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타드 입는 걸 좋아하는 공부 잘 하고 잘 사는 집 아들인 준호, 학교의 모든 아이들이 싫어하는 왕따 맥도날드 알바 유니폼을 그대로 입고 학원으로 연습장소로 뛰어다니는 희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아이가 어쩔 수 없이 한 조가 되어 체육실기시험을 준비한다.
선정적이라면 선정적이고 상투적이라면 상투적인 두 주인공과 사건들. 청소년 노동의 문제, 성적 갈등, 왕따, 소수취향의 문제, 소수자에 대한 편견의 폭력을 그대로 답습하는 아이들, 부모들의 경제적 지위가 아이들의 권력관계로 그대로 작동하는 상황 등등 흔히 청소년 문제라 이야기 되는 상황들이 빼곡하다. 거기에 연극은 내내 폭로, 협박, 계급적 갈등, 폭행, 모함 등등 사건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이 연극은 상황과 사건의 선정성이나 충격성에 기대어 가지 않는다. 선과 악, 가해와 피해의 명료한 이분법도 없다. 이것이 문제다 식의 고발과 교훈에도 크게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이 모든 사건들, 상황들은 이 모순덩어리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의 안간힘의 배면으로 물러선다.
담임 교사 한 명을 제외하면 이 연극의 등장인물은 모두 아이들이다. 가장 약한 것에 세상 모순의 하중이 쏠려 있듯이 예의 구조적 문제들에 아이들은 그대로 투명하게 노출되어 있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세상의 모순에 일방적으로 희생당하는 희생자로 그리지도 않는다. 부모의 경제력을 자신의 능력으로 과시하고 경제력이 그대로 성적의 우열관계가 되어 아이들의 일상을 지배한다. 아이들은 스스럼 없이 나와 친구를 비교하고 나보다 낮은 자인지 나와 비슷한 자인지를 구분하고 그에 따라 무리짓고 경멸한다. 사회적 편견은 아이들의 단순함 속에서 더 폭력적으로 드러나고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린치에도 서슴이 없다. 아이들 역시 세상의 모순과 폭력의 한 가운데에서 그것을 닮아가고 있다.
연극은 이것이 얼마나 문제적인 상황인가를 설득하기 위해 과장하거나, 아이들이 세상의 희생자라고 연민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이 연극의 유일한 어른인 선생님은 동분서주하지만 어떤 점에서 무기력하다. 그렇다고 자신의 무기력에 냉소하지도 않는다. 선생님은 그저 지켜보고, 기다리고, 믿을 뿐이다.
이 연극이 주는 감동은 세상에 물들어 있으면서도 그래도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살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려낸다는 것이다. 상처도 있고 실패도 있고 여전히 이 모순덩어리의 세상에 속해있지만 그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애쓰는 모습에서 우리는 이 아이들의 삶을 껴안게 된다. 청소년을 이만큼 독립된 존재로 그려가는 청소년극이 있었던가.
박찬규의 희곡은 세상의 부조리와 폭력에 주목하면서도 사건의 충격성이 아닌 그것을 겪고 있는 인물과 관계에 집중한다. 아시바 격자로 꽉 채워 놓은 무대에서 전인철의 연출은 빈 무대의 구획을 통해 억압, 고립, 대립과 갈등을 리듬감 있게 전개한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엔딩 곡의 선택이 탁월하다. 청소년극에서 자주 보이던 낯익은 배우들이 기존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를 생동감 있게 보여주고 있는 것도 이 연극을 보는 재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