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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산부인과 의사에게 들어보는
작품 임신과 출산과정

작품 임신에서 출산까지 에로스로 풀어보는 숨겨진 비밀 

지식산부인과 의사에게 들어보는 작품 임신과 출산과정

     

1. 수정 및 착상과 작품의 잉태 과정

2. 입덧의 시작과 본격적인 지식 잉태의 가속화

3. 에로스의 발산과 지식 애무의 시작

4. 태아의 발달과정과 작품의 숙성과정

5. 출산 직전의 산통 과정 및 해산 준비와 작품 탄생의 진통

6. 신생아 출산과 작품의 탄생 

     

사랑하는 남녀가 만나서 뜨거운 사랑을 나누다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한다. 전혀 다른 두 사람의 배경이 만나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하고 마침내 자신들을 닮은 2세를 출산한다. 출산된 아이는 부모의 보살핌으로 자라면서 어린이를 거쳐 청소년에 이르고 스스로 세상과 부딪히면서 살아갈 자립심을 기른다. 마침내 부모의 보호로부터 벗어나 독립해서 혼자 살아가거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독립한다. 서로를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사람을 만나 열애 끝에 자신들의 분신을 임신하고 출산해서 육아를 하듯이 하나의 작품이 잉태되는 순간부터 세상의 작품으로 탄생되는 경이로운 기적이 시작된다. 작품의 잉태는 끌림이 있는 두 가지 주제나 분야가 끈질긴 밀당 끝에 어느 날 우연히 만나 이루어지거나 집요한 구애 끝에 한 가지 주제가 다른 주제로 빨려 들어가 지식 임신이 일어나면서 시작된다. 내가 출산한 자식은 내가 아니지만 나의 분신이다. 내가 아니지만 결국 내가 된 나의 분신이 자식이다. 나는 자식을 통해서 내가 살아갈 미래보다 더 오래 미래를 산다. 작품도 마찬가지다. 내가 낳은 자식이 바로 작품이지만 작품은 내가 아니다. 하지만 작품 속에는 나의 문제의식과 신념과 철학이 담긴 삶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내가 출산한 작품이지만 작품이 곧 나는 아니다. 하지만 작품 속에는 또 다른 내가 살아가고 있다. 작품이 다른 사람에게 읽히면서 나 또한 읽히고 이해된다.



글쓰기와 책 쓰기 관련 책이 이미 시장에 쏟아져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책을 잉태시켜 출산해야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미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태어나는 신생아는 그 누구와도 동일한 사람이 아니다. 그 사람은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고유한 특성을 지닌 전대미문의 유일한 인격체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수많은 책 쓰기 관련 책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책 쓰기 관련 책을 계속 내야 되는 이유는 저마다의 삶이 다르면 삶을 담아내는 책도 다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한 권의 책이다. 사람은 저마다의 탄생 배경과 추구하는 꿈과 비전이 다르듯, 그 사람의 삶을 녹여내는 책 또한 다 다를 것이다. 책은 이미 있는 기존 지식을 편집해서 쓰기도 하지만 진짜 소중한 책은 내 삶을 녹여내서 그 누구의 책과 비교할 수 없는 책이다. 이미 세상에 갖가지 책이 널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책을 쓰도록  격려하고 지원하는 이유는 그 어떤 책을 내도 동일한 책은 한 권도 없을 것이라는 신념 덕분이다. 흔들리지 않는 신념으로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확고한 답변을 준비하는지 여부에 따라 《책 쓰기는 애쓰기다》라는 작품이 잉태되어 출산된다.



