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말 마지막 타석에서 일어난 일

극단 불의 전차 <팬스 너머로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해>

by 김소연


고등학교 운동부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유도소년>이 떠올랐다. 그러나 <유도소년>과 갈라지는 점은 드라마의 전개가 ‘승부’에 있지 않다는 것. 이러한 소재를 다룰 때 나오게 마련인, 매력적인 남자 인물들이 격렬하게 몸을 움직이고 땀방울을 흩날리는 장면은 이 공연에도 등장하지만 승부를 향한 것은 아니다.

연극은 턱을 괴고 앉아 만화책을 들추면서 축구부의 연습을 구경하는 승부의 세계 밖에서 시작되고, 주인공은 이미 야구를 그만뒀다. 연극이 도달한 곳도 주인공이 다시 자신의 꿈을 찾아 야구를 시작한다는 것도 아니다. 연극은 주인공이 다시 야구부의 도내 시합에 참여하는 것으로 전개되는데 주인공을 다시 야구부에 이끌게 되는 팀의 에이스 성호의 부상은, 연습이나 게임 도중의 부상이 아니라 한가한 골목길에서 길고양이와 장난을 치다 벌어지는 어처구니 없는 사고다. 고3 여름방학, 대학 진학 여부에 중요한 경기을 앞두고 눈을 다친 성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명랑하다. 여기에 또 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체육이라면 죽어라 싫어하는 ‘하니’다. 세상을 지우기 위해서인지 세상에서 자신을 지우기 위해서인지 하니는 내내 헤드폰을 쓰고 있다.

“노력하는 타자보다는 재능있는 투수”가 되고 싶었고 그래서 어깨가 부서지도록 연습했지만 투수가 되지 못한 준호, 꼭 선수로 성공하지 않더라도 대학만 가면 코치든 감독이든 할 수 있는 일이 열린다는 감독의 말에 주억거리고 있는 성호, 지긋지긋한 체육시간을 빠지려고 붕대를 감고 절뚝거리는 하니. 스포츠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들이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승부에의 욕망과 좌절과 극복의 서사로 전개되게 마련인데, 이러한 이야기들이야말로 영웅서사의 현대적 변형일 것이다. 그런데 이 연극은 최고를 향해 숨막히듯 달려가는 스포츠 서사와를 비껴선다. 물론 감독은 성호가 대학을 진학하려면 이번 경기에 꼭 승리해야 한다고 당부하지만, 그가 성호에게 권하는 것은 승리를 거머쥐는 최고의 투수가 되라는 것이 아니다. 그러고 보면 지명타자로 팬스를 지키다 그마저도 그만둔 준호가 성호의 부상으로 다시 배트를 들고 타석에 들어설 때면 절대로 방망이를 휘두르지 말고 볼을 기다리라는 감독의 지시도, 물론 드라마의 전개에서 그러한 지시가 준호를 좌절시키는 것이지만, 승부마저도 멋진 홈런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 아닐까.

그래서 승리 서사를 비껴선 연극은 어디에 도착하는 가. 승부를 가르는 마지막 타석에서 준호는 감독의 지시를 거스르고 공을 친다. 그런데 내가 조마조마했던 것은 경쾌한 소리를 내며 배트를 맞고 날아간 공이 결정적인 안타이거나 홈런이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저 공이 팬스를 넘거가 버리면 지금까지 쌓아왔던 드라마가 다 무너지는데 하면서. 이 점이 이 연극의 빛나는 점인데, 배트가 공을 맞추는 소리가 긴장감을 자아내지만 공은 승리를 향해 날아가지 않는다. 이 드라마가 승부의 세계에서 비껴선 야구부 이야기인 것처럼, 공은 승부의 세계를 비껴 날아간다. 파울. 준호는 몸이 지치도록 배트를 휘두르지만 공은 매번 파울볼이 된다. 결국 준호는 그동안 잘 고른 볼로 출루했던 것과 다르게 타석에서 아웃 당한다. 그러나 패배에도 불구하고 연극은 준호의 성장드라마를 완성한다. 그것은 패배해도 괜찮아가 아니라, 준호가 갇혀있던 세상이 말하는 '재능'과 '노력'의 빗장을 풀어내는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오래도록 몸의 기운이 다 빠져나가도록 타석에서 파울을 쳐야 했고, 현란한 연출이 필요했던 것이다.

<슬램덩크>의 인물들에 빗대어 상황을 해석하고 선택하는 인물들처럼 이 연극의 장면만들기는 만화적 미장센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승부를 향한 돌진이나 인물과 사건의 얽힘으로 드라마의 서스펜스를 만들지 않으면서도 발랄함과 서사의 긴장감을 부여하는 것은, 마치 만화의 컷 구성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연출이다. 빗살이 뻗어가며 인물이나 상황이 클로즈업되거나 슬로우모션을 보는 듯한 만화의 컷같은, 상황을 정지시킨 채 인물들의 움직임이 과장되게 전개되는 등의 연출이 소소한 재미와 사건의 얽힘과는 또 다르게 인물을 구축한다. 아쉬움이라면 때때로 이러한 과장된 움직임이 재치있는 장면 연출에 머문다는 것. 움직임의 과장이 아니라 상황에서 인물을 더 찾았으면 좋겠다. 성호와 간호사가 다소 기능적 인물에 머문다는 것도 아쉽다.

국립 아청연구소나 B성년페스티벌 등 청소년극의 서사가 다양하게 확장되고 있는 점은 반갑지만, 다른 한편 삶의 진실에 육박하는, 육박하고자 하는 서사가 아니더라도 이 시기의 불안과 좌절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꾸는 희망, 삶의 진실은 여전히 그 모습을 다 드러내지 않은 그래서 가짜일지도 모르는 희망이더라도 위로가 되는 희망도 필요하다. 소박하지만, 발랄하고 따뜻한 청소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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