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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를 정해야 활로가 열린다

진학보다 진로를 결정하기 위해던져야 할 7가지 질문

진학보다 진로를 결정하기 위해


던져야 할 7가지 질문

진학(進學)보다 진로(進路)를 결정하기 위해 던져야 할 7가지 질문

나만 모르는 인생의 무지개를 띄우는 7가지 방법 

    

대부분의 학생은 진로(進路) 보다 진학(進學)을 먼저 결정한다. 어떤 진로가 내가 가야 할 진짜 길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사실 진로를 중고등학교 때 정확히 안다는 것도 쉽지는 않다. 어렴풋하게 내가 가면 행복한 길인지에 대한 이미지는 있지만 분명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아마 진로는 일생을 통해서 찾아나가야 할 우리 모두의 숙제일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진학하고 나서 진로를 결정해도 늦지는 않다. 한 사람이 걸어가야 할 진로는 한순간에 결정할 수 없는 중차대한 인생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진로는 대학 진학 전에 어느 정도 결정할 수도 있지만 그때까지 어떤 진로가 내 삶의 활로인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진로는 대학에 가서도 얼마든지 다시 결정할 수 있다. 전공을 살려 진로를 결정할 수도 있고 지금 공부는 전공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로를 선택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대학 4년은 치열하게 실험하고 모색하고 도전해보고 다양한 체험을 통해 내가 하면 재미있고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결정하는 소중한 시기다. 진학보다 중요한 진로를 고민하기 위해서 던져야 할 7가지 질문을 던져본다. 7가지 질문에 대한 치열한 탐색과 실험이 내 인생의 무지개를 띄워 행복하게 살아가는 열쇠를 찾는 길이다.     


① 비전을 찾아야 비상할 수 있다


나는 전보다 잘하기 위해 내 인생의 비전을 찾고 있는가

아니면 남과 비교하며 남보다 잘하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꿈꾸지 말고 꿈 깨라. 너무 일찍 꿈을 꾸면 꿈에서 깨어 나오기 어렵다. 꿈을 너무 이른 나이게 꾸면 잘 못된 꿈을 찾을 수 있다. 지금은 꿈이 없는 게 너무 당연하다. 꿈이 없다고 너무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꿈을 찾은 사람은 진짜 내 꿈이 아닐 수도 있다. 꿈은 그렇게 일찍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아마 꿈을 찾았다면 다른 사람의 꿈을 그냥 꾸어 온 것일 확률이 높다. 그 꿈이 부러워서 잠시 내가 품고 있는 꿈일 수 있다. 꿈을 찾았어도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어봐야 한다. 지금부터 꽤 오랫동안 스스로에게 물어봐도 여전히 확신이 들면 잠시 그 꿈을 향해 매진해보라. 일단 가봐야 그게 내 꿈인지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막연한 꿈을 구체적인 꿈으로 바꿔야 내 인생의 비전이 만들어진다. 비전(vision)은 내 꿈을 비주얼라이제이션(visualization), 즉 시각화시켜 놓은 나의 미래 청사진이다. 비전을 찾아야 비상할 수 있다. 비전을 찾지 않고 남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비참해진다. 행복은 비교에서 오지 않고 꿈꾸는 비전에서 온다. 비전은 듣는 순간 3초 이내에 주먹이 불끈 쥐어지고, 입술이 깨물어지며, 심장이 뛰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만드는 내 삶의 궁극적인 지향점이다. 전보다 잘하기 위해 심장 뛰는 비전을 찾는 사람과 남보다 잘하기 위해 끊임없이 비교하는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천지차이가 난다. 전보다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일일신 우일신을 거듭하며 일취월장하지만 남보다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언제나 경쟁심에 사로잡혀 불행한 인생을 살 수 있다.     

     

② 뇌력은 체력에서 나온다


나는 지금 몸을 움직여 을 흘리고 있는가

아니면 앉아서 시기하고 질투하며 만 흘리고 있는가?     



