 애에서 선생님이 됐다. 회계사라는 직업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갑자기 인격적인 대우를 받는다. 내 입장에서는 황당하면서 어안이 벙벙한 그런 충격적인 경험이 오는거야. 거기에 아버지 공장이 수출 사업을 하셔서 해외에 거래처가 많이 있거든. 중국 쪽이 대표적인데 내 아들이 회계사다 이렇게 소개를 하니깐 그 외국 사람들조차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더라고. 너무 심하게 달라지더라고.


내가 전문직 자격증을 따고 그런 걸 경험하면서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어. 너한테도 꼭 말해주고 싶은데 이게 우리 학생들의 세계에서 보는 것과 어른들이 보는 세계가 완전히 다르다는거야. 솔직히 너도 내가 회계사이든 아니든 크게 염두에 두지 않잖아. 그냥 좋은 직업이네 이 정도잖아. 나도 그랬거든. 대학교 학부 선배들이 회계사 붙었다, 행정고시 붙었다 이러면 그냥 잘 됐네~ 좋은 직업 가졌네. 별 신경 안쓰고 축하하는 정도잖아.


그런데 기성세대들은 달라. 20대 30대 이런 사회경험이 적은 사람들이 아니라, 어른들. 즉 40대 이상만 가더라도 나도 정확하게 왜 그러는지 그 이유와 지점은 모르겠는데 전문직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 달라. 이걸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갑자기 나를 상류층의 사람으로 본다고 해야 할까. 느낌이 그랬어. 본인들과는 애초에 결이 다른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 예를 들어 너가 지금 대기업 이사를 보면 어려워하지 않겠어? 그냥 삼성증권의 이사라는 직책 하나만으로도 그 사람에게 권위가 생기잖아. 그 사람이 어떤 성격을 가지든, 외모가 어떻든, 키가 어떻든 상관 없이 어렵잖아. 그런 느낌이라고 보면 돼.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내 발언에 힘이 실리는 느낌이 들어. 권위가 실린다고 해야 할까? 꼭 회계와 관련된게 아니더라도 내가 어떤 말을 하던간에 그 말을 한 번은 믿어주더라고. 나의 말이 무게감을 가지게 됐다고 해야 할까나. 이걸 회계사가 되고 처음에 겪으니깐 너무 이상한거야. 이 사람들이 단체로 미쳤나. 나는 일요일 아침 11시에 일어나서 꼼지락 대는 사람인데, 얼탱이가 없네.. 내가 아무리 말로 설명해도 이건 진짜 한 번 겪어봐야 깨달아. 우리들이 막연하게 생각하는 전문직의 삶이랑 실제 이 전문직 직업을 가지고 나서 맞닥뜨리는 삶이랑 그 갭이 어마무시하게 차이나서. 이 정도의 파워가 있었나? 어안이 벙벙 할 정도야.


Q. 너무 과장 아냐? 저게 말이 돼?


A. 이게 나만 이렇게 겪으면 과장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는데, 회계사들끼리 농담 삼아 회뽕 말을 하거든. 이게 회계사 뽕이라는 걸 의미하는데 이게 진짜 모든 회계사가 다 한번씩은 겪고 지나가는 단계야. 일종의 코로나 바이러스가 같은거야. 이 회뽕 질병의 증상이 뭐냐면 하루 아침에 갑자기 사람들이 내 말이 다 맞다. 내가 짱이다. 이렇게 대해주니깐 나는 상류층의 인간이고 회계사라는 자격증이 엄청 대단하고 이러면서 스스로 자아도취하는 질병이야.


이런 질병을 모두가 겪을 정도로 정말 확연히 대우가 달라진다니깐? 하물며 소개팅을 나가도 친구를 만나도 대우가 달라져. 정작 나는 바뀐게 없는데 말야. 물론 이 회뽕이라는 질병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사라져. 회계법인에서 일하다보면 결국 어차피 나도 한 명의 직장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거든. 일을 못해서 깨지기도 하고, 클라이언트를 상대하면서 비위를 맞추기도 하고, 또 나보다 훨씬 더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다보면 결국 내가 우물 안 개구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더라고. 그러면서 조금씩 사라지기는 하는데, 처음에는 모두가 다 한번씩 겪을 정도로 전문직이 받는 대우는 정말 달라.


