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물을 물로 보지 마라!

물이 가르쳐주는 네 가지 인간관계 철학

물을 물로 보지 마라!:

물이 가르쳐주는 네 가지 인간관계 철학


이런 사람 사진.png


‘갑’의 횡포에 눌려 ‘을’처럼 살아가는 사람, 늘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삶에 버거운 삶을 버티며 살아가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누군가는 지금도 우리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에서 힘겹게 노동하는 사람이 있다. 온 식구가 모여 앉아 먹는 모든 음식에도 저마다의 위치에서 땀 흘려 고생한 사람의 노고가 담겨 있다. 예를 들면 쌀밥에 들어있는 쌀 한 톨(米)에도 봄부터 가을까지 자연의 기운을 받아가면서 농부가 수많은 공정을 통해 재배한 노고와 정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과정에 주목하지 않고 빛나는 결과만 바라보고 열광하는 사고에 물들어왔다. 누가 어떤 노력을 통해 빛나는 성과를 만들어냈는지에는 관심이 없다. 산물도 부산물 덕분에 탄생한 것이고 우리가 누리는 모든 편리함이나 단순함도 나 대신 수고를 아끼지 않고 겪어낸 불편함과 복잡함 덕분이다. 덕분에 보이지 않는 가운데 보이는 커피의 맛과 향을 결정하는 에스프레소처럼 모든 커피에 다 들어가지만 정작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런 사람을 에스프레소 맨이라고 한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광이불요(光而不曜)처럼 빛나지만 눈부시게 하지 않는다. 전경을 드러내 아름답게 하되 자신은 배경에서 묵묵히 자신의 소임을 다할 뿐이다.


254A1250533CE24B2C


승리투수가 될 확률이 높은 선발투수와 화려한 환호를 받는 마무리 투수 사이에서 묵묵히 중간계투를 책임지는 미들맨, 그는 승률 쌓기에 골몰하는 선발투수에 비해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한다. 미들맨의 역할은 마무리 투수가 나오기 직전까지 충분히 시간을 끌어 마무리 투수가 최소한의 노력으로 선발투수의 승리를 확보할 수 있도록 버텨주는 데 있다. 골잡이는 아니지만 골을 넣는 곳에는 언제나 뒷받침을 해주는 어시스트 맨 역시 결정적인 찬스가 왔을 때 자신이 골을 넣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좋은 위치에 있는 동료에게 골을 넣을 확률을 높여준다. 에스프레소 맨, 미들맨, 그리고 어시스트 맨은 모두 자신이 원하는 일만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때로는 동료를 위해 힘든 일도 아랑곳하지 않고 물 흐르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에스프레소에 물을 먹여 아메리카노를 만들어도 에스프레소는 자기 본분을 잃지 않고 커피의 깊은 맛을 내기 위해 조용히 바닥에 잠복근무한다. 순간적인 실투로 게임의 전세가 기울어져 쏟아지는 야유와 물 먹이는 비난에도 미들맨은 황량한 야구장을 등에 지고 조용히 하산한다. 결정적인 어시스트 기회를 만들어주었음에도 스타플레이어가 골을 넣지 못할 때 조금만 더 좋은 위치로 공을 주었으면 좋겠다는 팬들의 아쉬운 한탄에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린다.


hqdefault.jpg


이들은 때로는 먹고 싶지 않은 물을 먹으면서 물처럼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들은 먹고 싶지 않은 물을 먹어야 하는 서러움을 몸소 체험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물처럼 시련과 역경을 만나도 조급해하지 않고 묵묵히 자기 갈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다. 을을 물로 보는 갑은 결국 언젠가는 먹기 싫은 물을 먹는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남에게 먹기 싫은 물을 먹인 사람은 자신도 먹기 싫은 물을 강제로 먹을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갑에게 물로 보이는 을은 물처럼 세상을 관조하면서 가장 낮은 자세로 엎드려 있지만, 물이 바다에 도달하면 하늘로 비상하는 것처럼 을도 시련과 역경을 딛고 비약적으로 도약할 수 있는 날을 맞이한다. 물이 바다라는 꿈의 목적지를 향해서 소리 없이 유연하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가운데 자기 소임을 당하는 사람도 물처럼 세상을 관조하며 살아간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이 있다.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이다. 무위자연(無爲自然)과 더불어 노자 사상의 핵심에 해당하는 상선약수는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조화와 협동, 공생과 공동체 의식으로 세상을 부드럽게 감싸 안으면서 바다로 흘러간다. 물은 헌신, 봉사, 의무감으로 무장해서 사람들이 싫어하는 가장 낮은 곳에 머문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소룡도 무술은 물 흐르듯이 거침이 없어야 한도 했다. 그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물이란 반드시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장애물이 있으면 피해 가기도 하지만, 어느 곳이든 빈틈없이 파고든다. 즉 온화하고 느린 듯하나 미끄러지듯 유연하며 끊김 없이 일정한 속도로 이어진다. 변화무쌍하면서도 거침없이 흐르는 물의 철학, 바로 그 기저에 상선약수의 철학이 있다. 상선약수의 철학을 믿는 사람이 물에게 인간관계를 배우는 사람이다. 물을 물로 보지 않고 물에게 사람이 살아가는 자세와 태도, 가치관과 인생철학을 배우고 인간관계의 교훈을 배우는 사람이야말로 사람다움을 갖추기 위해 분투노력하는 사람이다.


