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게 배우는
10가지 인문학적 지혜

지식생태학자 유영만 교수가 전해주는 나무에게 배우는 지혜

나무에게 배우는 10가지 인문학적 지혜


나무의 물리학

나무의 크기는 뿌리의 깊이에 비례한다.

보잘것 없이 초라한 그 나무와

꽃잎같이 하늘거리는 그 나뭇잎이

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순간, 나는

뉴턴의 사과처럼

사정없이 나무에게로 굴러 떨어졌다/

쿵 소리를 내며, 쿵쿵 소리를 내며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진자운동을 계속하였다.


나무에 대한 첫사랑이었다.


김인육의 ‘사랑의 물리학’을 패러디한 시다. 나무를 너무 사랑하면서 나무로 하루를 시작하고 나무를 바라보며 하루 일과를 보내면서 나무가 가르쳐주는 지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나무는 왜 나무라지 않는지 나무 가까이서 나무를 유심히 관찰도 해보고 나무 옆에 가서 가만히 귀도 기울여보았다. 어느 순간 나무가 도처에 서 있지만 우리는 나무를 의식하지 못한 채 나무가 우리에게 베푸는 미덕을 잊고 산다는 점을 깨달았다. 나무를 주변 어디에나 있는 하나의 생명체로 보지 않고 인간에게 뭔가를 가르쳐주는 스승으로 보기 시작했다. 생태계를 유지하고 가꾸어나가는데 나무는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구성요소다. 나무를 스승으로 모시면서 나무를 인문학적 탐구 대상으로 삼으면서 《나무는 나무라지 않는다》라는 책도 냈다. 나무에게 배운 10가지 교훈을 정리해보았다.


나무생각 독서 13.jpg


①나무는 생명의 근본(根本)이다.


존재의 본질은 뿌리를 아래로 뻗는다. 뿌리를 아래로 뻗은 깊이만큼 내가 도달할 수 있는 진리를 결정한다. 뿌리를 내리는 공부에 힘써야 앞으로 나갈 길을 만날 수 있다. 본립도생(本立道生)이라는 말이 있듯 기본과 뿌리를 제대로 잘 세우면 길을 열린다. 내가 뻗은 뿌리의 깊이가 내가 성장할 수 있는 높이를 결정한다. 높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우선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한다. 뿌리를 깊이 내리면 뿌리치지 못한다.

②나무는 꿈을 꾸지 않는다.


나무에게는 모든 순간이 결정적인 순간이다. 나무는 지금 이 순간 여기서 목숨을 걸고 살아갈 뿐이다. 나무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위해서 살아가지 않는다. 나무는 가을에 단풍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살아가지도 않는다. “평생 동안, 삶의 결정적인 순간을 찍으려고 노력했는데, 삶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인 순간이었다.”사진작가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Henri Cartier Bresson)의 말이다. 나무 역시 매 순간 치열하게 살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나무는나무라지-앞표지.jpg


③나무는 환경을 탓하지 않는다.


씨앗이 떨어진 자리가 내가 살아갈 자리다. 나무에게는 자리 선택권은 없고 오로지 자세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씨앗이 비옥한 땅에 떨어지면 목재로 자라고 바위틈에 떨어지면 분재가 된다. 어디에 씨앗이 떨어지든 그 자리에서 목숨을 걸고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나간다. 선택한 자세가 나의 자질과 역량을 결정해주는 선물이다. 나무는 자리를 탓하지 않고 오로지 주어진 자리에서 살아가기 위한 결연한 자세를 취할 뿐이다.


④나무의 본질은 나목(裸木)이다.


나무의 진면목(眞面目)은 나목이다. 성하의 여름을 녹음과 함께 보낸 나무는 가을에 불타는 단풍으로 마지막 사력을 다해 살아가면서 혹한의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모든 잎을 땅으로 돌려주고 몸집을 가볍게 만든다. 나무는 때가 되면 버리고 비우는 지혜를 몸에 익힌 것이다. 나무는 ‘겨우내’ 나목(裸木)으로 버티다 ‘겨우 내’가 되는 힘든 과정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허장성세의 거품을 걷어내고 나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나목에서 삶의 지혜를 배운다.