1. 수정 및 착상과 작품의 잉태 과정


임신은 타이밍이다. 난소에서 난자가 수란관으로 나오는 배란 시기에 남자의 정자와 만날 때 수정이 된다. 수정은 수란관이라는 기관에서 난자가 정자와 만나는 순간 이루어지는 하늘이 내린 아름다운 순간에 일어난다. 수정은 건강한 남자와 여자가 꿈에 그리던 순간에 마주치는 결정적인 순간에 새로운 생명이 비로 잉태되는 과정이다. 수정이 이루어지면 난할이 일어난다. 난할은 수정란에서 발생 초기에 일어나는 세포 분열로, 체세포 분열의 일종이다. 수정란이 난할을 거듭하여 세포 수를 늘리면서 자궁으로 이동한다. 난할을 거듭하다 약 일주일이 지나면 착상이 이루어진다. 임신이 성공한 것이다. 수정이 일어난 지 약 일주일 후 수정란이 포배가 되어 자궁 내막에 파묻혀 달라붙는 현상이다. 이때부터 임신(姙娠)되었다고 한다. 하나의 작품이 탄생되는 과정도 비슷하다. 지금 《책 쓰기는 애쓰기다》라는 주제로 작품을 구상하고 출산을 준비하고 있다. 책 쓰기라는 주제를 갖고 작품을 출산하고 싶은 욕망은 나도 갖고 있었지만 주변에서 책을 많이 낸 다작가로서 한 번 꼭 세상에 작품을 내보라는 강력한 요구도 있었다. 글쓰기와 책 쓰기 관련 책은 이미 포화상태라고 할 정도로 다양한 책들이 그동안 쏟아져 나왔다. 책 쓰기 관련 책은 책을 써오던 내가 어떻게 한 권의 책을 쓰는지를 보여주고 싶은 욕망과 책을 어떻게 쓰면 그렇게 빠르게 쓰는지 비법을 공개해달라는 독자들의 요청이 만나 열렬한 사랑을 거듭하다 잉태된 작품의 한 가지 분야다.



책 쓰기는 책과 쓰기가 만나 열애 끝에 잉태된 작품 주제다. ‘책’이라는 남자가 ‘쓰기’라는 여자를 만나 가장 이상적인 ‘책’과 바람직한 ‘쓰기’라는 주제로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책’과 ‘쓰기’가 열애하면서 어느 순간 전율하는 정전기가 서로에게 강렬한 자극을 주면서 뜨거운 사랑이 무르익어갔다. 뜨거운 사랑이 시작된 지 얼마 안 지난 시점에서 ‘책’이라는 정자와 ‘쓰기’라는 난자가 절묘하게 만나 수정이 이루어지고 발상이 한 군데로 모여 ‘책 쓰기’라는 확고한 주제로 착상되었다. 다양한 주제가 경합을 벌였지만 ‘책’과 ‘쓰기’는 만나 책 쓰기를 주제로 같이 애를 쓰기로 합의하였다. 애를 쓰다 보면 애도 탄생된다는 사실을 ‘책’과 ‘쓰기’는 미리 안 것일까. 드디어 ‘책’은 ‘쓰기’와 만나 임신에 성공한 것이다. 그때부터 책 쓰기는 세포분열을 거듭하면서 어떤 책을 어떻게 쓸 것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책 쓰기에 관한 아이디어 증식을 거듭하면서 세상에 그 누구도 출산할 수 없는 책 쓰기 관련 작품을 출산하고 싶은 욕망을 숙성시켜 나간다. ‘책’과 ‘쓰기’는 있는 힘을 다해 애를 쓰면서 만들어진 제목이 전대미문의 《책 쓰기는 애쓰기다》다. 책과 쓰기는 서로의 뜨거운 사랑을 확인하면서 애를 쓰다 보면 자신들의 2세가 멋지게 태어날 것이라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하나의 작품이 잉태되려면 작품을 잉태하고 싶은 작가의 남다른 문제의식과 뜨거운 열정이 출발점에서 중요한 관건으로 작용한다. 어떤 주제를 염두에 두고 있으며, 그 주제를 얼마나 간절하게 쓰고 싶은지, 쓰려는 주제와 관련된 색다른 가능성의 문을 열어줄 사람과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따라 작품은 잉태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원하는 작품을 세상에 탄생시키고 싶은 작가는 어떤 시련과 난관에도 불구하고 불굴의 의지를 갖고 가능한 방법을 찾아내려고 한다. 수많은 주제 가운데 유독 끌리는 분야가 우연한 마주침을 통해 생각지도 못한 주제로 융합되면서 작품은 가열차게 진척되기 시작한다. 이미 ‘책’과 ‘쓰기’는 뜨거운 사랑으로 불이 붙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책 쓰기’라는 자식이 출산되는 과정은 조용하지만 격렬한 사랑의 불꽃을 태우면서 시작되었다. ‘쓰기’라는 여인이 임신한 ‘책 쓰기’ 책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세상에 나올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2. 입덧의 시작과 본격적인 지식 잉태의 가속화


