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결과물부터 공개합니다.
https://soundcloud.com/composerdk/mmbosstemporary
아직 믹스 중이며, 마스터링이 되지 않은 상태임을 밝힙니다.
이 곡은 제가 현재 개발에 참여 중인 게임 '메이드 마스터'에 삽입될 곡입니다.
메이드 마스터 OST 작업을 시작할 때, 전반적으로 잔잔한 장면에서는 재즈 풍, 전투 부분에서는 JRPG 전투음악 스타일의 메탈 풍으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일렉트로닉 음악보다는 악기가 나오는 음악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처음엔 따로 연주자를 두기보다는 최대한 제가 연주할 수 있는 악기는 제가 연주하고, 연주하지 못하는 악기들은 가상악기를 사용하려 했습니다. 왜냐하면 게임 제작 비용의 대부분을 저와 저와 함께 일하는 분이 지불하는데, 녹음 비용을 대략 계산해보니 게임 OST 특성상 곡 수가 많아 도저히 개인 두 명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정확히 보통 어느 정도 비용이 드는지는 잘 모르지만, 수백만원으로 예상했습니다. 이것이 연주자나 녹음 엔지니어가 과도한 비용을 요구하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인간은 보통 합당한 댓가를 원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가 그걸 지불할 능력이 되지 못한 것 뿐이지요. 지인을 매우 싼 값에, 혹은 밥 한번 사고 부르는 것도, 수익을 내는 프로젝트라면 도의적으로나 결과물을 봐서나 썩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작곡이 끝나고 나서 곡을 들어보는데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저도 미디 찍기라면 자신 있지만, 인간이 하는 연주는 따라오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숙련된 사람이 좋은 가상악기를 사용하면 실제 연주인지 미디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수는 있지만 결국 그래도 숙련된 연주자가 연주한 것과는 다릅니다.
그러다가 Fiverr가 생각났습니다. Fiverr는 해외 프리랜서 사이트인데, 제가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 Davie504에서 알게되었습니다. Davie504는 베이시스트 유튜버인데, 그의 영상 중에는 Fiverr에서 베이시스트들에게 특정 연주를 하게 하고 그걸 평가하는 영상이 있었거든요. 그 중에는 프로도 있었고, 아마추어도 있었고, 비싼 연주자도 있고, 저렴한 연주자도 있었습니다. 프로세션이 아니더라도, 어쨌든 내가 지불 가능한 수준의 연주자를 찾아 디렉팅을 아주 세세하게 하고, 녹음을 맡기고, 그걸 어떻게 잘 편집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으로 물색한 것은 바이올린 연주자였습니다. 역시 전세계 커뮤니티답게 연주자가 매우 많았습니다. 한참을 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독일에 사는 한 대만인 연주자와 연락을 했고, 첫 곡을 맡겼을 때 아주 만족스러워서 다른 곡도 맡겼고, 결과물은 매우 만족스러웠습니다. 위의 사운드클라우드 링크의 바이올린 연주자가 바로 이분입니다. 그런식으로 드럼, 트럼펫, 트럼본 연주자도 찾았습니다. 이 곡의 드러머는 폴란드인, 트럼펫과 트럼본 미국과 호주인입니다. 전세계에서 끌어모은 느낌입니다. 나머지 악기는 제가 연주할 수 있거나, 가상악기로도 충분한 것들이었습니다.
과정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어떤 녹음본은 연주 실력이 너무 나빠 사용하지 못하고 버려야 했고, 어떤 사람은 악보에 나온 음조차 틀리기도 했습니다. 물론 수정도 가능하긴 했지만, 너무 못하거나 성의가 없는 사람에게 수정을 요구하는 것도 별로 의미가 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고, 또 너무 저렴한 가격으로 의뢰한 사람에게 수정을 계속 요구하는 것도 악덕업자가 된것 같아 선뜻 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리고 영어 사이트이다보니 대부분 유럽이나 아메리카 쪽 사람들인데, 이 OST에 있는 뽕끼(트로트풍을 일컫는 은어)를 기대하기란 어려웠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참신하게 요상한 연주를 할까? 싶은 것들도 있었습니다. 외국에서 현지화된 한식 같은 느낌입니다.
그래도 어쨌든 의뢰는 다 했고, 몇 곡 빼고는 녹음본도 다 받은 상태입니다. 비용은 밝히긴 어렵지만 아주 저렴하고, 퀄리티도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Fiverr에서 연주자 찾기를 모든 사람에게 추천하긴 어려운 것 같습니다. 사람마다 요구사항과 상황이 다 다르니까요.
