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만 모르는
만나지 말아야 할 WORST 10

반면교사(反面敎師) 10명에게 배운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의 특징

이런 사람 만나면 망합니다

내가 만난 인생 최고의 스승, 반면교사(反面敎師) 10명에게 배운 인간관계 깨우침


어느 날 저마다의 위치에서 세상 사람을 생각하게 만들기 위해 10명의 반면교사(反面敎師)가 한 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하나같이 다른 사람의 기분을 나쁘게 만드는 저마다의 천부적인 재능과 자실을 갖고 있었다. 그 이름도 각양각색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절대로 듣지 않는 ‘귀막아’, 평상시에는 아무런 연락이 없다가 자신이 ‘필요한’ 때만 나타나 부탁하는 ‘필요한’, ‘필요한’에게 사람과 세상은 모두 필요를 매개로 엮인 인간관계의 네트워크다. 하지만 디지털 네트워크에는 상대방을 존중하거나 배려하지 않고 자기만 생각하는 ‘나뿐놈’과 시간이 날 때마다 자기 과시에 혈안이 된 ‘자랑질’이 곳곳에서 우리를 피곤하게 만든다. ‘자랑질’과 절친인 ‘입닥쳐’는 도무지 상대방이 말을 하지 못하게 말문을 막아버리는 천부적 재능을 갖고 태어났다. ‘옛날에’는 언제나 과거의 향수에 젖어 사람이며, ‘익숙한’은 타성에 젖어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를 기피한다. ‘왜읽어’는 책 읽는 사람을 불쌍하게 여기면서 책을 안 읽고도 얼마든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이며, ‘꼬투리’는 언제나 상대방의 단점을 찾아 지적하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저버림’은 자신이 받은 모든 은혜를 버리고 자신이 잘해서 잘 되었다고 생각하는 배은망덕한 사람이다.



바쁜 하루 일과를 마감하고 미리 약속한 서울의 한 카페에 모인 10면의 반면교사는 저마다의 위치에서 최소 10년 이상의 경력을 갖고 있는 베테랑이었다. 오늘 토론 주제는 ‘4차 산업혁명 시대는 독서혁명이 이끌어간다’는 내용이다. 결론적으로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기술혁명이 일어나려면 사고 혁명이 일어나야 되고, 사고 혁명은 독서혁명에 비롯된다는 게 주최 측의 숨은 의도다. 우선 발제자로 나선 ‘왜읽어’는 굳이 책을 읽지 않아도 우리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다양한 미디어와 SNS 채널의 존재가치를 주장한다. 대세가 유튜브라서 이제 읽는 시대가 아니라 보는 시대로 돌입했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을 듣던 ‘귀막아’는 우선 그런 뚱딴지같은 주장은 너무 현실을 모르는 주장이라고 일축한다. 여전히 분야별 권위 있는 사람의 책을 읽어야 한다고 일장 훈시를 늘어놓는다. 이에 질세라 ‘자랑질’은 자신이 그동안 읽은 책만 해도 몇 만권은 된다면서 종이책의 중요성을 준비된 멘트로 전달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지금 이렇게 멋진 주장을 할 수 있는 원동력도 다 책에서 얻은 지식 덕분이라는 것이다. 자랑질의 자랑하는 독서론에 기분이 몹시 상한 ‘입닥쳐’는 ‘자랑질’의 입을 틀어막으며 근거 없는 낭설을 그만 퍼뜨리라고 일격을 가한다. 책을 아무리 많이 읽었어도 실제 삶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독서는 죽은 독서라는 것이다. 말문을 막는 ‘입닥쳐’의 과격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자랑질’은 계속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한 자랑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 옆에 앉아있는 ‘귀막아’도 여전히 귀를 막고 다른 사람의 주장을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잠자코 상념에 잠겨 있던 ‘옛날에’가 드디어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가 독서 강국으로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너무 비참할 정도로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옛날에’는 책을 사서 아껴 읽을 정도로 책에 대한 사랑이 넘쳤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사람들의 눈이 옮겨가면서 책은 이제 역사적 유물로 사라지기 일보직전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옛날에의 절친 인 ‘익숙한’도 이에 질세라 한 마디 거들었다. 아날로그 세대는 다 종이책에 익숙해서 종이책이 아닌 다른 전자책이나 유부트처럼 영상으로 뭔가를 알려주는 미디어는 낯설다는 것이다. 그래서 익숙한 종이책 읽기를 포기하는 순간 아날로그 세대의 사고는 미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옛날에’와 ‘익숙한’은 모두 가수 이선희의 ‘아 옛날이여’ 노래를 합창하면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변화의 물결을 거부하지 않으면 4차 산업혁명은 오히려 인간을 피폐하게 만들 수 있다는 과격한 주장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그때 다시 ‘왜읽어’가 등장해서 자신이 책을 읽지 않고도 이렇게 지적으로 성숙했던 원동력의 비밀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자신은 책 보다 책을 읽은 사람을 만났고, 책을 쓴 저자가 요약해주는 강의를 발품 팔아서 들었으며, 각종 유튜브 강의를 매일 들었기에 책을 읽은 사람보다 훨씬 해박한 지식을 갖게 되었다는 주장을 펼쳤다.



