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타인의 삶] 시리즈는 도대체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서 작성하는 코너임.
* 내가 고민하는 아래 부분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주변 사람들에게 여러가지를 물어봤음.
* 조언을 들려준 형의 배경
- 이름 : 민재명
- 나하고는 2014년 PSV창업경진대회에서 알게 됨. 당시 이 상의 수상 특전이 싱가포르 해외창업지원연수 프로그램이었음. 대회 당시만 해도 경쟁 관계였지만 그 때 싱가폴로 같이 연수를 가서 급격히 친해지게 됨.
- 실업계 고교 재학 당시 뉴스에서 김연아 선수가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대한민국 인재상을 수상받는 것을 본 적이 있었음. 그 때 이후로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20대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정부 포창인 저 상을 꼭 받겠다는 것이었음. 그런데 재명이 형이 나하고 싱가폴을 다녀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상을 수상했음. 이후로 형에게 많은 조언과 팁을 얻어 나도 재수 끝에 2018년 대한민국 인재상 수상자로 선정이 됨. 2008년 아무것도 없던 실업계 학생이 막연히 꿈꾸던 것을 10년 만에 달성한 순간이었음.
- 이 형의 경력도 굉장히 특이함. 문예창작학과에 진학 해 시인으로 등단을 했다가 갑자기 창업을 함. 이 때 창업을 한 아이템은 ‘애드링’이라는 서비스로 스마트폰 전화 수신 시 음성 광고를 듣고 통신비를 아낀다는 컨셉임. 투자 유치에 성공했고, 실제 제품출시까지 이루었었음. SK텔레콤으로부터 기술이전을 받는 것에도 성공함.
- 다만, 이후로는 잘 안되어서 사업을 접었음. 이후 카이스트 대학원을 진학해 졸업 후 카이스트 연구원으로 근무.
정리하자면 실제 IT 스타트업의 창업부터 투자 유치, 제품 출시 후 실패까지. 몇 년간 스타트업 창업의 한 사이클을 몸으로 겪어 본 경험자. 때로는 성공한 사업가보다 실패를 겪어본 사람에게 배울 수 있는 것이 크다고 생각.
* Q는 나, A는 재명의 형의 답변. 내가 해외에 있으므로 카카오톡 보이스톡으로 이야기 (로밍 전화는 너무 비싸 -.- 데이터 통화 만세!) // 와 닿았던 부분은 빨간색 볼드 처리 할 것. // 글이 졸라졸라 기니깐 스압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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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형 오랜만이에요.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A. 오랜만이야 동은아. 블로그 글 올라오는거 잘 읽고 있어. 나는 요즘 주 일상이 육아야 ㅋㅋ 딸이 벌써 4살에 작년에 아들까지 낳았어. 그러다보니 육아가 일상의 주를 이룬다.
Q. 형 축하해요~ 저는 결혼은 막연하기만 한데 벌써 자녀만 둘이라니..! 역시 인생 선배네요. 형 그런데 어떻게 하다가 결혼을 하신거에요? 전에 갑자기 형이 결혼한다고 청첩장 보내서 어?! 이렇게 빨리 갑자기? 싶었었거든요 ㅋㅋ
A. 아 이게 나도 계획한거는 아냐. 이게 스토리가 어떻게 된거냐면 사실 나도 내가 결혼 할 수 있을까 싶었었거든. 너처럼 막연하고 먼 미래의 일처럼만 느껴졌었어. 요즘 20대 30대들 대부분 결혼 늦게 하잖아. 안하는 사람들도 많고. 나도 그렇게 막연했었단 말이지.
그런데 막연하게나마 내가 가졌던 결혼관 하나가 있었거든. “나는 여자가 기업인이 아니면 결혼을 아예 못할 것 같다.” 딱 이 정도는 있었어. 왜 그러냐면 내가 스타트업을 하다보니깐 스트레스가 엄청 났거든. 이 스트레스를 이해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같은 기업인 밖에 없다고 생각했단 말이지. 창업가의 아내로 산다는게 참 쉽지가 않겠다. 이걸 유일하게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업계 동료 뿐이다. 딱 이 정도의 생각은 가지고 있었던거야.
Q. 오호. 그런데요?
A. 너도 대전 사람이지만, 대학교 입학 이후로는 쭉 서울에서 살았잖아? 그런데 나는 대학도 대전에 있는 곳에서 나오고 대학원도 카이스트를 갔잖아. 그러다보니깐 이 지역에 대한 애향심이 쎘어. 우리 집안이 대대로 여기서 살아왔기도 했고.
그런데 사실 서울만 하더라도 스타트업을 창업해서 한 싸이클을 돌려본 사람들이 되게 많단 말이지? 일단 스타트업이라는 것이 상당한 엘리트 비즈니스라 가방끈이 좋은 사람들이 플레이어로 많이 있어. 서울에 인재와 대학이 몰려있으니 그 쪽에는 창업에 대한 경험이 많은 사람들이 넘쳐 날 수 밖에 없는 것이지. 그런데 지방은 달라. 나처럼 싸이클 한 번을 돌려본 사람은 유니콘이야. 인원 수가 아주 적다는 소리지.
카이스트에서 연구원으로 근무를 하다보니깐, 여기 연구원들과 학생들 정말 똑똑한 사람들 많단 말야. 한국 최고의 이공계 대학인데 얼마나 엄청나겠어. 그런데 이 카이스트라는 문화와 역량이 대전이라는 도시에 잘 스며들지가 못하는 것 같더라고.
그래서 이 문제점에 대해 고민을 하다가 카이스트 연구원들하고 나하고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어서 비영리로 지역에 있는 여러 기업들을 도와주자. 이런 사이드 프로젝트를 생각하게 됐어.
그 취지의 일환으로 내가 대전에 있는 여러 지역 기업들에 도움과 조언을 많이 줬었거든. 그러다 지금의 와이프를 만나게 된거야. 와이프가 특수 교육 전공자야. 그런데 발달 장애인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갈 때가 없어진다는거야. 그렇다면 나는 특수 교사가 되기보다는 장애인을 위한 일자리를 만들어야겠다. 이런 취지에서 사회적 기업을 창업한거야. 취지가 너무 좋잖아.
나는 그동안 상업적 비즈니스만 했었으니깐 항상 이런 사회적 기업가들이 궁금했었거든. 아니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이런 것을 하는거지? 이런게 너무 궁금했었어.
Q. 저는 형보다 더 이윤 추구의 끝판왕, 상업 추구의 끝판왕을 추구해서 그런지 ㅋㅋ 공감되네요. 저한테 사회적 기업 창업하라고 하면 동기부여 1도 안되서 절대 못할 것 같거든요. 그래서 이런거 하는 사람들 저도 궁금하기는 해요.
