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과 공포를 되비추는

The Royal Ballet's <The Metamorphosis>

by 김소연


무용수의 뛰어난 표현력이나 기량은 기대한 바 그대로이다. 인상적인 점은, 공간 디자인과 소설을 공연대본으로 재구성한 각색이다.


먼저 공간 디자인. 무대는 그레고리 잠자의 방과 가족들의 공간이라 할 거실 이렇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두 공간은 어긋난 조각처럼 사이를 두고 떨어져 있고 좁은 통로로 연결되어 있다. 한쪽은 잠자의 방과 거실을 잇는 문이고 다른 쪽은 집 밖으로 나가는 문이다. 두 공간의 양 편 끝에는 벽을 세웠다. 그레고리 잠자의 방 벽에는 창문이 나있고 그가 일터로 나갈 때 꺼내 입고 돌아와 벗어 넣어두는 옷장이 있다. 잠자의 방 벽과 마주보고 세워져 있는 거실의 벽은 식기와 조리를 하는 장이다. 그러니까 잠자의 옷장과 가족들의 일용할 양식을 준비하는 부엌이 무대 양 끝에서 마주보고 세워져 있는 것이다. 마치 두 개의 분리된 공간이면서 서로가 서로를 비추고 있는 것 같다고 할까. 잠자의 노동과 식구들의 생존이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무대의 구조는 원작의 이야기를 공간적으로 구조화하고 응축한다. 두 공간은 한 무대에 있지만 분리되어 있고 그러나 영향을 주고 받는다. 잠자가 방으로 들어가고 식탁을 치우는 엄마가 잠자의 방을 불안하게 바라보는 장면이 주는 긴장감 등등. 잠자가 벌레가 된 후 이러한 공간의 대비는 소설의 각색을 매우 훌륭하게 뒷 받침한다.


발레의 시작은 그레고리 잠자의 일상으로 전개된다. 그레고리 잠자의 하루, 출근, 퇴근, 가족들과의 식사, 방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기가 반복된다. 출근과 퇴근 장면에서 커피를 사 마시고 잔술을 사 마시는 행동이 한치의 차이도 없이 반복되면서 일상, 루틴이 강조된다. 일상적 행동에 가깝지만 그럼에도 경직된 신체와 마치 컨베이어벨트가 돌고 있는 것 같이 장면이 전개된다.


잠자의 변신 이후부터 본격적인 발레가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이 소설을 골라든 창작자라면 ‘변신’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공을 들일 것이다. 혹은 그 아이디어에서 작업을 시작할 수도 있다. 이 공연은 변신을 추상화시키지도 그렇다고 벌레를 재현하지도 않는다. 무용수의 움직임은 벌레의 형태나 움직임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신체를 변형시키는 방식이다. 몸의 형태와 기능을 왜곡시켜 웅크리고 바닥에 밀착시켜 움직이면서도 팔이나 다리를 옆으로 혹은 수직으로 길게 뻗으면서 신체의 변형과 왜곡을 강조한다. 무용수의 신체적 조건, 긴 팔과 다리는 이러한 변형과 왜곡을 더 적극적으로 표현해낸다. 다른 인물들의 춤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조형적인 안무가 보이지만, 잠자의 움직임은 리드미컬한 움직임을 전개하기보다는 신체의 변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재미있는 표현은 손가락과 발가락을 계속 움직이는 것. 마치 작은 벌레의 다리가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 같다고 할까. 몸체는 느리게 이동하지만 많은 다리들이 빠르게 움직이는 곤충의 모습이 떠오른다.


무용수의 표정도 인상적인데, 아마도 영상으로 클로즈업 되었기에 더 강조되는 것이겠지만, 살아 있는 표정과 구부러진 몸이 대조된다. 거기에 수평의 조명으로 흰 벽에 그림자를 투영하면서 이 놀라운 사건이 불러일으키는 심리적 충격을 그려낸다.


변신 이후 잠자는 그의 방에 갇혀 있고, 그의 방에 들어서는 인물들과의 이인무가 전개된다. 동생, 잠자의 방을 치우는 청소부, 그리고 엄마. 아빠는 그의 방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의 방에서 벌어지는 이인무에서 그의 변신으로 관계의 전위 전복 변신에 대한 가족들의 반응 등이 그려진다.