Q. 그럼 이런 무형의 인정 욕구 충족과 같은 장점 말고 다른 장점은 없어?


A. 물론 있지. 내가 전문직이 되고 나서 느낀건데, 전문직 자격증이 주는 가장 큰 장점은 '자유롭다' 이거인거 같아. 예를 들어, 직장인하고 비교를 해보자면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은 아무리 좋은데를 가도 삼성전자를 가든 LG전자를 가든 그 기업에서 나오게 되잖아? 그럼 이직하지 않은 이상 직업적으로 결국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돼. 스카우팅을 받아서 이직을 한다고 해도 새로운 환경에서 처음부터 다시 일을 시작해. 그리고 30대 초중반에야 이직이 잘되지 30대 후반만 되어도 나이 많다고 이직도 잘 안되고, 대기업들도 이거를 잘 아니깐 사원들을 함부로 대하고 자르고 그러는거야.


그런데 회계사의 경우 예를 들어, 막 심각한 스캔들까지 저지른 그런 사람이야. 그렇게 문제가 있는 사람조차 회계사 자격증이 있으면 어떤 기업이든 선택해서 다 들어갈 수 있어. 회계법인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알아?


Q. 아니 잘 몰라


A. 우리나라에 빅펌이라고 해서 4개가 있어. 이 빅펌들의 특징은 미국에 있는 회계법인하고 제휴가 맺어져 있다는거야.


1. 삼일

2. 삼정

3. 안진

4. 한영


이렇게 4개고 나는 여기서 제일 대형인 삼일을 다니고 있어. 그런데 사람들이 흔히들 착각하는게 회계사 하면 저 빅펌 4개만 있다고 생각을 하잖아? 실제로는 아냐. 이 4개 이외에 미국에 있는 회계법인과 제휴가 맺어져 있지는 않고 국내에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일반 펌들이 있어. 이런 곳들을 로컬이라고 불러.


이 로컬 회계법인들은 항상 인력이 부족해. 그래서 스캔들이 있던 없던 로컬의 웬만한 곳은 누구든지간에 회계사 자격증이 있다고 하면 일단 무조건 뽑아. 그렇게 우리들은 갈 때가 너무 많다보니깐, 회계법인에서도 우리를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것이야. 워낙 소수의 사람들만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보니깐. 이게 대기업이 직장인들을 대하는 태도와 다른 뚜렷한 이유 같아.


그리고 회계사들은 성격이 엄청 독립적이야. 독방에 갇혀서 혼자서 분석해야 하는 직업이거든. 그래서 기본적으로 상대방한테 간섭하지 않는 것을 좋아해. 이게 내 상사인 임원이나 이사 / 전무들도 다 비슷비슷한 성격들이거든. 내가 좀 특이할 뿐 애초에 이런 유형의 인간들이 회계사에 합격을 하는 것도 있고.


그렇기 때문에 회계법인 업계의 분위기 자체가 굉장히 프리해. 사실 이게 대체 할 수 없는 장점인 것 같아. 대기업 직장인으로 살면 보통은 대기업의 규율에 맞춰서 살 수 밖에 없게 되잖아. 정시 출퇴근에 아부는 옵션 / 회식은 필수 등등. 그런데 회계사는 스스로가 그런 것들을 어느 정도 조절 할 수 있어. 기본적으로 회계법인은 '산출물'을 베이스로 돌아가는 시스템이야. 페이퍼워크를 기본으로 깔고 가는 직장이다 보니, 각자 정해진 DUE DATE에 맞춰 산출물만 뽑아낸다면 내가 어디에 있든 몇 시에 출근을 하든 야근을 하든 말든 별로 신경쓰지 않아. 물론 빅4 정도에서는 기본적으로 지켜야하는 규율이 있는 편이지만, 그 규율도 일반 대기업과 비교하자면 거의 없거나 희미한 수준이야. 이런 분위기의 기저에 깔린 특징은 회계사 자격증의 가치가 소멸되지 않는 것에 있다고 생각해. 사람들 스스로가 조직에 얽매여있지 않고 언제든 여러가지 선택지를 고를 준비가 되어 있다는게, 그리고 그것을 윗단에서도 인지하고 있다는게 자유도에 미치는 영향이 정말로 크거든.