오랫동안 침묵을 유지하고 있던 ‘나뿐놈’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책을 아무리 읽어도 다른 사람의 생각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귀막아’나 타인의 말문을 막고 자기주장만 일방적으로 펼치는 ‘입닥쳐’, 그리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 자랑에 몰두하는 ‘자랑질’, 그리고 예전 방식에 젖어 사는 ‘옛날에’와 ‘익숙한’은 모두 대오각성(大悟覺醒)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두 자기주장만 펼치고 있지 남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거나 자기주장과 다른 점을 존중해주지 않고 과거의 사고방식을 답습한다는 것이다. 뒷좌석에 앉아서 다른 사람의 주장을 유심히 듣고 있던 ‘꼬투리’가 ‘나뿐놈’의 ‘꼬투리’를 물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나뿐놈’, 너 역시 다른 사람의 주장이 갖고 있는 일리나 가치를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너만 생각하는 나쁜 놈이 아니냐고 정면으로 들이대기 시작했다. ‘귀막아’는 자기 귀는 막지 않고 남의 귀만 막으려고 주장했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필요한’ 역시 언제 나에게 필요한 주장이 나올지 눈치 보고 있지 않냐고 면박을 주었다. ‘자랑질’과 ‘입닥쳐’는 도대체 무슨 힘을 믿고 그렇게 자기주장만 나열하고 폭언을 일삼을 정도로 과격한 주장을 펼치느냐고 따져 묻기도 했다. 꼬투리가 잡은 ‘옛날에’와 ‘익숙한’은 도무지 새로운 도전을 하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다 안락사할 거냐고 손가락질을 하면서 질책을 가했다. ‘왜읽어’ 역시 책을 읽지 않고 무슨 사고의 혁명을 기대하는지 알 길이 없다고 ‘꼬투리’는 상대를 공격하는 주장을 멈추지 않았다.



이때 아무 말이 없었던 ‘필요한’이 드디어 말문을 여는 순간 ‘귀막아’와 ‘입닥쳐’가 기선을 제압했다. 너는 또 뭐가 필요해서 지금 나타났느냐는 것이다. 그런 공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필요한은 자신이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독서혁명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데 여러분의 이러한 주장이 꼭 필요하다면서 도움을 요청했다. 특히 ‘왜읽어’에게는 읽지 않고도 어떻게 그런 식견과 안목을 갖게 되었는지 특별 세미나 때 꼭 연사로 참석해서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새로운 사고 혁명의 필요성을 역설해달라고 부탁했다. ‘필요한’은 이어서 ‘옛날에’와 ‘익숙한’에게는 과거에 했던 독서의 중요성과 방식이 왜 오늘날에 잘 먹히지 않는지를 자신들의 경험에 비추어 한 마디 해달라고 부탁했다. ‘필요한’은 ‘자랑질’에게 특별히 자신이 그렇게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지를 세미나 발제 때 꼭 이야기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런 필요한의 필요한 부탁을 요청하는 순간, 모든 사람의 기대를 저버리고 떠났던 ‘저버림’이 뒤늦게 도착해서 그간의 사건과 사연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귀막아’가 준 귀마개, ‘필요한’이 준 피로회복제, ‘나뿐놈’이 준 예쁜 책, ‘자랑질’이 고백한 사랑, ‘입닥쳐’가 준 마스크, ‘옛날에’의 이선희 CD, ‘익숙한’이 선물한 익숙한 것과의 결별, ‘왜읽어’가 건네 준 유튜브 시청권, ‘꼬투리’가 준 사투리 교본 등은 자신이 험난한 인생을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을 준 천금 같은 선물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런 선물을 준 은혜를 저버린 과거의 배은망덕(背恩忘德)을 크게 반성하는 듯 머리를 조아리며 개과천선(改過遷善)을 약속했다.