진정한 공부는 내 몸이 일상과 만나는 마주침을 통해 깨닫는 체험적 깨우침이다. 공부는 책상에서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일상에서 몸으로 부딪히며 깨우치는 깨달음이다. 근육(筋肉)이 없으면 근력(筋力)도 없어지고 근력(筋力)이 없어지면 버티고 견딜 근력(根力)도 없어진다. 근력은 위력의 원동력이다! 뇌력도 체력에서 나온다. "‘몸’이 스승이고 ‘마음’이 제자다. 몸을 보고 마음이 배운다. 그러나 마음이 어느 때고 몸을 들여다보는 것은 아니다. 못된 제자는 제 삶이 안달이 날 때에만 스승에게 손을 내민다." 신형철의 《느낌의 공동체》에 나오는 말이다. 튼실한 허벅지만큼 소중한 재산은 없다. 하체의 힘이 상체를 받혀주고, 상체에 포진되어 있는 머리와 가슴, 그리고 눈과 입과 귀가 세상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감각기관이다. 몸이 부실해지면 마음도 무너지고 사유는 실종된다. 남다른 사유도 남다른 몸에서 나온다. 지덕체(智德體)가 아니라 체덕지(體德智)다. 체덕지에서 체인지(體仁智)를 만든 이유다. 몸을 움직여봐야 가슴으로 공감이 가고 그래야 체험적 지혜가 쌓인다. 그런 지혜가 나와 세상을 체인지(changer)한다. 운동하면 행복해지고 행운도 저절로 굴러들어 온다. 운동은 그래서 운명도 바꾸는 행동이다. 성공하는 사람은 몸으로 한계에 도전하면서 땀을 흘리지 앉아서 누군가를 시기하거나 질투하며 침을 흘리지 않는다. 꿈은 몸으로 꾸는 것이다     


③ 성적을 뒤집어야 적성이 살아난다


나는 성적을 올리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는가

적성을 찾기 위해 분투노력하고 있는가?     



성적은 모든 사람을 한 가지 잣대로 평가한다. 그 잣대가 무엇을 측정하고 평가하느냐에 따라 내가 잘하는 분야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토끼와 거북이, 코끼리와 닭, 참새와 오리를 산 등성이 아래에서 똑 같이 달리기 경주를 하면 당연히 토끼가 1등을 할 확률이 높다. 오리는 평생 산등성이를 올라가 본 경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산등성이를 올라갈 능력을 갖추지 않고도 평생 물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반대로 이번에는 경주의 무대를 호숫가로 옮겨 물 위에서 100m 경주를 하면 당연히 오리가 1등 할 확률이 높다. 예를 들면 토끼는 평생 물속에 들어가 수영을 하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동물이다. 오리에게 산등성이 올라가는 방법을 가르치고 토끼에게 수영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순간 성적은 언제나 최하위로 나온다. 적성이 다른 사람을 성적으로 평가하면 ‘성적’은 내 인생의 ‘적(賊)’이 된다. 토끼와 오리의 적성은 다르다. 성적으로 평가하면 누군가는 항상 불행해지지만 적성으로 평가하면 저마다의 재능으로 행복해진다. 적성을 찾아가는 교육, 적성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스승이 아이들의 미래를 행복으로 이끌어주는 견인차다. 사람은 때가 되면 재능의 꽃이 핀다. 꽃이 언제 필지는 나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저마다 다른 재능은 다 있고, 그 재능의 꽃이 피는 시기도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믿어야 한다.     


정상에 포함되지 말고 비정상이 되어라


나는 지금 정해진 길을 쫓아가는 정상적인 모범생인가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비정상적인 모험생이 되려고 노력하는가?     



