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태어낳지만 태어나지 못한 것들

by 김소연

2015.12.29


'여기는 당연히, 극장' <일회공연>(구자혜 연출). '태어났지만 태어나지 못한 것들을 위하여'란 부제가 붙은 이 공연은 이런 저런 이유로 쓰여지고 만들어졌지만 공연되지 못한 장면들, 인물들을 모아 만든 공연이다. 이번에 올린 공연은 같은 콘셉트로 올린 세번째 버전이다.

앞의 두 버전을 희곡(?)으로 읽어보니 이번 공연에서는 팝업씨어터 공연 방해 및 검열 사태로 공연을 포기했던 송정안 연출의 <불신의 힘>이 추가되었고 배우들의 이야기가 장면과 장면을 잇는 브릿지처럼 삽입되었다. 그리고 <배우 L의 독백 - 훈제란과 자전거 도둑에 대하여>에 인물과 사건이 추가되어 수정되었다. 그러면서 '태어났지만 태어나지 못하는 것들'은 비단 공연되지 못한 희곡에서 무대 위에 한편의 연극이 오르기까지 변형되고 삭제된 여러 상황들 이유들로 넓혀졌다.

때로는 전개가 매끄럽지 않아서 장면이 삭제되고, 때로는 프로덕션의 규모 때문에 배우 수가 모자라 인물이 사라진다. 작가에게는 소중한 작품이지만 제작의 기회를 얻지 못한 희곡, 쓰여졌지만 공연될 거라는 기대 없이 작가의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희곡. 단 하루 주연 배우의 스케줄 때문에 대신 무대에 오르기 위해 주인공 역할을 한달동안 연습하지만 공연 직전 주연배우는 극장에 도착하고 대역 배우는 무대에 오르지 못한다. 더블 캐스팅이 되었다가 짤렸다가 다른 배우의 사고로 단독으로 배역을 맡기도 하고, 내가 준비한 공연은 오르지 못하고 똑같은 공연을 객석에서 바라보아야 했던 경험도 있다.

공연을 보고 있으면 연극 한편이 무대에 오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의 죽음 혹은 미생이 전제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희곡이라는 것이 그 자체로 완성된 것이지만 무대를 통해 다시 한번 태어나길 준비한다는 것,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태어난 것들이 죽거나 미생으로 남겨지는가. 희곡만이 아니다. 배우의 역할 역시 관객을 마주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반복하는지. 그리고 검열에 의한 죽음 혹은 미생도 있다. 역설적으로 이 공연은 그렇게 무대에서 삭제되고 배제된 것들만의 무대다. 그래서 이 공연은 죽임을 당한 것 혹은 미생으로 남겨진 것들의 태어남일까. 그렇지 않다. 여전히 이 공연에서 무대에 오른 희곡들, 인물들, 상황들은 태어났지만 태어나지 못한 그대로 이다.

어제 남산예술센터는 2016년 공동제작 공모선정작을 발표했다. 가장 눈에 띠는 건 박근형의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가 선정작에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알고 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창작산실 대본공모 선정작이자 우수제작지원선정작이다. 그러나 문예위가 심사위원들에게 심사결과 번복을 종용하고 이에 불응하자 작가를 찾아가 공연 포기 각서를 받아내고 문서를 조작해서 공연포기신청을 접수한 바로 그 작품이다. 이 모든 불법적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문예위는 이러한 파행의 정상화를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태어났지만 태어나지 못한 작품이었다. 그렇다. 어제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어제 선정결과가 발표되면서 이 작품은 이제 곧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죽음 아니 미생을 강요당했던 작품이 태어날 자리를 마련했다는 건 기쁘고 축하할 일이다.

그런데 하양 기쁘지만은 않다.

이 작품은 단계별 지원을 표방하는 창작산실의 몇 차례 절차를 통해 이미 일정한 성취를 검증받은 작품이다. 그런데 다시 남산예술센터는 공모절차를 통해 이 작품을 선정했다.

전혀 다른 기관, 전혀 다른 공공지원이 똑같은 작품을 선택했다는 건, 기관과 사업만 다를 뿐 변별성이 없다는 것인가. 아니면 각 기관과 사업의 미션을 두루 충족할 만큼 이 작품이 탁월하다는 것인가. 대체 뭐지?