내가 만났던 인생의 반면교사는 면면히 고유한 캐릭터를 지니면서 사람과 사람의 만남과 인간관계에 대한 소중한 정문일침(頂門一鍼)을 건네주었다. 이들이야말로 사람과 인간관계, 그리고 인생에 대해 많은 걸 깨닫게 해주는 위대한 반면교사가 아닐 수 없다. 여기 10명의 반면교사에 대한 간단한 스토리와 그들에게 배운 깨우침을 소개한다.


①남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는 ‘귀막아’


첫 번째 반면교사는 ‘귀막아’다. 그는 만나자마자 따발총을 쏘듯 그동안 있었던 일을 일방적으로 이야기한다. 밥을 먹다가도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다. 틈새를 노리다 내 이야기를 조금 할 때도 틈을 주지 않고 그 사이에 내 이야기에 대한 본인의 주장을 이야기한다. 여러 명이 모여도 언제나 그는 이야기꽃을 혼자 피운다. 개나리처럼 함께 무리를 이루어 피는 꽃이나 집단으로 아름다움을 창조는 군무(群舞)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 장미꽃이나 모란꽃처럼 혼자 피고 혼자 춤을 추는 독무(獨舞)를 즐긴다. 그를 만나고 집에 오는 날에는 귀가 먹먹하다. ‘귀막아’는 자신의 귀는 막고 남의 귀만 열어 놓으라고 우기면서 일방적으로 떠들어대는 사람이다. 말은 적게 하고 많이 들으라는 이야기가 바람에 휩쓸려 공중으로 날아간 날을 잊을 수 없다. 나는 ‘귀막아’에게 입은 하나이고 귀가 두 개 있다는 신비한 사실의 무력함을 배웠다.



②필요할 때만 나타나는 ‘필요한’


두 번째 반면교사는 ‘필요한’이라는 친구다. 그는 모든 인간관계를 거래로 본다. 아니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한 자원으로 사람을 바라본다. 자신에게 필요한 사람만이 자신에게 이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필요할 때만 나타난다. 내가 필요할 때 그는 언제나 그 자리에 없다. 지난여름에도 장문의 메일을 보내왔다. 꼭 내 도움이 필요하다는 간절한 내용이다. 나는 아주 짧게 답장을 썼다. “필요할 때 연락하면 필요한 걸 얻을 수 없다고.” 또다시 긴 사과문을 받았다. 너무 죄송하다고. 자신의 이익이 충족되면 언제든 떠하는 사람은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필요한 순간에만 잠시 나타나는 사람이다. 자신이 필요한 걸 충족하면 이 세상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무용한 세상이다. 나는 그에게 ‘필요한’ 순간, 필요한 것만 요구하면 인간적 피로감을 줄 수 있음을 배웠다.


③내 이익만 챙기는 ‘나뿐놈’


세 번째 반면교사는 ‘나뿐놈’이다. ‘나뿐놈’은 ‘나쁜 놈’의 자손 중의 한 명이다. 내가 만난 ‘나뿐놈’은 정말 모든 걸 자기중심으로 생각한다. 그 친구는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이 펼쳐진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그 친구를 만나면서 다시 한번 확인했다. 같이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도 언제나 자기 입장만 고수했다. 함께 일하는 친구들의 아픔이나 애로사항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내가 왜 그런 걸 신경 써야 되는지 모르겠다는 입장이다. ‘나뿐놈’은 인간이다. 아직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한 인간군상의 한 모습이다. 인간이 사람이 되려면 같이 살아가는 사람에게 인정을 받아야 한다. ‘나뿐놈’은 인간의 존재 이유와 살아가는 방식이 남과 더불어 만들어가는 협업을 모르는 인간이다. 나는 ‘나뿐놈’과 계속 만나면 인생이 절대로 가뿐하지 않음을 배웠다.