A. 그렇지. 비슷한 심리지. 나는 상대적으로는 너보다는 더 공익적 가치에 뜻이 있었지만, 상업적 비즈니스만 했었으니깐. 어쨌든 그렇게 지금의 아내가 된 사회적 기업 대표를 만난거야. 처음부터 느낌이 좋았던 것은 아니었어. 평범했어. 그런데 계속 일 때문에 만나면서 이야기를 하다보니깐 웬걸? 말이 너무 잘 통하는거야. 사실 기업인이 아닌 다른 여자를 만나면 내가 눈치도 봐야하고, 비위를 맞춰야 하고 그런 경우가 생기거든. 그런데 이 여자 앞에서는 다른거야. 아! 이 사람 앞에 있으면 내가 가장 나 다울 수가 있게 되는구나.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서로 편하고 대화가 잘 통하는구나.
그렇게 해서 서서히 친해지게 된거지. 그러다 이 사람하고 결혼을 해도 될까? 이런 질문을 스스로한테 던지게 됐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해도 되겠더라고. 내가 부족하고, 하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니깐. 또 서로 느낌이 좋으니깐. 그렇게 해서 결혼하게 된거야.
Q. 형 그래서 실제 결혼을 해보니 어때요? 좋아요?
A. 사람들이 흔히 얘기하는게 결혼은 미친 짓이라고 하고, 부정적인 편견들이 굉장히 많이 있잖아. 그러다보니 대한민국 2030세대들 절반이 넘게 결혼을 안하잖아. 그런데 이거 사람 바이 사람. 케이스 바이 케이스야. 일단 내가 내린 결론을 말하자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무조건 결혼을 해야 해.
Q. 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떤건데요?
A. 태어난 가정에 결핍이 강한 사람들. 너하고 나하고의 공통점이 있다면, 자라온 가정 환경이 좋지가 않다는거야. 나도 너만큼은 아니지만 이런 부분이 좀 있었거든.
그런데 가족이라는 것은 한 개만 있는게 아냐. 사실 알고보면 두 개가 있어. 내가 태어난 가족은 내가 선택 할 수 있는 가족이 아냐. 그런데 결혼을 하면은 상대방 가족이 다 내 가족이 되거든? 이거는 내가 선택 할 수 있는 가족인거야.
즉
1. 지금 내 가족? 내 선택이 아니다.
2. 결혼을 하는 상대방 가족? 내가 선택하는 가족이다.
이렇게 볼 수가 있는거야.
내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정말 인격적으로 괜찮으시고 존경할만한 분들이시거든. 그런데 내가 태어난 가족은 이런 부분에서는 약간 아니었어. 하지만 나는 내가 선택한 가족이 이제는 내 가족이 됐으니깐 상관이 없는거지. 예를 또 들어보자면, 와이프 쪽의 삼촌이 터치스크린 회사를 창업한 후 코스닥에 상장을 시키셨거든. 이렇게 엑싯을 하고 현재는 미국에서 휴스턴 K프라자라는 곳을 운영하시는데, 삼촌이 가끔씩 한국에 와서 나하고 와이프를 만나잖아. 그러면 사업에 관한 노하우나 핵심 정보들까지 하나 하나 엄청나게 깊숙하게 다 알려주셔. 왜? 가족이니깐. 그럴 때마다 느끼는거지. 아 이제 이 삼촌이 내 삼촌이구나. 와이프의 가족이 진짜 내 가족이구나.
너가 고민하는 것을 들어보면 돈도 많이 벌고, 학벌도 얻고, 성취도 많이 이뤘는데 계속해서 마음이 휑하고 결핍이 느껴진다고 하잖아. 그런데 사실 이런거 한 방에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 ‘결혼’이야. 너가 제대로 사랑받는 너가 선택 할 수 있는 가족을 만나면 돼. 나도 결혼을 통해 이 결핍이 많이 해소가 됐어.
Q. 형 그 부분은 잘 알겠는데, 그런 사람을 만나는게 어디 쉽나요. 너무 운의 영역인 것 같아요.
A. 그 부분에 대해서 얘기 해 줄 것이 있어. 보통 가정환경이 좋지 않은 사람은 똑같이 상대방이 가정환경이 좋지 않은 결핍이 많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는 경우가 많거든? 그러면 보통 이혼하는거야. 결혼생활 내내 둘 다 막장이면은 얼마나 괴롭겠어.
그런데 만약 한 명만 막장이고, 다른 한 명은 무조건적인 사랑받고 자란 결핍이 없는 그런 사람이잖아? 그럴 때 막장인 사람이 취할 수 있는 조건식은 2개야.
1.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말 잘 듣고 다 배운다.
2. 고집부리면서 배우려는 노력도 안하고 방어기제만 앞세운다.
무조건적인 사랑 속에서 커온 사람과 막장인 사람이 결혼을 했는데 막장인 사람이 2번으로 가는 순간 결혼생활 파탄나는거야. 그런데 나 같은 경우는 1번이야. 예를 들어, 지금 내가 아이 둘을 키우잖아. 그러면 아내가 알려줘. ‘그 때는 그렇게 말하면 안돼’ / ‘아이한테는 이렇게 행동하는거야’. 그러면서 배우는거지. 아 그동안은 내가 몰랐는데 사실 가정에서는 이렇게 해야 하는거였구나. 이렇게 하는게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는거구나. 엄청 배우고 깨달아. 나는 모르니깐 아내한테 이런걸 계속 배우는거야.
그런데 내가 봤을 때 동은이 너도 100% 1번이야. 2번인 사람이 스스로에 대한 치부를 드러내면서 글을 쓰고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할 수가 없어. 그러니깐 너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여자하고 결혼해서 그냥 가정 생활에서 일어나는 모든걸 다 배운다. 토 달지 않고 배운다. 이 마음으로 가야 해. 너는 스스로에 대해 부족한 점을 겸허히 인정하고 계속 발전 할 수 있는 사람이잖아. 그러니깐 괜찮아. 너가 인격적으로 존경 할 수 있고, 배울 만한 것이 많은 큰 사랑 받고 자란 사람만 잘 만나면 돼.
(첨언하자면 이 얘기를 듣고 내가 들었던 생각은 대학 생활 동안 내가 경훈이에게 배웠던 것들이다. 과에서 가장 친한 친구인 경훈이는 자기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자기한테 무조건적이고 엄청난 사랑을 준다는 것을 계속해서 느끼며 살았다고 한다. 어머니가 세상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보물이 자기인 것을 알았고, 자기는 둘도 없는 사랑을 받고 자라온 것을 안다고.
