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용기 멘토, 모건(Robert M. Morgan) 박사님
어떤 만남은 운명이다
내 인생의 용기 멘토, 모건(Robert M. Morgan) 박사님
영만! 미국에 온 것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것이 보잘것없다고 해서 청운의 꿈을 포기하지 마라. 태평양을 건너기도 전에 태평양 넘어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을 미리 예견해서 지레 겁먹고 두려움에 휩싸이는 것은 기우(杞憂)에 지나지 않는다.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도전은 언제나 '초심자의 행운'으로 시작되고, 반드시 '가혹한 시험'으로 끝을 맺는 것이네." 산티아고는 자기 고향의 오랜 속담 하나를 떠올렸다. '가장 어두운 시간은 바로 해뜨기 직전'이라는. 청운의 꿈을 안고 태평양을 건너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내 인생의 최대의 도전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미국 유학에서 가장 힘든 점은 뭐니 뭐니 해도 언어문제다. 특히 일상적인 대화를 미국 사람들과 한다는 것이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우여곡절 끝에 미국에 도착, 집을 마련하고 학교를 찾아가 보았다. 사전에 모건 박사님을 만날 약속을 정하고 찾아뵙기 전에 모건 박사님이 한국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아시고 이해심도 넓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지도교수와의 첫 대면인지라 여러 가지로 많이 떨렸다. 모건 박사의 첫인상은 마음씨 좋은 한국의 세련된 할아버지 같은 인상이었다. “영만! 미국에 온 것을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우렁찬 목소리로 나를 맞이하고 악수를 청했다. 허운나 총장(모건 박사의 지도 제자, 한양대학교 교육공학과 교수, 열린 우리당 국회의원을 거쳐 지금은 한국 정보통신 대학교 총장으로 재직)의 소개로 모건 박사와 연결된 점을 소상하게 설명해주시면서 허운나 박사에 대한 자랑을 아끼시지 않았다.
무슨 말씀을 많이 하셨지만 모건 박사의 눈동자에서 강한 카리스마와 함께 인자한 사랑을 동시에 느꼈다. 첫 대면을 끝나고 나오면서 내 어깨를 토닥거려주시면서 “자신감을 갖고 밀어붙여라. 영만 정도의 실력이라면 여기서도 우수한 성적을 낼 수 있다”는 믿음과 도전 의욕을 부추겨 주셨다. 생전에 만나보지도 못했던 모건 박사가 처음 보는 한국의 보잘것없는 박사과정 지망생에게 강하면서도 따뜻한 눈빛으로 맞이해주시면서 “너 정도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씨앗을 심어준 그 첫 대면을 잊을 수 없다. 마음씨 좋은 한국의 시골 할아버지 같이 따뜻한 마음을 갖고 계시면서도 보스 같은 카리스마를 겸비하신 내 인생의 용기 멘토를 만난 첫 느낌은 모든 것이 낯설고 어리둥절한 내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주신 그 훈훈함이었으며, 그 당시의 모건 박사님에 대한 훈훈한 인상은 아직도 내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안 되는 영어를 귀 기울여 들어주시고 어눌한 내 첫 영어 실력에 뜨거운 격려를 해주시면서 영어가 아주 훌륭하다는 과찬의 말씀은 두렵기만 했던 미국 생활에 자신감을 갖었던 지도교수와의 첫 대면은 내가 유학생활을 뜨거운 열정과 자신감으로 시작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고도 남았다. “나는 영만을 믿는다! 그리고 마음 편하게 공부할 수 있는 연구실을 마련해줄 테니까 오로지 공부에 전력하라”는 모건 박사님의 배려는 눈시울을 또 한 번 뜨겁게 했다. 도대체 모건 박사님은 나의 무엇을 믿고 저렇게 아낌없이 베풀어 주실까? 그리고 중간중간에 하시는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그야말로 나에게는 삶의 원기소 같은 역할을 하였다.
영만, 아직도 이런 과목을 들어야 하는가?
