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는 산이다!
뚜르 드 몽블랑에서 배운 관계에 관한 10가지 교훈
인간관계는 산이다!
뚜르 드 몽블랑(Tour du Mont Blanc, TMB)을 걸으면서 요즘 나의 화두로 고민하고 있는 인간관계를 다르게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잡아보려고 했다. 총 6일 동안 하루 평균 6시간 내외를 걸으면서 몽블랑 주변의 산세와 산맥, 자연경관이 주는 아름다움에 취해 생각의 발로를 찾아 걷고 또 걸어보았다. 그러던 와중에 “인간관계는 산”이라는 메타포를 생각해보았다. 인간관계와 산은 겉으로 보기에는 닮지 않았지만 산의 특성과 인간관계의 본질은 여러 가지 젊에서 닮았다. 인간관계를 산으로 비유했을 때 산행이 주는 의미와 가치를 반추해보면서 인간관계에 적용할 수 있는 시사점을 찾아낼 수 있다. 산은 너무 가까이 가서도 너무 멀리 떨어져서도 산의 정체를 제대로 알 수 없다. 몽블랑 정상은 몽블랑 정상에 도착해서는 알 수 없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봐야 몽블랑 정상 4,810m가 보여주는 위용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인간관계도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한 사람의 진면목을 제대로 읽어낼 수 없다.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할 때 인간관계는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강화하면서 성숙한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관계는 혼자 노력한다고 생각만큼 이루어지지 않는다. 내 생각을 일방적으로 주장해도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고, 상대방의 의견을 무조건 수용해도 건강한 관계는 형성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신뢰라는 미덕은 리더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일방향적으로 생기지 않는다. 신뢰는 리더의 언행을 믿고 따르는 팀원의 팔로워십(followership)이 전제될 때 비로소 빛을 발하는 능력이다. 마찬가지로 인간관계도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가운데 비로소 피는 합작품이다.
모든 산은 저마다의 풍경이 다르고(轉禍爲福) 단숨에 정상에 오를 수 없다(登高自卑). 산을 정복하려는 등산보다 산과 한 몸이 되는 입산으로 산을 즐기며(渾然一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손뼉 쳐줄 때 없었던 힘도 생긴다(孤掌難鳴). 산이 높으면 우여곡절(迂餘曲折)의 시절을 보내면서 골짜기도 깊고, 원대한 먼산만 염두에 두다 눈이 멀어지고( 雪上加霜), 언제나 올라갈 수 없고(物極必反), 저마다의 방식으로 힘들게 산에 오르지만 결코 좌절하지 않으며(百折不屈), 예측불허(豫測不許)의 상황이 발목을 잡을 수도 있지만 고행으로 시작되는 산행이지만 동행(桃園結義)이기에 함께 할 수 있는 행복도 그만큼 커진다. 산행은 동행이기에 나의 개인적인 입장보다 함께 하는 동료와의 관계가 산행의 성패를 결정한다. 뚜르 드 몽블랑에서 배운 10가지 교훈을 일부 공개한다.
①풍경은 곤경이 낳은 자식이다(전화위복, 轉禍爲福).
②‘계단’을 뒤집으면 ‘단계’가 된다(등고자비, 登高自卑)
③산은 ‘정복’ 대상이 아니라 ‘탄복’의 주체다(혼연일체, 渾然一體)
④‘거리’를 유지하지 않으면 ‘욕지거리’가 나온다(고장난명, 孤掌難鳴)
⑤모든 ‘자기’는 깊은 ‘골짜기’에서 태어난다(우여곡절, 迂餘曲折).
⑥먼 산만 바라보다 눈만 멀어진다(설상가상, 雪上加霜)
⑦올라가면 내려와야 한다(물극필반, 物極必反)
⑧힘들어야 힘 들어간다(백절불굴, 百折不屈)
⑨발목을 보호하려다 발목 잡힐 수 있다(예측불허, 豫測不許)
⑩산행은 고행(苦行)이지만 동행(同行)이다(도원결의, 桃園結義)
⑩+1 처지가 입장을 결정한다((국면전환, 局面轉換)
①풍경은 곤경이 낳은 자식이다(전화위복, 轉禍爲福).