임신하는 순간 입덧이 시작된다. 입덧은 임신한 사람의 체질과 환경에 따라 시작하는 시기와 지속되는 기간도 다 다르다. 입덧은 음식 냄새만 맡아도 구역질이 나는 토덧, 오히려 특정 음식이 너무나 먹고 싶은 먹덧, 특정한 냄새를 참을 수 없는 냄새덧, 침이 역해 침을 삼키지 못하는 침덧, 평소 하던 양치질만 해도 참을 수 없는 양치 덧 등으로 나뉜다. 입덧은 임신한 사람만이 보여주는 특이한 현상으로 원인과 치료방안도 특별히 정해진 것이 없다. 입덧은 결국 임신한 사람만이 경험할 수 있는 특이한 현상이다. 임신한 사람이 보여주는 입덧과 비슷하게 전대미문의 새로운 작품을 잉태한 사람이 보여주는 특이한 현상을 지식 입덧 또는 지식 덧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 지식 덧은 작품 임신이 되면 특정한 지식이나 분야에만 관심이 쏠고 다른 지식이나 분야는 꼴도 보기 싫을 정도로 무관심해지는 현상이다. 지식 덧이 심해지면 평소에 전혀 관심도 없었던 새로운 분야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발동되어 그걸 알아내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은 앎에 대한 갈급한 욕망이 온몸을 지배한다. 지금 쓰려고 하는 주제 이외에는 관심과 애정이 급속도로 식어가면서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조차 하기 싫어할 수도 있다. 잉태된 작품을 출산하기 위해서는 당분간 집중적으로 파고들어야 할 분야에만 관심이 편향적으로 작용하면서 신경이 예민해질 수도 있다.



지식 덧은 작가가 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한 지나친 신경적 반응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잉태된 작품을 세상에 내놓기 위해서는 해당 분야를 깊이 파고들어 세상을 놀라게 하고 싶은 작가 정신의 부산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지식 덧은 특정 지식에 대한 편파적 성향이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깊이 있는 창작을 해낼 수 없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의 산물이기도 하다. 특정 지식에 대한 편파적 성향은 다른 말로 해석하면 작가가 품고 있는 문제의식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는 지식이나 분야에 깊은 상대적 관심과 애정을 보이는 것이다. 입덧이 산모와 잉태된 아기를 보호하기 위해 특정 음식과 냄새, 그리고 주변 환경에 대한 과민반응인 것처럼 지식 덧도 잉태된 작품을 온전히 세상으로 내놓기 위한 작가의 몸부림이자 애쓰기다. 이기적으로 살아야 기적을 일으킨다. 마찬가지로 특정 지식과 분야를 깊이 파면서 동시에 이전과 다른 방법으로 융합해서 색다른 창작물을 부단히 만들어내는 흔적이 축적되지 않으면 세상 사람에게 감동적인 울림을 전하는 기적은 탄생되지 않는다. 지식 덧은 스스로 덫을 놓고 거기에 빠져들지 않으면 자신의 작품으로 세상 사람을 빠지게 만들 수 없다는 작가의 사생결단이다. 지식 덧은 덫에 빠져들어 세상을 등지고 일정 기간 작품 개발에 몰두하지 않으면 돛을 달고 세상을 향해서 자신의 작품을 알릴 수 없다는 작가의 몸부림이자 안간힘이다. 



