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검진
초등학교 때 나는 비만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까지는 호리호리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급격하게 살이 찌기 시작했다. 살이 찌니 확실히 자신감도 없어졌고, 그때부터 체육시간에 벤치에만 앉아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영원히 비만으로 살 것만 같았는데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살이 빠졌다. 중학교 때 거의 1년 만에 10cm가 컸는데 바로 그때 살도 같이 빠졌다. 지금 생각하면 운이 참 좋은 것 같다. 만약 성장판이 닫혀서 키가 그대로 머물렀더라면 나는 아직까지도 비만이었고 온갖 성인병들에 시달렸을 것이다.
내가 일하는 병원에서는 얼마 전부터 학생검진을 시행하고 있다. 초등학교 1학년과 4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검사인데 비만 아동들은 추가적인 피검사를 실시해서 혹시 모를 질환에 대한 감별을 한다고 한다. 처음 병원에서 학생검진을 한다고 했을 때 아연실색했다. 나는 어르신들을 보는 내과의사인데 어떻게 가능하냐고 반항도 해보았지만, 초등학교 근처 모든 병원에서 실시하고 있고 다행히 검진 자체가 어마어마한 의학적 소양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럭저럭 해나가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비만 판정이었다.
학생들이 오게 되면 일단 밖의 간호사가 키와 몸무게를 재고 비만인지 아닌지 판정해준다. 나는 그것을 보고 비만에 관련된 교육을 한다. 한 번은 너무 귀여운 4학년 여학생이었는데 올 때부터 주눅이 들어있었다. 어머니는 심각한 얼굴로 비만이냐고 물어보았다. 아이는 금방이라도 울 거 같았다. 순간 마음이 너무 아팠다. 어렸을 적 살이 찌고 자신감을 잃어버렸던 내가 생각이 났다.
“아니요 어머니. 비만 아니구요. (아이를 보면서 ) 선생님이 보기에는 너무 귀엽고 예쁘다. 한창 자랄 나이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하면서 정상체중에 체크해버렸다.
금방 울 것 같은 아이를 보면서 너는 '비정상’이니까 벌 받아야 되라고 말하는 거 같았다.
그렇게 아이가 나가자마자 담당 간호사가 잘못 체크하셨다고 쫓아 들어왔다. 나는 부모님께 죄송하다고 다시 말씀드리고 아이 몰래 비만이라고 고쳐놓았다. 다행히 아이는 모르는 거 같았다.
이 이야기를 와이프에게 말하니 비수 같은 한마디가 돌아왔다.
“너는 차팅도 감성으로 하니?”
모든 환자분들에게는 어떤 의학적 소견도 정직하게 들을 권리가 있다.
아무리 가슴 아픈 이야기라도 그것을 의사가 제멋대로 판단해서 숨기면 안 된다.
그건 잘못이다.
소아 비만은 명백한 질병이다. 의과대학 시절부터 소아비만의 무서움은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어왔다. 나는 개인적으로 운이 좋았던 것이지 아이에게 냉엄한 현실을 직시하게 하고 군것질을 하지 말라고 엄하게 꾸짖는 것이 더 필요했을 것 같다.
변명을 하자면 정상보다는 표준 체중 정도로 차트를 바꾸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왠지 다른 체형은 모두 비정상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모든 면에서 표준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의학이 발전하면서 다들 크고 작은 질병 하나씩은 진단받는다. 모두 꼭 정상, 표준이 되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오히려 그런 시선 자체가 사회를 더욱 각박하게 하는 것 아닐까?
쓰고 나니 더욱 변명 같다. 이 이야기도 나의 부끄러운 에피소드 중에 한 편이 될 것이다. (햇병아리 의사의 성장일기 정도로 읽어주셨으면 싶다)
아무래도 소아 환자들을 보지 못했던 경험 부족인 것 같다. 요새는 비만이라고 설명해주고 항상 나의 이야기를 같이 해준다. 선생님도 어렸을 적에는 살이 쪘었는데 금세 빠지더라 그렇다고 군것질하지는 말고 어머니 말씀 잘 들어야 한다 정도로.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긴 하다.
모든 면에서 표준인 사람은 환상에 불과하단다. 지금은 네가 스스로를 미워할 수 있지만, 언젠가는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실 지금의 내가 누군가에게 듣고 싶은 말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