이제 본격적인 대학원 생활이 시작되었다. 말도 안 되고 글도 안 써지고 처음으로 온전히 영어로 수업하는 장면에서는 좌절과 절망의 연속이었다. 한 장의 글을 쓰기 위해 하루 종일 낑낑대다가 어느새 날이 저물면 밤하늘을 처다 보면서 담배 한 대 피워 물었던 추억이 아련하다. 수업시간에는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고민만 하다가 어느새 수업이 끝나면 답답하기 그지없고 쏟아지는 과제물을 하려고 매일매일 쫓기는 시간에 스트레스는 더욱더 가중되었다. 수업시간 때마다 느끼는 절망감은 일종의 오기로 변질되었다. 책의 내용을 보면 이미 내가 한국의 석사과정 시절에 배웠던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영어로 말하고 듣고 쓰는 수업이기에 따라가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나의 모습이 안타깝기도 했다. 하지만 나도 언젠가는 미국 애들처럼 자연스럽게 말하고 듣고 쓰면서 내 생각과 주장을 자유롭게 피력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쓰라린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모드들 웃고 있지만 나만 무슨 뜻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멋쩍게 쓴웃음을 지었으며, 무슨 숙제를 내주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미국 친구들을 붙잡고 다시금 따져 물어 가면서 살얼음판을 걸어가는 여리박빙(如履薄氷)의 위기는 늘 나를 긴장감으로 몰아넣었다.
박사과정을 듣는 중간중간에 모건 박사님을 만나서 여러 가지 조언을 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렵고 멀게만 느껴졌던 모건 박사님은 점차 친근한 할아버지처럼 느껴지곤 했다. 인생에 대한 지혜는 물론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가져야 될 자세와 태도에 대해서고 조언을 아끼시지 않았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은 내가 모건 박사님 사무실을 방문할 때마다 영만 담배 있냐고 하시면서 사무실 밖에 나가서 담배를 같이 피우면서 나누던 정담(情談)이었다. 당시만 해도 모건 박사님은 집에서는 담배 안 피우는 사람으로 알고 있었고, 나는 골초였었다. 어쩌다 내가 아직도 갈 길이 멀어서 내 전공분야의 기초과목을 듣고 있으면 “아직도 그런 과목을 듣고 있느냐”하면서 지도교수의 막강한 권한으로 필수 이수과목에서 그런 교과목을 빼주기도 하셨다. 내 실력을 전적으로 믿고 조치하시는 작은 배려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나 낙관적으로 세상을 바라보시면서 너털웃음을 지어 보이시던 그 모습이 아련하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모건 박사님 앞에서는 한 순간에 무너져 버린다. 늘 희망의 눈빛으로 미래를 전망하고 그런 미래의 모습이 머지않아 현실로 다가올 것이라는 강한 기대감으로 나를 응원해주셨다. 모건 박사는 언제나 나의 용기 멘토로서 좌절 대신에 가능성의 문을 열어 주시면서 두려움에 맞설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셨다. 시도해보기도 전에 포기하지 말고 하다가 실패하는 한이 있더라도 나를 믿고 밀어붙이면 불가능해 보이는 과제도 어느새 가능성의 문을 활짝 열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수많은 일들이 지금도 기억에 아련하다.
박사학위의 첫 관문, 종합시험과 논문계획서 통과!