1968면 멕시코 올림픽 때 듣도 보도 못한 방법으로 뒤로 넘는 높이뛰기 선수가 나타났다. 그 사람이 바로 높이뛰기의 전설, 딕 포스버리(Richard Douglas Dick Fosbury) 선수다. 그 사람 이름을 따서 지금은 포스베리 플롭 기법, 배면 뛰기가 높이뛰기의 상식이 되었니다. 딕 포스베리가 처음으로 뒤로 넘었을 때 세상 사람들은 딕 포스베리를 가리켜 상식에 위배되는 몰상식한 사람이며 정상에 시비를 거는 비정상적인 사람이라고 비난하거나 비판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생각지도 못한 방법이라고 놀라워했다. 정상(頂上)에 오른 딕 포스베리는 분명히 정상(正常)이 아니다. 만약 딕 포스베리도 정상적인 사람처럼 정상적(正常的)인 방법으로 정상(頂上)에 도전했다면 정상(頂上)을 절대로 정복할 수 없었다. 정상을 정복한 사람은 하나같이 비정상이다. 생각지도 못한 비정상적인 생각은 생각지도 못한 많은 일을 저지르고 당했을 때 비로소 잉태된다. 정상적인 사람들의 발상은 인간의 신체구조상 2m를 절대로 넘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딕 포스베리 선수 덕분에 인간의 높이뛰기 한계는 2m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정상에 가려면 비정상이어야 한다. 비정상만이 정상에 갈 수 있다. 정상적인 사람은 세상의 통념을 따르는 모범생이지만 비정상적인 사람은 통념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남들이 정한 한계에 도전하는  모험생이다. 모범생은 정해진 길 위에서 정상적인 생각으로 누군가 걸어간 길을 따라간다. 하지만 모험생은 남들이 걸어가지 않은 위험한 길을 선택해서 모험을 거듭하며 정상적인 생각에 시비를 거는 비정상적인 발상을 일삼는다.  

   

완벽주의자가 되지 말고 경험주의자가 되어라


나는 완벽주의자가 되려고 노력하는가

아니면 경험주의자로서 체험을 중시하는가?   

  


“시작하라/다시 또다시 시작하라”로 시작하는 엘렌 코트의 시, ‘초보자에게 주는 조언‘이라는 시에는 “완벽 주의자가 되지 말고 경험주의자가 돼라”는 말이 나온다. 완벽주의자로 살아가면서 완벽하게 생각만 하지 말고 우선 경험하면서 배우는 것이 훨씬 많은 체험적 지혜를 배울 수 있다는 말이다. 완벽하게 시작하려다 그 어떤 경험도 해보지 못하고 기회를 놓치는 것보다 우선 시작하고 시도하면서 몸으로 깨닫는 체험적 지혜를 쌓아나가는 길이 가장 소중한 깨달음을 얻는 방법이 아닐까. 세상을 바꾸는 사람은 앉아서 오랫동안 생각하거나 위대한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이 아니다. 세상은 누군가의 행동으로 바뀐다. 행동하지 않으면 세상은 늘 그대로다. 행동하는 방법이나 어떻게 행동할지 계획도 필요하다. 하지만 해보기도 전에 방법을 너무 오랫동안 구상하거나 계획을 완벽하게 세울수록 완벽하게 실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완벽한 때를 기다리다 몸에 때만 낀다. 어느 정도 구상하면 바로 실행하면서 생각을 바꿔도 늦지 않다. “‘어떻게든’은 눈물겨운 것이다. 방법은 실행 속에 있다”(197쪽). 이영광의 《나는 지구에 돈 벌러 오지 않았다》에 나오는 말이다.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지혜를 배우는 대학이 있다. 바로 들이대학교 저질러학과 뒷수습 전공 학생들이다. 들이대고 저지른 다음 안 되면 다시 도전하는 방법을 몸으로 배우는 대학이다. “통찰이 행동으로 이어지기보다 행동이 통찰로 이어지는 경우가 더 많다“(137쪽). 칩 히스와 댄 히스의 《순간의 힘》에 나오는 말이다. 행동하다 보면 오히려 생각지도 못했던 깨달음이 선물로 다가온다.      

