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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튼 Dec 31. 2019

나의 아마추어 뮤지션 도전기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아가는 것에 대해

 초등학교 3학년 때였을까? 당시에 <이소라의 프러포즈>라고 하는 음악 프로그램이 있었다. 워낙 유명하지만, 혹시나 모르는 사람은 지금의 <유희열의 스케치북>의 할머니(?) 정도 되는 프로그램이라 생각하면 되겠다. 그날따라 유난히 진행자 이소라 씨는 우울해 보였고 <제발>이라고 하는 본인의 노래를 부르면서 이윽고 흐느껴 울었다. 사실 그녀가 본인의 노래를 부르면서 우는 것 처음이 아니다. 그녀는 그녀의 노래를 부르면서 자주 운다. 이별 노래를 부르면서, 사랑을 노래하면서, 많은 가수들이 현란한 기교와 감정으로 우리를 뒤흔들 때가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노래를 끝까지 마치지 못한 그녀의 노래가 가장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항상 선택의 갈림길에선다. 자신이 잘하는 것과 자신의 좋아하는 것에 대한 갈림길. 어떤 사람은 너무나도 운이 좋게 그 둘이 같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둘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나 역시 마찬 가지였다. 항상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대한 동경이 있었지만, 음악은 재능이 있는 사람만 해야 한다는 생각에 가슴 한편에 고이 접어만 두기를 20여 년을 하였다.



 그러던 나에게 정말 운이 좋게도 디지털 싱글을 발매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정확히 말해서는 내가 음악을 전공한 친구에게 앨범 한 번만 낼 수 있게 졸랐다는 표현이 맞겠다. 너무나 고맙게도 그 친구는 나의 유치한 음악 놀이에 성심성의껏 참여해주었고, 그렇게 1달을 매달린 결과 나의 첫 노래가 나왔다.      




박준, 딸에게, 2016

 첫 노래의 주인공은 나의 아내의 어머니, 장모님이었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보여주신 장모님의 딸을 생각하는 마음은 나에게 꽤나 인상적이었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굉장히 복잡한 감정이었다. 물론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나의 아내는 전혀 공감이 안된다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노래를 썼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사실 이 노래의 주인공은 나의 아내도 나의 장모님도 아니고, 나의 상상의 인물들이라고 해야겠다.




 좋아하는 것을 한다는 것... 지금 같은 세상에서는 미안한 일이 되어버렸다.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물음 조차 사치로 느낀다는 사실을 안다. 가정을 꾸리면서, 나이를 먹어가면서, 밥벌이의 무거움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노래를 잘하지도 못하고, 음악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내가 이렇게도 미련하게 음악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음악에 대해 알면 알수록 스스로의 부족함에 대해 힘들 때가 너무 많다. 수도 없이 포기할까도 생각해 왔고, 앞으로도 그런 질문은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너무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노래를 할 때, 새로운 곡을 쓸 때,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누군가의 아버지, 남편, 직장 상사로 살아가길 강요받는다. 음악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내가 나로서 존재하는 시간'이다.





다음 주 주말 부산에 열리는 이소라 씨 콘서트에 아내와 함께 갈 예정이다. 사랑에 아파하던 20대를 지나, 어느덧 그녀는 사랑에 초연해질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이제 노래를 하면서 눈물 흘리지는 않지만, 여전히 그녀의 노래는 다른 의미로 충분히 아름답고, 존재할 가치가 있다.


무언가를 진지하게 사랑하고, 고민하는 것 만으로 세상에 존재할 이유는 충분하다. 오늘도 나는 못하는 노래를 하고, 공감받지 못하는 가사를 쓴다. 하지만 행복하다. 사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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