많은 사람들이 어렵다고 하던 박사과정 자격시험인 종합시험을 별다른 어려움 없이 합격할 수 있었던 원동력도 항상 모건 박사님의 따뜻한 카리스마 덕분이었다. 어렵고 힘들 때 찾아가면 언제나 모건 박사는 “영만! 내가 뭘 도와주면 될까?”라는 인사로 언제나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늘 든든한 후원자가 곁에 있다는 안도감은 나를 믿고 신뢰해주는 분을 위해 실망을 끼쳐 드리면 안 된다는 부담감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그래서 언제나 철저하게 준비하고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단계별 나 스스로 사전에 챙겨야 될 문제가 무엇인지를 꼼꼼하게 따져보기도 했다. 종합시험을 마치고 모건 박사님을 찾아뵈었을 때 “영만, 자네가 쓴 답안지가 너무도 완벽해서 더 이상의 코멘트가 필요 없어, 넌 합격이야” 라는 말씀을 주시면서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해주셨다. 이어서 바로 논문 준비를 하라고 하셨다. 이제 한 고비를 넘겼다는 안도감과 함께 또 다른 산을 넘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동시에 몰려왔다. 하지만 모건 박사님이 말씀하셨듯이 이제 나도 논문을 쓸 수 있다는 격려의 말에 그야말로 하늘을 날 듯 사기가 충전되었다. 용기는 믿음 위에 피는 꽃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나를 믿어주고 밀어주면 두려움도 하나의 작은 걸림돌에 불과하다. 걸림돌은 제거하고 디딤돌로 바꾸면 된다. 모건 박사님은 늘 걸림돌 앞에 고민하는 나를 걸림돌을 넘어서 디딤돌로 바꿀 수 있도록 조언해주고 희망의 끈을 연결해주셨다.
박사 논문 계획서를 쓰면서 여러 번 지적 도전을 스스로 받았다. 내가 그동안 고민해왔던 학문적 도전과제를 해결할 원대한 꿈을 갖고 박사논문을 쓰려는 나에게 모건 박사님은 언제나 너무 어렵게 쓰다가 시간 보내지 말고 적당하게 도전적인 주제를 잡아서 빨리 박사학위를 받은 다음 너의 목소리를 내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영만, 자넨 가네(Gagne, 미국 교육 공학자 중에서 교육공학의 심리학적 토대를 구축한 세계적인 학자) 이후로 교육 공학계에서 가장 이론적인 학자야!” 박사학과정 학생으로서 늘 치열하게 고민하는 나의 학문적 야망을 칭찬하는 말씀이면서 동시에 너무 어려운 논문 주제를 잡고 시간을 끌다가 실기(失機) 하지 말라는 충고였다. 종합시험 준비하면서 작성한 혼돈이론 관련 문제를 발전시켜 미국 대학원생들이 겨루는 논문 경진대회에 출전, 아깝게 2등에 머물러 미국 교육 공학계의 최고의 학술지에 게재되는 영광을 안을 수 있었던 것도 모건 박사님의 진심 어린 조언 덕분이었다. 박사학위를 받은 다음 박사로서 목소리를 내는 것과 박사학위를 받기 전에 내는 목소리의 강도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말씀, 그래서 가능하면 빠른 시간 내에 박사학위를 받고 그때부터 전문가로서의 박사의 목소리를 낼 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더 크다는 말씀 덕분에 논문 주제를 바꿔 남보다는 비교적 빠르게 박사학위를 딸 수 있었다.
축하합니다, 유영만 박사!
비록 짧은 유학시절이었지만 예견했던 대로 큰 무리 없이 박사학위를 받아 들었다. 박사학위 논문 최종 심사를 마치고 심사위원들이 의사결정을 하는 동안 잠시 밖에 나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축하합니다, 유영만 박사”라는 짧은 메시지와 함께 지도교수가 악수를 청해왔을 때 가슴 벅차오르는 감격의 순간과 함께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온 지난 고난의 여정이 일순간에 가슴과 머리를 스치면서 만감이 교차했던 순간을 잊을 수 없었다. 내가 이 학위증을 받기 위해 학부와 석사, 그리고 박사 동안 10년의 시간을 보낸 것인가? 그 10년 동안 읽었던 책을 통한 깨달음과 그 여정에서 나와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았던 관계의 역사 속에서 나를 투영시켜 본다.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책의 저자들, 치열한 문제의식으로 논문을 썼던 수많은 학자들, 그리고 우연이든 필연이든 박사학위 받기까지 만났던 수많은 사람과의 관계성의 역사가 나의 역사가 아닐까? 내 개인의 역사는 내가 주도해온 역사적 여정이면서 동시에 나 아닌 다른 사람과의 주고받는 관계 맺음의 역사에서 보고 느끼고 깨달았던 여정이었다. 이러한 학문적 탐구의 여정을 통해 나도 언젠가는 내가 깨달은 소중한 앎의 흔적을 나눠주면서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산다는 것의 참다운 의미를 생각해보는 무대가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막연하게나마 생각해보았다. 그로 인하여 그들이 기뻐하고 삶을 다른 각도로 바라보면서 인생의 새 출발을 하는 미지의 사람들이 늘 눈앞에 아른거렸다. 말하자면 내 인생의 성공파트너들인 셈이다. 내가 그들을 기쁘게 만들고 삶의 보람을 느끼면서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노력 끝에 찾아오는 행복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행복이 아닐까?
