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튼 May 24. 2020

Cavatina를 아시나요?

 조급함에 대해

방청소를 하다가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클래식 기타가 눈에 띄었다.

클래식 기타를 배웠던 시간이 어느덧 10년 전이다.

그때는 클래식 기타가 정말 좋았다.

사실 클래식 기타를 처음 배웠던 이유는 통기타와 클래식 기타의 차이를 몰라서였다.

기타 반주를 하며 노래를 배워 보고 싶다는 이유로 찾아간 학원은 하필이면 클래식 기타 학원이었다.

처음 찾아간 원장실에서 클래식 기타가 무슨 악기인지 잘 모른다는 나의 말에

원장님은 카바티나(cavatina)를 연주해 주셨다.


아름다웠다.


그렇게 시작한 클래식 기타는 사악한 난이도를 자랑했다.

피아노라고는 바이엘까지가 전부인 나에게 오선지를 보는 것조차 고역이었다.

빨리빨리 늘어서 선생님처럼 우아하게 카바티나 한번 키고 싶은데 내 맘대로 안되니 화만 났었다.


그때 나는 갈 때마다 카바티나는 언제 배울 수 있냐고 물었다.

사실 클래식 기타에 대해 아는 곡은 카바티나와 알함브라의 궁전이 전부였다.

선생님께서는 그때마다 인내심을 가지고 배울 수 있을 때가 되면 알려주겠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옹졸하게 짝이 없었다.

마치 카바티나 만 배우면 클래식 기타의 모든 것을 정복한 마냥, 사람들 앞에서 빨리 으스대고 싶은 마음이 컸었던 거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꽤 오래 클래식 기타 학원에 다녔다. 심지어는 매우 열심히 했다.

선생님도 놀란 눈치였다.

저렇게 성질 급하고 음악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부족한 학생은 제풀에 나가떨어지기 마련인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사실 내가 다니던 클래식 기타 학원에서는 한 달에 한번 정도 발표회 같은 것을 했었는데

그 모임에 나가는 것이 즐거웠다.

다들 40-50대의 나이에 클래식 기타를 배우기 위해 오신 분들이었는데

내가 그중에서 제일 어린 축에 속했다.

연배가 높으신 분들이 보기에 기타 좀 배우겠다고 자전거로 큰 기타 케이스를 들쳐 매고 왔다 갔다 하는 게 꽤나 귀여우셨나 보다.

조금만 잘해도 이런저런 칭찬을 해주셨다.


“정말 빨리는다, 젊다는 게 좋구나, 공부도 힘들 텐데 기타도 열심히 치고 대단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2년,

서울로 본과 3학년을 보내야 하기 위해 올라가야 할 시간이 왔다. (내가 다녔던 의과대학은 아산에서 2년, 천안에서 2년, 서울에서 2년 이렇게 옮겨 다녀야 했다)


정말 아쉬웠다.


2년 동안 결국은 카바티나는 못 배웠지만, 음악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된 시간들이었다.

힘든 본과 1학년, 2학년을 클래식 기타를 배우면서 많은 위로를 받았었다.


서울에 가서도 클래식 기타를 손에 놓지 않을 거라 굳은 결심을 했지만, 결국 그만두고 말았다.

클래식 기타의 난이도는 점점 어려워지고, 무엇보다 발표회 같은 피드백이 없었던 게 컸다.


무엇보다도 “조급함”이 가장 큰 문제였다.


나는 무려 2년의 시간을 투자했고, 과외 아르바이트를 해가면서 비싼 기타도 샀는데, 여전히 카비티나는 커녕, 어려운 곡은 꿈에도 못 꾼다는 생각.


악기를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어떤 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데 2년이란 시간은 택도 없다는 거

매일매일 몇 시간씩 연습을 하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엄연히 본업이 존재하고 연습시간이 많지 않음에도 욕심만 한없이 부렸다.


그렇게 클래식 기타와 멀어졌다.


다행히 지금도 다른 형태로 음악을 하고 있지만, 클래식 기타를 볼 때마다 한때 사랑했던 연인을 보는 마음이 든다.


나의 조급함 때문에 헤어져 버린 연인에게 느끼는 마음 말이다.


어느덧 나의 나이는 서른 중반에 와버렸다. 자전거로 기타 좀 배우겠다고 낑낑거리고 학원에 오던 나는 이제 결혼을 했고, 어딜 가나 적지 않은 나이가 되었다.


클래식 기타를 팔까 생각하였지만, 그냥 그 자리에 두기로 하였다.


‘빨리’ 무언가를 잘하고 싶은 나에게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타이르는 거 같아서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아마추어 뮤지션 도전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