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단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영 Dec 23. 2022

육개장

단편

“우리 집 근처 시장에 오래된 떡만둣국집이 있어. 거기 되게 유명한 곳이다? 저번에 갔을 때 거기서 류승완도 만났어. 응. 맞아. 그 영화감독 류승완. 하여튼 내가 우리 아버지랑 같이 자주 가던 곳이거든. 나랑 아버지는 입맛이 서로 완전히 달랐어. 아버지는 회나 초밥 같은 해산물을 좋아하셨고, 나는 삼겹살이나 갈비 같은 잘 구운 육지동물을 좋아하잖아, 너도 알다시피. 응응. 그래서 사실 서로 겹치게 좋아하는 음식들이 많지 않았어. 그래서 어쩌다 한 번씩 같이 외식이라도 하려는 날에는 항상 온 시장의 식당들 이곳저곳을 다 돌아다니면서 티격태격 대다가 결국은 항상 같은 자리로 돌아와서 앉았지. 그 떡만둣국집 말이야. 그 떡만둣국집이 우리 두 사람이 유일하게 합의를 볼 수 있는, 서로가 유일하게 동시에 좋아하는 음식이었어. 근데 신기한 게 말이야, 그 떡만둣국집은 매 번 갈 때마다 국물 맛이 다르다? 어떤 때에는 조금 싱거운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조금 짠 것 같기도 하고. 식당 주인 할머니가 나이가 많이 드셔서 그런지 이제 간을 잘 못 맞추시는 것 같더라고. 그런데 말이야. 마지막으로 아버지랑 같이 그 떡만둣국집에 간 날에 말이야… 흠. 어? 괜찮아. 고마워. 흠흠. 그 마지막 날, 그 국물 맛이 정말 완벽했어. 정말 간이 조금도 짜지도, 조금도 싱겁지도 않게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더라고. 흠. 정말… 그때 국물 맛을 잊을 수가 없어…”


승찬이 마시지도 못하는 소주를 들이켰다. 이미 터질 듯 시뻘게진 승찬의 볼에 눈물 한 방울이 흘러 테이블 위의 육개장 그릇 안으로 떨어졌다.


“형 이제 그만 마시자. 형 물 좀 마셔.” 맞은편에 앉은 동수가 말했다. “형. 누가 오셨어.”


빈소 앞에 한 젊은 남자가 쭈뼛거리며 상주를 찾고 있었다. 이때 다른 테이블에 앉아있던 승찬의 동생 승민이 잽싸게 자리에서 일어나 승찬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문상객을 맞았다. 일어나려던 승찬은 다시 앉아 마저 눈물을 흘렸다. 장례식장의 시계가 이제 막 밤 12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조금 진정이 된 승찬은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정리하러 화장실로 향했다. 홀로 남은 동수는 일회용 종이 용기 안에 담긴, 이제는 차갑게 식은 육개장을 한 입 떠서 먹었다. 바닷물 마냥 짠 육개장에 동수는 얼굴을 찡그리며 차갑게 식은 흰쌀밥을 입안에 쑤셔 넣었다. 


“동수야. 종철이 왔다.” 승민이 문상객과 함께 동수가 앉은 테이블로 다가오며 말했다. 


“어. 종철아. 오랜만이다.” 동수가 종철의 손을 잡으며 머쓱하게 인사했다.


동수와 종철이 마주 앉고, 승민이 종철의 밥과 육개장을 새로 내왔다. 


장례식장의 빈소에는 고인의 가족들과 상주의 몇 안 되는 가장 가까운 친구들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빈소의 텅 빈 테이블들이 현세를 완전히 떠나기 전 마지막 밤을 보내는 고인의 쓸쓸함을 대변했다. 사실 죽음은 더 이상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의미가 많이 퇴색된 현대의 장례식은 그저 서로의 사회적 지위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사교활동에 불과했고, 한 사람의 죽음 이후 남겨진 가족들은 그 죽음으로 인해 발생한 막대한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이제는 서류 종이쪼가리로 대변되는 한 사람의 일생을 정리하기 위해, 그로 인해 막대하게 불어난 고인이 살아생전 등에 지고 있던 짐들을 고스란히 떠안게 되는 불행의 되물림일 뿐이었다. 고인이 등에 지고 있던 짐가방 안에 현금다발들이 들어있었다 해도 문제였다. 남은 자식들과 형제들은 서로 그 짐가방의 소유권을 쟁탈하기 위한 동족상잔의 비극을 벌일 뿐이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죽음의 의미는 슬픔도, 그리움도 아닌 돈이 되어버린 지 오래였다. 죽음은 더 이상 사치스러운 감정들이 아닌 현실적인 문제였다. 


“야, 근데 여기 장례식장 육개장은 왜 이렇게 싱거운 거냐? 아까 먹어보니 완전 맹탕이더라?” 종철이 동수에게 라이터를 건네며 말했다. 두 사람이 담배연기가 섞인 한 숨을 동시에 길게 뿜어냈다. 