미국 유학생활을 경험해본 사람은 은행 잔고에 두 자리 수가 남아 있는 재무적 위기를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내 수중에 갖은 돈이 고작 몇십 달러 정도, 그것도 두 자리 수와 한 자릿수를 오고 가면서 내가 발행한 체크보다 작을 때 다가오는 경제적 위기다. 한국에서 바다를 건너기 전에 고민하고 걱정했던 많은 부분들이 박사학위를 손에 쥐고 난 시점에서 생각해보면 모두 아름다운 추억이었으며, 영광의 흉터였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으며 그 뜻을 찾아 떠나는 사람에게는 언젠가 길은 열린다는 소박한 신념을 갖게 되었다. 모든 것을 마치고 귀국 준비를 할 시점에서 모건 박사님을 만나는 자리에서 또 한 번 감동의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다. 귀국할 비행기 표를 사려고 고민하는 와중에 모건 박사는 “영만, 한국으로 들어가는 비행기 표 사는 데 얼마면 되지?” 라고 물으시면서 우리 가족 비행기 값으로 쓰라고 금일봉을 건네주실 때 눈물이 핑 돌았다. 한 제자를 아끼시는 마음이야 짐작하지만 이렇게 세심한 배려와 용기를 주시는 은혜는 내가 살아 있는 동안 갚아도 못 갚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자네는 내 곁을 떠나도 혼자서도 훌륭한 학자의 길을 갈 수 있다고 생각하네. 이제부터 자네의 독창적인 목소리를 내는데 주저하지 말고 교육공학을 빛낼 수 있는 멋진 학자가 되라”는 말씀에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다.
다시 생각해보는 나의 용기 멘토, 모건 박사님!
졸업을 하고 한국으로 귀국해서 삼성에 입사하고도 수시로 모건 박사님과의 연락을 하면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찾아보곤 했다. 삼성에 재직할 때 모건 박사님을 초청, 기조 연설자로 모시면서 한국의 지인들을 만나실 수 있도록 도와드린 경험은 내가 받은 모건 박사님의 은혜에 비하면 작은 정성에 불과하다. 그 이후에도 모건 박사는 FSU Outstanding Alumni Award라는 상을 받을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해주셨다.