모든 산은 풍경이 다르듯 사람도 저마다의 다른 배경으로 태어난다. 높은 산은 높은 산대로 위엄이 있고 낮은 산은 낮은 산대로 아름다운 자태를 지닌다. 산이 지닌 풍경은 오랜 시간 세월이 주는 풍파를 견뎌가면서 만들어진 역사적 산물이다. 산세(山勢)는 산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풍파와 곤경을 견디며 만들어낸 아름다운 풍경이다. 마찬가지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맺어지는 인간관계도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독특한 기세(氣勢)를 보여준다. 산이 땅 위로 솟아오른 배경이 다르듯 탄생 배경이 다른 사람이 만들어가는 인간관계도 저마다의 고유한 색깔을 지닌다. 김훈이 《풍경과 상처》에서 “모든 풍경은 상처의 풍경일 뿐이다”(4쪽)라고 말했듯이 우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모든 풍경은 상처를 남겼던 곤경이 밑거름이 되어 탄생한 사회적 합작품이다. 몽블랑이 보여주는 위용(威容)도 지층의 심한 움직임과 단층 작용 끝에 생성된 산세이듯, 인간관계로 드러나는 풍경도 숱한 역경을 극복하며 함께 만든 합작품이다.
②‘계단’을 뒤집으면 ‘단계’가 된다(등고자비, 登高自卑)
산은 낮은 산이든 높은 산이든 단숨에 정상에 오를 수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원하는 인간관계도 한 번에 이상적인 경지에 오를 수 없다. 높은 산에 오르려면 낮은 곳에서 등반을 시작하는 등고자비(登高自卑)처럼 튼실한 인간관계를 구축하려면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진실한 마음으로 맞이해야 한다. 산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밖에서 관망하지 말고 안으로 들어가 깊이 들어가야 되듯 인간관계의 진면목도 마음을 열고 서로의 내면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인간관계도 물리적 접촉에서 시작해서 점차 인간적 만남으로 이어지면서 신뢰가 기반이 되는 튼실한 연대가 만들어진다. 계단은 하나씩 단계적으로 올라가라는 의미다. 숨을 죽일 정도로 아찔한 전망대도 아래로부터 올라야 하듯 인간관계도 속성재배보다는 숙성 양육으로 천천히 단계적으로 가꾸어나가야 한다. 복잡하게 얽힌 관계의 난국도 실타래를 풀 듯 하나씩 풀어나가면 마침내 희망이 보이고 새로운 단계로 도약할 수 있는 가능성의 문이 열린다.
③산은 ‘정복’ 대상이 아니라 ‘탄복’의 주체다(혼연일체, 渾然一體)
등산은 산을 정복 대상으로 삼는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만 입산은 산을 나와한 몸이 되는 또 다른 주체로 생각하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등산의 목적은 가급적 빠른 시간에 산의 정상에 오르려는 등정주의(登頂主義) 패러다임을 구현하는 데 있다. 반면에 입산의 목적은 남들이 걸어가지 않은 길을 찾아 산과 한 몸이 되어 과정을 즐기는 등로주의(登路主義) 패러다임을 구현하는 데 있다. 등로주의를 주창했던 앨버트 프레드릭 머머리(Albert Frederick Mummery)는 “길이 끝나는 곳에서 비로소 등산은 시작된다”라고 했다. 이미 누군가 개척한 길을 따라 보다 빨리 정상을 정복하려는 등정주의와는 다르게 등로주의는 남들이 걸어가지 않은 전인미답의 루트를 개척하며 등반 여정 자체를 즐긴다. 마찬가지로 인간관계를 거래를 목적으로 삼아 누군가의 힘을 이용하거나 차용하는데 목적을 둔다면 인간관계의 효용성만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등로주의에 비추어본 인간관계는 관계 형성 과정을 배움의 과정으로 생각하며 모든 사람을 스승으로 모신다. 등로주의는 어떤 결과를 일정한 기간 내에 만들어내야 되는 비즈니스 관계라기보다 관계 속에서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적인 삶을 지향한다. 등로주의는 이미 걸어간 길을 빠르게 쫓아가는 과정보다 누구도 걸어가지 않은 자기만의 길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걸어가는 과정을 즐긴다.
