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것에 대해

<바다가 들린다> -1993, 지브리스튜디오

by 키튼
젊음이란 젊은이들에게 주기는 너무 아까운 것이다.

-조지 버나드 쇼


어느 날, 리카코라는 여학생이 불쑥 '고치'라는 작은 도시로 전학 온다. 리카코는 도쿄 출신으로 도도한 새침데기이다. 남자 주인공 타쿠는 첫눈에 그녀에게 반하게 된다. 리카코에게 여름방학 내내 힘들게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을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줘 버린다던지, 리카코가 도쿄에 혼자 가는 것이 걱정돼서 아무 대책 없이 도쿄에 따라온다던지 하면서, 정작 본인은 그게 '사랑'에서 비롯된 행동이었음을 알지 못한다.

영화 리뷰를 보면 무수히 많은 그녀에 대한 악플이 있는데, 어리숙한 타쿠를 리카코가 이용하는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카코 또한 타쿠를 좋아하고 있었고 단지 표현이 서툴렀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사랑이라는 감정이 처음이고 낯설 때가 있다. 리카코도 타쿠도 그 감정이 너무 낯설어 서로에게 못되게 굴었던 거뿐이다. '낯설다'는 감정은 '싫다'라는 감정과 자주 헷갈리지 않는가?


둘은 서로 좋아하면서 무수히 많이 엇갈린다. 그것은 둘 다 청춘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영화를 보는 내내 그들의 철없음 마저 아름다워 보였다. 십 대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 그리고 문득, 나도 십 대 때 저들 만큼 아름다웠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나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이 있다. 그냥 존재 자체만으로 빛나는 시절, 하지만 정작 본인은 자신이 얼마나 빛나고 있는지, 아름다운지 알지 못한다. 인생의 아이러니이다. 젊음의 아름다움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나의 젊음은 한 움큼 밖에 남지 않은 후이다.



얼마 전 친구가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는 흔히 말하는 1등 신랑감이다. 키도 크고 직업도 좋고 모든 게 갖춰 줬지만, 여태껏 결혼하지 않은 걸 다들 의아하게 생각했다. 사실 이 친구는 얼마 전에 6년 동안 사귀었던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캐묻지 않아도 왜 헤어졌는지 짐작이 갔다. 30대 중반 남녀의 이별 속사정은 복잡한 듯 보여도 단순했다. 이번에 결혼까지 결심한 여성분은 집안도 좋고, 얼굴도 예쁘고, 마음씨도 고와 보였다. 모든 게 갖춰진 두 남녀가 2달 만에 결혼을 결심했지만, 뭔가 석연치 않았다.



아아, 역시 난 좋아했던 거야. 그렇게 느껴졌다.

-바다가 들린다, 타쿠의 마지막 대사-




영화를 보는 내내 서글픈 감정이 떠나지 않았었는데, 그 이유를 알았다.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는 것이 서글펐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