아주 예전에 내가 이 말을 듣고 “말도 안돼. 세상에 그런 가정이 어딨어?”라고 반문했는데 오히려 경훈이가 충격을 받으면서 “세상에 그렇지 않은 가정이 존재한다고?”라고 나에게 물어봤다. 생각해보면 나는 어릴 때 내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기초생활수급자에 나와 같이 주공아파트에 사는 애들이라 가정이 화목하고 자식이 사랑 받는다는 것이 오히려 비평균적이었던 그런 환경이었다. 부모님이 장애인이 아니거나 이혼하지 않은 것이 비정상적이었던 곳.
초등학교 2~4학년 때는 1년에 몇 번 꼴로 주공아파트 내 단지에서 사람들이 자살해 떨어져 죽어있는 것을 목격하고는 했었다. (내가 살던 대전 월평동 3단지 주공아파트는 극빈층 중의 극빈층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물론 초딩 때는 이 곳이 극빈층인 줄도 모르고 원래 세상이 다 이런 줄 알았다.)
하교하면서 콘크리트에 터져 이곳저곳 널부러져 있는 시체 조각들을 보며 ‘어? 또 사람이 죽었네? 원래 사람은 다 저렇게 자살해서 죽나보다.’ 라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초3 때의 기억이다. 그런 자살이 당연한 일상으로 몇 달마다 목격 되었던 곳. (여기가 12평짜리 복도식 아파트였는데 하도 사람들이 떨어져 죽으니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 정부에서 아예 차단막을 쳐버렸음)
주공아파트에 살던 형들이 내게 처음 알려준 것들도 지금 보면 범죄였다. 멀리 있는 부자 아파트 가서 자전거 훔쳐서 토끼는 법 (뺀찌 사용법을 초등학교 때 통달함) / 대전 꿈돌이랜드 앞에 자유이용권 끈 끊어져있는거 주워서 차고 몰래 담 넘어서 들어가는 법 / 우리보다 나이가 많은 중학교 형들은 다른 동네에 원정을 가서 애들 돈을 삥 뜯어오기도 했었다.
이 주공아파트 옆에는 한아름 아파트라고 하는 대전 정부청사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이 주로 사는 아파트가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친구들하고 같이 이곳에 있는 놀이터에 놀러갔는데 경비원과 학부모들이 오더니 “이 거지새끼들 당장 안 꺼져?” 이러면서 우리들을 사람보다도 못한 벌레 취급하면서 쫓아냈었다. 이 당시 나는 집에서 놀 수 있는게 하나도 없어 뽀린 자전거를 타고 대전에 새로 생긴 이마트에 가서 책을 한창 읽고 있던 시기였다.
그 때 공산주의라는 개념을 책에서 처음 배웠었는데 가난하다고 우리를 벌레 취급하는 한아름 아파트 사람들을 보니 이 개 같은 부르주아 계급 새끼들. 내가 이 나라에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일으켜서 가난하다는 이유로 아이들이 무시 받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다. 이런 결심을 했던게 기억이 난다. 또 TV에서 제가 70년대 80년대에는 찢어지게 가난했는데 지금은 성공했어요 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 개새끼들은 지금 이 주공아파트에서 우리 같은 사람들이 이러고 살고 있는데 자기 올챙이 적 생각 못하고 TV 나와서 자기 자랑만 하고 있네!! 지도 가난했었으면 좀 도와주던가!! 이러고 분노에 차올랐던 것도 기억이 난다.
최근에 남편을 계곡에서 살해한 나랑 동갑인 이은해 사건이 조명을 받고 있는데, 이 사람의 배경을 보니 장애인 부모에 나와 똑같이 엄청 가난한 주공 아파트 같은 곳에서 살았더라. (신동엽의 러브하우스에서 집 바꿔줌) 이걸 보면서, 어라? 나 어릴 적 친구들 같은 애구나. 역시 환경적 확률로 인해 크니깐 저런 범죄자가 되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다행히도 나는 확률적으로 극히 드문 케이스에 속했다. 운이 좋게도 내 인생을 바꿔준 학교 선생님들을 만났다. 또, 어릴 적 놀게 없어 심심해 책을 많이 읽게 된 것이 이 환경에서 탈출 할 수 있는 길은 공부 밖에 없다는 것을 늦게나마 깨닫게 해주었다.
그러나 대부분 90% 이상의 나와 비슷한 환경의 아이들은 공부가 탈출구였다는 것을 못 깨달았을 것이다. 나만 해도 부모가 학력이 중졸 밖에 안되니 공부로 성공을 해 본 경험이 없어 자식에게 공부의 ㄱ자도 꺼내지 않는 그런 환경이었다. 추정하기로는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컸던 당시 주공아파트 아이들은 이은해처럼 사건이 안 알려졌다싶을 뿐이지 저런 범죄자가 되었거나 뭔가 하자가 있는 인생을 살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초등학교 때 내가 목격했던 많은 시체들처럼 지금쯤 우울증에 걸려 자살해 버렸거나 자살 예정일 것이다. 가정 교육도, 학교 교육도, 나와 같이 책에서 배우는 교육도 어느 것도 제대로 받지 못했을 테니깐.
배경 설명이 너무 길었다. 이 배경을 이야기한 이유는 재명이 형이 말한 저 포인트에서 공감이 크게 되는 부분이 있어서다. 내가 명문대학에 입학해 제일 친해지게 된 경훈이는 나와는 사고가 전부 달랐다. 한 마디로 충격적으로 달랐다. 나는 평생 가정에서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는데, 거꾸로 경훈이는 평생 가정에서 사랑을 안 받아 본 적이 없었다. 몇 가지 성취와 능력 면에서는 내가 가진 특유의 결핍과 분노의 에너지로 경훈이보다 앞서는 부분이 있었지만 이것을 제외한 모든 부분. 예를 들어, 사회성 /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 남을 배려하는 태도에서 나는 그냥 능력이 0에 수렴했다.
그런데 거꾸로 경훈이는 이 능력이 100이었다. 나는 내가 살아온 가정 환경과 성장해 온 환경이 나에게 주는 치명타와 단점을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다행히도 경훈이는 너무 좋은 사람이라 처음에는 나를 좀 멀리하다가 나중에는 하나씩 코치를 해주기 시작했다. 형 입장을 바꿔봐. ‘내가 형한테 이렇게 말하면 기분이 좋아?’ , ‘아니’ , ‘나도 똑같아. 그렇게 말하지 말고 이러이러한 식으로 돌려 말을 해야지.’
