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도그가 생각나던 날

함정 군의관 이야기

by 키튼

2017년 이지스함의 함정 군의관으로 1년간 근무했었다. 아쉽게도 함정 군의관은 모두 기피하는 자리이다. 1달의 절반 정도는 바다에 떠있어야 하고, 나의 전공은 내과지만, 전문분야를 넘어서는 진료도 봐야 하기 때문에 곤란한 상황도 많았다. 하지만 소중한 추억도 많던 시간이었다.

배안에서 편한 사람은 누구도 없겠지만, 가장 힘든 직별은 바로 취사병이다. 배에서는 하루 4끼를 먹는다. 아침, 점심, 저녁, 야식.

200명의 승조원이 하루 4끼를 매일같이 만들어야 하는 일이 안 힘들 수가 없다.
새벽 4시부터 저녁 9시까지 하루 종일 식사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그들이다.
흔들리는 배안에서 불과 칼을 다루기 때문에 항상 불에 데고, 칼에 베여서 의무실 문을 두드린다.




여느 때와 같이 취사병 한 명이 손가락이 베여서 왔다.
손가락을 꿰매고 있는데, 갑자기 "군의관님 뭘 가장 좋아하십니까"라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그냥 생각 없이 야식으로 먹었던 핫도그가 맛있다고 했더니, 그때부터 핫도그가 야식으로 나올 때마다 내 것을 따로 빼서 챙겨주었다.
야식이 많이 남으니까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려도 본인이 좋아서 하는 일이라 괜찮다고 하였다.
고작 핫도그였지만, 의사로서 가장 뿌듯했던 몇몇 순간 중 하나였다.
어마어마한 의술은 아니더라도, 누군가에게는 절실한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의사를 힘내게 하는 건 환자가 보내주는 신뢰일 것이다.




얼마 전에 민원을 받았다.
환자분과 서로 사소한 오해가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잘 마무리되었다)
대학병원에서 최첨단 기계와 여러 훌륭한 동료들과 일하면서 내가 제공하는 의료서비스의 질은 엄청 높아졌지만, 보람도 꼭 그에 비례하는 건 아니다.
진료비 없이 봉사하던 함정 군의관 때가 문득 생각났다.
배안의 유일한 의사로서 책임감 때문에 힘들었지만,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승조원들이 나를 신뢰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최근 의료계의 여러 이슈들로 시끄럽다. 댓글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저렇게 의사들에게 안 좋은 시각을 가진 사람이 많나 놀랄 지경이다. 무엇보다도 마음이 아픈 건 의사를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이상한 의사들도 많지만, 대부분의 의사들은 환자를 진심으로 위한다. 그렇게 믿는다.




인스타그램을 보니, 나에게 핫도그를 챙겨주던 취사병은 예쁜 여자 친구를 만나서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는 것 같다. 앞으로도 요리 관련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던 아이였는데 훌륭한 요리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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