④자기 과시에 몰두하는 ‘자랑질’


네 번째 반면교사는 ‘자랑질’이다. 나는 이 ‘자랑질’을 만날 때마다 이 친구의 과신과 자만은 언제 끝날 수 있을지가 늘 궁금하다. 만나자마자 지난주에 진행했던 프로젝트가 전적으로 자신의 해박한 지식과 경험 덕분에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다는 일장 훈시를 한다. 과시는 언제나 훈시(訓示)를 통해 이루어진다. 하지만 훈시가 길어지면 꼰대로 낙인찍힐 수 있다. 안하무인은 벌써 많은 친구를 잃었다. 그럼에도 왜 친구들이 자신을 떠나는지 알지 못한다. 문제는 세상에 자기처럼 한 분야에 해박한 지식과 경험을 갖고 있는 친구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데에 있다. 과시가 거듭될수록 무시하는 사람도 비례해서 급증한다. 과시는 무시를 불러오고 멸시를 낳는다. 나는 ‘자랑질’을 만나면서 자기 과시는 필연적으로 자기 멸시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배웠다.


⑤아무 때나 말문을 막는 ‘입닥쳐’


다섯 번째 반면교사는 ‘입닥쳐’다. 내가 아는 ‘입닥쳐’는 자기 입만 말하는 입인지 착각하는 불쌍한 인간이다. 자기 입으로 이야기하면 그건 누구나 따라야 할 진리이고, 다른 사람의 입으로 이야기하면 입을 막아버린다. 말문이 자유롭게 열려야 새로운 관문을 열어갈 수 있다. 내가 최근에 만난 ‘입닥쳐’는 권위적인 상징의 모델이다. 그는 언제나 타인의 소중한 의견을 듣기보다 자신의 말만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입만 입으로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입은 왜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입닥쳐’야말로 입을 닥쳐야 하지 않을까. 한번 막힌 말문은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관문을 막아버린다. 나는 ‘입닥쳐’에게 입을 함부로 놀리면 내 몸에 깊은 상처가 남는다는 사실을 배웠다.



⑥과거의 추억이나 향수에 매몰된 ‘옛날에’


여섯 번째 반면교사는 ‘옛날에’다. ‘옛날에’는 지금 여기서 살고 있지만 언제나 그의 거처는 과거다. 내가 정말 가기 싫은 모임이 있다. 그 모임에만 가면 모든 사람들이 다 옛날이야기만 한다. 그때가 정말 좋았었는데, 좋은 시절 다 갔다고 한다. 그때 정말 재미있었는데 지금은 힘든 일만 반복된다고 불평한다. ‘옛날에’들이 모인 모임에는 미래가 없다. 현재도 없다. 과거의 향수와 추억에 흠뻑 젖어 있고 물들어 있다. 달콤한 향수와 아련한 추억에 젖어있다 보니 현실인식과 미래 전망이 없다. 경험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지 않고 과거의 경험에 빠져 있을수록 위험한 꼰대가 된다. 나는 ‘옛날에’를 통해 과거의 향수에 젖어들면 근거 없는 이상향에 기거하면서 살아가는 위험한 삶과 맞닥뜨릴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⑦타성에 젖어 만나던 사람만 계속 만나는 ‘익숙한’


일곱 번째 반면교사는 ‘익숙한’이다. ‘익숙한’이는 어떤 도전도 회피하고 지금 여기서의 삶에 안주한다. 나는 ‘익숙한’을 만날 때마다 최소한의 변화도 거부하면서 관성대로 살아가는 삶을 목격한다. 최근에도 ‘익숙한’을 만나면서 지루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어떤 노력과 자세가 필요한지를 몸소 느꼈다. 그는 언제나 어제와 다른 삶을 살기보다 어제가 반복되는 삶에서 편안함과 안락함을 느낀다고 한다. ‘익숙한’은 소위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삶 이외에는 다른 삶을 왜 살아야 하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익숙한’이 가장 싫어하는 적은 ‘낯선이’다. ‘낯선이’는 ‘익숙한’에게 최대의 기피대상이다. ‘익숙한’이 성숙하기 위해서는 익숙한 여기를 떠나 낯선 저기로 떠나야 한다. ‘익숙한’이는 늘 만나던 사람만 반복해서 만난다. 나는 ‘익숙한’에게 성숙한 삶은 ‘익숙한’ 것과의 결별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배웠다.