3. 에로스의 발산과 지식 애무의 시작


레비나스가 《전체성과 무한》에서 에로스와 애무를 타자를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레비나스는 나에게 충격과 자극을 주고 독립된 사유체계에 갇혀 지내는 나에게 타격을 가하고 상처를 주는 사람을 타자라라고 한다. 유한성을 지닌 나에게 무한한 가능성으로 인도하는 사람이 바로 타자다. 이런 타자를 알고 싶은 끊임없는 구애행위를 에로스라고 보고 그것을 현실로 구현시키려는 구체적인 동작을 애무라고 본 것이다. 레비나스가 《전체성과 무한》에서 말하는 애무(愛撫)는 사랑하는 사람이 껴안거나, 쓰다듬거나, 달래거나 어루만지면서 느끼는 인간적인 친밀한 접촉을 말하지 않는다. 레비나스가 말하는 애무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 미래의 저편에 갇혀 있고 잠들어있는 미지의 세계를 탐색하는 행위를 지칭한다. 애무는 내가 모르는 나의 바깥 세계에 존재하는 신비로운 세계를 더듬어 탐색함으로써 미지의 세계를 알고자 하는 간절한 구애 행위다. 레비나스의 애무 개념을 지식 애무로 변환해보면 마찬가지로 미지의 세계를 알고 싶은 지적 에로스가 구체적인 행동으로 드러난다. 작품 임신은 작품을 창조하려는 작가가 창작하려는 미지의 주제를 향한 에로스와 애무의 강도에 따라 성패가 결정된다. 작품의 씨앗으로 발아된 미지의 주제를 찾아가는 에로스가 발동되면 주체인 나를 포기하고 더 자발적으로 알고 싶은 타자, 즉 미지의 주제 속에 갇히게 되고 결국 그 분야의 볼모로 전락한다. 그쪽 분야에 완전히 빠져버리지 않으면 결국 창작하려는 작품 세계에 빠질 수 없다.



레비나스는 나에게 지적 충격과 타격을 주면서 한 우물에 빠져 있는 나를 건져내는 타자를 여성성으로 묘사한다. 여기서 말하는 여성성은 신비한 매력을 베일에 감추고 있는 알 수 없는 존재의 성격을 말한다. 알려고 노력해도 쉽게 자신의 세계를 열어서 보여주지 않는 여성성으로서의 타자나 미지의 세계를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은 그 분야를 특징짓는 다양한 지식을 끊임없이 심문하면서 일일이 만져보고 따져보는 지적 애무의 손길을 뻗어보는 것이다. 여성성의 신비함이 주는 매력에 에로스가 발동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끌리고 쏠리면서 홀릴 수도 있다. 여성성을 품고 있는 타자는 나에게 지적 호기심을 자극해서 기존 개념적 사유체계에 충격과 타격을 가하는 낯선 사유를 품은 미지의 세계다. 그쪽 세계로 진출해서 개념적 충격을 받지 않으면 기존 개념으로 사유하는 현재 상태에 안주하게 된다.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와 마주침으로써 어떤 언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충격적인 경험을 할 수도 있다. 사랑이 어느 정도 무르익어갈수록 나는 타자의 세계로 빨려 들어간다. 나를 포기하고 내가 타자 안에 거주함으로써 타자에게 빠져서 포로당한 상태로 발전한다. 마찬가지로 내가 품고 있는 문제의식을 해결해줄 낯선 개념과 사랑에 빠지는 순간 더욱 농염한 매력을 견딜 수가 없어서 이전과 비교가 되지 않는 에로스적 사랑이 무르익어간다. 그리고 더욱더 에로틱한 애무가 시작된다. 지식 애무의 농도가 짙을수록 미지의 지식은 하나의 작품 속으로 녹아든다. 지식 애무는 이질적 분야의 지식이나 이론을 접목 또는 융합해서 새로운 작품으로 탄생시키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다.