Q. 그럼 너가 하는 일은 구체적으로 어떤거야?


A. 회계법인이라는게 본부가 3개가 있어.


첫번째, DEAL 본부. M&A를 주로 하는 곳

두번째, TAX 본부. 기업의 조세 부분을 주로 다루는 곳

세번째, 감사(어슈어런스) 본부. 일반 기업들의 재무제표를 다루는 곳


일반인들이 회계사하면 흔히 떠올리는 것은 주로 감사(어슈어런스) 업무로 재무제표를 분석하는 일이지. 그런데 이것도 흔히 편견을 가지는게 주식하는 투자자들을 보면 재무제표를 분석하면서 회사가 현재 돈을 잘 버는지, 부채비율이나 유동비율은 어떤지 이런 것들을 보잖아. 그래서 회계사도 이런 일을 할꺼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


감사 업무는 이렇게 주식 투자자들이 보는 재무제표를 보는게 아니라, 그 회사의 숫자가 제대로 적혀있는지를 확인하는 업무야. 그러니깐 일반 투자자들이 보는 재무제표와는 개념이 다른거지.


인원 구성에 있어서 회계사의 90% 정도가 감사 파트에서 일을 해. 딜 본부나 텍스 쪽은 인원이 많지가 않아서 10% 정도의 사람들만 하고. 나도 2018년 처음 삼일에 입사를 했을 때 감사 업무부터 시작을 했어. 내가 너하고 같이 카투사를 다녀왔잖아. 재정장교 말고 결국 카투사 붙어서 카투사를 가게 됐거든. 그래서 나는 18년도에 입사를 해서 1년 조금 넘게 감사 업무를 하고. 이게 회계법인이 좋은게 군대 휴직제도라는게 있거든.


일반 대기업은 군대를 가면 퇴사해야하는데, 회계법인은 군대를 갔다와도 재직 기간을 인정을 해줘. 그래서 군대 기간도 연차로 인정이 되서 전역하고 다시 감사 업무를 또 1년을 하다가 올해 7월에 나는 딜 본부로 옮기게 됐어.


Q. 딜 본부는 어떤 일을 하는 곳인데?


A. M&A라고 들어봤지? 즉 이 부서는 기업을 사고 파는 업무를 중개하는 부서야. 보통의 기업들은 M&A를 전문적으로 수행 할 수가 없거든. 왜냐면 그런 기업들이 하는 사업 활동은 기업을 사고 파는 일이 아니라,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물건은 사고 파는 일들이잖아. M&A라는 것은 기업 역사상 몇 번 밖에 없을 정도로 극히 드문일이고. 그러다보니깐 어지간히 큰 기업이라고 할지라도 M&A에 대한 전문지식은 거의 전무하다고 볼 수 밖에 없어.


사실 M&A라는게 VC나 IB(투자 은행), 혹은 PE(사모 펀드) 같은 곳에서도 수행하는 업무거든. 그런데 이런 IB나 VC는 비즈니스에 대한 감각이나 산업을 보는 눈은 훌륭해도 그 기업에 대한 현황이나 재무제표를 볼 줄 모르잖아. 그렇기 때문에 회계법인을 거쳐서 반드시 제무제표를 보는 작업을 거칠 수 밖에 없어. 즉, 이런 회사들이 M&A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프로세스의 한 과정으로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곳이 회계법인인 것이지. 내가 일하는 본부는 이런 업무를 수행하는거고.


Q. 그러면 그 미국하고 제휴를 맺은 빅펌 4개에 들어가는거는 어려워?


A. 아니 그렇지는 않아. 이게 회계사 시험 발표가 8월 말에 일괄적으로 나거든. 그러니깐 빅펌 4개에서 신입을 채용하는 것도 1년에 딱 저 시즌에만 일괄적으로 채용 공고를 내서 사람을 뽑아 가. 나 때만 해도 삼일회계법인에서 300명에서 400명인가 뽑았었거든.