river-management-hero-_B7J7622-Edit-Edit.jpg


첫째, 물은 겸손하다. 물은 남들이 가장 싫어하는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른다. 물은 더러운 오물을 만나 정화시키고, 지저분한 곳에 다가가 자신을 버리고 상대를 맑게 해 준다. 물은 결국 바다로 흘러간다. 바다가 세상의 모든 물을 다 받아줄 수 있는 원동력은 가장 낮은 곳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바다는 세상의 모든 오물을 받아주면서 불평불만을 터트리지 않는다. 묵묵히 포용할 뿐이다. 물은 내려감이 올라감임을 잘 알고 있다.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야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다. 자신을 낮추는 것이 곧 자신을 높이는 것임을 물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물은 끊임없이 자기를 낮춘다. 낮은 곳을 향하여 흘러가는 물에게서 인간은 겸손함을 배워야 한다. “낮은 데로 향하소서”라는 철학을 실천하는 물에게서 상대의 아픔을 이해하는 자세를 배워야 한다. 상대방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아픔을 알아야 한다. 아픔은 높은 곳에 앉아서 관망해서는 이해되지 않는다.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겸손과 상대방을 진정으로 이해하려는 깊은 관심과 애정 없이는 상대를 알 수 없다. 물은 우리에게 한 없이 낮아지라고 충고한다. 물에게서 배울 수 있는 미덕중의 미덕이 바로 겸손이다. 가장 낮은 곳에서 소외된 사람, 아픈 사람, 상처 받은 사람을 감싸 안는 하방 연대야말로 가장 강력한 연대다. “다수의 힘없는 연대가 소수의 힘 있는 연대를 무너뜨릴 수 있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먼저 약한 사람이 그 수에 있어서 다수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강자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그것은 그가 지배하는 약한 사람들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강자의 힘은 그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地位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 힘은 원래 약자의 것이지요”(p.288). 신영복 교수의 《강의》에 나오는 말이다. 물이 바다로 흘러가서 만드는 연대망, 하방 연대야 말로 가장 오래가고 강력한 연대망이다. 아래로 갈수록 힘은 약하지만 숫자는 다수다. 인간관계는 하방 연대일 때 가장 힘이 세다.


7609_41d6ac15.jpg


둘째, 물은 여유가 있다. 물이 흐르다 웅덩이를 만나면 다 채우고 기다렸다가 앞으로 나아간다. 물은 서두르지 않는다. 오늘 할 일을 못했다고 조급해하는 인간과는 대조적이다. 물은 궁극적으로 바다에 도달해서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 갖고 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는 바다의 물이 수증기로 변해서 올라간 물이다. 가장 높은 곳에서 떨어지기 위해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간다. 궁극적인 꿈의 목적지, 바다에 이르러 하늘로 올라가는 꿈은 흔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매일매일 흐르는 물에게는 오늘 도달할 곳과 내일 도달할 곳이 구분되어 있지 않다. 오늘 흘러가지 못하면 참고 기다리다 때가 되면 다시 흐른다. 물은 빠르게 흐를 때도 있고 천천히 느긋하게 흐를 때도 있다.


좁은 길을 만나면 물살이 빨라지고 넓은 강을 만나면 산천초목을 다 굽어보면서 유유자적 흘러간다. 수심이 얕고 물길이 좁은 곳에서는 요란한 소리를 내지만 수심이 깊고 넓은 곳에서는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간다. 물이 꿈을 갖고 있기 때문에 조급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은 비록 오늘 달성할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지만 목적지를 잃어버리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목표’가 흔들린다고 ‘목적’까지 흔들리면 안 되는 것이다. 오늘 달성하지 못한 목표는 내일 달성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목표를 통해서 달성하고 싶은 목적을 잃지 않는 자세다. 물은 그것을 알고 있다. 사람도 물처럼 여유를 갖고 천천히 흐르지만 자신이 무엇을 위해 왜 사는지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을 때 삶의 본질에서 멀어지지 않는다. 인간관계도 막힘없이 흐르지 않는다. 다양한 갈등과 의견 충돌이 늘 상존하고 불신과 반목이 곳곳에 숨어있다. 인위적으로 지금 당장 풀 수 없는 지난한 인간관계 과제들도 조금 여유를 갖고 어디서부터 꼬인 문제인지, 잠시 들끓는 화를 가라앉히고 차분히 앉아 평정심을 회복할 때 물길이 다시 열리는 것처럼 해결 대안이 부각될 때가 있다.