나무생각 독서 14.jpg


⑤나무는 절망 속의 희망이다.


준비에 실패하는 것은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이다. 마지막 남은 씨 과실에서 새봄의 희망을 본다는 석과 불식(碩果不食)의 지혜를 나무에게서 배운다. 나무가 만드는 겨울눈(冬芽)도 겨울에 만들지 않는다. 이른 봄부터 준비해서 겨울을 버티는 눈(芽)을 만든 다음 새봄에 다시 희망의 싹을 틔운다. 겨울눈(冬芽)은 겨울에 눈(雪)이 어디까지 내리는지 아는 눈(目)이다. 겨울눈을 눈이 덮어버리면 다음 해 새봄의 희망을 싹 틔울 수 없음을 아는 나무의 지혜다. 나무는 저마다의 끝에서 언제나 새롭게 시작한다. 절망의 끝은 영원한 좌절의 끝이 아니라 희망을 싹 틔우는 출발선이다.

⑥나무는 여러 가지다.


나뭇가지는 여러 가지로 뻗는다. 여러 가지는 한 가지 나무줄기에 뻗어 나온다. 여러 가지인 것 같지만 뿌리를 찾아가면 다 마찬가지다.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문제를 만나지만 다 마찬가지다. 여러 가지를 뻗다 보면 고지에도 오르고 경지에도 이른다. 가지가지해봐야 ‘고지(高地)’에 갈 수 있다. 가지가 자라면서 환경적 열악함을 이겨내려고 굽은 가지, 즉 곡지(曲枝)가 생긴다. 곡지가 있어야 심지(心志)도 굳어진다. 나뭇가지는 가지치기(pruning)를 해줘야 가지치기(branching)를 잘할 수 있다. 가지치기(branching) 없이 가지치기(pruning)를 할 수 없다.


나무 캘리 액자.jpg


⑦나무는 불타는 의지다.


의지(依支)할 곳이 없을 때 가장 강력한 의지(意志)를 발휘한다. 나무는 발버둥 치면서 성장하려는 ‘힘에의 의지’를 갖고 살아간다. 니체가 말하는 힘에의 의지는 발버둥 치며 성장하려는 의지이자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저기로 가려는 상승작용의 의지다. 의지(依支)하고 싶은 나무가 우리에게 무한한 의지(意志)를 심어준다. ‘단풍’은 살아남은 나무가 마지막 사투를 벌이며 보여주는 ‘열풍’이다. 치열하게 한 해를 살아온 나무일수록, 혹독한 환경 속에서 시련받은 단풍일수록 단풍의 아름다움이 절정에 달한다.


⑧나무는 비움이자 쉼이다.


쉬지 않으면 쉬게 된다. 나무는 살아남기 위해 동안거나 하안거와 같은 해거리를 한

다. 나무는 한 해 열매를 많이 만들면 다음 해에도 열매를 많이 맺지 않는다. 너무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걸 나무는 안다. 한 해 풍성한 열매를 맺기 위해 사투를 벌인 나무는 다음 해에는 쉰다. 해거리는 나무가 살아남기 위한 비장한 결단이자 몸부림이다. 해거리를 하지 않고 욕심을 부리는 나무는 오래 생존하지 못한다. 생존 자체를 보장하기 위해서 나무는 쉴 때를 안다.

⑨나무는 모든 사람에게 스승이다.


진정한 스승은 가르치지 않고 가리킨다. 나무는 고난 극복의 지혜를 온몸으로 알려주되 생색을 내지 않는다. 예를 들면 나무의 씨앗은 바람에 날려가거나 동물이나 사람에게 먹혀서 배설물 나와 자리를 잡고 줄기차게 자란다. 나무는 먹혀야 먹고살 수 있음을 간파한 것이다. 바람에 날려가는 나무 씨앗은 모험을 감행해야 꿈을 펼칠 수 있음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다. 자라면서 나무는 옹이를 맺는다. 옹이는 나무의 한이 맺힌 응어리다. 옹이는 외부의 상처가 안으로 깊어져 생긴 고통의 흔적이자 나이를 먹으면서 자기 몸에 아로새긴 삶의 얼룩이다. 나무는 언제 흔들리는가? 살아있는 ‘거목(巨木)’은 흔들리지만 죽은 ‘고목(古木)’은 흔들리지 않는다!


