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결정을 위한 투표를 앞두고 있다. 사실 결론은 자명해 보인다. 그런데 딱 한사람이 반대 의견을 던지고 논쟁이 시작되자 자명했던 상황은 혼란에 빠지고 의견이 엇갈린다. 이렇게 보면 이 연극은 <12인의 성난 사람들>의 전개를 떠오르게 한다. 두 작품 모두 투표를 앞두고 벌이는 논쟁으로 전개되고 논쟁의 시작은 단 한사람의 반대이며, 이 한 사람의 반대에서 출발하여 현실의 혼돈을 드러낸다. 하지만 <12인..>이 격론 끝에 하나의 결론에 이른다면 <7분>은 5 대 5, 그리고 마지막 한표의 결과를 앞두고 막을 내린다.
두 작품이 갈라서는 점은 합의냐 아니냐는 결론만은 아니다. <12인..>은 사실을 토대로 합리적 추론을 통해 주장과 반박을 이어가면서 합의를 만들어가는 지난한 과정을 그린다. 어느 누구도 이 지난한 과정을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이들은 결론에 이른다. 또하나 주목되는 점은 이들이 마침내 도달한 결론을 진실이라고 주장하지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면 소년이 살인자일 수도 있다. 함께 도달한 결론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은 이 불완전한 진실을 받아들이고 책임지는 것이다. <7분> 역시 사측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인가를 놓고 투표를 한다. 단 한 사람이 제안에 반대하면서 논쟁이 시작된다. 그러나 이들의 논쟁은 '사실'을 토대로한 주장은 아니다. 그보다는 가치와 태도에 대한 논쟁이다. 사측 제안을 거부한다는 것은 해고에 이를 수도 있는 위험한 선택인가, 사측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은 '7분'이라는 댓가 없는 양보는 우리의 모든 것을 내주는 파멸의 시작일 것인가. 연극은 내내 이 두 주장을 맴돈다. 아니 인물들은 모두 격렬하게 어느 한편을 주장한다. 하지만 논쟁은 주장의 반복을 빠져나오지 못한다. 결국 논쟁은 블랑세가 자신을 의심하는 동료의 말에 논쟁을 중단하고 떠나면서 끝이난다. 그런데 그녀가 동료들을 떠나는 것은 모욕당했다는 분노 때문일까, 그러한 의심에 휩싸일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절망 때문일까.
이 점은 드라마가 지연되는 것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를 왜곡시킨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우리는 그저 가치와 생존 어느 하나의 선택지만을 놓고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아니 누구나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다. 생존을 위해 쉽게 가치를 포기할 수도 가치를 위해 생존을 포기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7분>은 이 둘을 갈라놓고 어느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한다. 5대5의 상황에서 캐스팅보트가 된 소피가 객석에 앉아 표를 던지기 직전에 막을 내리는 결말은, 이 선택의 요구를 관객에게까지 떠넘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