④‘거리’를 유지하지 않으면 ‘욕지거리’가 나온다(고장난명, 孤掌難鳴)
산속의 모든 생명체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사이좋게 자란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비롯해 숲 속의 모든 생물과 생물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할 때 서로의 성장에 방해가 되지 않는 좋은 사이가 된다. 사이가 좋은 사람일수록 가까이 접근하되 일정한 거리를 두고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인간관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에 따르면 3.5m 이상의 공적인 거리와 약 1.2미터에서 약 3.5미터 이내의 사회적 거리가 있고 45센티에서 약 1.2미터 이내의 개인적 거리가 있다고 한다. 45센티미터 이하가 되면 밀접한 거리가 되어 상대방의 존재감을 확실하게 느끼게 되고 15cm 이내로 가까워지면 상대를 위협하는 격투의 거리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잘 알지 못하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거리를 좁혀나가면 상대방은 위협을 느끼고 급기야 욕지거리가 나올 수 있다. 친한 관계일수록 적당한 거리를 두고 상대가 존재의 불안감이나 위협감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다.
⑤모든 ‘자기’는 깊은 ‘골짜기’에서 태어난다(우여곡절, 迂餘曲折)
높은 산일수록 골짜기도 깊다. 산이 높으면 계곡도 깊어지고, 계곡이 깊어지면 품을 수 있는 물의 양도 많아진다. 마찬가지로 덕망이 높은 사람일수록 범접할 수 없는 내공도 깊다. 나아가 파란만장하고 우여곡절의 인생을 살아온 사람과의 인간관계도 희로애락(喜怒哀樂)을 품을 수 있는 가능성도 그만큼 깊어진다. 산의 높이가 물을 품을 수 있는 계곡의 깊이를 결정하듯 관계의 깊이가 감싸 안을 수 있는 아픔의 정도를 결정한다. 관계의 깊이가 깊을수록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경계의 높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서로가 힘을 합쳐 경계를 무너뜨리고 관계를 가깝게 만드는 다리로 탈바꿈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돈독한 관계는 넘을 수 없는 경계도 넘게 만들고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한계도 돌파하는 마법의 연대망이다. 자기 정체성은 깊은 사유와 시행착오 속에서 비로소 터득하는 자기 색깔이다. 인간관계도 공자가 논어의 자로 편에서 이야기했던 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라고 했다. 다른 사람과 생각을 같이하지는 않지만 이들과 화목할 수 있는 군자의 세계를, 밖으로는 같은 생각을 가진 것처럼 보이나 실은 화목하지 못하는 소인의 세계와 대비시켜 군자의 철학을 인간이 추구해야 할 덕목이라고 했다.
⑥먼 산만 바라보다 눈만 멀어진다(설상가상, 雪上加霜)
먼 산을 넘으려면 우선 앞산부터 넘어야 한다. 앞산도 넘지 않고 먼 산만 계속 바라보며 망상과 몽상에 잠기면 눈만 멀어질 수 있다. 먼 산은 넘기 전에는 고행의 산이지만 넘고 나면 더불어 행복한 동행의 길이 열리는 산이다. 먼 산을 넘는 유일한 방법은 앞산을 먼저 넘고 다시 먼 산에 도달하는 방법이다. 산은 수많은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듯이 인간관계의 경지도 넘어야 할 장애물이나 장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문제는 먼 산을 넘기 위해 숱한 봉우리를 넘어야 하듯이 지속 가능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숱한 봉우리를 넘어야 한다. 힘겹게 넘은 봉우를 생각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 쉬는 순간 또 다른 봉우리가 앞을 가릴 때 깊은 좌절과 절망감을 느낀다. 산 넘어 산이라고 하듯 넘어도 끝이 없는 봉우리는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산봉우리만을 가리키지 않고 인간관계를 깨트리는 경계를 만들고 장애물로 작용하는 심리적인 장벽을 지칭하기도 한다.