‘형 이러이러한 상황에서는 이렇게 행동하고 말을 하는게 예의에 맞는거야.’ ‘왜?’ ‘그냥 원래 그런거야. 느낌이라서 언어로 설명이 안돼. 형 그냥 알려주는거 다 외워.’ ‘알았어 알려주는거 다 외울게.’
이런 식이었다. 백지 상태와 다름 없던 나의 사회성, 최측근에 대한 개념,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태도 등에 계속해서 경훈이는 물을 부어주었다. 이걸 6~7년간 반복하다보니 지금은 0이 아닌 30 정도까지는 경훈화가 되었다. 내가 살아왔던 환경이 너무 극단적이라 아직 고칠 것이 한참 남았고 멀었지만.
다시 말해 재명이 형은 경훈이 같이 저렇게 사랑 받고 자라온 여자를 찾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운 좋게 그런 사람을 만나 결혼한다면 토 달지 말고 알려주는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라는 이야기다. 경훈이를 예시로 생각하니 저 이야기의 포인트에 공감이 많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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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형 저도 형 의견에 다 동의를 하고, 공감이 많이 되는데 문제가 있어요. 그러니깐 다 좋은데 도대체 저런 사람을 어떻게 알아보고 어디서 만나요?
A. 그 부분에 대해 결론부터 말하자면 ‘너가 먼저 사람 됨됨이부터 되어야 해’
이게 진짜 어려운 문제인데 보통 가정환경이 어렵게 자란 사람들은 이게 안되거든? 환경적으로 커온게 부족하니 자연스레 가정에서 학습이 안되었던거지.
그런데 생각을 해봐. 저렇게 집안 좋고 화목한 곳에서 자란 애들은 있잖아. 남자든 여자든 간에 사람을 보는 촉이 졸라 날카로워. 물론 처음에는 잘 못 느낄 수 있겠지. 그런데 저런 사랑받고 자란 사람들은 누군가를 만나면 만날수록 그 사람의 인성이 별로이면 무조건 그것을 알아. 숨길 수가 없어. 그러다보면 관계가 지속 될 수 없는거야. 똑같이 서로 됨됨이가 안 되어 있는 사람끼리 만날 확률만 높아지는거지.
나의 경우를 사례로 들려줄게. 나는 이걸 군대에서 느꼈는데 문득 나를 생각해보니깐 내가 너무 쓰레기인거야. 내가 별로 인성이 훌륭하지가 않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애초에 타고난 환경과 지금까지 배워왔던 경험은 어쩔 수가 없어. 그런데 나는 더 이상 이렇게 쓰레기로 살기 싫다. 조금 더 인격적으로 훌륭하게 살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동은 너 혹시 강아지 키워?
Q. 아뇨. 저 강아지 되게 좋아하는데 제가 집에 없으면 강아지가 외로워할까봐 미안하고 책임감 느껴서 못 키우겠어요.
A. 좋아. 본성으로부터 나오는 그 심리로부터 좋은 사람이 되는 발전이 출발하는거거든. 그러니깐 너가 강아지를 키우지 않는 이유가 ‘책임감’ 때문이잖아. 책임지지 못할 일은 하지 말자. 이거잖아.
Q. 그렇죠.
A. 나도 책임감이라는 이 키워드로부터 출발을 했거든. 내가 지금까지는 쓰레기였던 것 같다. 인성이 별로 훌륭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씩이나마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 의식적으로 계속 노력을 해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던거지.
그러면서 내가 지금 최소한 할 수 있는게 뭘까 하다가. 책임감이 필요하겠더라고. 당시 내가 군인 월급이 7만원이었는데 월드비전에 보니깐 매 달 5만원씩 아이 한 명을 맡아서 책임지고 후원하는 프로그램이 있는거야.
그걸 보고 결심을 했지. 내 군인 월급으로 저 아이를 도와주자. 그 때 내가 담배를 폈었거든? 이 월급으로 담배를 피는 순간 내가 후원하는 그 아이가 굶게 되는거야. 그러다보니 도저히 못 피겠더라고. 담배를 피면 이 아이를 책임지지 못한다. 피지말자. 이런 식으로 제약을 걸면서 전역 할 때까지 그 아이를 책임진거야.
군인 때 없는 돈 모아서 5만원씩 이렇게 후원하고 전역을 하니깐.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 전보다는 약간이나마 내가 됨됨이가 된 것 같다.
사실 봉사활동이라는 것도 중 고등학교 때 많이 하잖아. 그런데 그게 큰 의미가 없는게 됨됨이에 대한 의식적 노력과 목표 없이 그냥 시간 채우려고 해서 그런거거든. 저 경험을 한 번 해보니깐 전역하고 나서도 어딘가 책임을 지는 봉사를 해야겠더라고.
그래서 장애인 복지관에서 점자 도서 만드는 활동을 하고, 초등학생도 한 명 맡아 6년 동안 케어해주는 활동을 했었어. 이런 활동을 꾸준히하면 구체적이고 수치화 되서 인성이 좋아진다 이런 것은 아닌데 무언가 훈훈한 마음이 들면서 느낌적으로 알게 돼. 내가 좀 더 됨됨이가 나아지고 있는 사람이 되고 있구나. 이걸 믿을 수 있게 되는거지. 그러다보니 좀 더 나아가 공익적인 활동에도 고민을 하게 됐던거야.
Q. 형 공익 추구라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반골 기질이 있으니 반론하고 싶은게 있어요. 저는 한국 교육이 비인간성을 양성하는 교육이라고 생각을 해요. 예를 들어, 제가 실업계 고등학교에 다닐 때 저 봉사하는거 좋아했거든요. 태안 바닷가에 가서 기름도 닦고, 보육원에 친구들하고 봉사활동도 많이 다녔어요. 꼭 시간 채우려는 것보다도 그냥 그 때는 어차피 나도 가진게 없으니 사람들이나 도와주자. 이런 느낌이었어요. 실업계라는 곳이 모두가 공부를 못해서 경쟁이 크지가 않으니 저 또한 공익적 가치에 좀 더 신경을 썼던 시기라고 볼 수 있는거죠.
그런데 제가 대학입시 4수를 하면서. 대학교도 중퇴를 2번이나 하고, 수능을 몇 번이나 실패 하면서 깨달은게 뭐냐면요. 이 곳은 모두가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전쟁터다. 남을 짓밟아야 내가 올라간다. 이거였어요. 예를 들어 1000명이라는 TO가 있는데 2000명이 노력을 했어요. 그래도 정해져있는 TO라는 시스템 때문에 피터지는 노력을 모두가 했어도 절반은 탈락해야 되는 시스템이잖아요. 이 때 ‘저 절반이 안타깝다 슬프네’ 이렇게 보면 안되겠더라고요. 그런 감상에 빠졌다가는 내가 뒤지게 생겼으니깐.