⑩나무는 방랑하는 예술가다.


나무는 자연선택이 아니라 자연 표류의 결과다. 나무는 나무 씨앗이 품고 있는 유전적 특성에 따라 자라는 것이 아니다. 나무는 씨앗이 바람에 날려 흩어지거나 물길을 따라 표류하다가 정착한 곳에서 자란다. 언제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나무는 환경에 따라 표류하면서 부딪히는 돌발적 변수가 낳은 우연의 산물이다. 나무는 유전자의 본래 의도나 사전에 기획된 의도대로 살아가는 게 아니다. 나무는 지금 여기서 만나는 불확실한 다양한 변수를 만나 이렇게 휩쓸리고 저렇게 흔들리며 자리를 잡아가는 방랑 예술가다.

나무 책 글씨.jpg


나무는 뿌리로 땅(地)의 소리를 듣고 줄기와 가지로 하늘(天)의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깨달은 지혜를 인간에게 전해주며 천지인(天地人)의 조화를 꿈꾸며 살아간다. 나무를 우러러봐야 되는 이유는 가장 낮은 땅에서 씨앗을 뿌리고 가장 높은 하늘을 향해 하루도 쉬지 않고 분투노력하는 치열함 때문이다. 나무를 바라보기 위해서는 아니 나무의 마음을 가슴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내려다봐서는 안 되고 오로지 우러러볼 수밖에 없다. 나무를 깔보지 않고 우러러봐야 되는 이유다. 나무를 알기보다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자연을 아는 것은 자연을 느끼는 것의 절반만큼도 중요하지 않다.” 머리로 자연을 이해하는 것보다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 소중함을 역설한 레이첼 카슨의 명언이다. 마찬가지로 나무를 아는 것보다 느끼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책상에 앉아서 나무에 관한 책을 수십 권 보는 것보다 직접 나가서 나무를 만나 말도 걸고 어루만지면서 나무가 살아온 지난 삶의 여정을 조용 들어보는 게 중요하다.

나무에 관한 기도문


언제나 우리 주변에 계신 나무여!

나무를 사랑하며 살아가게 해 주시고

나무에게 배우며 살아가는 길이

생명과 우주의 본질을 만나는 길임을

온몸으로 증거 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주변에 계신 나무여!

우리에게 나무로 사색할 여유를 주옵시고

진정한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나무를 통해 성찰하게 해 주심에

눈물겨운 감동을 느끼고 있습니다.

나무가 나무라지 않으면서 인간이 저지른 죄를 사하여 준 것과 같이

인간이 나무에게 남긴 상처와 고통을 치유하여 주시옵소서.

나무가 전해주는 감동과 위대한 지혜가

앞만 보고 달려가는 속도와 능률 복음에 왜곡되지 않게 도와주시고

허황된 욕망으로 유혹하는 불행한 미래상에서 벗어나게 해주시옵소서.


나무 캘리 액자1.jpg


“나무가 나무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자고. 나무의 꿈은 낙락장송(落落長松)이나 명목(名木)이 되는 게 아니라 더불어 숲이 되는 것”이라는 고 신영복 교수님의 말씀처럼 모든 사람은 소나무처럼 독야청청(獨也靑靑)하는 인재보다 신갈나무처럼 더불어 숲은 이루는 인재로 자라야 한다. 나무가 살아가는 세계, 한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평생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나무가 나직하게 들려주는 나무와 숲이 만들어가는 지혜의 향연을 가만히 들어보자. “나무가 보내는 긴 침묵과 기도, 그리고 지혜의 숲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출판사 ‘나무 생각’ 홈페이지에 나오는 글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곡선은 세상을 다르게 보는 시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