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늦은 회진

by 키튼

나는 기억력이 나쁜 의사다.

그리고 여행을 좋아한다.


가능하면 한 달에 한 번은, 가까운 곳이라도 떠나려 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루하루가 너무 쉽게 흘러가 버리기 때문이다. 낯선 곳에 가면 공기를 맡고, 소음을 듣고, 손에 닿는 질감을 느낀다. 그런 경험은 영상이나 책으로는 대신할 수 없다. 몸으로 겪은 감각만이 남는다.

문제는 여행이 끝난 뒤다.
분명 강렬했다고 느꼈던 순간도 일상으로 돌아오면 금세 흐릿해진다. 가끔은 “내가 그곳에 갔던가?” 하고 스스로에게 묻게 될 정도다.


그래서 기록을 남긴다.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영상을 저장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날의 공기와 감정이 너무 쉽게 사라진다.

시간이 갈수록 하루는 더 빠르게 지나간다. 새로운 일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병원에서의 일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낯설고 긴장됐지만, 지금은 많은 일들이 별다른 생각 없이 처리된다.

아침에 출근해 진료를 보고, 회진을 돌고, 오후가 되면 다시 외래를 본다. 하루를 마치고 나면 오늘 무엇을 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기억하려고 애쓰지 않는 날도 많아졌다.


사람은 자신이 지나온 기억의 합이다.


이 문장을 떠올릴 때가 있다. 기억하지 않으면, 결국 남는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어렸을 때 나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작가들은 특별한 삶을 사는 사람들일 거라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들 역시 대부분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었다. 다만 조금 더 자세히 보고, 더 오래 붙잡아 두었을 뿐이었다.


의사 면허를 딴 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병원은 내 삶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공간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오고 갔고, 그 사이에서 수많은 말과 표정, 선택들이 지나갔다. 하지만 나는 그 장면들을 너무 자주 흘려보냈다.


그래서 이제는 기록하려 한다. 여행을 다녀와 여행기를 쓰듯, 병원이라는 공간을 다시 바라보고 적어보려 한다. 나라도 기억하지 않으면 사라질 시간들과, 그 시간 속에 있던 사람들을 위해서다.


이 글들은 나의 병원 기록이고,
내가 만난 사람들을 위한 늦은 회진이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