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의사일지
섬에서 일하는 주말은 색다르다. 공중보건의사의 섬 근무는, 평일에 9~6시까지는 환자 진료를 하고, 6시 이후에는 응급 진료를 한다. 말 그래도 '24시간 당직' 체계이다. 주말에도 온콜 상태로 대기하게 된다.
공중 보건의 법에 따르면, 이 때는 심근경색증 의증, 심정지 의증, 뇌졸중 의증, 중증외상 의증, 기타 중증 응급질환 (급성 호흡곤란, 아나필락시스 쇼크, 경련 지속, 분만 징후, 신생아 질환, 급성 복통) 등의 응급 환자만 치료하는 게 의무적으로 되어 있지만 이 섬에서는 그냥 단순 감기 고혈압 등으로도 주말에 환자가 계속 온다.
그래서 이런 일이 생긴다.
새벽 7시에 전화가 왔다. "오늘 고혈압 약 다 떨어졌으니 지금 약 타러 가겠소"라는 환자의 말에, 응급 진료만 본다고 설명드리고, 내일 오세요라고 했다. "내 고혈압 약 다 떨어진 것도 응급" "사람이 언제 아플지 모르는데 왜 주말엔 근무 안 하냐" "왜 너 말고 다른 보건소 직원은 다 퇴근했냐" 이런 말을 듣는데, 너무 속상했다. 보건지소에서 일하는 사람들 다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자신이 잘못해놓고 왜 목소리 크게 내면 다 되는 것처럼 구는지 싫었다.
할아버지가 화가 많이 났다
고혈압 약은 미리 타가던가, 없다고 주말에 응급진료만 보는 환경에서도 이렇게 비응급 진료도 다 해준다면 앞으로 내 주말은 없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처음이라 그냥 우리 할아버지일 수도 있다 하고 넘겼다.
주말에는 약을 싸주시는 여사님이 없어서, 혼자서 다 약도 지어야 하는데 약 짓는 내내 툴툴대셔서 갈 때 소심하게 고혈압약 떨어진 거는 응급 아니에요, 다음에 이렇게 오시면 안 드릴 테니까 미리 떨어지기 전에 오세요라고 하고 관사로 올라갔다.
앞으로 섬에서의 생활 힘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