4. 태아의 발달과정과 작품의 숙성과정


입덧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누그러지지만 사람에 따라서 그 증상과 고통은 다르다. 입덧이 서서히 수그러들면서 잉태한 태아의 모습은 서서히 사람의 형태를 갖춰나가기 시작한다. 마찬가지로 지식 덧에 대한 예민한 반응과 민감한 대응이 줄어들면서 창작하고자 하는 작품의 구조나 얼개가 어느 정도 갖춰져 간다. 이런 작품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었던 창작 중인 작품의 구체적인 형상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야기의 뿌리가 밝혀지고 줄기가 윤곽을 드러내면서 거기에 붙은 가지와 이파리도 곧 가시적인 형상을 드러낼 것이다. 태아의 신체 구조와 체형이 드러나고 이목구비의 초기 모습이 어렴풋하게나마 갖춰지면서 경이로운 생명체의 탄생 신화는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산모 건강이나 환경적 여건으로 임신 중에 유산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마찬가지로 잉태된 작품이 작가의 문제의식 변화나 변심, 기타 출판사와의 갈등 또는 환경적 여건의 변화로 세상으로 나오지 못하고 작품이 유산되는 경우도 있다. 한 번 작품이 유산되면 작가는 깊은 상처를 받고 원기 회복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몇 번의 유산 위험을 극복하고 초기에 품었던 문제의식대로 작품을 숙성시켜나가는 안간힘을 쓰다 보면 뿌옇게 보이던 작품의 이미지가 서서히 그 형태를 드러내면서 상상 속의 작품은 서서히 현실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작가는 작품 숙성 과정은 파란만장하다. 우여곡절을 경험하고 시행착오를 겪다 다시 원점에서 시작하기도 한다. 분명한 점은 작품을 통해 세상에 알리고 싶은 메시지와 작품이 도달하고 싶은 꿈의 목적지를 상실하지 않는 이상, 언젠가는 작가 특유의 칼라와 스타일이 담긴 전대미문의 작품으로 세상에 나온다. 오이가 피클이 되고, 배추가 묵은지가 되는 숙성과 발효과정을  거쳐야 제 맛이 나듯 작품도 작가의 삶을 담아내는 글쓰기가 축적되면서 점차 향기 품은 전대미문의 창작물로 여물어간다. 발효되지 않으면 실력을 발휘할 수 없다. 《책 쓰기는 애쓰기다》라는 작품도 저마다 살아온 삶을 한 권의 책으로 녹여내는 쓰기다. 책이 목적어이고 애쓰기가 술어다. 애쓰기를 통해서 탄생하는 게 책이다. 책으로 묶을 수 있는 삶이 없는데 아무리 쓰기라는 방법이나 기법을 가르쳐주어도 쓰기 능력은 향상되지 않는다. 삶은 글과 책의 재료다. 음식재료가 있어야 요리를 시작할 수 있듯이 저마다의 삶이라는 희로애락이 있어야 그걸 애를 쓰면서 쓰기로 완성해낸다. 삶 속에는 저마다의 사건과 사고(事故)가 스며들어 있다. 사건 속에는 사연이 숨어 있고 사고(事故) 속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사고(思考)가 담겨 있다. 사건 속의 사연에 담긴 의미와 사고당하면서 바뀐 사고방식의 차이가 한 사람의 삶의 얼룩과 무늬를 만들어간다. 그것을 글로 쓰고 쓴 글을 일정한 논리체계와 구조에 따라 엮어가는 과정에서 탄생되는 작품이 바로 《책 쓰기는 애쓰기다》라는 책이다.



