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번뜩’이는 통찰에 ‘섬뜩’하고 놀라다

푸코의 철학적 사유를 훔쳐보면서 드는 단상

번뜩이는 통찰에 섬뜩하고 놀라는 지혜가 숨어 있다

그 사이 사람들은 잔뜩’ 긴장한다!


푸코의 철학적 사유를 훔쳐보면서 드는 단상


공부를 업으로 삼아 매일 읽고 쓰면서

뭔가를 깨닫고 다시 삶에 적용하는 삶을 살다 보면

마음속으로 흠모하면서 닮고 싶은 대학자가 있습니다.


노자보다 스피노자를 흠모했고,

나체보다 니체에 빠져 《니체는 나체다》 책을 냈으며,

질 들뢰즈가 내 몸을 급습해서 지금 여기 영토를 벗어나

도주하면서 탈영토화 시키는 공부를 하며

여기저기 들리며 유목민적 사유를 배웁니다.



나를 경탄과 경이에 빠지게 만든 또 한 사람의 철학자가

바로 미셀 푸코입니다.

내가 공부를 그만두는 그때까지

나는 푸코에 한 동안 코를 박고

그의 지적 여정을 따라가며 그가 전율하며 파헤친

지적 광맥에서 번뜩이는 통찰을 배웁니다.


그의 번뜩이는 통찰을 맞추질 때마다

퍼뜩 떠오르는 생각에 언제나

섬뜩 놀라며 앎의 경이로운 기적이 이런 것임을

경탄하며 한 순간만이라도 경거망동하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철학은 교묘합니다.

신체를 힘들게 하지 않고는 나에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강민혁의 《자기 배려의 책 읽기》, 626쪽)


푸코의 책은 쉽게 읽히지 않고

그 의미의 껍질을 파고 들어갈수록 해독해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공부하면서 고뇌했던

생각의 회로에 접속해 작은 생각의 파편이라도

주워볼 생각으로 꾸역꾸역 읽아보고 있습니다.


“애를 쓰는 것, 시작하고 다시 시작하는 것,

시도해보는 것, 틀리는 것,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하는 것,

그리고도 여전히 발걸음을 머뭇거릴 방도를 생각해내는 것,

요컨대 의구심을 품고서 신중하게 작업하는 것이

포기와 다름없어 보이는 사람들로 말하자면,

우리가 그들과 같은 세계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은 명백한 일이다“(《성의 역사 2》, p.22).



애를 써가며 시작하고 다시 시작하고

이해가 가지 않고 틀려도 처음부터 다시 시도하는

끈기와 인내심이 푸코를 공부하는 과정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알아야만 하는 것을 제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호기심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호기심인 것이다.

앎에 대한 열정이 지식의 획득만을 보장할 뿐

어떤 식으로든, 그리고 되도록

아는 자의 일탈을 확실히 해주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성의 역사 2》, p.23)



내가 푸코에 빠질 수밖에 없는 까딹이며,

그의 학문적 탐험 여정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그는 언제나 지금까지 쌓아 올린 학문적 기반을 무너뜨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앎에 대한 열정을 기존 지식의 획득에 두지 않고

기존 앎으로부터 보다 멀리 일탈하는 호기심을 사랑합니다.


“결국 위험은, 중략. 우리가 익숙해져 있는 보장을 멀리 떠나

친숙한 광경들의 바깥dehors으로,

우리가 아직 그 범주들을 구성하지 못한 땅으로,

예견하기 어려운 종말로 다가가야 한다는 것이다“(《지식의 고고학》, p.69).



여기서 안주하고 성을 쌓는 공부가 아니라

여기서 저기 밖으로 향하면서

익숙한 세계에서 보장할 수 없는 위험하지만

새로운 지적 호기심이 움트는 낯선 세계로

비록 종말이 나를 괴롭힐지라도

그곳으로 파헤쳐나가는 공부를

푸코에게서 배우고 싶습니다.


이번 주 대학원 수업은 푸코의 ‘자기 배려’가 주제입니다.

자기 배려는 “단 한 번도 되어본 적이 없는 자기가 되기가

바로 자기 실천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 중의 하나이고

또 중심 테마이기도 합니다(《주체의 해석학》, p.132).



자기 배려는 시선을 밖에서 다시 안으로 돌려

자기 한계와 무지를 깨달으며 자기를 발견하는 과정이자

본래적인 자기로 되돌아가서 자기 성장을 도모하려는 노력입니다.


자기 배려를 잘하는 사람이

결국 자기 한계와 무지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며

그런 사람이 자기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은 결국 다른 사람도 사랑할 줄 압니다.

자기 배려로 싹트는 자기 발견이 결국

자기를 사랑하는 또 다른 타자와의 연대를 구축합니다.

앎은 개인에게 그치지 않고 동행자를 찾아 나서며

함께 혁명을 꿈꾸는 공동체를 만듭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쓰지 않으면 영원히 쓸 수 없고 쓰기 시작하면 써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