너가 나 대신 죽어라. 내가 올라갈게. 이 마인드로 죽어라 노력해도 올라갈까 말까였어요. 어릴 때부터 부잣집에서 태어나 사교육 많이 받은 사람은 안 그래도 되겠지만, 기초도 하나도 없고 돈도 없는 사람이 이런 악바리 정신에 비인간적으로 공부하지 않는 이상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그런 입시 구조 시스템이 아니었다는거죠.
대학교에 와서 제가 했던 코인은요. 이거는 대학 입시보다 더 해요. 남이 돈을 잃어야 내가 벌 수 있는 구조에요. 진짜 탐욕과 욕망, 법조차 없어서 무법지대인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더 처절하게 계산적이 되어야 해요. “돈 잃은 사람들 불쌍해서 어떻게 해?” 이러면 안되고 “븅신들인가. 해외 거래소에서 싸게 파는걸 업비트에서 왜 저 가격에 사. 개꿀이다~~ 빨리 보따리해서 팔아야지!” 이렇게 도박에 미친 사람들 잡아먹어야 돈 버는 구조에요. 어차피 내가 안 먹으면 남이 먹으니깐. 나라도 빨리 먹어야 되는거죠.
이 판들 다 겪으면서 저도 항상 승리만 한게 아니고, 코인 트레이딩 하다 돈도 엄청 잃어보고, 코인 거래소 사기 사건에 휘말려서 돈도 억 단위로 날려 먹고, 이거 해결 하려고 나섰다가 다른 피해자들한테 텔레그램에서 난도질 당했어요. 익명이니깐 저한테 못하는 말이 없더라고요. 온갖 인신공격에 음해까지.
이런 별의 별 더러운 꼴 다 겪다보니깐 제가 깨달은게 “남들 도와줘봐야 돌아오는거 하나도 없다.” “고마운 줄도 모르는 파렴치하고 악해 빠진 것들만 세상에 가득하다.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게 아니다” 이거였어요.
형 인터넷 창. 예를 들어 네이버 뉴스 댓글만 봐도요. 엄청난 혐오 발언들이 가득해요. 히틀러의 파시즘과 다름없게 변질되어 버린 한국 페미니즘 진영의 한남충이라는 용어부터 반대편 일베들의 여성 혐오 발언. 전라도에 대한 혐오 발언. 경상도에 대한 혐오 발언까지. 그냥 다 혐오하지 못하고 싸우지 못해 안달이에요.
저는 이런걸 읽다보면은 ‘이 나라는 사람들이 다들 분노에 가득차 있는 미친 나라다.’ , ‘악하고 멍청한 사람들만 세상에 가득하다.’ 이렇게 질려버리고 공익은 개뿔. 사회적 기업은 개뿔. 이미 정신이 썩어빠진 분노 사회에 그런게 무슨 의미가 있어. 라는 생각이 들며 그런 시도들에 대해 헛웃음만 나와요.
비인간적 교육과 실패에 대한 낙오로 인해 대다수 한국 사람들의 인성이 다 파괴되어버렸는데 여기서 공익적 가치를 추구한다고 뭐가 바뀌나요?
A. 어느 정도 너의 의견에 동의를 해. 맞는 부분이 분명 있어. 그런데 내가 바라보는 것은 이런 관점이야. 지금 너는 사실 정의와 투쟁을 이야기하는 것이거든. 80년대 대학 운동권처럼 썩어빠진 것들 싹 다 갈아엎자. 개판이다. 이런 투쟁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거잖아.
자 그런데 생각을 해보자고. 평생을 그런 투쟁에 헌신한 운동권 출신들이 요 몇년 간 정부의 요직에 앉아 있었었어. 그런데 어때? 세상이 살기 더 좋아졌어? 아니, 오히려 과거보다 더욱 더 혐오와 분란이 가득한 세상만 됐어. 애초에 그런 염세적, 투쟁적 사고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없는거야.
물론 너 말대로 세상에는 좋은 사람보다 나쁜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더 많아. 수치 상 비교가 안될 정도로 월등히 더 많아. 그런데 그렇다고 좋은 사람들이 없느냐? 아니 많이 있어.
너가 먼저 됨됨이를 키우고 좋은 사람이 되면 돼. 그러면 좋은 사람들이 더욱 더 옆에 와서 너를 도와줘. 결국 공익적 활동을 공공의 이익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너의 이익도 된다 이렇게 바라보는 태도 전환이 필요해. 물론 너가 도와준 사람들이 먹튀를 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애초에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을 때 너부터 은혜를 갚을 생각을 하면 너 옆에도 그런 사람이 오게 된다니깐?
사람은 끼리끼리 어울리기 때문에 결국 좋은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끼리만 모이는 네트워크로 형성이 돼. 물론 너가 사업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으니 이 네트워크의 힘을 잘 모를 수도 있는데, 나는 사업을 하면서 네트워크를 통해 도움을 얻은 적이 많아 이 중요성을 잘 알고 있거든.
결국은 나의 이익과 공익적 이익이 합치되는 지점을 찾으면 되는거야. 물론 당연히 세상에 나쁜 사람들이 많으니깐 모두를 위한 공익을 추구할 수는 없겠지. 그런데 딱 내 편, 우리편들을 만들 수 있는 공익은 추구 할수 있는거야.
어려우면 이렇게 생각을 해봐. 왜 사람들은 공익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을까? 나의 이익이 되지 않기 때문에 안한다. 하지만 공익적 이익이 내 이익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 내가 얻는 가장 큰 이익은 긍정적인 사람들, 좋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 안으로 내가 들어갈 수 있다.
그냥 딱 이것만 목표로 해도 정말 큰 수확이야. 나는 이런 네트워크로 인해 덕을 정말 많이 봤어.
여기서 꼭 공익적 활동이라는 것이 엄청 거창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냐. 예를 들어 너가 지금 쓰고 있는 블로그 글도 나는 공익적 활동이라고 보거든. 물론 너는 스스로에 대한 성장과 잊지 않기 위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개인적 동기로 쓰는 거지만, 나는 실제 효과에 있어서 어느정도는 공익으로도 작동한다고 봐. 예를 들어, 나만 해도 ‘와 언론사나 기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날 것 그대로의 글이라 배울 것이 많다.’ / ‘이 친구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구나. 나만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 도움이 된다.’ 이런 부분이 있어.