공연의 중반부에 이르러 다시 한번 전복적인 장면이 전개된다. 갑자기 잠자의 방 한켠 벽이 기울고 침대도 벽에 딸려 들어올려진다. 그리고 기울어진 벽을 타고 검은 ‘것’들이 그의 방으로 들어온다. 온몸이 검은 액체에 젖어 있는 이 존재들은 잠자의 방을 온통 휘젓고 잠자의 몸을 덮친다. 처음 잠자가 변신했을 때부터 그의 몸에 묻어 있던 검은 액체의 흔적은 이제 그의 몸과 그의 방 전체를 뒤덮고 있다. 잠자의 꿈인지 환영인지 알 수 없는 이 장면은, 그러나 이어지는 장면들에서도 여전히 벽이 기울고 침대는 들려있다. 그러나 잠자의 방을 들고 나는 가족들과 청소부는 기울어진 벽과 들린 침대에 반응하지 않는다. 잠자가 겪고 있는, 그러나 가족들은 알 수 없는, 혼돈과 고통이다.


장면은 잠자의 방과 가족들의 거실이 번갈아 전개된다. 그럼에도 마치 서로를 되비추고 있는 것 같은 무대의 구조처럼 서로 분리된 두 공간의 사건은 단단히 얽혀 있다. 잠자의 변신을 호기심 어리게 관찰하고 있는 동생만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상황을 외면하는 그러나 한 걸음도 빠져나가지 못하는 엄마도 잠자의 변신에서 탈출구를 찾는 아빠도 모두 잠자의 변신으로 혼란에 빠져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바로 이점이 이 공연의 놀랍고도 인상적인 점이다. 소설이 잠자가 서술하는 1인칭 시점인 반면, 공연은 화자가 제거되고 인물들이 직접 상황을 전개한다. 소설의 독자가 잠자의 시선을 벗어날 수 없다면 공연을 보고 있는 관객은 3인칭 관찰자로서 이 이야기를 각자 쓰고 있는 셈이다. 공연은 두 공간을 분리하면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장면의 배치, 잠자의 방에서 벌어지는 이인무 등으로 전개한다. 소시민의 불안과 공포가 강렬한 스펙터클과 함께 충격적으로 전개된다.


마지막 커튼콜에서 확인한 것인데, 이 공연의 객석은 무대를 가운데 두고 양편으로 나뉘어 있다. 이러한 공간의 배치로 실제 극장에서는 되비추기가 강조되었을 것이다. 영상에서는 마지막 커튼 콜에서 무대와 객석의 배치가 확인되었는데, 반전이라 할 만큼 이러한 객석의 배치가 공간 디자인에서 갖는 의미가 강렬하다.


공연의 마지막도 인상적이다. 기울었던 벽이 다시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오고 잠자는 창문에 앉는다. 이제까지 한번도 빛이 들어오지 않던 창에서 노란 빛이 쏟아지는 가운데 암전. 다시 불이 밝혀지면 잠자의 모습은 사라져 있고 가족들이 성장을 하고 잠자의 방으로 걸어온다. 그들의 굳은 모습은 장례식 분위기인 것 같지만, 그 외 그들의 의상 등등에서 장례식을 유추할 근거는 없다. 잠자의 마지막 장면은 드디어 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안식일까.


2008년 의정부음악극축제에서 공연된 아이슬란드 가다슨의 <변신>에서는 수직과 수평을 전복시켰다. 아래층의 가족들의 공간과 윗층의 잠자의 방은 분리되어 있고 잠자의 고립감이 두드러졌다. 반면 로얄 발레의 공연에서는 가족들 역시 잠자의 변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더 두드러진다.


Cast and creative team:

Gregor Samsa: Edward Watson

Grete Samsa: Laura Day

Mrs Samsa: Nina Goldman

Mr Samsa: Neil Reynolds

Maid/Coffee Lady: Bettina Carpi

Clerk: Greig Cooke

Train Conductor: Amir Giles

Dream Figure/Bearded Men: Bettina Carpi, Amir Giles, Greig Cooke

Choreography: Arthur Pita

Music: Frank Moon

Designs: Simon Daw

Lighting design: Guy Hoare

This recording was originally made in 2013.


https://www.youtube.com/watch?v=6H6KzBu4K68



f574c609f759842ba42aae2d3ff27484.jpg



f9f1db2d734d0256a2673408bf38e37a.jpg


edward-watson-as-gregor-samsa-in-the-metamorphosis-photo-1.jpg
Metamorphosis_2006439b.jpg


maxresdefault.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천사- 유보된 제목> Vs <관람모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