⑦올라가면 내려와야 한다(물극필반, 物極必反)
사물이 극에 달하면 반전을 거듭하듯 산 정상에 오르면 반드시 내려와야 한다. 음이 극에 달하면 양의 기운이 샘솟고 양의 기운이 극에 달하면 음의 기운이 발현되기 시작한다. 산 정상에 오르면 반드시 내려와야 다음에 다시 올라갈 수 있다. 등산보다 하산, 이륙보다 착륙 시에 사고가 많이 나듯, 만남보다 헤어짐, 사랑보다 이별할 때 깊은 상처가 생긴다. 모든 관계도 상승과 하강, 기쁨과 슬픔, 어둠과 밝음, 바닥과 정상, 절망과 희망의 이중주다. 관계가 항상 좋을 수는 없다. 언제나 맑은 날만 계속되지 않듯이 비가 오는 날에는 무지개를 희망으로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때가 되면 모든 비는 그치고 모든 눈은 녹는다. 여기서 말하는 ‘때’가 바로 사물이 극에 달하면 반전을 거듭하는 시점이다. 산을 올라갈 때의 힘듬과 정상에 맛보는 뿌듯함이 공존하듯 인간관계도 힘든 여정 속에서 느끼는 빠듯함이 알게 모르게 찾아오는 뿌듯한 행복감으로 상쇄된다. 바닥을 긴다고 좌절하지 말고 정상을 달린다고 자만하지 말자는 게 물극필반이 전해주는 지혜다.
⑧힘들어야 힘 들어간다(백절불굴, 百折不屈)
고산과 험산일수록 산은 사람의 접근을 하용하지 않는다. 산이 아름다운 이유는 위험한 곳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모든 아름다움은 사투 끝에 피워낸 사람다움이기 때문이다. 산을 오르는 사람은 저마다의 이유로 오른다. 무거운 자전거를 메고 힘겹게 올라가 산악자전거 타기를 즐기는 사람, 아직 어리기만 한 5살 딸을 데리고 무거운 배낭을 온몸으로 짊어지고 산을 타는 러시아 모녀, 인생 100세를 살았을 법한 노부부가 정겹게 대화를 나누며 몽블랑을 가슴에 품어주는 사람, 그들은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힙 겹게 살아가고 있다. 8살 아들을 데리고 몽블랑 트레킹에 참석한 원장님을 비롯해 우리 팀도 저마다의 이유를 갖고 고행일 수밖에 없는 뚜르 드 몽블랑 트레킹에 참석했다. 중간에 힘든 상황이 발생해서 계획을 수정하고 노선을 바꾸는 상황이 있었어도 버티고 견디면서 위기를 극복해냈다. 힘이 들면 없었던 힘도 사용해서 난국을 돌파하려고 한다. 힘든 상황이 힘을 내는 사람을 만들어낸다. 백번 넘어져도 굴하지 않고 앞으로 나가는 용기야말로 인간관계의 난관을 돌파하는 전략이기도 하다.