이게 회계사 합격생이 한 해 1100명 정도 밖에 안돼. 그러니깐 4개 펌에 다 갈 수 있는 상황인거지. 원래 나 때는 900명만 뽑았는데 요즘은 좀 더 늘어나서 많아진거야.


Q. 왜 늘어났어?


A. 기업들이 일손이 부족하거든. 수요가 많아지다보니깐 공급을 늘리게 되어서 합격생들이 많아지게 된거지.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회계 기준이라는게 있어. 우리나라는 미국의 회계기준을 따라간다고 보면 되거든. 아니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 모든 곳이 미국의 회계 기준을 따라가려고 하고 있어. 원래는 회계라는게 1년에 한번씩만 감사를 했거든. 그러다보니깐 매 기말만 오면 틀린게 너무 많은거야. 그래서 분기별로 쪼개서 감사하는걸로 바뀌었어. 그런데도 이게 계속 오류가 생기니깐, '내부회계관리제도 감사'라는 것이 미국에서 새로 생기게 되어서 과정 하나하나 자체를 따라가면서 매번 감사를 해라. 이런 제도가 생기게 됐거든.


이게 한국에 도입이 된거야. 저렇게 과정 하나하나를 따라가는게 인원이 많이 들 수 밖에 없으니깐, 그러다보니 한국에서도 일손이 많이 필요해지게 됐고 합격생이 늘어나는 결과가 된거지. 이게 대기업에서 직접 회계사를 고용해서 하는건 아니고 회계법인이라는게 외부감사 업무를 하거든. 기업이 재무제표를 작성했을 때 이게 제대로 된 것인지 아닌지 적정 의견이라는걸 줘야 해. 그러니깐 외부의 공인된 회계사들이 계속 트래킹을 해줘야 하고, 이런 식으로 회계 제도가 변화가 되니 사람들을 더 많이 채용하고 뽑을 수 밖에 없는거지.


그래서 처음 질문한 빅펌4개에 들어가는건 회계사에 합격만 하면 난이도가 어렵지 않다고 보면 돼.


Q. 궁금한게 회계사라는 전문직이 되었을 때 장점에 대해서 설명해줬잖아. 그러면 향후 내가 변호사가 되면 어떤 것을 겪게 될까?


A. 내가 현재 모 법무법인하고 협업을 하고 있거든. M&A건이 있어서 같이 하고 있다. 마침 술 자리가 있어서 변호사들한테 한 번 물어봤어. 변호사로서의 베네핏이 뭐가 있을까? 궁금하더라고. 이걸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회계사보다도 아까 내가 말한 장점을 훨씬 더 직관적으로 체감 할 수 있을거야. 훨씬 더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 같아.


다만 회계사와 변호사의 차이점이 있는데, 회계사는 회계사들끼리 싸우지 않아. 단지 자신의 감사보고서를 감사를 하고, 회사의 재무제표가 적절히 잘 작성되었는지를 확인하는 일만 하지. 그런데 변호사를 보면 민사소송과 같은 경우 변호사들끼리 싸우잖아? 그래서 그 싸움에서 이긴 변호사가 많은 부분을 독점하는 구조 같아. 내가 느낀 것은 회계사는 큰 파이를 다 같이 나눠먹는 구조 같고, 변호사는 싸워서 이긴 소수의 사람들이 파이를 대부분 가져가는 구조 같아. 그래도 전문직에 있어서 베네핏은 회계사보다 변호사가 훨씬 큰 거 같고.


Q. 나를 포함한 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없어?


A. 내가 옛날에 설렁설렁 공부를 할 때 가끔씩 도서관에 간 적이 있었어. 그 때 어떤 고시 공부를 하던 형하고 친해졌었는데, 그 형이 이런 말을 했었어. 내가 이렇게 공부를 할 열정을 고3 때 투입했으면 서울대 수석이 됐겠다. 그런데 지나고보니 이 말이 정답인 것 같아. 고시 공부는 차원이 달라. 고3 때는 애들이 그렇게까지 위기의식이 없거든. 그렇게 자기 인생을 다 바쳐가면서까지 공부를 하는 애들이 없어.