5. 출산 직전의 산통 과정 및 해산 준비와 작품 탄생의 진통


잉태된 태아는 10개월이 가까워지면서 이제 세상을 나올 준비를 한다. 신기한 현상이다. 더 이상 편안한 엄마 뱃속에서 머물지 않고 험난한 세상으로 만 10개월이 되면 어떻게 알고 나오려는 것일까? 출산이 임박해오면서 산모가 느끼는 진통의 강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진다. 알을 깨고는 나오는 한 마리의 새가 느끼는 고통이 알의 세계와 전혀 다른 세계로 인도한다. 마찬가지로 안락했던 엄마의 뱃속을 떠나 세상의 물결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험난한 세계로 아이는 나오기 위해 엄마와 함께 몸부림을 칠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 권의 책이 잉태되어 탄생 직전이 다가오면 작가는 여러 가지로 바빠진다. 초고 상태의 원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보면서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부분은 고쳐 쓰면서 탈고 작업에 돌입한다. 처음 책을 쓰기 시작할 때는 필요한 내용이라고 썼지만 다 쓰고 나서 읽어보면 그렇게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부분은 통째로 날려버리는 아픔도 경험한다. 더욱 심각한 통증은 편집자와 교신하면서 일어난다. 작가는 필요하다고 썼지만 최초의 독자 입장에서 바라보는 편집자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많다. 작가가 글을 쓰는 논리 전개 방식과 구조가 편집자가 독자 입장에서 바라보는 논리적 흐름과 구조는 많은 차이가 날 수도 있다. 어떤 원고는 통째로 날리고 판을 뒤집어서 다시 써야 되는 원고도 있다. 애간장을 녹여가면서 완성한 초고가 통째로 뒤집힐 때의 고통은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설명할 길이 없다. 한 생명체가 엄마의 포근한 뱃속을 떠나 세상으로 나오면서 험난한 파도가 치는 바다를 건너는 인생을 산다. 마찬가지로 작가의 품 안에서 따뜻한 온기를 품으며 숙성해서 발효된 작품이 드디어 비판의 칼을 갖고 기다리는 험난한 세상으로 발표된다. 



6. 신생아 출산과 작품의 탄생 


오랜 진통 끝에 아이는 세상을 향해 울음을 터트리며 신고식을 한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밖으로 나온 아이는 세상의 어떤 생명체보다도 연약하다. 다른 동물의 새끼는 나오자마자 걷지만 아이는 10-16개월의 극진한 보살핌을 받아야 비로소 두 발로 세상을 밟아본다. 중심을 잡기도 쉽지 않다. 걷다가 넘어지고 넘어지다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해야 자기 힘으로 걸을 수 있다. 작품도 마찬가지다. 발효 없이 실력을 발휘할 수 없고, 발표 없이 발군의 실력으로 세상에 발을 내딛을 수 없다. 작가의 품속에서 발효되던 작품은 편집자의 손으로 넘어가 다시 한번 독자의 입장에서 여러 가지 수정을 거치면 비로소 독자들의 세계로 전달된다. 세상으로 쏟아져 나오는 책이 워낙 많아진 관계로 독자들의 주목을 끌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보통 신간이 나오면 온라인 서점과 오프라인 서점에 배치되는데 자본주의 시장 논리에 따라 어디에 어떻게 배치되는지에 따라 책의 운명이 달라진다. 예를 들면 오프라인 신간 매대(賣臺)에 다행히 자리를 잡고 누워 있으면 일주일 내외 정도 독자들을 유혹하며 주목을 끌 수 있다. 그 안에 독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하면 신간도서는 바로 매대가 아닌 서가에 꽂힌다. 책은 가급적 오랫동안 매대에 표지를 드러내고 누워있어야 생명력이 오래간다. 신간도서가 서가에 꽂히는 순간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는 그 책은 생명력을 잃기 시작한다. 오랜 기간의 진통을 거치면서 하나의 작품으로 세상에 나왔지만 어떤 작품은 나오자마자 한겨울 매서운 한파를 만나 얼어 죽기도 하고 한 여름 천둥과 번개가 동반되는 비바람을 맞고 어디론가 사라지기도 한다. 흔들리는 진통이 흔들리지 않는 작가 특유의 전통을 만들어간다. 아이도 자라면서 넘어지고 자빠지고 아픔을 겪으면서 성장하고 성숙해나간다.



