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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핼로군 Sep 26. 2023

요양병원 아르바이트 & 첫사망환자

2019.02.27 초보의사일지

Expire : 환자 상태 한 번 보고, 보호자에게 설명드리기. 사망하신 시간 말씀드리기, Flat EKG (사망 심전도 찍기), EKG 오더 내리기 

이것을 쓴 이유는, 내가 오늘 요양 병원 당직하러 병원에 왔기 때문이다. 이 곳에 처음 올 때 되게 무서웠다. 의사는 나밖에 없고, 처음 쓰는 용어와 처음 보는 EMR 시스템 (실습하던 병원과 달랐다). 모든 게 낯설고 물어볼 사람조차 없어 힘들었지만, 원래 일하던 간호사 선생님들이나 인계장을 보면서 묻고 배워서 해결해 나가는 것이 RPG 게임 퀘스트 받아서 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몇 번 하다 보니까, 자신감도 어느 정도 붙고 '이래서 좋은 알바라고 하는구나' 하며 편히 쉬고 있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간호사 선생님은 지금까지의 임무와 마찬가지라는 듯이, "환자 한 분이 돌아가실 것 같아요. Expire 준비 해주세요 선생님"이라고 하셨다. 너무너무 놀랐다. 처음 해보는 환자 사망선고에 놀라서 동기와 선배들에게 전화해서 어떻게 하는지 물어보았다. 사실 처음에는 구글에 "사망 선고하는 법"이라고 쳤는데, 역시 정보를 얻을 수 없어 급하게 선배님께 전화드려서 방법을 알아보았다. 


 올라가서 보는데, 죽은 사람도 처음보지만, 죽은 분의 눈동자 반사를 확인하고 심음을 듣고 호흡음을 듣는데, 더 비참했던 것은 그게 진짜 돌아가신 게 맞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의사라고 있는 내가 너무 답답하고 싫었다. 우여곡절 끝에 확인을 마치고 (기계가 심장이 뛰지 않는 것을 확인시켜주어 잘못 될 일은 없지만), 확인을 마치자마자 환자 보호자들이 붙어서 오열하는 것을 보고 나도 속으로 울컥해서 뒤돌았다. 내 말 한마디에 사람이 죽고 산다니... 너무 부담스러웠다 사실. 


 1달 전의 나와 지금 나의 차이는 '의사 면허' 하나밖에 없는데, 이게 내게 엄청난 책임감을 지워주었다. 나는 이제 의사다. 사람이 죽어도 옆에서 대들보처럼 지켜주어야 하고, 앞으로 수많은 죽은 사람을 보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우울했다. 내 말의 영향력도 알게 되었고, 앞으로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할 이유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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