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정현 <장막>
소리도 빛도 그리고 어둠마저도 이 낡은 창고의 압도적인 아우라를 드러내기 위한 장치. 한 시간이라는 런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전개는 없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어둠 속에서 언뜻언뜻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데, 당연히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는데, 발자국 소리만으로도 어둠 속에서의 움직임을 그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발자국은 그저 지워지지 못한 소음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희미한 빛 속에 실루엣이 드러나지만 퍼포머는 빛을 드러내기 위한 오브제였다.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그렇다고 이 공연의 주제가 빛과 어둠이라고 하기엔 주저된다. 몇몇 인상적인 장면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예를 들면 내가 앉은 자리에서 바닥을 사선으로 가르며 빛이 비출 때 퍼포머와 일렬로 늘어선 형체가 보이는 거다. 뭐지? 웅크린 사람? 너무 작은데, 오브제를 놓았나? 퍼포머가 움직이고 빛이 방향을 틀면서 창고 기둥의 하단이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분명 거기에 기둥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빛과 어둠이 만들어내는 흥미로운 장면이었다. 그러나 그런 몇몇 장면을 제외하면, 마지막 포그와 문틈의 빛으로 만들어지는 빛과 안개의 벽이라든가 등등, 육중한 어둠과 어둠의 무게를 진동으로 다시 반복하는 소리가 이 퍼포먼스를 차지하고 있다.
공연을 보면서 정세영의 <다 타버리고 난 후에야>가 문뜩 문뜩 떠올랐던 것도 그 때문이다. 신촌극장의 작은무대에서 아이패드 불빛, 아이패드에 적혀 있는 텍스트를 마이크로 낭독하고 있는 이 공연은 칠흑 같은 어둠, 나타나고 사라지는 한 조각 빛, 빛과 어둠을 채우고 빛과 어둠에 갇힌 목소리로 이 작은 공간을 무한히 확장하고 시간을 확장한다.
반면 이 작품의 빛은 이 낡은 창고를 마치 다 인식할 수 없는 크기의 공간인 양 부분만을 드러내고 어둠 속에서는 아마도 공장의 기계음을 믹싱한 것 같은데, 괴력에 가까운 소리들로 채운다. 하여 이 공연은 이 낡은 공장의 켜켜이 쌓인 시간만을 지시할 뿐 자신의 시간을 전개하지 못한다. 공간은 있지만 시간은 없는, 공간마저 크기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