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미남 Sep 03. 2020

일장춘몽

#정리해고 #희망퇴직 #인생

자세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학창시절 김만중의 소설 『구운몽』에 등장했던 "일장춘몽(一場春夢, a spring dream)" 이 아침 새벽부터 생각났습니다. 그 유래가 어떻든 뜻은 인생의 모든 부귀영화가 꿈처럼 덧없이 사라지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오늘날까지 쓰이고 있습니다. 뜬금없이 아침부터 왠 한자를 써가며 말을 꺼내나 하겠지만, 지난 밤 9호 태풍 '마이삭'이 제주도를 관통하면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새벽 2시경 태풍이 잦아지고 나서야 잠에 잤습니다. 


4시간 뒤, 고요한 방에서 새소리가 들려 눈이 떠 창문을 열어보았습니다. 



하루 꼬박하고 반나절동안 저의 고막을 두들렸던 비바람소리는 온대간대 없고 고요하게 흐르는 물소리와 닭울음, 새들의 지적임만 들리고 있습니다. 그때 떠올랐던 단어가 오늘 글의 제목인 "일장춘몽"이었습니다. 쓰임이 다를 수야 있겠지만, 지금 당장의 저의 기분을 대변할 수 있는 것은 이 단어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마치 소설속에서도 주인공의 복선을 암시하는 것들이 깔려있듯 제 인생에 있어서도 무언가 깨닫기전 태풍은 자연이 주는 복선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한 가지 깨달음은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말고, 너무 자신을 혹독하게 다루지 말자였습니다. 위대한 자연 앞에서 그런것들은 다 소용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렇게 생각할 수 있었던 건 잠시 도시를 떠나 전원적인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만약 도시였다면 말 그대로 이런 기분과 깨달음은 느끼지도 못했을 것이며, 관심조차 없었으며 오히려 출퇴근때 짜증만 났을 수도 있겠습니다. 


저의 오랜 친구가 "누구는 콘트리트 벽에 갇혀 죽어라 일만하고, 누구는 자연을 즐기고 만끽하며 제주라이프를 즐기고 부럽다." 라고 하루에 한통씩 전화나 문자로 이야기합니다. 전 처음에 무급휴가(반백수)중인 저에게 위로의 말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기분이 좋거나 나쁘거나 할거없이 그저 그랬습니다. (정말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계속되는 저 말에 저는 이제서야 조금은 알것같습니다. 그동안 바쁘게 쉼없이 달려온 저에게 아니 어쩌면 제 인생에서 다시 못올 기회일 수 있겠다. 그래서 이 삶을 보다 좀 더 즐기자라는 것을 말입니다. 신기합니다. 처음 이 브런치 매거진을 쓸때만해도 어떻게 변할지 하루하루의 심정이 궁금했었는데, 초반보다 훨씬 더 안정되고 편안해졌다는 것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다음주면 제주 한달살기도 끝이 나는데, 과연 이런 삶을 유지를 하며 살 수 있을까? 혹은 이번 경험으로 인해 한결 수월한 삶의 청사진을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겹치나 결국 한 방향으로 흘러 갈 것으로 생각은 합니다. 그건 페시미스틱(pessimistic)한 생각을 조금 덜어냈다는것입니다. 이거 하나만으로도 전 만족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두 번째 태풍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