그러니깐 너가 통제 할 수 없는 저렇게 혐오가 가득한 나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지 말고. 내가 통제 할 수 있는 작은 사소한 것. 예를 들어, 1~2명에 대한 후원이라던지 이런 것부터 해봐.
결국 너가 저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너가 인생을 투쟁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벌어지는 문제거든. 경쟁을 하면서 전쟁터에서 10년을 넘게 살아왔으니깐. 결국 승리해서 깃발을 잡은 사람 중 하나가 됐지만 이 과정 중 부작용도 상당히 만만치 않은거지. 그런데 나는 항상 경쟁을 피하면서 살았거든. 이 전쟁터에서 뒷문이 어디 있지? 이러고 뒷문을 찾아서 어떻게든 그곳으로 빠져나가려고 했어. 그래서 나를 보면 항상 남들이 아예 시도를 하지 않은 부분. 창업이라던지, 대학원 입시라던지, 시 등단과 같은 경우에서도 항상 그런 루트를 뚫으려고 했던거야.
나는 개발자들의 오픈소스 문화가 정말 좋다고 생각해. 자기가 열심히 개발한 코드를 나누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정착된 문화잖아. 경쟁하지 않고, 투쟁하지 않고. 결국 좋은 사람이라는 것도 그냥 딱 오픈소스처럼 사회 생태계에 약간의 좋은 기여를 하면 되는거거든. 너 블로그도 이 안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을거야. 그러니깐 너무 거창한 것을 생각하지 말고, 가볍게 시도를 해봐.
Q. 알겠어요. 형 어쩌다보니 결혼이나 공익적 활동에 대해서 이야기가 많이 치우치게 됐는데, 사실 제가 오늘 이야기 하고자 한 주제는 진로 고민에 있어서 대기업 취업이나 창업에 대한 경험이었거든요. 화제를 전환해서 이 이야기를 해봐요.
A. 그러자. 음 일단 진로에 대해 내가 조언 해 줄 있는 부분은 ‘최대한 경쟁하지 말고, 어디 뒷문을 찾아서 빠져나가라.’ 이거거든. 다른 말로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을 해라. 이렇게 정의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냐하면 내가 살아온게 이런 과정이었으니깐.
이 관점에서 너가 고민하는 것 중 대기업 취업을 생각해보자. 나는 개인적으로 너가 굳이? 라는 생각이 들어. 어차피 너 결국 무슨 진로를 정하든 나중에는 창업할꺼 아냐? 왜 들어가려는 거야?
Q. 제가 취업을 고려하는 이유는 대기업 조직 안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있을거라는 생각 때문에 그래요. 예를 들어, 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씨나 카카오 창업자인 김범수씨를 보면 모두 삼성 SDS라는 회사를 다니다가 창업을 한 케이스잖아요. 이렇게 대기업을 다니다가 창업에 성공한 케이스들이 꽤 있으니 이런 사례를 보면 회사를 다니다 창업을 하는 것도 좋은 루트구나 싶은거죠.
A. 글쎄... 너가 저번에 쓴 글에 나와있는 복잡계 이론 있지? 나는 창업이라는것이 바로 이 복잡계라고 보거든. 물론 대기업에 들어가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분명 있겠지. 그런데 대기업 취업 후 무언가를 배워 창업한다고 성공 확률이 높아지는 인과성은 잘 성립되지 않아. 물론 너 말대로 김범수씨나 이해진씨처럼 이 케이스로 성공한 사람들도 있지. 복잡계라 확실한 정답은 없지만, 나는 사업에 성공한 사람 중 이 과정을 아예 건너뛰고 바로 창업에 뛰어든 사람들도 많이 봤었거든.
나 같은 경우도 이런 케이스고, 몸으로 직접 이런 사람들을 많이 보다보니깐 대기업에서 배울 수 있는 것 VS 거기에서 낭비하게 될 시간과 에너지라는 기회비용을 봤을 때 배울 수 있는 것보다 기회비용이 크다고 봐.
특히나 이게 왜 그러냐면 스타트업이라는게 대기업하고 일을 하는 과정이나 프로세스가 전혀 달라. 한국어와 영어 문법이 다르듯 스타트업과 대기업은 문법이 아예 다른 세계야. 일단 대기업은 분담제로 일을 해. 반대로 스타트업은 직원 하나하나가 1당 백의 역할을 해야 하거든. 대기업과 같은 환상적인 분담제는 없는거지. 그래서 대기업에서 분담제로 일하다 온 사람이 막상 스타트업에 들어오면 전 회사에서 배운게 생각보다 도움이 안되는 경우가 많아.
대기업은 매출도 내고 이익을 내면서 이미 가설이 검증이 되어 있는 곳이야. 반대로 스타트업은 가설을 증명해야 하는 곳이거든. 문법이 다르기 때문에 내가 봤을 땐 대기업 다니다 온 사람이 스타트업 창업을 더 잘한다는 건 일종의 환상이야.
Q. 형은 그러면 스타트업 창업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건 뭐라고 생각하세요?
A. 나는 나만의 방법을 따로 정립했는데, 이걸 한 마디로 표현하면 '도제식 교육을 통한 사업'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일본에 보면 장인들 있지? 그 분들은 자신의 기술을 전수할 때 도제식으로 거의 과외와 마찬가지로 붙어서 모든것을 제자에게 전수해주잖아.
내가 딱 이 케이스였거든. 초반에는 맨땅에 헤딩을 좀 하기는 했지만, 중간에 잡코리아 창업자 김화수 대표님께 투자를 받고 이 분께 도제식으로 많은 것을 교육 받았어. 생각을 해봐. 한국 최고의 인사포털을 맨땅에서 세우신 분이 회사의 인사관리 노하우나 운영 노하우 등등 모든 것을 전수해주셨거든. 꼭 이런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인생에 있어서 어떻게 살아야 되겠다 이런 삶의 태도에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어.
결국 애드링이 잘 안풀리기는 해서 김화수 대표님께 미안한 감정이 커. 나는 이 분하고 같이 일을 하면서 사업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삶에 있어서 어른으로서 존경했거든. 이 때 느낀 것인데 지금 우리 30대 나이 대에 이렇게 존경하는 사람을 모실 수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행운이야. 도제식으로 과외를 받다보면 진짜 엄청나게 많은 것을 배워.