궁금해서 심사평을 열어봤다. 심사평은 공고문에 나와 있는 심사기준 외에 "남산예술센터의 정체성과 방향성, 2016년 기획 공연들의 주제와 지향점 등도 고려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남산예술센터의 정체성과 방향성, 2016년 기획 공연들의 주제와 지향점"은 남산예술센터와 심사위원들만 공유하면 되는 건가? 응모자들에게 미리 아니 사후에라도 알려주면 안 되나?)

그럼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가 어떤 점에서 심사기준과 "남산예술센터의 정체성과 방향성, 2016년 기획 공연들의 주제와 지향점"을 충족하는가.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에 대한 심사평은 다음과 같다.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는 희곡이 제기하는 문제의식이 극이 전개되면서 구성과 형식을 통해 확장되고 심화되는 방식이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다. 상이한 시공간에서 벌어지는 역사적 사건들이 서로 논쟁하는 방식으로 스피디하게 펼쳐지는 이 작품은 극적 재미를 시종 놓지 않으면서도 주제를 힘 있게 끌고 간다."

이 문장만 떼어놓고 본다면 창작산실 심사평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그렇다면 대체 왜 다시 공모절차를 거친 것인가. 이미 검증된 작품을 똑같은 기준으로 다시 심사하는 반복이 왜 필요한 것인가. 굳이 이미 검증된 작품을 남산예술센터의 기준으로 다시 심사했다면 (창작산실과는 다르게 혹은 어떤 부분 중복되더라도) 남산예술센터의 기준에 어떻게 부합했는지를 밝혀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이 심사평만 보고 있으면 마치 남산예술센터와 심사위원들이 이 작품을 처음 발굴한 냥 싶다. 심사평 어디에도 이 작품이 이미 창작산실에서 검증된 작품이라는 언급도 지난 여름부터 내내 겪어야 했던 사건에 대한 언급도 없다. 그건 이 작품을 선정하는데 그러한 사건들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인가. 그런데 정말 아무런 고려가 없었을까? 창작산실 선정작이었고 공연포기를 강요받았던 작품이라는 건 심사위원들 누구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에 대한 고려는 없었나? 그래서 마치 처음 발굴한 작품인냥 심사평을 발표하는 것인가? 최소한 고려하지 않겠다는 고려라도 있었을 것 아닌가.

그런데 이 선정결과가 발표되자마자 나오는 기사의 제목은 "검열 논란 박근형 연출 '모든 군인은 불쌍하다' 내년 공연한다" 이다. 이러한 반응은 남산예술센터와 심사위원들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인가? 선정결과는 심사평의 무심한 표정처럼 일체의 의도가 없는 그저 합당한 절차의 결과일 뿐인가? 그런데 앞서 이야기했지만 이미 검증된 작품을 똑같은 기준으로 다시 심사를 반복하는 건 합당한 절차인가? 아니면 이러한 반응을 예상하고 의도한 것인가? 부당하게 탄생을 저지당한 작품에 태어날 자리를 마련하겠다는 것이었나? 그렇다면 공모절차는 왜 필요했던 것인가?

미생을 강요당했던 작품이 태어날 자리를 마련한 건 기쁘고 축하할 일이지만 그 과정은 해명되지 않고 공표되지 않은 모호한 기준과 의도를 남긴다. 그래서 기쁘지만 하양 기쁘지는 않다.

<일회공연>은 30석 남짓의 극장설비도 갖추지 않은 작은 공간에서 올린 공연이다. 못나서, 어쩌다 보니, 혹은 관습 위계 검열 등등의 폭력에 의해, 태어났지만 태어나지 못했던 온갖 것들을 무대에 올릴 뿐이다. '우리가 놓친' '당신이 알지 못하는' 명장면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삭제와 배제에 대한 비분강개나 슬픔을 강요하는 것도 아니다. 이 공연에 등장하는 장면들, 인물들, 어떤 배우의 역할이 무대 위에 그대로 올려졌다면 도리어 그 못남 때문에 관객들에게서 지워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태어났지만 태어나지 못한 미생은 그냥 못난 그대로, 지워진 그대로 슬프고 화나고 찝찝하고 그러다가 웃기기도 하다. 태어났지만 태어나지 못한 것들은 그것들대로 그렇게 많은 것들을 머금고 있다. 남산예술센터의 공모결과를 보면서 <일회공연>의 미생들이 생각났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9회말 마지막 타석에서 일어난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