⑨발목을 보호하려다 발목 잡힐 수 있다(예측불허, 豫測不許)
산행은 정해진 코스를 가지만 때로는 생각지도 못한 돌발변수가 발생해서 원하는 목적지에 이르는 과정을 방해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한다. 고산지 대일 수록 일교차가 심하고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햇볕이 강렬하게 내리쬐다가도 순식간에 먹구름이 비구름으로 바뀌면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폭우가 쏟아지고 천둥과 번개가 치다 심한 비바람과 함께 우박을 동반하기도 한다. 자연환경의 변화무쌍함으로 생각지도 못하게 등반 여정에 발목을 잡히기도 하지만 의도적으로 준비한 등산장비가 문제가 발생해서 예기치 못하게 발목을 잡히는 경우도 있다. 발목을 보호하고 신발 안으로 모래가 들어가지 않도록 중등산화를 신었다. 발목 위까지 덮어주는 중등산화가 그동안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다가 둘째 날부터 발목 오른쪽 위가 통증이 가중되기 시작했다. 발목을 덮어주는 등산화가 발목을 잡아서 하마터면 중도 포기할 수 있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변수가 개입되어 잘 나가던 사이에 금이 가고 관계가 경계로 바뀌는 예측불허의 사건과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⑩산행은 고행(苦行)이지만 동행(同行)이다(도원결의, 桃園結義)
산을 오르내리는 일은 산세에 따라 다르겠지만 평범한 길을 걸어가는 보행과는 다르다. 산행도 사람마다 느낌이 다르겠지만 육체적 노동의 강도가 요구되는 힘든 여정이다. 혼자 산에 올랐다고 해도 혼자 힘으로 산의 정상에 오른 것이 아니다. 날씨가 도와줬고, 무엇보다도 산이 나를 받아준 덕분에 산행의 고통이 즐거움으로 바뀐 것이다. 함께 하는 산행은 서로 밀고 당기고 끌어주면서 이끌어주는 동행이다. 동료의 무거운 배낭을 들어준다든지 힘든 사퇴를 벌이고 있는 동료에게 손을 내밀어 도와주는 덕분에 모두가 함께 산행하면서 동행의 즐거움을 맛보는 것이다. 인생 최고의 벗은 동료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몸을 던져 자기 일처럼 도와주는 발 벗이다. 중등산화 때문에 발목 위 상처가 생겨서 심한 통증을 반복해서 느꼈을 때 기꺼이 자신의 신발을 벗어 나에게 건네준 동료 덕분에 무사히 산행을 마칠 수 있었다. 자기 몸 하나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서 자신의 몸과 힘을 내어주는 결단은 대단한 용기가 아닐 수 없다.
⑩+1 처지가 입장을 결정한다(국면전환, 局面轉換)
산 밑바닥에 자라는 나무와 산 중턱 또는 정상에서 자라는 나무는 나뭇결이 다르다. 나무가 어디서 자랐는지를 알아야 나무의 성깔을 알 수 있다. 나무의 성깔은 나무가 자란 환경이 결정한다. 나무가 어떤 산에서 자랐는지를 알지 못하면 나무의 개별적 성질도 알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어떤 인간관계를 어디서 맺어왔는지 즉 인간이 어디서 누구와 시간을 보냈는지에 따라서 인성이 결정된다. 인성은 시간과 공간의 사회적 합작품이다. 특히 인간관계가 인간을 결정한다. 처지가 입장을 바꾸고 관계가 존재를 결정한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둘째 날 긴급회의를 했다. 트레킹을 계속할 것인지의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다. 회의 전에는 대다수의 사람이 트레킹을 그만두고 산장으로 돌아가자는 의견이었지만 잠시 가이드와 협상하는 사이에 의견이 돌변했다. 악천후의 일기에도 불구하고 트레킹을 계속하자는 의견으로 급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동료와 맺고 있는 처지와 관계가 입장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런 사람 만나지 마세요》 양면 거울 콘서트
지식생태학자 유영만 교수가 전하는 인간관계 혁명
일시: 2019년 9월 10일 오후 7시 30분~9시
장소: 준오아카데미 지하강당(7호선 청담역 9번 출구)
신청기간: 2019.8.5.일~9.3일
모집인원: 200명 선착순
신청방법: 이메일로 참석자 이름과 참석 인원, 연락처를 적어 보내주세요
이메일: namubook3339@hanmail.net
강연 전후 저자 사인회가 진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