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

我.

by NOMAD J

1.

굳이 10키로 마라톤을 돈을 내고 신청했다. 그냥 Gym에 가도 될 일이고 근처 공원을 뛰어도 될 일인데도.

친구들과 혹은 연인과 삼삼오오 재밌게 참석하는 대회(내지는 축제)의 현장에 너무나 당연하게도 나는 혼자다. 나는 그냥 뛰러 왔을 뿐이다. 10키로를 뛰어보겠다는 뭔가 강제적인 장치가 필요했을 뿐이고.

어쩌면 나는 그냥 "약속"이라는 것을 만들고 싶었던 것일까.


서울이 좋은 점이라 하면, 이런 곳에 혼자 와도 아무도 게의치 않는다는 점이다. 나는 늘 익명성을 보장받는 곳에서 살고 싶어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서울은 나에겐 최적의 장소이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돈 내고 내가 이 짓을 왜하고 있는거지?'라는 생각은 뛰는 내내 왔다갔다 한다.


이 와중에도 기록이 궁금하다. 준비를 하나도 안하고 뛰었을 때 1시간 6분 정도가 나왔었는데, 지난 몇개월 일주일에 두세번은 5키로 이상은 혼자 뛰어 버릇했었는데 조금은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내심 기대를 해보며.

10키로 기록 : 59:05

세상에. 너무 기쁘다. 온 동네 자랑하고 싶은 심정이다.

'여기요. 저 좀 보세요. 저 이제 10키로를 한시간 안에 달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어요. 저는 대충 사무직에 종사하는 중년여성이랍니다. 어때요 멋지죠?'


최근에 이렇게 성취감이 들었던 때가 언제였던가.



2.

같은 날의 일이다.

10키로를 뛴 날, 굳이 저녁 테니스 모임에 간다.(사회생활 하기싫어서 테니스를 다시 시작하지 못하였는데, 지인의 손내밈이 있었다.) 약간의 다리 근육통에도 불구하고 공을 뻥뻥 치다보니 시원하기 짝이 없다.

선량하신 멤버분들께서 초보인 나에게도 기꺼이 공을 주시고, 쳐보라고 하시니 최선을 다해서 이리뛰고 저리 뛰어본다.


하루 운동 네 시간. 보람차다.

무릎이 약간 시큰거리는 것이 이것이 바로 직장동료어르신들이 말씀하시던 그런 종류의 통증인가 하며 파스를 덕지덕지 여기저기 발라본다.

뿌듯하다.

나는 오늘 온 몸으로 살아내었고, 즐겼다.



3.

나. 심심하다.


왜 이렇게 운동에 집착하고 있는가. 어차피 다이어트도 안 되는 거 알면서 무슨 목적으로 나는 이토록 주말을 다바쳐 운동을 해대는가.

솔직해지자. 난 심심한거다.

그렇다면 시간이 또 지나면 어느정도 심심함에 익숙해지고 안정이 찾아오겠지. 그냥 지금은 내키는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연애가 끝났을 때랑 아부지를 보내고 난 후의 상태가 비슷하다는 게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슬픈 감정은 종종 찾아오긴 하지만 일상을 지배하지는 않는다.

다만 뭔가 비어버린 그 공간, 체감적으로는 비어버린 '시간'을 나는 어쩔 줄을 몰라하나보다.

살아오는 동안 또 주기적으로(명절이니 어버이날이니 등등) 함께 했던 시간, 그리고 지난 10개월의 아빠의 투병을 돕기 위해 썼던 에너지 이 모든 것들이 갈 곳을 잃었다.


심심한 시간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그렇다면 나란 인간 움직여야 한다.

이대로 계속 심심했다간 잠시 나를 거쳐갔던 그 우울이라는 놈이 덮쳐올지도 모른다. 지지 않겠다.



4.

아빠는 늘 나에게 "뛰지마라" 하셨었다. 당신 친구 누구누구는 마라톤을 즐기다가 말년에 관절이 아파서 너무나 고생을 한다는 것이다. 운동을 하더라도 살살 걷기만 하라고 누누히 말씀하셨었다.

또 아빠는 늘 "테니스 같은 거 하지마라"하셨었다. 너는 상체와 팔이 약해서 그런 운동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넌 무슨 여행을 맨날 그렇게 다니냐. 쓸데없이"라고 하셨었다. 젊은 날 그렇게 돈을 쓰고 다니고 너는 미래에 대한 생각은 안하는 거냐고 질책하셨었다.


지금.

뛰고, 테니스 치고, 여행을 다닌다.


고삐 풀린 망아지라는 말이 있지.

지금 약간 그런 상태.

그러나 온 몸으로 스스로를 지켜내고 있는 상태.


잘 하고 있다고 믿는다.

사실 잘하고 말고 아무도 나를 평가하지 않는데도.

그냥 살면 되는데도.





※ 다 쓰고보니 이건 글이라고도 할 것이 없는 현재의 나에 대한 매우 거친 기록. 뭐 그럴 수도 있지...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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