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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양시의원 곽동윤 Jun 30. 2022

학교폭력? 교회학교폭력?

[가벼운 글쓰기 14] 20210216

인기 배구선수들의 학교폭력 가해 전력이 폭로되면서 (일명 ‘학폭미투’) 배구계뿐만 아니라 나라가 들썩인다. 여당 대표까지 나선 것을 보면 한동안 이 문제는 계속될 것 같다.      


스포츠계 특유의 폐쇄적인 문화 때문에 학교폭력이 더 만연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하지만 스포츠계만의 문제는 아니다. 평범한 학교 교실에서도 학교폭력은 있었고 지금 어딘가에서도 고통받는 학생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도 초등학교, 중학교에 다니면서 드문드문 괴롭힘을 당했었다. 그래서 한번은 엄마와 함께 가해 학생과 그 엄마를 만나서 대화로 해결을 시도했던 적도 있다 (다행히 좋게좋게 마무리되었다).      


학교에서만 폭력&괴롭힘이 있을까? 교회’학교’도 이를 피할 수는 없다. 지금 다니는 교회는 아빠가 2002년에 부목사로 있던 곳이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는데 당시 아동부에는 항상 같이 다니는 4, 5학년 형 세 명이 있었다. 그 세 명은 항상 뭔가 화가 나 있는 것 같았고 까칠하게 나를 대해서 친하게 지내지도 않았고 피하고 싶은 존재였다. 그래도 내 동갑 친구가 많았고 매주 예배 마치고 그 친구들과 노는 재미로 교회 생활은 재밌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이 생겼다. 지금도 아마 크게 바뀌지는 않은 것 같은데 초등학생 때는 무언가 공용 화장실에 가서 큰 볼일을 보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었다 (애들이 “쟤 x 쌌대요~!” 하고 놀리는 게 너무 싫었던 기억이 난다). 교회서도 될 수 있는 대로 ‘그런 일’을 피하려고 하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한계상황이 왔었는지 교회 화장실 좌변기 첫 번째 칸에 들어갔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세 명’이 화장실에 와서 내가 들어있는 칸의 문을 두들기고, ‘너 여기 있는 거 맞냐?’ 이런 식으로 나를 계속 압박(좋게 말해서?)했다. 나는 말 그대로 공포감을 느끼고 걔네가 알아서 나갈 때까지 침묵으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아빠 임지가 바뀌면서 다른 교회로 갔다가 다시 이 교회에 담임으로 오게 될 때도 내게 처음 떠오른 생각은 “아, 그 사람들 만나기 싫은데”라는 생각이었다. 더 웃긴 건 내가 군대에 가 있는 사이에 그 주동자 격이었던 사람이 되게 독실한 교회 청년부의 일원이 되어있었고 심지어 군인이었던 나에게 페북 메시지를 보내서 내가 전역하고 나면 같이 교회 사역 잘 해보자는 메시지도 보냈었다. 그래서 전역하고 나서 반신반의한 기분으로 만나봤는데 열심히 교회 사역 (주로 찬양팀 얘기) 얘기만 했다.     


교회에서 배워왔듯이 항상 원수를 사랑해야 하고, 자신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등의 말씀에 힘입어 그들의 괴롭힘은 잊고 잘 지내보려 했으나 내 안에 깊숙이 들어있는 상처는 전혀 치유되지 않고 극복되지 않았다. 글이 너무 길어지니 그사이의 일을 다 언급할 수는 없지만, 몇 년을 그렇게 버티면서 결국엔 다른 문제로 충돌하게 되었고 결국엔 그 문제조차도 이전의 ‘그 일’에서 출발한 그것으로 생각했기에 ‘당신네가 이런 일을 저질렀다’라는 얘기를 꺼내게 되었다.      


여느 학교폭력 사건과 마찬가지로 (정말 신기할 정도로) 당사자들은 전혀 기억이 안 난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하니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말은 했다. 나로서도 그때 뭐 녹음이나 녹화를 했던 것도 아니고 저쪽에서 생각할 때는 나의 일방적인 주장일 수도 있으니 “더는 뭐 어떻게 할 게 없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와중에 주동자의 동생은 만나서 사과하지도 않긴 했다 ㅋㅋ).     


안 그래도 몇 년 동안 저들의 가식적인 모습을 보는 게 쉽지 않았는데 막상 그런 허무한 사과를 받고 나니 앞에서 찬양하고 말씀을 나누고 동생들 앞에서 거룩한 척하는 모습이 역겨워서 더는 못 봐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듯이 (?) 내가 교회 청년부를 그제야 진짜로 떠나게 되었다. 떠나고 나니 너무 속이 시원하고 걔네들 거룩한 척하는 꼬락서니를 안 봐도 되니 너무 좋았다. 앞으로도 돌아갈 일은 없을 듯하다.     


항상 비슷한 것 같다. 괴롭힌 사람은 전혀 기억을 못 하고 당한 사람은 평생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고통받는다. 가해자가 반성은커녕 잘 지내는 모습을 보면 속이 더 뒤집힌다. 한낱 교회 활동하는 걸 보는 것도 꼴사나워 보이는데 방송에 나와서 부와 명예를 누리는 것을 보면 얼마나 힘들까? 사실관계의 확인이 필요한 것도 맞겠지만, 지금이라도 잘못을 저지른 선수는 피해자가 만족할만한 처벌을 받았으면 좋겠고 피해자도 과거의 상처에서 최대한 회복되기를 응원한다.     


p.s. 지금도 그 화장실은 그대로 있고 가끔 갈 때마다 그때의 ‘추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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