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일상은 어떻게 드라마가 될 수 있을까

드라마에세이

by 김소연

이승한의 글을 재미있게 읽었다. 댓글도 알콩달콩 재미있다.(https://blog.naver.com/cine_play/222245807427)


글을 읽고 필자의 질문에 나도 궁굼해졌다. 왜 이제는 <응답하라 1988>이 그리는 것과 같은 삶의 고달픔 속에서도 작은 행복을 누리고 때로는 갈등하면서도 위로가 되는 이웃이 있는 '서민드라마가'를 볼 수 없을까. 필자도 말하듯이 응팔은 회고를 통해 과거의 시공간을 불러오는 것인데, 조금 더 기억을 더듬어 거슬러 올라가면 <서울의 달> <한지붕 세가족> 등등이 90년대에도 방영되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이런 서민드라마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 이승한의 글에서도 나오지만, 여러 답이 가능할 것이다. 제작환경, 대중들의 취향의 변화, 사회경제적 변화 등등. 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답인데, 나는 '드라마 공간 구축의 어려움'도 한 이유이겠다 싶다.


<서울의 달>이나 <한지붕 세가족> 등등은 한집에 여러 가구가 모여 살면서 크건 좁건 마당을 공유하는 주거형태다. 그리고 그 마당은 대문만 열면 골목으로 바로 이어진다. 마당은 드라트루기에서 매우 흥미로운 공간이다. 사적인 공간과 인접해 있으면서도 여러 인물들이 드나드는 장소다. 그러다보닌 인물들의 동선이 교차하면서 다양한 사건들이 만들어진다. 예기치 않게 어떤 사건을 목격하기도 한다. 방문 안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 혹은 벌컥 방문이 열리면서 방 안의 사건이 노출되기도 한다. 일일연속극이건 주말드라마건 미니시리즈이건 TV드라마의 분량이 나오려면 여러 인물군이 나와야 하는데, 특별한 계기 없이도 사건에 휘말리는 것이 가능해진다. 우연한 계기로 불거지는 갈등이기에 화해도 가능하다.


골목길도 그렇다. 대문을 열면 집안과 밖이 그대로 연결되는 골목길은, 종종 한지붕 세가족보다 더 많은 인물들의 동선이 부딪치고 담벼락도 없이 곧바로 방이 이어지기도 하는 집 안의 소리들을, 혹은 상황들을 목격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히라타오리자의 휴게실도 마당과 비슷한 성격이라 할 것이다. 여러 사람들의 동선이 겹치고, 때로는 사적인 공간으로 변하기도 하는.


사실 드라마에서는 이러한 공간이 필요하다. 연극처럼 무대라는 물리적 공간의 제약이 없더라도 그렇다. 드라마는, 행동과 갈등이 전개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부딪치는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반면 최근의 주거형태는 아파트, 빌라, 고시텔 등등 집이라는 일상의 사적 공간은 고립되어 있다. 집이라는 사적 공간과 인접한 일상의 공간에서 타인을 마주칠 곳이라고는 엘리베이터 안이거나 계단이다. 마당처럼 머물 공간이 없다. 그러니 사건이 벌어지려면 극단적 상황으로까지 치달아야 한다. 우연히 사소하게 갈등이 시작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일상의 공간은 단절, 고립의 상황으로 드라마화되거나, 예를 들어 <프라메이드>(송김경화 작)에서 우연히 배달된 가정부모델이 주인공의 공간이 얼마나 고립된 것인가를 보여주듯이, 혹은 공간이 단절되어 있다보니 일상의 사적 공간에서 타인을 마주친다는 것은 '침입'에 가까운 상황으로 흐른다. 예를 들어 <가정식 백반 맛있게 먹는 법>에서 방문판매상인이 집에 들어서면서 주인공의 공간은 엄청난 긴장이 시작되는 것처럼.


그러고 보면 장우재의 <옥상 밭 고추는 왜>는 빌라라는 공간에서 예의 '마당'의 역할을 하는 드라마적 공간으로 '옥상'과 빌라 앞 '주차장을'을 포착한다. 이 빌라 사람들 역시 제 각각의 집에서 제각각의 삶을 산다. 동네일로 분주한 현자가 등장하지만, 현자의 동선만으로 빌라 거주자들이 갈등으로 얽혀들 수는 없다. 장우재는 이 낡은 빌라에 사람들을 빼곡이 채워넣고는 옥상에서 고추를 키우던 광자가 갑자기 쓰러지고 현태는 광자가 쓰러진 것은 현자가 '너무 많은' 고추를 따갔기 때문이라고 광자에게 사과하라는 요구를 하면서 갈등이 부풀어 간다. 이 희곡은 김광보 연출로 서울시극단에서 올려졌는데, 무대는 프레임으로 분할된 각 세대, 그 위의 옥상 그리고 건물 앞 주차장으로 구성되었다. 광자가 키우턴 옥상밭은 의식불명인채 병원에 누워있는 광자의 부재처럼 텅 비어 있고 각 세대의 삶은 프레임 안에 있다. 단절된 집들과 갈등이 얽혀드는 주차장, 그리고 정작 갈등의 시작인 '옥상'은 텅빈어 있는 공간성을 무대 위에 부려놓았다. 그런데 이 희곡 역시 따듯한 서민드라마는 아니다. 진실은 알 수 없고, 모든 사람들은 성 나 있다.


따뜻한 위로이건 불편한 진실이건, 절대 고독이나 파국이 아닌, 더듬더듬 고단하고 위태롭지만 애쓰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포착하려면 어떤 공간을 발견해야 할까. 혹은 어떤 공간을 직조해내야 할까.


그런데 여기까지 쓰고보니 사적 공간과 공유공간이 맞물리는 곳은, 이제 물리적 장소로서의 마당 같은 곳이 아니라 SNS가 아닌가 싶다. 오늘도 내 페북 탐라는 시끄럽고, 훈훈하고, 절대고독에 몸부침치고,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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