새로운 작품의 탄생은 작가가 출산한 성취물이다. 하지만 작가와는 다른 인생을 살아갈 자식이나 마찬가지다. 작가의 작품은 작가가 아니지만 작가의 수많은 분신 중의 하나다. 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작품은 작가에게 하나의 타자인 것이다. 작가와 작품의 관계는 철학자 레비나스가 《전체성과 무한》에서 말하는 아버지와 자식 간의 관계와 비슷하다. 아버지는 자식을 낳고 기르면서 자식이 살아갈 미래를 규제하거나 결정하지 못한다. 다만 아버지는 자신의 분신인 자식을 통해 자신이 살 수 없는 미래를 살아간다. 자식은 아버지가 아니지만 아버지의 DNA를 지니고 있어서 또 다른 미래의 아버지다. 내가 지금 여기서 살아가고 있지만 나의 미래는 내가 어떻게 알 수 없는 미지(未知)의 세계이고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는 불가지(不可知)의 세계다. 하지만 내가 도달할 수 없는 미래에 나는 나의 자식을 통해 미래로 연결할 수 있다. 나의 자식은 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고 장악하지도 못하는 나의 타자다. 나는 자식의 미래까지 가서 살아갈 수 없지만 자식이 살아가는 미래를 통해 나의 생각과 의도로 흔적을 남길 수는 있다. 작가가 출산한 작품에는 작가의 초기 의도가 담겨 있지만 작품이 독자들의 품으로 넘어가면서 작품은 작가의 초기 의도와 관계없이 여러 번 재창작된다. 작품의 생명력은 작가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 바깥에 존재한다. 작품의 미래는 전적으로 독자들의 창조적 오독과 재해석에 달려 있다. 작가가 살아갈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미래를 작품은 살아간다.



아버지와 자식은 불일불이(不一不二)의 원리와 닮았다. 예를 들면 열매는 씨가 아니고 씨는 열매가 아니다. 하지만 씨 속에 이미 씨의 미래인 열매가 들어있고, 열매 속에는 자신의 후손이 될 씨가 들어 있다. 열매와 씨는 하나지만 사실은 둘이며, 열매와 씨는 둘이지만 사실은 하나다. 나는 나의 타자인 자식과 하나지만 사실은 둘이며, 자식과 나는 둘이지만 사실은 하나다. 나는 타자인 자식을 통해 내가 살아갈 수 없는 미래의 삶과 연결되지만 나는 자식이 아니기 때문에 자식을 낳은 부모로 살아간다. 여기서 레비나스가 말하는 타자를 기반으로 초월한다는 의미, 즉 ‘나이면서 동시에 내가 아님’이 가능하게 된다. 자식은 나이면서 동시에 내가 아닌 타자를 통해 내가 살아가는 지금 여기서의 삶을 초월할 수 있는 것이다.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스승은 자신의 철학과 신념으로 제자를 가르쳐 자신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가는 동반자를 육성한다. 어느 순간 스승의 철학을 받아들인 제자는 자신의 몸안에서 스승을 발견한다. 스승이 육성한 제자는 스승이 아니면서 스승을 닮아간다. 스승은 제자를 육성했지만 청출어람이 시사하듯, 어느 순간부터 자신을 능가하는 또 다른 스승으로 제자를 육성하며 살아간다. 스승은 자신이 살아갈 수 없는 미래를 제자가 대신 살아감을 통해 자신의 영혼을 미래의 흔적으로 남긴다. 스승은 죽어 세상을 떠났어도 제자를 통해 영생하는 삶을 살아간다. 작품도 마찬가지다. 작가는 일정 시점이 지나 연로해지면 세상을 떠나지만 작가의 생각을 담고 있는 작품은 작가의 의도와 관계없이 다른 인생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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