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한동안 발바닥이 콕콕 찌르는 통증이 있음을 느꼈다. 정확히 어디가 아픈 것인지 몰라서 꽤나 오래 방치를 하다가, 이거 티눈인가~싶어서 티눈밴드를 사다가 며칠 하고 다녔드랬다. 그래봐야 불과 2~3일이었다.
어느 날 아침, 새 밴드를 붙이려고 떼어보니 티눈 핵이 볼록 튀어나와 있었다. 살살 긁어내니 말끔하게 제거가 되는 것이다. 후련했다.
티눈인가~하면서도 그 정체를 파악하기를 미루었던 것 처럼 나는 내 안의 소리를, 처음부터 일치된 적 없던 그 관계를 덮어두고 있었다. 그냥 유지하고 싶었다. 다소간 아프지만, 괜찮다고 생각했었다.
괜찮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두려웠을 뿐이다. 또한 내가 원하는 바 대로 이루어질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그냥, 나만 괜찮은 척 하면 그래도 적어도 가끔은 함께할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위안하면서 그렇게 견뎠던 시간이었다.
"나는 앞으로도 바뀔 것 같지 않은데, 우리 이게 맞아?"
그 한 마디에 직시하고 싶지 않아 미루고 있던 그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몰려 왔다.
언제 괴롭혔냐는 듯이 쉽게 떨어져나간 티눈처럼, 나는 그로부터 그렇게 쉽게 떨어져 나왔다. 지난 몇 년간이 무색하게 그렇게.
기억해 보면 한 동안 힘들어했었다. 생전 연락 없던 지인들이 연락해 와 혹시 너 무슨일이 있냐 물어오는 통에 대성통곡을 하기도 했고, 잘 받지도 않는 와인을 쳐마시고는 웩웩 토하기도 하고.
중늙은이가 되어가는 이 시점에 쑈란 쑈는 다 한 것도 같다. 그런데 그게 또 말이다. 슬픔도 괴로움도 표출할 만큼 표출해버리고 나니 그게 또 금새 또 회복이 되었다. 일상은 일상대로 다시 돌아왔고, 종종 그가 생각나긴 해도 그것이 그립다거나 하는 그런 감정은 그다지 아니었다. 신기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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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사무실에 출근해서 오랜만에 키보드 청소를 하다가 문득! 이 키보드가 그에게서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내가 필요하다고 하는 것이 있으면 서스름 없이 선물하곤 했고, 본인이 쓰던 것은 더욱이 선뜻 내주곤 했다. 이 키보드는 쓸만하고 예쁘지만 본인은 더 이상 쓰지 않는다며 사무실에서 쓰라고 건네었던 것이다.
직시하자마자 나는 당장에 '무선키보드'를 검색했고, 적당해 보이는 걸로 결제까지 마쳤다.
굳이 그와의 기억이 묻은 흔적과 매일매일 일상에서 함께일 필요는 없겠다.
지난 기억을 어느 정도 보내고 나면, 새 기억으로 채워질 것이라 믿기로 한다.
비록 나에겐 그렇게 아름다운 사랑 같은 건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가능성이 더 크지만, 그리고 중년의 현실이라는 것이 새로운 인연을 꿈꾸기에 그다지 적절하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어쩌면 정말 기적처럼 진짜 인연이 한번은 있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버리지는 않겠다.
그런 의미에서 일단 지난 기억이 묻어 있는 이 키보드는 고이 보내드리는 걸로.
그간 잘 썼습니다. 고마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