⑧책을 읽지 않아서 책 잡히는 ‘왜읽어’


여덟 번째 반면교사는 ‘왜읽어’다. ‘왜읽어’는 책 읽는 사람을 무책임하다고 비난한다. 책을 읽지 않고도 얼마든지 책임질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는데 왜 책을 읽는지 모르겠다고 항변한다. 그들은 책에 진리가 있기보다 우리가 살아가는 매일 매일의 삶에 진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왜읽어’가 위험한 이유는 나와 다른 사람의 생각에 접속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데 있다. 가끔 만나는 사람 중에 ‘왜읽어’는 주변에 너무 많다. ‘왜읽어’는 특히 최근에 더욱 기승을 부린다. 책 말고도 내가 원하는 정보를 보다 쉽고 편리하게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많은데 왜 굳이 책을 읽어야 되는지 모르겠다는 주장이다. 나는 ‘왜읽어’를 통해 우리 모두가 일거에 망할 수 있는 지름길은 책을 읽지 않는 독서 혐오증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⑨장점보다 단점만 드러내는 ‘꼬투리’


아홉 번째 반면교사는 ‘꼬투리’다. ‘꼬투리’의 인생은 상대방의 단점을 발견하기 위한 삶이다. 내가 만난 ‘꼬투리’는 상대방의 단점을 끄집어내서 질책하는 천재다. 그의 눈은 언제나 상대방의 아킬레스건이다. ‘꼬투리’의 눈은 상대방의 장점에는 눈감고 단점에 눈을 뜨도록 설계되어 있다. 나는 ‘꼬투리’와 미팅을 할 때마다 느끼는 점 중의 하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너무 부정적으로 편향되어 있다는 점이다. ‘꼬투리’는 긍정보다 부정, 장점보다 단점을 보는 눈을 지속적으로 개발해온 ‘꼬투리’는 모든 사람과 이야기할 때마다 ‘꼬투리’를 잡아 물고 늘어지는데 천재다. ‘꼬투리’는 자신이 잡은 꼬투리가 세상의 진리라고 믿는 친구다. 토끼는 자신의 약점을 보완해서 오리처럼 수영할 수 없다. 단점은 영원히 장점이 될 수 없다. 나는 ‘꼬투리’에게 사람의 ‘단점’만 지적하다 인간관계가 ‘단절’될 수 있음을 배웠다.



⑩ 받은 은혜를 헌신짝처럼 버리는 ‘저버림’


마지막 반면교사는 ‘저버림’이다. ‘저버림’은 자신이 이렇게 성공했거나 성취한 결과를 덕분에 잘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저버림’은 자신을 도와준 사람의 은혜도 순식간에 잊어버리는 탁월한 재능의 보유자다. 간절하고 절박한 도움을 요청해서 ‘저버림’을 도와주면 돌아오는 것은 배신이나 배은망덕(背恩忘德)이다. 언제나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지만 ‘저버림’은 밥 먹고 살기 바쁜 일상에 매몰돼 자신이 누구 덕분에 이렇게 잘 나가고 있는지를 망각한다. ‘저버림’의 주특기는 저기 멀리에 자신이 입은 은혜를 아무 생각 없이 갖다 버리는 데 있다. ‘저버림’은 ‘버림’이 낳은 배은망덕의 후손이다. 나는 ‘저버림’에게 언제라도 입장이 바뀌면 버림받을 수 있음을 배웠다.


반면교사는 면전에서 사람과 인간관계를 가르쳐주는 정면교사와는 다르다. 반면교사의 가르침은 우회적이다. 반면교사는 돌아가는 길이 빠르다는 우직지계(迂直之計)의 가르침을 전해주는 인생의 위대한 스승이다. 반면교사는 이렇게 해야 된다는 옳은 이야기를 전달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면교사는 이렇게 하면 망한다는 역설을 가르쳐 준다. 반면교사는 우리가 사람을 만나면서 조심해야 될 것이 무엇인지를 반추해보고, 반성하게 만들며 마침내 깊은 성찰을 유도해내는 놀라운 인생 지침서를 전해준다. 10명의 반면교사는 마침내 대오각성(大悟覺醒)하고 타산지석(他山之石) 스승을 만난다. 잘 못된 행동을 보고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우회적 깨달음을 이제 실제로 행동에 옮기면서 인간관계를 자기 수양의 무대로 삼는 경지로 발전시킨다. 타산지석은 반면교사의 깨달음을 세상에 전파하는 또 다른 스승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사람 사진.png

이글은 '이런 사람 만나지 마세요'라는 책으로 다른 글과 묶여서 책으로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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