내가 수능 공부도 빡세게 해봤고 고시 공부도 빡세게 해봤잖아. 그런데 고시 공부는 수능 공부하고 차원이 달라. 10배는 더 힘들어. 나는 심지어 공인회계사라는 준고시를 공부하는데도, CPA를 할 때 느꼈던게 이런 식으로 내가 수능 때 공부를 했었다면 서울대 문 부시고 들어갔겠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제일 먼저 해주고 싶은 말은, "당신이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울 것이다."는 말이야. 이게 치킨게임이거든. 경쟁자들의 마인드 자체가 이 시험을 떨어지게 되면? 인생이 망하게 되는거야. 그런데 경쟁률이 있어서 누군가는 낙오하잖아. 이 좁은 문을 향해 모두가 달려드는거지. 그러면 피가 터질 수 밖에 없어.


내가 마음 속으로 이걸 미리 알고 준비한다고 해도 실제로 부딪혔을 때 훨씬 더 힘들기 때문에 어설프게 하느니 차라리 안하는게 나아. 귀중한 젊음과 시간이 낭비 될 수 있는거니깐.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고시에 몰빵 할 수 있을 때만 도전해야 해. 공부에 있어서 방법론적인 측면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는 힘이거든.


회계사도 그렇고 변호사도 그렇고, 전문직 자격증이라는 것들의 특징은 합격을 한 소수가 모든 혜택을 다 독점하는 구조라는 거야. 누구도 떨어진 사람을 챙기지 않아. 떨어지면 정말 끝이야. 그러니깐 내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시험에 달려들 수 있다고 생각이 들 때 도전을 하는게 맞는 것 같아. 결국에는 마음가짐이야.


아 그리고 하나 더 얘기하고 싶은게 어떤 사람들이 회계사를 해야 하는가? 이것에 대해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오해가 있어. 이게 시험을 준비하는 케이스가 2개가 있거든?


첫번째, 스스로 원하고 이루고 싶은 것이 있어서 자격증을 준비하는 경우

두번째, 전문직이 주는 안정감과 연봉 때문에 자격증을 준비하는 경우


나는 두번째 CASE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부디 한 번만 더 CPA 시험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부탁하고 싶어. 왜냐하면 두번째 이유로 CPA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거든. 전문직이라는게 안정적이기도 하고, 돈도 많이주고, 뽀대도 나니까 한 번쯤 발을 담궈보는 사람들이 많아. 아니 거의 대다수야.


그런데 문제는 회계사가 되고 나서도 회계사를 때려치는 사람들이 많다는거야. 왜 그럴까? 본인이 3~4년 동안 피땀 흘려 획득한 자격증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대체 왜 있는걸까? 나는 그 이유가 실제 CPA 업무가 요구하는 능력치와 본인이 갖고있는 성격과 적성이 불일치해서 그렇다 생각해.


어떤 유형의 사람들이 회계사를 해야할까? 활발하고 주도적인 사람들. 수동적인 것을 못 견디고 내가 뭐든 직접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야. 내가 하고 싶은게 있으면 새벽 3시까지 밤을 새도 상관없고, 주말에도 당연히 노트북을 들고 다니고, 한 마디로 워커홀릭인 사람들이 CPA에 적합하다고 생각해. 실제로 내 주변에도 CPA로서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이 외향적이고, 자기주도적인 케이스가 대부분이거든. 전문직은 결국은 개인 사업자이기 때문이야. 그 사람 한 명이 걸어다니는 법인인거야. 남이 주는 업무만 받아서 처리하고, 계속 한 자리에 머물러있으려 하고, 불만이 있어도 그걸 속으로 삭히는 사람들 치고 CPA로 보람을 느끼고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아직까지 본 적이 없어.


워라벨을 보고 이 시험을 준비하는 거라면 뜯어 말리고 싶어.


