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슬렁 × 설유진 × 신촌극장
객석을 향해 나란히 놓여 있는 테이블. 문이 열리고 한 여자가 들어온다. 불을 켜고 문을 열어 둔다. 아무도 없는 빈공간을 둘러보다가 가방을 내리고 열쇠와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두고 외투를 벗는다. 그러다가 던지듯 테이블 위에 눕는다. 다시 일어나 객석 뒤편으로 간다. 앞치마를 매고 나온다. 무대 한켠, 비닐봉투를 쓰고 있는 묵직한 무언가를 들고 와 한쪽 테이블에 놓는다. 비닐을 벗기니 작업 중인 두상 조소가 나온다. 찰흙덩어리를 떼어내 주물러 무언가를 만들려고 할 때 또 한 여자가 열린 문으로 등장한다. 이미 앞치마를 두르고 들어온 여자는 곧바로 두상을 옮기고 작업을 시작한다.
말 없이 각자 자기 앞에 놓여 있는 두상을 만지고 있는 두 사람. 어색한 침묵을 흔드는 말들. 서로 이름을 알게 되고 띄엄띄엄 말이 이어진다. 이제야 서로 통성명을 하는 것을 보면 말 한마디 나누지 않던 사이인가 보다. 긴 작업대 위에 두상을 두고 흙을 만지면서 두 사람의 대화는 긴 사이를 두고 끊길 듯 끊길 듯 이어진다.
이 극장으로 들어서는 골목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계단으로 오르는 건물 옥탑의 조소학원은 코로나19로 갑작스레 강의가 멈추었다. 학원은 내내 비어있었을 터이다. 두 사람, 자연과 영미는 이 학원의 수강생들이다. 자연은 휴강을 잊고 학원에 왔다가 선생님이 알려준 열쇠를 찾아 열고 학원에 들어왔다. 이 건물에 살고 있는 영미는 (아마도 문이 열리는 기척에) 학원에 올라와 자연 옆 테이블에서 흙을 만지고 있다. 전염병으로 세상이 멈춘, 빈시간과 공간에서 둘의 만남은 시작된다.
같은 극장에서 공연되었던 설유진의 전작 <나의 사랑하는 너>에서도 보여주었던 것처럼, 이 연극에서도 내뱉지 못하는 말, 끝내지 못하는 말들의 머뭇거림이 말들의 사이에서 팽팽하게 쌓여간다. 그러나 전작이 오래된 과거, 지속되는 과거를 불러들이는 이야기인 만큼 말과 말의 ‘사이’ 말을 내뱉기 전 품고 있는 머뭇거림에는 과거의 사건들과 그 과거를 품은 채 지나온 시간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다. 반면 이번 공연에서의 머뭇거림은 말로 자라나지 않는, 혹은 그저 스스로에 대한 응시로 텅빈 ‘사이’ 이다. 아니 ‘사이’마저도 드러내지 않는, 번역되거나 해석되지 않는 거기 그저 그렇게 있는 ‘사이’ 이다. 이 두 사람의 대화가 시작되는 지금 여기가 강의가 없는 빈 강의실인 것처럼. 갑작스럽게 멈추어 버린 시간과 공간을 그냥 펼쳐놓는 듯이.
<어슬렁>에는 연출의 존재를 두드러지게 드러내는 두 개의 장면이 있다. 자연이 영미에게 노래를 들려주는 장면과 암전 속에서의 두 사람의 대화다. 끊길 듯 끊길 듯 이어지는 대화 속에서 자연은 자신의 핸드폰에서 노래 한 곡을 찾아 영미에게 들려준다. 이때 극장은 그저 침묵 속에 있고 무대 벽에 노래의 가사가 흘러간다. 아마도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면 음악의 선율과 음악이 불러일으키는 감흥을 필터로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대는 여전히 침묵 속에 있고 무대 벽에 문장들만이 흐르고 있다. 두 사람의 어색하게 이어지는 대화처럼 우리 역시 우리에게는 들리지 않는 음악을 듣고 있는 두 사람을 지켜보아야 한다. 다른 한 장면은 갑작스레 무대가 암전되고 작은 창문으로 흘러들어오는 빛이 무대를 밝히고 있는 상황에서의 대화다. 마침 내가 공연을 봤던 월요일에는 하루 종일 천둥과 번개가 내리치고 비가 퍼붓듯이 쏟아지고 잦아들기를 반복하던 날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장면에서 옥탑에 세워진 극장의 천정을 세차게 두드리는 빗소리가 고스란히 극장 안으로 쏟아졌다. 우연히 연출된 장면이지만, 빛은 최소한으로 남겨진 채 제거되고 말은 빗소리에 묻혀버린 채 두 존재만이 실루엣으로 남아있었다. 만남은 그렇게 비워낸 자리에서 시작된다.
영미는 키가 큰 자연을 보며 말한다. ‘넌 어슬렁거리면서 내게로 와’. 어슬렁-거리다. 몸집이 큰 사람이나 짐승이 몸을 조금 흔들며 계속 천천히 걸어다니다. 영미의 말을 들으며, 한 사람을 다른 무엇이 아닌 바로 그 말로 떠올리게 되는 것은, 그 사람이 마음에 들어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한 사람이 마음에 들어오는 것은 그 사람을 지극히 바라보는 것이고 어떤 말이 불현 듯, 섬광처럼 떠올라 새겨지는 것이 아닐까.
연극의 마지막에 이르러 두 사람은, 이야기 안에서도 그리고 물리적인 극장 공간에서도, 내내 닫혀 있던 문을 열고 테라스로 나선다. 작은 창문의 희미한 빛이 머물던 극장으로 오후의 빛과 도시의 풍경이 쏟아져 들어온다. 극장의 안과 밖의 경계가 열리지만, 연극은 극장 밖의 공간을 다시 연극 안으로 끌어들이고, 그러나 닫혀 있던 이야기에는 다른 목소리가 등장한다. 극장의 안과 밖 이야기의 안과 밖이 꼬여서 이어진다. 매력적인 장면이었지만, 이 목소리가 너무 친절한 해설처럼 다가와 빈공간을 채워가던 긴장감이 흐트러지는 것은 아쉬웠다. 말하지 않는 것, 말로 완성되지 않는 것, 비워진 것. 바로 거기에서 말은 시작되고 만남도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