1. 이 사이트는 영어 채팅으로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는 분께는 추천하지 않습니다. 연주라는게 호텔 방과 같이 균일한 서비스도 아니고, 요구사항을 정확히 말해야 결과물의 품질도 그만큼 올라갈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2. 가요 스타일을 어떻게 소화할지는 미지수입니다. 한국인 피아니스트라면 '김동률 스타일로 해주세요'하면 딱 무슨 뜻인지 알겠지만 우크라이나 피아니스트는 그게 누군지 알 확률도 낮을 뿐더러, 가요 발라드 스타일을 제대로 소화할 가능성도 매우 낮을 것입니다. 저도 뽕끼에서 애를 먹었습니다.
3. 괜찮은 연주자를 찾거나, 녹음본을 편집하는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Fiverr에도 프로 세션연주자가 있지만, 프로 세션연주자가 아니라면 특정 장르만 잘 한다거나 피치와 리듬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프로 세션 연주자가 아니면 연주를 잘 못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프로 세션 연주자는 어떤 장르의 의뢰를 받아도 안정적으로 좋은 퀄리티를 내고 바로 쓸 수 있는 테이크를 만드는 훈련이 되어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연주자마다 녹음 공간이 다 다르기 때문에 여러 트랙들을 잘 섞이게 하는 데에 시간이 걸리며, 아무리 잘 섞는다하더라도 같은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것과는 다릅니다. 에어비앤비보다 호텔에 가고, PC 부품을 사서 조립하기 보다 아이맥을 사는 성격이라면 이 3번 항목이 극혐일 수 있습니다.
4. 대부분의 연주자들이 유럽이나 아메리카에 있다보니 시간이 잘 안 맞습니다. 그 쪽에서 낮동안 연주해서 저녁에 보내거나, 저녁에 다른 일을 마치고 와서 부업으로 녹음을 하고 결과물을 보내면 보통 우리나라는 자정이 넘습니다. 근데 사람 마음이라는게 결과물이 오면 확인하고 싶지, 자고 내일 아침에 봐야지 하는 마음이 들기 쉽지 않습니다. 들어보고, 내 음악에 넣어서 넣어보고 수정사항 얘기하거나 OK하고 리뷰 쓰다보면 늦은 새벽이 되어버립니다. 요새 저는 4시반쯤 잠이 드는 습관이 들어버렸습니다.
5. 어떤 연주를 원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인 아이디어가 없고, 연주자에게 어떤 연주를 할지 맡기고 연주를 들어보면서 의논하며 같이 맞춰보고 싶은 분에게는 추천하지 않습니다.
6. 어차피 최고의 연주자가 비싼 악기를 잔향처리가 잘 된 방에서 연주하는 소리를 비싼 마이크와 프리앰프로 녹음하고 싶다면 그냥 말이 잘 통하는 한국인과 한국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는 게 더 좋은 것 같습니다.
Fiverr에서 연주자를 찾으며 경험으로 얻은 팁을 몇가지 말씀드리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너무 싼 건 이유가 있다.
2. 처음부터 앨범 전체 맡기지 말고, 일부만 맡겨본 후 괜찮으면 전체 다 맡기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다.
3. 결과물을 수락하면 팁 줄건지 묻는 창이 나온다. 팁 주는게 보편적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사이트에서는 그게 보편적이라고 한다.
4. 리뷰는 거의 무조건 좋게 써주니 리뷰는 믿으면 안 된다. 배민이나 구글플레이 리뷰와는 달리, 리뷰에 아이디도 다 나오고 판매자도 하루에 수십건씩 처리하는게 아니니 기억 다 한다. 그래서 거의 다 5점 만점 준다. 다만 리뷰 수가 많은 사람은 괜찮을 가능성이 높다. 재구매한 사람들이 많을 가능성도 높단 뜻이니까.
판매자들은 어떻게 싸게 올릴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해봤는데, 저의 추측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자기 집에서 자기가 원하는 시간에 녹음할 수 있어서 이동 시간과 비용이 들지 않는다.
2. 장비나 악기 가격이 저렴해도 된다.
3. 의뢰를 자주 받는다. 며칠이나 한달에 한번 정도 녹음 의뢰를 받는 사람이라면 저가에 올리기 어렵지만 집에다 녹음 장비를 세팅해놓고 하루에 몇건씩 처리한다면 가격이 좀 더 저렴해도 나쁘지 않다.
4. 인건비가 싼 나라의 경우, 싸게 받아도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다.
5. 아마추어인데 부업으로 한다. 만약 제가 베이스 연주를 하는데 시급이 2~3만원 정도라면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전문 베이스 연주자가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영어가 가능하다면 판매자가 되는 것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프로연주자라면 Fiverr에 높은 금액을 받는 프로 연주자들도 있고 해서 굳이 저렴하게 깎을 필요도 없고, 아마추어라면 부업 삼아 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지금 하는 일이 끝나면 게임 음악 작곡이나 키보드 연주로 판매자가 되어볼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