또 하나 더 이야기해주고 싶은 것은 이거야. 아까도 말했다시피 대기업은 가설이 검증이 된 영역이지만, 스타트업은 새로운 가설을 검증해야만 하는 영역이거든. 그러다보니깐 VC나 먼저 스타트업을 성공시킨 선배들, 혹은 나와 같이 스타트업을 하는 다른 대표들을 만나서 고민을 얘기하고 조언을 들어야 해. 사실 상 이건 필수야. 무조건 이렇게 해야 해. 왜냐면 정답이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이럴 땐 교과서가 아니라 동물적 감각이 있는 사람들에게 많은 힌트를 얻을 수 있어.
Q. 그런 사람들하고는 어떻게 친해져요?
A. 나는 인간관계는 두 종류가 있다고 생각을 해. 예를 들어, 나는 지방대 문예창작학과를 나왔잖아. 여기서도 사람들하고 친하게 지내고 그랬었거든. 보통 다 이렇게 할거야. 나는 이걸 '좋은 관계'라고 표현을 할게. 그런데 이것보다 더 고차원적인 관계가 있어. 이 관계를 '어울린다'라고 표현 할 수가 있겠는데, 예를 들어 단 한 번을 만났어도 서로 마음을 나눴다. 이러면 이게 된다고 보거든.
친구라는 단어를 광의로 정의 하면 '옆에 있음으로써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사람' 이라고 표현 할 수가 있을거야. 반대로 협의로 정의하면, '자신이 나아가고자 하는 길에서 비슷한 고민과 목표를 나눌 수 있는 사람' 이라고 볼 수 있을거고. 물론, 다른 스타트업 대표를 만나도 당연히 잘 안 맞는 경우도 있지. 그런데 심적 위로를 서로 주고 받을 수 있고, 서로 영감을 나눌 수 있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가끔씩 있거든? 삘이 딱 오는거야. 그냥 느낌으로. 그러면 그 사람하고 자연스럽게 친하게 지낼 수 있게 되는거지. 어떻게 친해지는가는 이런 느낌적인 부분이라 정답이 없는 것 같고, 다만 이런 사람들이 모이는 벤처 창업가 모임 같은데를 자주 찾아가는 습관은 기르는게 좋아.
Q. 형 그러면 요즘도 사업을 해요?
A. 요즘은 카이스트 연구원을 그만두고, 아내 사업을 도와주고 있고 전통주 양조장을 하나 하고 있어. 내가 스타트업을 하면서 가장 크게 배운 능력은 '브랜드 기획' 능력이었거든. 다른 말로는 벨류를 만들어내는 능력. 코카콜라랑 펩시콜라 광고 알지? 그걸 보면 실제로 눈을 가리고 콜라를 마시면 대부분 펩시가 맛있다고 하거든? 그런데 브랜드를 보면서 마시면 코카콜라가 맛있다고 해. 이런 연구 사례들을 보면서 내가 깨달은게 아 맛이라고 하는 것이 꼭 미각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브랜드라는 무의식적인 설계가 실제 맛에도 영향을 미치는구나. 이거거든.
그런데 문득 생각해보니깐 한국에 북한 전통주가 있었나? 싶은거야. 북한은 우리랑 양조기법이 다르니깐, 거기서는 어떻게 술을 만드는가 궁금해지더라고. 알아보니 일본에 있는 교수 중에 북한과 교류하는 분이 있어서 그 분께 북한 양조기법에 대해 조언을 얻었어. 즉, 남과 북의 양조기법을 융합해보자. 이런 아이디어로 시작을 한거지. 실제 통일부 쪽에서도 좋아했고, 투자 제의도 들어온 상황이야. 아무래도 제조업 쪽이니깐 돈이 꽤 들어서 내 돈도 많이 들어간 상황이고. 결국에는 평범한 전통주를 만들면 ONF OF THEM 밖에 안되잖아. 나는 항상 남들이 하지 않은 새로운 것을 만들려고 했으니깐 이렇게 ONLY ONE을 찾는거지. 물론 검증 되지 않은 가설이기 때문에 성공 확률은 낮을 수 있어. 그래서 요즘에는 차별화는 가져가되 검증 된 판매나 마케팅 문법은 최대한 따라가려고 노력하고 있어.
Q. 형 카이스트 대학원은 어떻게 해서 들어간거에요? 우리 인재상 수상자 중에 아리랑 유랑단 문현우씨라고 있잖아요. 그 분은 카이스트 사회적기업가대학원 나왔던데 형도 거기 나온거에요? 아니면 제 친구 중에 성훈이라는 친구가 요즘 카이스트 창업대학원 진학 준비한다는데 형이 한게 그 프로그램인가요? 여러 사람들이 카이스트 대학원 가다보니깐 이 학교에는 어떤 대학원 프로그램이 있는지 그게 궁금해요.
A. 아 그거는 어떻게 되어있냐면, 전통적으로 실제 카이스트 본교에 진학해서 공학 학사 / 석사 밟는 루트 말고 따로 몇 가지의 루트가 있거든.
카이스트 창업대학원 (경영학 석사)
카이스트 사회적기업대학원 (경영학 석사)
카이스트 MBA (경영학 석사)
// 이것은 모두 경영학 프로그램이라 캠퍼스가 서울에 있어. 서울에도 카이스트 캠퍼스가 있거든. 그런데 내가 나온 프로그램은
4. 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 (공학 석사)
이 학위야.
Q. 엥?? 형 공학 석사 학위가 나온거에요?
A. 맞아. 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은 공학 석사야. 저기 안에서도 세부적으로 전공이 있는데 미래전략 / 과학저널리즘 / 지식재산. 이렇게 있거든. 나는 여기서 미래전략을 전공했어. 또 이거는 공학 석사 학위라서 캠퍼스가 대전에 있거든. 그래서 다른 과 수업들도 들을 수 있어서 대전 카이스트 캠퍼스 내에서 다른 수업도 많이 들었어.
Q. 어떻게 하다가 여기 진학하게 된거에요?
A. 일단 여기 들어오는게 쉽지 않았어. 2번 떨어지고 3번째에 합격을 했어. 삼수를 한거지. 동은 너는 인재상 재수를 했지만 나는 인재상도 삼수를 했었거든. 그런데 사실 이 대학원이 창업자들은 보통 거의 안하는 프로그램이야.잘 알려지지도 않았고. 창업가들은 보통 카이스트 창업대학원을 가지. 나랑 같이 입학한 사람들을 봐도 창업가는 거의 없었고, 전문직이나 카이스트 학부생 출신들 혹은 정책전략 업무를 짜는 공무원이나 그 쪽 계통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어.
들어오면 미래전략과 관련된 이것저것 많이 배워. 예를 들어, 데이터사이언스나 IT 기술의 미래. 어떤 기술이 미래에 어떻게 쓰일지 예측하는 그런 분야 등등.
