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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핼로군 Sep 27. 2023

섬에서 맞는 생일

2020.03.01 초보의사일지

 오늘은 섬에서 맞는 첫번째 생일이다. 지금 바깥이 코로나로 난리인데, 어차피 못 놀 거 어떻게 보면 다행인 것 같기도  하고 매번 생일은 요양당직이라던가, 섬이라던가 이런데서 맞는 게 가슴 아프기도 하다. 아침부터 일부러 카톡하다가 3시쯤 잤는데 7시부터 환자들한테 전화가 5번은 왔다. 낫에 베이고 발이 못에 박히고 이런 환자들을 아침부터 상대하는데, '내 생일인데 억울하네' 싶었다. 


 3월 1일이 생일이라는 점은 여러가지로 불편하다. 항상 개학 전날 모두가 정신 없을 때기도 하고, 쉬는 날이라 불러서 만날 정도로 정말 친한 친구들이 아니면 학교에서 축하도 받기 힘들었다. 이번에도 동기들이 레지던트 1년차 들어가기 전날, 후배들이 인턴하기 전날 이럴 때랑 겹쳤다. 


 섬에 있으면 사실 점점 사람들에게 잊혀진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들어와있는 내내 대화는 여기 환자로 오는 섬 사람들 (대부분이 나이가 많고 말이 잘 안통한다) 뿐이고, 안에서 게임이나 하고 있으면 내가 사회적으로 사라진 기분이 들어서 우울했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 '와 이 사람까지?' 하는 많은 사람들이 축하해줘서 고마웠다. 아직 살아있구나 하는 느낌도 들고, 이래저래 행복한 생일을 맞은 것 같다. 나도 앞으로 또 이 고마운 사람들에게 더 잘해야겠구나 싶었다. 행복하게 살고 있는 기분이 든다.  


 밖에 있는 동기들은 거의 대부분 대구로 차출되고 있다. 정부에서 충남에서 몇명 충북에서 몇 명을 뽑아서 보내세요 하는데, 이런 것 때문에 지자체에서 제비뽑기를 돌려서 대구로 보내지고 있다. 섬이라 어찌보면 면제처리를 받았다. (우리 없으면 섬에 의사 자체가 한 명도 없다) 처음에는 섬이라 고생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시국이 이렇게 되고 사람들이 고생하는 게 마음 아프지만 그래도 평소와 똑같이 생활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드리는 하루가 되었다. 그래도 빨리 4월 9일이 되어서 섬을 탈출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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