1.JPG?type=w800


셋째, 물은 유연하다. 물은 자신을 상대에게 맞춘다. 물은 가방처럼 상대를 자신에 맞출 것을 요구하지 않고 보자기처럼 자신이 먼저 변해서 상대를 끌어안는다. 보자기형 인간관계를 추구하는 사람은 언제나 타자의 생각에 비추어 입장을 결정한다. 물론 자기 주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 주장과 판단기준을 먼저 정해놓고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지시하거나 요구하지 않는다. 물은 어떤 모습으로든지 변화될 가능성을 갖고 있으며, 상황에 따라 가변적으로 자신의 모습을 끊임없이 바꾸면서 바다로 흘러간다. 물은 네모로 들어가면 네모로 변하고 세모로 들어가면 세모로 변화된다. 둥근 웅덩이로 들어가면 둥글게 변하고 가파른 계곡을 만나 숨 가쁘게 달리기도 하고, 아스라한 절벽을 만나면 과감하게 뛰어내려 아름다운 폭포를 만든다. 아래로 떨어진 물은 다시 급물살을 타고 아래로 빠르게 흐르다 너른 평지를 만나면 유유히 아래로 흐른다.


산이 가로막으면 멀리 돌아서 가고, 바위를 만나면 자신을 나누어 비켜간다. 물은 이처럼 주위 환경에 따라 자신을 맞춰가면서 부드럽게 흐른다. 유연하게 흐르지만 때로는 엄청난 힘으로 장애물을 제거하면서 바다를 향해 말없이 흘러간다. 주어진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하면서 자신의 꿈과 비전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간다. 아래로 흐르다 장애물에 부딪히면 걸림돌로 삼아 다시 아래로 흐른다. 장애물 앞에서는 먼저 굽히고 휘어진다. 보자기처럼 자신을 낮춰 상대를 끌어안는다. 물은 그 어떤 외부 환경 변화에도 유연하게 대응하는 융통성이 뛰어나다. 유연함과 부드러움이 결국 가장 강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인간관계도 내가 먼저 자세를 낮추고 마음을 열고 상대방의 입장 변화에 주목할 때 어떻게 내가 대처하는 것이 옳은지를 판단할 수 있다.


1306FD484E51FF9F26C8E0


넷째,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한다. 물은 모든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 자신의 공을 내세우지 않고 묵묵히 갈 길을 간다. 사람은 물론이고 모든 생명체에게 물은 없어서는 안 되는 자연이 준 선물이다. 물은 비천한 곳으로 흘러가 귀중한 존재로 만들어주고, 소외된 곳으로 찾아가 꿈과 희망을 준다. 메마른 논밭에 내리는 비는 모든 농작물에게는 한 줄기 희망이요, 건조한 대지에 내리는 비는 타는 목마름을 달래주는 갈증 해소제다. 물은 언제나 자신을 버리고 남을 위해 살아가지만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누구보다도 잘 지켜가며 바다에 이른다. 대세를 거스르지 않고 세상의 흐름에 몸을 맡긴다. 세상의 흐름과 함께 유영(遊泳)한다.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다투지 않고 모든 것을 포용하면서 만물을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고로 지극한 선은 물과 같다는 성선약수가 현대인들이 배워야 할 교훈이다.


물은 흘러가면서 그냥 흘러가는 것 같으면서도 삼라만상의 모든 생명체에게 자양분을 제공한다. 물은 흐르면서 모든 자연 삼라만상을 스승으로 모시고 배운다. 바다로 가기까지 만나는 온갖 장애물도 물에게는 가르침을 주고 깨달음을 선물로 준다. 물이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물이 없으면 모든 생명체가 자랄 수 없다. 물은 이처럼 낮은 데로 흘러가면서 만물에게 아낌없이 주고 간다. 계산하지 않고 이해타산과 득실을 따지지 않는다. 우선 먼저 주고받을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물은 give and take가 아니라 give and give의 철학을 지키면서 살아간다. 물은 마침내 바다에서 모두 만난다. 세상의 모든 물이 마침내 바다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굴곡진 인생을 살아온 모든 물이 바다에서는 하나가 되어 춤을 춘다. 바다의 물은 이제 뜨거운 태양볕 아래 바람을 벗 삼아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간다. 거기서 갖가지 형상의 구름으로 변신한다. 지상에서 천상으로 승천하는 셈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삶이자 이상적인 인간관계의 모습이 아닐까. 갈등과 반목보다 조화와 융합, 시기와 질투보다 인정과 배려, 질책과 괄시보다 칭찬과 격려가 아름다운 곳, 바다는 바로 경험과 배경, 신념과 가치관이 다른 우리 모두가 하나 되는 꿈을 향해 춤을 추는 희망과 연대의 공연장이다.


강연회 리플렛 가로 세로 3m.jpg
강연회 리플렛 수정.jpg


keyword
작가의 이전글뚜르 드 몽블랑에서 배운 관계에 관한 10가지 교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