물론 한국에 들어온 이후 내가 실천 현장은 물론 학문적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많은 논문과 저서를 출간한 공적은 있지만 모건 박사의 따뜻한 배려가 없었다면 이 상도 타지 못했을 것이다. 상을 받으러 모교인 FSU에 도착, 시상식에 참석했는데 여기서 또 한 번 감동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상을 받기 전, 나의 그동안의 활동상황과 논문 및 저서 출간 실적을 청중들에게 소개하면서 제자를 사랑하는 원로 교수님의 제자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관심, 변치 않는 믿음에 지도교수님에 대한 존경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상을 받은 다음 간단하게 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나는 “이 상을 저의 지도교수인 모건 박사에게 바친다. 제 인생에 모건 박사를 만나지 않았다면 오늘의 제가 이런 상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했다. 상을 받은 다음 모건 박사와 뜨거운 포옹을 하면서 세월을 넘나드는 스승과 제자의 진한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나는 그동안 짧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아오면서 살아온 것 같다. 어려운 시절 대학에 들어와 숱한 좌절과 절망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지금의 한양대학교 김종량 총장님과 허운나 전 한국정보통신대학교 총장님은 언제나 인생의 등불이었다. 교육공학과에 자리 잡고 오로지 공부만 할 수 있도록 믿어주시고 힘과 용기를 주셨던 당신들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은 한국 교육공학을 넘어서서 세계적인 교육 공학자로서 우뚝 걸어가는 길뿐임임을 잘 알고 있다. 모교의 권성호 교수님은 언제나 인자하신 웃음과 따뜻한 배려로 어린양에게 방황하지 않고 꿋꿋하게 공부할 수 있는 굳은 마음을 주셨다. 한국에서 교육공학과를 졸업하고 석사학위를 마치고 낯선 미국 땅에서 제가 오늘 여기까지 오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신 분은 다름 아닌 이 글의 주인공이신 모건 박사님이다. 한 사람의 인성은 그 사람이 살아오면서 맺어온 인간관계의 역사적 결과라고 한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을 만나서 어떤 인간적 관계 맺음을 형성해왔는지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성도 결정된다는 말이다. 나는 인생을 살면서 너무도 소중한 사람을 만나면서 지금의 내가 되어서 나름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한 분야의 학자이자 대학교수로서의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모건 박사님이 가슴에 남겨주신 용기를 주는 한 마디 한 마디는 내가 《용기: Do-It-Now 프로젝트》라는 책을 써서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모건 박사님은 어려운 도전 앞에 망설일 때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주셨으며, 절망과 좌절의 언덕 앞에서 헤맬 때에도 꿈과 희망의 끈을 던져주셨던 내 삶의 진정한 용기 멘토다. 내가 모건 박사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와 용기는 이제 용기를 북돋우는데 쓰려고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내가 그분의 사랑에 보답할 수 있는 길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비록 작은 노력이지만 내가 세상을 향해서 베풀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명심하고 있다.
공부는 언제나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나보다 앞서 길을 걸어간 수많은 선각자들이나 스승과 함께 무지를 깨우치는 과정이다. 나는 내 인생에서 수많은 스승님 덕분에 오늘의 내가 되기까지 공부하는 길에 전념할 수 있었다. 나는 그동안 짧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아오면서 살아온 것 같다. 한국에서 교육공학과를 졸업하고 석사학위를 마치고 낯선 미국 땅에서 제가 오늘 여기까지 오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신 분은 저의 박사과정 지도교수님이시자 제 인생의 멘토 모건 박사님이다. 그분은 인생에 대한 지혜는 물론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될 자세와 태도에 대해서고 조언을 아끼시지 않았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모건 박사님 앞에서는 한 순간에 무너져 버린다. 늘 희망의 눈빛으로 미래를 전망하고 그런 미래의 모습이 머지않아 현실로 다가올 것이라는 강한 기대감으로 나를 응원해주셨다. 모건 박사는 언제나 나의 용기 멘토로서 좌절 대신에 가능성의 문을 열어 주시면서 두려움에 맞설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셨다. 시도해보기도 전에 포기하지 말고 하다가 실패하는 한이 있더라도 나를 믿고 밀어붙이면 불가능해 보이는 과제도 어느새 가능성의 문을 활짝 열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수많은 일들이 지금도 기억에 아련하다. 모건 박사님은 졸업 후에도 수시로 안부를 물어보시고 함께 할 수 있는 분야가 없는지 모색해주시고 관심을 보여주셨다. 그분 덕분에 진짜 공부란 무엇인지, 무엇을 왜 공부해야 되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 후 다양한 현장체험과 책으로 만난 수많은 스승님의 가르침을 기반으로 《공부는 망치다》를 쓰게 되었다. 학자(scholar)는 영원히 공부하는 학생(student)이다. 오늘도 스승님이 가르쳐주신 소중한 미덕을 몸소 실천하며 생각의 고치 안에 안주하고 있는 타성이나 고정관념을 망치로 깨부수는 고통스러운 산고(産苦)의 과정을 몸소 경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