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극단 <신의 막내딸 아네모네>
영상에 담긴 연극과 극장에서 직접 지켜보는 연극은 서로 다른 것이다. 지난 해 먼저 발표된 영상은 스타일이 두드러졌다면, 극장에서 지켜본 무대는 관계가 더 명료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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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네모네는 텅빈 객석을 향해 난 길을 따라 걸어간다. 걷는 걸음마다 꽃이 놓이고 그녀는 한 송이 한 송이 꽃을 들어 품에 안는다. 그녀는 꽃을 좋아했지만 빵과 우유를 사야 했기에 꽃을 가질 수 없었다. 빛나게 물결치던 머리카락은 파삭하게 세었고 허리는 구부정한 채 느린 걸음으로 세상의 끝에 이르러서야 품 안 가득 꽃을 안고 있다. 그녀가 안고 있는 꽃은 인간 세상이 신의 딸에게 바치는 마지막 선물일까, 닿을 수 없는 꿈의 안타까움일까.
<신의 막내 딸 아네모네>(마츠이 슈 재창작, 이홍이 번역, 김정 연출)는 백 년 전 쓰여진 스트린드 베리이의 <꿈연극>을 재창작했다. 신의 딸이 지구에 내려와 인간의 삶을 돌아보고 되돌아간다는 전개는 그대로 두었지만 세상의 모습은 다시 썼다. 꿈속을 헤매는 듯 변화하는 시공간의 환상성은 만화적 상상력으로 뒤바뀌어 놓았다. 반짝이는 의상과 과장된 분장, 현란한 조명과 격렬한 춤, 신체 조각을 보는 것 같은 움직임 등은 마치 만화의 컷처럼 분방하고 강렬하다. 과장과 채움만 있는 것은 아니다. 두 명의 연주자로 단순한 구성이지만 무대와 대화하듯 파고드는 라이브 음악이나 사각의 빈 무대에 앙상한 나무 두 그루가 덩그마니 서 있고 프레임이 강조된 문이 들고 나면서 아네모네가 떠돌고 있는 세상의 안과 밖을 만들어가는 장면연출도 인상적이다.
볼거리 많고 때로는 흥겨움마저 넘쳐나지만, 즐거운 이야기는 아니다. 신의 딸 아네모네는 지구의 아름다운 모습에 반해 이 땅에 왔지만 그녀가 만나는 인간의 삶은 ‘비참하다’. 가난이라든가 결핍 때문만은 아니다. ‘꽈리고추짱’을 찾아 헤매는 공무원도, 매일 매일 일에 파묻혀 있는 변호사도, 이야기를 짓는 시인도 모두 무언가를 갈망하지만 닿지 못한다. 신의 딸도 마찬가지다. 아네모네는 비참한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지만 인간들은 그녀의 손길을 거부한다. 세상의 끝에서 그녀가 품 안 가득 안고 있는 꽃은 닿지 못하는 갈망의 고통일까. 그녀는 꽃을 안고 세상을 떠난다.
이 작품은 경기도립극단과 페스티벌 도쿄가 공동제작했다. 지난 해 온라인으로 상연된 바 있으니 극장에서 관객을 맞는 이번 공연은 초연 아닌 초연인 셈이다. 무대 가장 깊숙한 곳에 만든 객석에 앉으면 무대 너머로 텅빈 객석이 보인다. 세상은 비어있고 가장 어두운 곳에 있는 우리는 아름다움이 있기에 고통을 견딘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코로나19 시대 극장에 오면 울컥하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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