Q. 형 MOT (기술경영전문대학원)랑 커리큘럼이 아주 유사한대요? 저 학부 때 아는 형도 모교 MOT 대학원으로 진학했는데 이런거 배운다고 했었거든요.
A. 맞아. MOT랑 커리큘럼이 아주 유사해. 그런데 여기는 공학석사 학위를 주니깐 취득 후 아주 유용해. 예를 들어 내가 지금 정부 사업을 할 때 카이스트 공학 석사 학위가 있다보니깐 여러모로 혜택을 보는게 많거든. 경영학 석사는 많이 있는 반면 상대적으로 공학 석사는 많이 없으니깐. 내가 이런 차별화와 뒷문을 잘 발견하잖아?! 기업부설연구소 프로그램이나 외의 여러 벤처 프로그램에서도 유용하고 그래.
Q. 입학하는 과정은 어땠어요?
A. 나는 여기 학위 때문에 간 것도 있지만, 사실 그것보다 더 컸던게 이 대학원 원장님 아래서 배우고 싶었던 마음이 컸어. 지금은 카이스트 총장님이 되신 이광형 원장님이신데 힙합에 보면 리스팩트! 이런 용어가 있지? 내가 진짜 이 분한테 리스팩트!! 이게 느껴졌다니깐. 나는 세상에 자신을 존경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거든. 그런데 나는 또 그냥 아무나 존경하는게 아냐. 너도 그렇겠지만 나도 반골기질이 있어서 진짜 이 사람이 존경할만하다 싶지 않으면 안되거든. 값 싼 존경이 아니라는거지. 마음 속 깊이 존경하지 않는 사람을 따를 수는 없는거니깐. 그런데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이 분이 진짜 한국의 위인이시거든. 내가 그래서 대학원 진학하기 전부터 이 분과 관련된 언론 보도 기사나 정보들 다 읽어보고. 와 이런 큰 사람 옆에 있으면 나도 같이 클 수 있겠다 싶더라고. 그래서 나는 당신을 존경하고 당신의 철학을 닮고 싶기 때문에 여기서 배우고 싶다. 이것을 어필하면서 떨어져도 계속 지원하고 또 지원했지. 그렇게 했더니 3번째에는 뽑히더라고.
나는 내가 역량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렇기 때문에 항상 많은 실패를 했었어. 인재상도 3수에 카이스트 대학원도 3수에 결국은 애드링이란 창업도 실패했잖아. 그런데 나는 이런 실패에도 불구하고, 딱 하나 자신 있는 것은 내 주변에 많은 어른들이 나를 도와줬다는거야. 이런 내 편이 많다는게 정말 든든해. 이광형 원장님도 그렇고 김화수 대표님도 그렇고. 내가 미약하나마 인생 전반에서 무언가를 이룬 것은 다 이런 어른 분들이 도와주셔서 가능했거든. 내가 혼자 이룬 것이 단 하나도 없어. 너도 꼭 이런 존경할만한 어른들을 찾아서 그 분을 힙합에서처럼 리스펙트하고 도움을 받아야 해. 아무리 개인이 역량이 뛰어나도 이런 어른들의 도움 없이는 뭔가를 이루기가 많이 힘들어. 진심으로 존경할 만한 어른을 찾아. 그리고 그 분을 마음 속 깊이 존경하면 그 분이 최선을 다해서 너를 도와줄거야.
Q. 좋은 조언이에요! 형 카이스트 연구원은 어떻게 하다가 된거에요?
A. 스티브 잡스가 점과 점 사이의 선이 연결된다고 했잖아. 내가 딱 이 말이 들어맞게 연구원이 됐었는데 애드링을 할 때 기술거래사라고 하는 전문 라이센스를 취득을 했었거든. 거기에 실제 창업 할 때 내가 기술 거래 실적도 있었잖아. 그런데 대학원 졸업 할 때 즈음 보니깐, 카이스트 기술사업화센터에서 채용 공고를 냈더라고. 그래서 지원을 했는데 나 같이 실제 실무를 겪어보고 온 사람은 드물었던거지. 그래서 뽑혔어. 직장 생활도 해보니깐 괜찮더라고. 그런데 나는 사업이 더 잘 맞기는 하더라. 직장인은 아무래도 새로운 기회나 도전이 제한이 되니깐.
뭐 사실 나에게 더 많은 재능이 있었더라면 내가 원하는 것을 더 빨리 얻을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어. 그런데 나한테 그런 재능이 없더라도 먹고 사는 것에는 문제가 없기 때문에 괜찮아.
나는 너가 정말 잘 됐으면 좋겠어. 왜냐면 너는 비주류잖아. 나도 너와 같은 비주류라서 너에게 동질감을 많이 느껴. 보통 비주류들은 의미 없이 세상 탓 하고 욕 하고 이러는데 너는 주어진 운명을 거부하고 극복했잖아. 옆에서 이런 과정들을 내가 직접 보기도 했고. 현재 고민하는 진로에 있어서는 나라면은 변호사 자격증을 따는 길로 일단 갈 것 같아. 그리고 변호사 취득 후 그 일을 안 하고 교사를 한 번 해볼 것 같아. 박정희 대통령도 교사를 잠시 했듯이 1~2년 정도 잠깐 이 직업을 가지는게 상당한 사회적 공익 활동이라고 나는 보고 있거든. 자식들이라고 생각하고 가르치면 그 아이들이 너에게 배울 수 있는 것도 많을거고. 너의 스토리나 변호사인데 교사를 하는 부분들이 누군가의 인생을 바꿔 놓을 수도 있을거야.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은 말은 너가 나중에 진짜 큰 개천용이 되서 정치인이 된다거나 하면 많이 외로울거야. 왜냐면 우리 세대 중 너 같은 개천용이 없으니깐. 다른 엘리트들하고는 배경이 다르니깐 연대하기가 쉽지 않거든. 70~80년대에는 개천용이 워낙 많아서 이게 가능했을지는 몰라도. 결국에는 너가 기존의 엘리트들 집단에 편입을 해야 할텐데 그곳에 들어가도 주변인으로서 머무니깐 어려울거야. 나만 해도 벤처를 운영하면서 이곳 업계가 상당한 엘리트 비즈니스이기 때문에 지방대 출신인 내가 주변인으로 느껴지고는 했었어. 너도 과정 중 외롭고 힘든 면이 있을텐데, 그것들을 극복하고 더더욱 성공했으면 싶다. 다른 엘리트들과 달리 너의 성공은 우리 같은 비주류에게 큰 본보기와 사례가 될 수 있을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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