“나는 짜던데…” 동수가 나지막이 뇌까렸다.


두 사람은 절대로 지켜지지 않을 술 약속을 하고는 각자 발걸음을 옮겼다. 종철은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향했고, 동수는 더 이상 평범한 일상을 갖지 못하는 사람의 마지막길을 배웅하러 돌아갔다. 하지만 둘 다, 아니, 우리 모두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듯 하지만, 사실 우리 인간들은 모든 삶이 궁극적으로 이르게 되는 단 하나의 종착지인 죽음을 향해 매 순간 한 걸음씩 가까워지고 있다. 성격이 급해 먼저 걸음을 재촉한 사람들과 걸음이 느려 아직 천리길을 앞둔 사람들, 제 걸음에 맞추어 제때에 도착한 사람들, 어떻게 걷든 우리 모두는 같은 종착지를 앞두고 있다. 다른 선택지는 없다. 그렇게 멈추지 않는 시간에 종속된 우리 모두는 죽음을 향해 쉬지 않고 걷고 있다. 우리 모두가 잊고 사는 슬프지만 명확한 사실이다.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보다 확실히 보장된 미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절망적인 숙명에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 우리는 그저 그 종착지를 향해 옮기는 매 걸음마다 잠시 멈추어 발 밑의 작은 들꽃들을 살피고, 가끔씩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하며, 그 무엇보다도, 자신의 옆에서 같은 속도로 발을 맞추어 걷는 사랑하는 이와 손을 꼭 마주 잡고 함께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것, 그것들이 우리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다가오는 죽음을 가장 잘 맞이하는 방법이지 않을까…


동수는 종철을 보내고 홀로 장례식장 근처의 공원을 거닐었다. 한산한 새벽 공원의 공기는 하루 동안 자신을 거쳐간 사람들이 겪은 고민들과 감정들을 모두 고이 모아두었다가 동수에게 쏟아내는지, 그에게 의도치 않은 상념들을 불러일으켰다. 승민과 초등학교 시절부터 친구였던 동수는 성인이 되고서 홀로 다른 길을 걷고자 친구 무리에서 떨어져 나왔고, 그 길을 홀로 오랫동안 걷다 보니 이미 그 친구 무리들과는 경조사 때나 얼굴을 보게 되는 서먹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그러한 의무적인 만남 속 서로 의미 없는 근황 이야기를 몇 마디 주고받고 나면 더 이상 대화를 이어나갈 공통된 주제를 찾을 수 없었고, 그럴 때면 동수는 자신이 그들로부터 너무 먼 길을 떠나왔다고 스스로를 자책했지만 오히려 한 편으로는 자신이 옳은 길을 걷고 있다는 확신이 굳어지기도 했다. 


동수는 항상 자신이 선택한 길을 계속 걷게 되면 그 친구들의 길과 겹쳐지는 순간이 오리라, 다시 관계를 회복할 기회가 오리라 자신을 속여가며 의도적으로 그들로부터 멀어졌다. 자신이 선택한 길에서 성공을 거두기 위해 겪어야 할 수많은 희생들 중의 하나라 여겼다. 하지만 동수가 성공으로 향하는 길이라 굳게 믿었던 길은 그를 외로움의 심연으로 이끌어가는 어둡고 끝이 보이지 않는 검은 터널이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 방향감을 잃어버린 그는 이미 이 길의 초입에서 자신이 꾸었던 꿈이 무엇이었는지 조차 망각해버린 지경에 이르렀다. 


동수는 그렇게 어둠이 깊이 내린 공원에서 한 참을 머물렀다. 어차피 다시 장례식장에 돌아가봤자 승민의 친구 무리들 사이 홀로 어색한 침묵만 지켜야 할 게 뻔했다. 동수는 가장 친했던 친구의, 이제는 과거형이 되어버린,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조차 본인의 감정만 생각하는 자신의 이기심이 너무도 한심하고 파렴치하게 느껴졌다. 부모를 잃은 친구가 느끼는 상실의 고통을 겪어 본 적 없는 동수는 그저 자신의 상황으로 인한 내적 고통에 잠식되어 있었다. 우리 인간은 타인의 고통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 그저 이해하기 위한 노력만 있을 뿐. 하지만, 그 노력만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상대에게는 큰 위로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우리 모두가 서로의 이기심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은 그러한 노력을 한 적이 있었나? 동수는 되물었다. 한 숨을 길게 내쉬고는 멀리 밝게 빛나는 장례식장의 불빛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두운 공원을 뒤로한 채.


장례식장에 남은 승민과 승찬, 이들의 가장 친한 친구들. 동수는 그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밤새 서로를 위로했다. 함께 울고, 함께 웃었다. 동수는 속을 달래려 육개장을 한 수저 떠먹었다. 간이 완벽하게 맞는 육개장이었다.





FIN







매거진의 이전글 Don't cry, snowman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