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미남 Aug 30. 2020

퇴사하고시팓

#정리해고 #희망퇴직 #인생

제목을 보시고 오타인가 하실 수 있겠습니다만, 지금 당장이라도 퇴사하고 싶은 욕망과 욕구를 마치 욕처럼 들리게끔 잠시 빗대어 표현한 제목입니다. (라임 괜찮았나욕?) 참고로 우연히 얻어걸린 하나의 문장일 뿐입니다. 평소 욕을 달고 사는 거친 입이 아니기에, 이번 저의 브런치 글에는 한 번쯤 해보고 싶었습니다. 제주 한달살이의 절반이 거의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제 스스로 미션 하나를 부여했습니다. 바로 1000페이지 분량의 책 한 권을 읽어보자!라고 말입니다. 그럼 무슨 책일까? 아무래도 소설이겠지? 생각하실 텐데 맞습니다. 소설 그것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무라카미 하루키(Murakami Haruki)의 『태엽 감는 새 연대기』(민음사 박스세트 특별판 2018)입니다. 두께를 보시면 마치 찜질방의 목베개 같습니다. 비록 딱딱하지만 손베개보다는 훨씬 나을 것 같습니다. 



원래는 3권의 단행본이나, 한 권으로 묶은 특별판으로 하루에 100페이지씩 읽기로 하고 총 10일 동안 진행해보기로 하였습니다. 솔직히 성공하면 성공하는 거고, 못하면 못하는데도 여긴 제주니까! 그렇게 편하게 생각했습니다만 역시나 하루키입니다. 몰입도가 장난 아니라서 어느 날엔 100페이지를 넘게 읽고 있었습니다. 한 번에 너무 많이 읽으면(먹으면) 두통이 올 수도(체할 수도) 있으니 아쉬운 대로 덮어두었습니다. 꾸준함이라는 습관을 들이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무튼 책을 읽다 주인공인 오카다 도오루는 법률회사를 그만두고, 현재는 전업주부이자 취준생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아내 오카다 쿠미코가 일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침착하고 조용한 성격이라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무덤덤하게 자신의 일상을 그려낸 모습이 무급휴직 상태인 저의 현재 모습과 비슷하구나 싶었습니다. 또한 먼 미래가 되지 않은 시점에서의 제 모습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잠시 하게 되었습니다.


직장을 그만둔 지 오래지 않을 때라서, 그런 생활이 오히려 신선했다. 이제 만원 전철을 타고 직장에 가지 않아도 되고,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날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읽고 싶을 때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이런 생활을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일주일 동안 계속된 이 느긋한 생활이 적어도 지금은 마음에 들었고, 앞날에 대해서는 가능하면 생각지 않으려 애썼다. 이 생활을 내 인생에서 휴가 같은 것이다. 언젠가는 끝난다. 하지만 끝날 때까지는 즐기자 하고 p42. 
"물론 언젠가는 할 일을 찾아야겠지. 그건 알고 있어. 평생 이렇게 건들거리며 살 수는 없으니까. 아무튼 일자리는 찾을 거야.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어떤 일을 하면 좋을지 지금은 잘 모르겠어 p196
"그렇다고 하고 싶은 일이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아. 하고 싶은 일이 없어. 하라고 하면 대개는 할 수 있을 듯해. 그런데 딱 이일을 하고 싶다는 이미지가 없어. 지금 내게는 그게 문제야. 이미지가 없다는 게." p197


'휴가 같은 것'과 '끝날 때까지는 즐기자' 이 두 문장이 누구에게는 설렘으로 표현될지도 모르겠고 또 누군가에게는 불안함으로 표현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저는 어떤 상태일까요? 정리해고 내지 희망퇴직을 받기 93일이 남은 시점에서 6:4 정도 설렘 쪽이 조금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시간이 좀 더 있다고 생각된 여유로운 생각과 이곳에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경관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다 50일 정도 남기면 발등에 불이 붙고, 똥줄 타듯 이리저리 서치 하며 자소서를 쓸 테고, 우연히 얻은 면접의 기회에 떨림을 경험하거나 아니면 될 대로 돼라! 자포자기할지는 저도 모르고 아무도 모릅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게 인생이고 저의 삶의 일부라는 것을 이제는 어느 정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조금은 성숙해졌다고 할까요? 


사족 하나, 인스타그램 유머 계정에서 지나가다 봤던 "퇴사의 기준"이 웃픈 현실이라 공유하고자 합니다. (하하하) 크게 웃읍시다. 집콕 생활만 하기엔 우울함보단 웃음의 한 스푼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겁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크투어리즘 In Jeju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