  

정답을 찾지 말고 문제를 찾아라


나는 지금 ‘정답’ 찾기에 몰두하고 있는가

아니면 전대미문의 문제를 발굴하려고 노력하는가?     



“현명한 사람은 어리석은 질문으로부터 배우고, 멍청한 사람은 현명한 대답으로부터 배운다.” 브루스 리(Bruce Lee)의 말이다. 우리는 이제까지 정답을 찾는 모범생 육성에 교육적 노력을 다해왔다. 앞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인재는 질문을 잘하거나 문제를 잘 내는 문제아, 즉 모험생이다. 모험생은 주어진 문제에 정답을 찾기보다 그 누구도 던지지 않은 질문을 던져 놓고 그 답을 찾으러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사람이다. “한 사람의 수준은 대답이 아닌 질문 능력으로 판단할 수 있다.” 18C 프랑스의 계몽 사상가 볼테르의 말이다. 정답을 찾는 능력은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더 빨리 찾아낼 수 있다. 인간의 고유한 능력 중의 하나가 바로 호기심을 갖고 질문하는 것이다. 어제와 다른 질문을 받으면 틀에 박힌 생각을 하다가도 잠심 멈춰 서서 생각해본다. 나를 멈추게 만드는 매개체가 바로 질문이다. 익숙한 질문이라도 생각했지만 근본적인 질문이 바로 이런 유형에 속한다. “내가 왜 여기 와 있지?” “여기가 어디지?” “여기 있는 나는 누구지?” 이런 세 가지 질문이 내가 예전에 교통사고로 정신을 잃은 다음 병원에서 정신이 깨어난 다음에 던진 질문이다. 익숙해 보이는 질문이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삶의 근본을 뒤흔드는 인간의 정체성에 관한 질문이다. “지성이 스스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해답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물음 아래 밑줄을 긋는 일입니다(9쪽).” 우치다 타츠루의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에 나오는 말이다. 해답은 하나밖에 있다는 고정관념, 그리고 그런 해답을 찾는 능력이 진정한 경쟁력이라고 생각했던 고정관념과 타성에서 벗어나 중요한 질문이 무엇인지를 깊이 사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➆ 실패를 해봐야 실력을 쌓을 수 있다


나는 지금 ‘실패’ 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는가

실패를 통해 실력을 쌓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는가?     



실패해봐야 내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사람은 실패하면 실패 경험을 복기하면서 다음에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비판적으로 따져보고 물어본다. "성공은 그릇이 가득 차는 것이고, 실패는 그릇을 쏟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성공은 가득히 넘치는 물을 즐기는 도취임에 반하여, 실패는 빈 그릇 그 자체에 대한 냉정한 성찰입니다. 저는 비록 그릇을 깨뜨린 축에 속합니다만, 성공에 의해서는 대개 그 지위가 커지고, 실패에 의해서는 자주 그 사람이 커진다는 역설을 믿고 싶습니다." 신영복 교수님의 실패에 대한 성찰은 우리들의 성공을 무색하게 만든다. '빈 그릇 자체에 대한 냉정한 성찰'이야말로 색다른 가능성의 그릇을 채우려는 몸부림이다. 사람은 오로지 실패를 통해서 자기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 실패를 해봐야 실패에 대한 냉정한 성찰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잘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넘어져 봐야 다른 기회가 보인다. 돼지는 목뼈 구조상 일정한 각도 이상 고개를 들 수 없어서 평생 땅만 보고 사는 슬픈 짐승이다. 그런데 돼지가 하늘을 볼 방법을 발견했다. 어느 날 돼지가 발을 잘 못 디뎌서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그 덕분에 난생처음으로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돼지가 하늘을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넘어지는 것이다. 넘어져 봐야 평소에 볼 수 없었던 색다른 가능성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실패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볼 수 없었던 색다른 가능성을 볼 색다른 기회와 무대를 마련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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