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2.27. 초보의사일지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간호사 선생님이 배가 아프다고 하면서 진료실을 찾았다. 단순히 그냥 소화불량으로 인한 복통으로 생각해서 소화불량 치료제들만 주었다. 체온과 혈압 모두 정상이고 장음을 들었는데 약간 항진되었지만 큰 문제는 없어 일단 마음이 놓였다.
호소하는 증상은 어제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할 정도로 속이 안 좋았고, 구토를 엄청 한다고 한다. 내가 준 약 조차 바로 토할 정도였으니 많이 걱정이 되었다.
일단 본인이 섬을 나가려 타는 헬기나 배도 못 탈 것 같다고 해서 일단, 포도당 수액 (영양공급) 에다가 강한 진통제를 타서 놨다. 맞고 나서 좀 누그러졌다 생각해서 맘 편히 있었는데 전화가 왔다. "배가 아파요"라는 말에 그제야 제대로 진찰을 했다. 배를 누르자마자 "아" 하는데, LUQ, RUQ pain이 있는 걸로 보아, 담낭염 췌장염 (이전 과거력이 있었다), 위염 등이 의심되었다. 그 때 바로 진통제를 하나 더 놓고 그냥 쾌속선을 타고 섬을 떠라나라고 했고, 간호사 선생님도 위험성을 인식하고 나갔다.
사실, 진찰이라는 게 배를 누르고 배 소리를 듣고 이런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인데, 간호사 선생님한테 미안했다. 그냥 서로 부끄러워도 빨리 진찰해서 병을 알아내 볼걸 하는 생각도 들고, 뭔가 내가 이상한 걸지 모르겠는데 막 "진찰해볼게요" 이러면 아는 사이에서는 괜히 의부심 같은 느낌이 들까 봐 잘 못하겠다. 오늘 일로 이건 유세 떠는 겸손이 아니라, 의사의 무능력함이고 실수라고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환자들 중 좀 위급해 보이는 사람은 반드시 신체진찰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