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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니 Mar 15. 2016

퇴사에 관한 정리.

내게는 잃어버린 1년

내가 브런치의 글을 읽게 된 계기, 다른 사람들이 쓴 퇴사 관련 글을 읽으며 '나만 이러는 게 아니구나'라는 공감과 위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퇴사를 했다. 나 또한 개인적인 몇몇 이유로 인해 2.11일에 퇴사를 했고 1년이라는 기간을 소모하면서 깨닫게 된 퇴사 이유를 나 자신을 위해 정리하고자 한다. 


첫 번째, 일에 대한 성취감 부족.

나는 공학계열 출신으로 전공과목은 4.18 정도의 준수한 점수를 받을 정도로 전공 공부를 재미있어했고 이 분야를 즐기며 공부를 했다. 그래서 취업할 당시에도 나는 당연하게 전공을 살리는 분야만 쓰게 됐고 운이 좋게 취업이 되었다.

하지만, 회사를 들어가 보니 전공 지식을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대부분이 루틴 하게 주어지는 업무들 뿐이었다.

뭐.. 여기까지는 괜찮다. 회사 가서 전공지식을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이미 들어왔기에.

근데.. 일에 대한 성취감이 정말 단 하나도 없었다. 그저 팀장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팀장이 던진 말 한 마디에 객관적인 정보 전달보다는 그 사람의 입맛에 맞게 양식과 내용 정리를 하며 업무에 필요도 없는 일들을 처리해 나가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내게는 이해가 안됐다. (그중 매 달 보고하라고 했던걸 처음 두 달만 하고 다섯 달 간 안 한 건 비밀)


두 번째, 기계부품이라는 느낌.

흔히들 말한다. 우리는 거대한 기업이라는 기계 속에서 기계가 잘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톱니바퀴 혹은 볼트, 너트와 같은 존재라고. 이것 또한 입사 전 귀가 닳도록 들은 말이지..

허나, 내가 다닌 회사에서는 부속품조차도 아닌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태도에 질려버리고 말았다. 일례로 회사 입사 후 적응해 가는 나를 비롯한 신입사원 동기들이 있었다. 그러다 회사가 합병이 되고 나 포함 동기 다섯이 다른 지역의 근무지로 이동을 했다. 우리에게는 '그곳이 메인이니까 더 많이 배우고 커리어에 좋을 거야' 라며.

지방에서 이동하는 세 명은 집과 가까워지기에 좋아했다. (난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있어서 안 좋아하긴 했지만.. 흑흑)

그러나 좋았던 것도 잠시, 동기 한 명은 자격증이 있는 특수 분야에서 일을 했는데 그 전에 근무지에서 사수 한 명이 나가는 바람에 공장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자격증이 필요하다는 이유 하나로 올라온 지 3주 만에 다시 예전 근무지로 발령을 내 버렸다. 음.. 이럴 거면 왜 올려 보냈을까? 3주의 시간은 누구에게 이득이 되었던 거지? 이렇게 큰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너무 생각도 없이, 당사자들의 입장은 하나도 고려않고 하는 태도들을 보며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결국 친한 동기도 내가 떠나기 전 먼저 떠나 다른 곳으로 가서 충분히 만족하며 살고 있는 중이다. 이 뿐만 아니라 8년 정도 근무 기간 동안 5개의 지역에서 업무를 한 사람들을 보면서 훗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키워갈 때 한 지역에서 온전하게 아이 양육을 할 수 없겠다고 느끼게 됐다.(어렸을 적 이사를 간 경험으로 유아 시기에 이사는 아이에게 큰 영향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세 번째, 열심히 노력한다 해도 눈 앞에 뻔히 보이는 어두운 미래.

회사에서 내 미래의 모습을 보려면 가깝게 5년, 10년 위의 선배들을 보면 된다. 음.. 당사자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 시선에서 본 그분들의 삶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회사에서 나오게 되면 무얼 할지 고민하는 모습들, 회사 일에 치여 취미를 잊고 산지 오래며 음주만이 그들을 달래는 퇴근 후의 삶..

더욱이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는 시기에 다른 선택을 할 수 도 없고 계속 다닐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져버린 삶처럼 보였다. (지극히 내 주관적인 시선이며 그래도 선배님들은 다 행복하게 살았다. 단지 내 행복의 기준과는 다를 뿐)

미래가 밝고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지금의 삶을 양분으로 하며 커 나가면 되지만 미래가 어둡게 보이는데 더 있을 필요가 없었다.


네 번째, 행복하지 않았다.

제일 큰 이유였다 이게. 행복하지 않다. 내가 행복하게 살고자 노력하고 열심히 사는 건데 이건 전혀 행복을 느낄 수 없었다. 자존감도 나날이 떨어져 갔고 반기마다 옮겨져 버린 근무지 덕에 정체성마저 잃어버리고 있었다. 돈을 벌지만 내가 투자한 시간과 등가 교환이 이뤄지지 않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퇴사를 하게 된 이유를 머릿속으로만 아니라 직접 글로 남겨서 명확하게 정리하고 싶었다. 행복이 지극히 주관적인 것처럼 내가 퇴사한 이유도 지극히 내 관점에서의 생각이기에 이 글을 보고 '겨우 저런 일 정도로 퇴사를 해?'라고 생각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것은 뭐 사람마다 그릇이 다른 것이니 어쩔 수 있겠나?


P.S - 퇴사 후 잉여로운 시간들. 내게 항상 하루에 최대 네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던 시간들을 '퇴사하면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더 알차게 보내야지!'라고 생각을 했었지만 그렇게 하지는 못하고 있다. 하하하..

그래도, 아침에 알람을 들으며 일어나지 않아도 되고, 잠이 안 와도 내일 출근이라는 압박감 때문에 억지로 잠들지 않고 지낼 수 있다는 사실이 지금 너무 행복하다.

난 백수가 천직 인가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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