그런데 고시 공부의 특성 상 골방에 박혀서 컴퓨터만 두들기고 사람 만나는거 싫어하는 사람들이 꽤 많단 말야. 이게 시험을 붙을 때는 '활발한게 독이고, 조용한게 큰 강점이 되지만' / 정작 시험에 붙고 직업적으로 일을 수행 할 때는 '조용한게 독이고, 활발한 사람들이 큰 강점을 가지게' 되는거거든.


아이러니하게도 자기를 시험에 붙게 해 준 그 성향이 오히려 직업인으로서는 큰 마이너스로 작용 할 때가 많아. 회계사도 이 정도인데 변호사는 더더욱 심할거야. 그래서 전문직으로 크게 성공하고 싶으면, 오히려 안정을 추구하는 사람보다는 활발하면서 도전적이고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은 사람들이 자격증을 취득했을 때 훨씬 더 가치가 있다고 봐.


그리고 의외로 이 전문직 자격증이 이런 도전적인 성향의 사람들을 더 도전적이게 만들어주는데 왜 그러냐면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있어서야. 자격증이 심적인 안정감을 줘서 하다가 말아먹어도 돌아갈 곳이 있다는 보험이 있다 생각하니깐 다른 일에도 도전하게 되는거지.


활발하고 자기주도적인 전문직이 되어야 해. 시험에 합격을 잘 하는 사람이랑 일을 잘하는 사람이랑은 완전 다르거든. 변시든 CPA이든 간에 시험은 기본적으로 오롯이 점수로만 당락이 결정이 돼. 면접 이런 것도 없어. 그러니깐 시험 합격을 잘하는 사람들은 하루 종일 앉아가지고, 하루 종일 같은 것만 해도 지치지 않는 사람들이 시험 공부를 잘해.


그런데 막상 시험에 합격을 하고 나서 일을 잘하는 사람들은? 정 반대의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일을 해. 그래서 더더욱 강조를 하고 싶은 것은? 특히 활발한 사람 같은 경우 "모든 것을 다 버릴 준비를 하고 딱 몇 년만 다 버리고" 합격하고 나서는 다시 그 활발함을 장착해서 날라다니면서 전문직 직업을 수행하라는거야. 이 밸런스 게임을 잘하는 사람이 실제 시험에 합격해서도 큰 성과를 내는 것 같아.


Q. 추상적인 질문이기는 한데, 너는 그럼 행복해?


A. 옛날부터 나도 행복이라는 단어에 꽂혀 있었거든. 도대체 행복이라는게 뭘까? 왜 나는 행복하지 못하는 걸까?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깐, 어느새 내가 행복이라는 단어에 대해 고민을 하지 않고 있더라고. 이걸 까먹고 살고 있었던거지. 그러면서 행복이라는 것이 뭘까 고민하지 않은 이유는 내가 행복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어.


내가 카투사에서 전역 하기 직전에 1달 동안 제주도에 가서 살다 왔거든. 그런데 거기서 만난 사람들이 항상 하는 말을 들어보면 나는 자유롭대. 나는 모든 것을 버리고 여기에 왔기 때문에 행복하다. 이런 말을 하는데 내가 보기엔 전혀 행복해보이지 않았어. 왜냐면 이 사람들은 돈이 떨어지면 육지에 와야 되고, 집도 구해야 하고, 취업도 해야 하고 이런 여러가지 현실적인 제약들이 있었던거지. 그 불안감을 애써 누르지만 계속 튀어나오니 숨길 수 없었던거고.


나는 이런 현실적인 제약을 탈피하면서 자유로움을 얻는게 행복하기 위한 조건 중 제일 첫번째라고 봐. 그리고 이렇게 자유로움을 얻는데 있어서 전문직 자격증만한게 없다고 생각해. 내가 뭐를 하던 간에 내 인생에서는 평생 전문직 자격증이 항상 깔려있으니깐. 다시 정리하면, 변호사든 회계사든 전문직 자격증은 불안감을 없애주는 것이라고 생각해. 이걸 잘 생각하고 공부해봐.


끝.


원본 링크 : https://m.blog.naver.com/no5100/222883325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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